‘벼랑 끝’ 이철성 경찰청장 막전막후

문이 되든 안이 되든 ‘시한부 파리목숨’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이철성 경찰청장 인사에 개입한 것으로 의심되는 자료가 공개됐다. 예전부터 이 청장은 여러 비위행위에도 치안총수 자리에 앉게 돼 많은 의혹에 둘러싸여 있었다. “정권이 교체되면 떠나겠다”는 발언도 다시금 수면위로 떠올랐다. 대선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여러 구설수에도 이 청장이 새로운 정권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지킬 수 있을까?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정부나 민간조직 인사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의심되는 자료가 공개됐다. 지난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이하 센터)에서 일한 김모씨가 사용하던 컴퓨터 하드디스크서 최씨가 이철성 경찰청장 임명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담긴 사진을 확보했다.

최순실 인사에…
개입 의혹 시끌

한 차례 삭제됐다가 포렌식(디지털 증거분석) 작업으로 복원된 이 사진을 보면 이 청장의 프로필 자료 출력물에는 ‘경찰청장 후보 추천 (OK)’라고 기재한 접착식 메모지가 붙어 있다. 특검팀은 최씨가 메모를 붙인 이 청장 프로필 자료를 조카 장시호 씨가 최씨의 의사와 상관없이 촬영했고 이것이 김씨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평소 센터서 작성한 문서를 최씨가 직접 수정해 돌려주므로 그의 필체를 잘 알고 있고 ‘경찰청장 후보 추천 (OK)’라는 메모는 최씨의 필적으로 보인다고 올해 2월 특검팀서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 진술했다. 김씨는 “내용만 보면 최순실이 (경찰청장 후보를) 추천한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쓰여 있는 것을 처음 봤다”고 덧붙였다.

최씨가 이 청장의 임명에 실제로 개입했는지나 만약 관여했다면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등은 특검 수사 과정서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최씨 측이 민간단체나 공공기관 인사와 관련한 정보를 미리 확보했던 만큼 박 전 대통령에게 인사에 관해 의견을 피력했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이 청장은 이 의혹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며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특검서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주길 바란다고 했지만 특검이 종료되는 그 날까지 이 사항에 대해 특검 측에서 공식적으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제 검찰에게 수사권이 넘겨졌으니 어찌 될 지는 지켜봐야 하는 상황.

최순실의 작품? 의심 자료들 공개
한점 부끄럼 없다더니…흔적 확인

아울러 요즘 검찰이 부정부패를 저지른 고위경찰을 집중 단속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선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경찰 군기잡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조사 중인 모 총경이 이 청장의 측근이라고 하니 이 사건과 더불어 최순실의 경찰청장 인사개입의혹도 같이 조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경찰청 내에서 이 청장은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한 뒤 간부후보로 다시 경위로 임용돼 경찰청장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임명 당시 그의 과거에 대한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음주운전 경력이 드러나고 논문표절 의혹이 나오면서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검증이 실패한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 청장은 경찰 최말단 계급인 순경서 시작해 1989년 경찰간부 후보생 37기로 입문한 뒤 강원도 원주서장, 서울 영등포서장, 경남지방청 차장, 경찰청 외사국장, 정보국장을 거치고 청와대 치안비서관을 역임한 뒤 경찰청 차장서 경찰총수가 됐다.

경찰대 출신이 장악하고 있는 경찰 고위급 간부 구성을 놓고 봤을 때 순경서 경찰간부 후보생으로 합격해 11단계 계급을 올라 경찰총수가 된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한 법조계 전문가는 “경찰청장으로는 유일하게 하위직인 순경서부터 출발해 경찰 내의 다양한 보직을 거쳤기 때문에 경찰 내부의 생리를 속속들이 안다는 것도 장점”이라며 “이 같은 세심하고도 성실한 인품이 그를 입지전적인 인물로 자리 잡게 한 동력이 됐을 뿐 아니라 경찰조직서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는 이유”라고 유례없는 호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조직도 뒤숭숭
실패인사 비판

이 청장은 강원지방경찰청 소속 상황실장(경감)으로 재직하던 1993년 11월 휴무일 점심때 직원들과 반주후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를 냈다. 당시 경찰의 교통사고 조사를 거쳐 기소돼 벌금 100만원의 유죄 선고를 받았지만 경찰관 신분임을 숨겨 내부 징계는 받지 않았다.

이 청장의 죄는 2년 뒤인 1995년 12월2일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일반 사면령이 공포되면서 없어졌다.

음주 운전 논란에 이어 부동산 투기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이 청장과 관련해 행정자치부와 경찰청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 청장이 지난 2005년 부인 명의로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오원리 일대의 대지(531㎡)를 매입해 2층짜리 건물을 신축한 사실을 밝혔다.

박 의원은 이에 대해 “이철성 경찰청장 내정자의 가족이 이 곳에 한 차례도 주민등록을 둔 적이 없다”며 “이는 투기 목적으로 매입해 건물을 지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이 인근 부동산개발업자의 평가를 인용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이 청장과 관련된 해당 부동산의 현재 시세는 4억원 정도로 이 청장이 재산내역서에 명시한 1억1000만원의 약 4배에 해당하는 가격이었다.

박 의원은 해당 부당산이 지난 2005년 횡성군이 금융사의 연수원 건립, 골프장 건설 등 대규모 개발 사업이 예정되며 투자 유망지로 급부상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청장이 강원지방경찰청 산하 정선경찰서장에 재직하던 시절에 경찰 고위 간부의 지위를 통해 얻은 지역 개발정보를 활용해 부동산을 매입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반면 이 청장에 대한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경찰청 측은 “해당 부동산은 노후 대비용으로 매입한 것”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사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당시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은 “이 내정자는 다른 논문을 표절한 ‘통일대비 남·북한 경찰통합방안 연구’라는 논문으로 2000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북한학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며 “도덕적으로도 심각한 문제지만 법적으로도 저작권을 위반하는 범죄행위”라고 꼬집었다.

석사 논문은 전체 1191개 문장 가운데 동일문장이 121개, 의심문장이 428개에 이르고 표절 과정서 오타까지 그대로 쓴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 “이사하면서 등록차량의 주소를 이전하지 않아 과태료가 나왔는데 이를 물지 않기 위해 기존 주소지로 두달 동안 이전했다”며 시인하기도 했다.

자질 논란 시끌
정부 바뀌면 바로?


치안총수로 음주운전 교통사고 및 신분은폐 공직자가 임명된 것에 대해 SNS에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SNS에선 “음주운전해도 경찰청장되네. 그럼 음주단속은 어떻게 하나?” “박근혜의 국기문란 행보가 뜨겁다” “안될 사람을 뽑아주면 더 충성할 거라는 계산. 국민, 국격 상관없이 대통령 호위병 뽑기놀이” “심지어 음주운전 신분은폐에 사고당한 사람들 피해도 밝혀지지 않았다. 무서워”

“음주사고도 그것도 경찰이 사고기록도 없애버려도 청장이 되는구나. 현장 경찰관들이 음주운전 단속할 령이 서겠습니까?” “음주운전사고도 부동산 투기처럼 출세하기 위한 훈장인 건가” “이게 진짜 국민 무시하는 거 아니면 뭐하는 거냐” “국민은 없습니다. 기여코 경찰청장 임명 했답니다, 우병우가 검증 했답니다, 끝내주는 정부 입니다” “이철성 경찰청장 살아남으려고 최대한 충성하겠군” 등의 의견이 이어졌다.

이 청장은 자신의 비위와 관련해 “시작은 이랬지만 마무리는 잘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서도 과거 비위 행위에 대해 “이유를 막론하고 변명의 여지 없이 제가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경찰 동료들에게 마음의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일하겠다.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야당서 자신의 사퇴를 촉구하는 데 대해서는 “(야당 입장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며 “제가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되 조직을 책임진 입장서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좀 지켜봐 주시고 열심히 하겠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청장은 법에서 임기(2년)가 보장된 경찰청장직임에도 “정부가 바뀌면 자리를 내려놓고 가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음주운전, 논문조작, 투기…
잇단 문제·의혹 자질 논란

이 청장의 법적 임기는 내년 8월까지 2년이다. 경찰청법에서 경찰청장의 임기를 2년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1958년 6월생이기 때문에 경찰공무원 정년을 고려하면 2018년 6월 말 퇴임해야 한다. 국회 인사청문회서 이같은 임기 기준의 모호함이 지적된 바 있다.

그런데 이 청장은 “(경찰청장은) 정부가 바뀌면 자리를 내려놓고 가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니 나가는 게 맞다고 본다. 동양적 사고로는 정부가 바뀌면 새로운 분이 (경찰청장을) 하는 게 맞다”고 했다.

치안총수의 임기 보장 문제는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와 밀접하게 연관돼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동안 대다수 청장이 임기 도중 바뀌는 양상이 되풀이되면서 경찰이 과도하게 정권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많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도 대선 과정서 경찰청장 등의 법정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013년 취임 한 달도 안 돼 당시 김기용 청장을 교체한 바 있다. 2003년 경찰청장 임기제 도입 이후 2년 임기를 모두 채운 청장은 이택순·강신명 두 명뿐이다.

하지만 정작 일선 직원들은 이 청장을 임명한 것에 대해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우선 순경부터 치안총감까지 전 계급을 거친 최초의 경찰청장이라는 점에서 현장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19대 경찰청장인 강신명 전 청장이 경찰대 위주로 경찰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경찰대 출신이 청장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실제로 승진시험이 난이도가 다시 높아지고 직원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어 직원들 사이에서는 덕장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과 관계없이 정권이 바뀌어도 임기를 채우기를 바라는 하위직 직원들이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부메랑으로?
추후 행보 관심

대선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서 이 청장의 추후 행보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선 “정권이 바뀌면 자리를 내려놓고 떠나겠다”라는 이 청장의 발언이 화살이 되어 돌아 올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이 부분에 대해서 이 청장은 어떠한 대답도 내놓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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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