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장여행 ②광주 1913송정역시장

104년 시간 위에 청춘의 밤이 차오른다

요즘 광주 여행의 키워드는 ‘회춘’이다. 투박하고 낡은 시간에 청춘의 감성을 덧칠해 많은 곳이 젊어지고 환해졌다. 그 복판에 있는 것이 1913송정역시장이다. 1913년에 형성되어 104년 전통을 자랑하는 재래시장으로, 2016년 4월에 리모델링했다.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광산구, 중소기업청 등이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로 지원한 결과다.

컴컴하고 한산하던 시장이 한층 밝아지고, 찾는 이도 대폭 늘었다. 무엇보다 20~30대 여행객의 방문이 늘어 오래된 장터가 젊은이의 활기로 술렁댄다. 그 정점에 밤이 있다. 리모델링 때부터 본격적으로 개설 운영한 야시장 덕분이다. 저녁놀이 지고 노란 조명이 하늘을 촘촘하게 채울 때면, 야시장 특유의 달뜬 분위기와 수런거림이 함께 켜져 재미도 두 배, 활기도 두 배다. 이곳의 옛 이름은 송정역전매일시장이다.

광주송정역 앞에 있어 붙은 이름인데, 역에서 시장까지 불과 200여m 거리다. 송정역이 개설될 때 시장이 함께 형성됐고, 이를 기반으로 한때 광산구를 대표하는 시장으로 활황을 누렸다. 최근엔 같은 이유로 광주송정역을 거쳐 가는 자유 여행객의 쉼터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에는 KTX 광주송정역 대합실도 있다. 국내 최초로 역사 밖에서 해당 역의 실시간 열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전광판이 설치됐고, 한쪽에는 짐을 맡기고 편하게 시장을 둘러볼 수 있도록 무인 물품 보관소가 마련됐다.
 

입이 즐거운 가게들

시장의 규모는 작다. 골목이 직선으로 170m 정도라 이 끝과 저 끝이 한눈에 담긴다. 여기에 재기 발랄한 청년 상인들의 점포와 각자의 터전을 재해석한 터줏대감 상인들의 점포 60여개가 어깨를 맞대고 앉았다. 그런데 생경하지 않고 조화로우며, 옛날 느낌 물씬 풍기는 세트 같다. 리모델링할 때 종전 시장의 몸에 현대의 스타일을 적절하게 입힌 덕분이다.


간판도 여행객의 시선을 끄는 데 한몫한다. 아직 ‘상회’라는 간판을 쓰는 점포도 있고, ‘느린먹거리’ ‘갱소년’ ‘밀밭양조장’ ‘우아한쌈’ ‘고로케삼촌’ 같은 개성 있는 간판을 단 점포도 있다. 업종도 다양해 시쳇말로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대충 봐도 어물전, 빵집, 국숫집, 의상실, 사진관, 제분소, 미용실, 채소전 등이 늘어섰다.
 

컴컴하고 한산하던 시장 ‘불야성’
자유 여행객 쉼터로 인기 폭발

손님이 많은 곳은 아무래도 입이 즐거운 가게다. 식빵, 크로켓, 국밥, 꽈배기, 계란밥, 양갱, 부각 등이 잘 팔린다. 고소하고 달콤한 빵 냄새가 솔솔 나는 ‘또아식빵’은 발 디딜 틈이 없고, 채소와 김치를 삼겹살로 뚱뚱하게 말아 구운 삼뚱이를 파는 곳에도 손님이 많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승부한 우아한쌈도 눈에 띈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삼겹살 한 점을 채소와 함께 싸 먹으면 1000원, 소주 한 잔을 마시면 500원이다. 쌈에 소주 한 잔을 마시는 데 1500원이 들고 3분이 걸린다. 당연히 자유 여행객에게 인기다.

음식 대신 사투리를 파는 곳도 있고, 대여 가게도 있다. 대여 가게에는 ‘누구나가게’라는 간판이 붙었다. 물건을 팔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이곳을 일주일 단위로 빌려 장사할 수 있다. 사투리를 파는 곳은 ‘역사서소’다. 전라도 사투리를 디자인에 활용한다. 까만 연필에 ‘암시랑토 안 혀 개안해야’라고 새기거나, 캘린더에 ‘조깐 쉬다 올랑께 찾지 마쇼’라고 적는 식이다. 
 

오랜 시간이 쌓인 곳에는 이야기가 담기게 마련이다. 104년이나 된 1913송정역시장에서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일이 소중하다. 옛 간판 아래 새로운 간판이 켜켜이 쌓인 풍경을 보고, 간판과 문에 적힌 가게의 유래와 역사를 읽으며 지나는 여행객의 표정이 흐뭇하다.

길을 걷다가 만나는 연도 역시 하나같이 귀하다. 1920년, 1959년, 1964년… 점포 앞 길바닥에 새겨진 숫자는 해당 가게가 문을 연 시기다. 마치 역사를 밟으며 현재를 돌아보는 기분이다. 이것이 1913송정역시장의 가장 큰 매력이다. 노란 조명등 아래서 이곳의 역사를 좇는 재미가 그토록 좋다.

시장의 정기 휴무일은 매월 둘째 월요일, 자율 휴무일은 넷째 월요일이다. 점포마다 영업시간이 다르지만 대체로 평일 주말 상관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한다. 
 


1913송정역시장과 함께 광주의 회춘을 이야기하는 곳으로 청춘발산마을이 있다. 서구 양동에 있는 이 마을은 방직 산업이 호황을 누린 1970~1980년대에 성장했으며, 방직공장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걸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볼거리는 당연히 미로 같은 골목이다. 광주를 대표하는 달동네답게 구불구불하고 경사진 골목을 따라 각종 조형물과 미술 작품이 들어섰고, 글귀가 새겨졌다. 백상옥 작가의 ‘발산마을을 지키는 영웅들’도 그중 하나다. 고무신에 사람 얼굴을 그려 계속 눈길이 간다.

‘청춘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을까 / 폭풍 같은 날들로, 희망이 안 보일지라도 / 오늘의 삶에 꿈이라는 / 빛나는 벗은 잃지 않을 거야 / 나의 오늘이 내일의 청춘이기를’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108계단도 빛난다. 그림으로 가득한 여타 벽화마을과 달리 글귀로 가득 차 여운이 길다. 
 

광주의 시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양림동이다. 근대의 풍경을 100년 넘게 지켜온 양림동역사문화마을은 처마 선이 고운 한옥과 이국적인 벽돌집이 공존해 독특한 면모를 풍긴다. 과거와 현재, 동서양의 시간을 교차해서 보고 싶을 때 찾을 만하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

시간이 넉넉하다면 펭귄마을과 사직공원전망타워도 돌아보자. 양림동과 이웃한 펭권마을은 정크아트로 꾸몄다. 낡고 오래된 물건이 죄다 세상 구경을 나온 듯, 마을 골목을 빼곡하게 채운다. 고장 난 벽시계부터 손목시계까지 시계가 가득한 펭귄시계점을 비롯해 익살과 풍자로 버무린 각종 전시물이 재미있다.

펭귄마을을 돌아보고 남은 광주 여행의 아쉬움은 사직공원전망타워에서 풀면 된다. 지난해 3월 개장한 전망타워는 높이 13.7m로, 4층 옥상 전망대에 서면 무등산과 광주 시가지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오후 10시까지 개방해 야경을 보기도 좋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근대 문화 코스] 펭귄마을→양림동역사문화마을→사직공원전망타워→1913송정역시장 [문화 예술 코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청춘발산마을→1913송정역시장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예술의거리→1913송정역시장 [둘째 날] 청춘발산마을→펭귄마을→양림동역사문화마을→사직공원전망타워

2박3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만귀정→서창향토문화마을→용아 박용철 생가→1913송정역시장 [둘째 날] 청춘발산마을→펭귄마을→양림동역사문화마을→사직공원전망타워 [셋째 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예술의거리→동명동 카페촌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오매광주(광주문화관광) tour.gwangju.go.kr
- 1913송정역시장 1913songjungmarket.modoo.at
- 남구 문화관광 www.namgu.gwangju.kr/index.es
- 광산구 문화관광 culture.gwangsan.go.kr
- 청춘발산마을 www.balsanvillage.com

문의 전화
- 광산구청 사회경제과 062)960-8412
- 광주광역시청 관광진흥과 062)613-3634


대중교통 정보
[기차] 용산역-광주송정역, KTX 하루 20여 회(05:10~22:25) 운행, 약 1시간50분 소요. 서울역-광주송정역, KTX 하루 7~8회(06:20~19:30) 운행, 약 1시간50분 소요.
* 문의 :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광주, 센트럴시티터미널서 5~15분 간격(05:30~다음 날 01:00) 운행, 약 3시간20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서 30분 간격(05:40~24:00) 운행, 약 3시간50분 소요. 상봉터미널서 하루 5회(06:00~19:00) 운행, 약 3시간50분 소요.
* 문의 :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이지티켓 www.hticket.co.kr 상봉터미널 02)323-5885 코버스 www.kobus.co.kr

자가운전 호남고속도로 광산 IC→제2순환도로 서창 IC→공항역→1913송정역시장

숙박 정보
- 라마다플라자광주호텔 : 서구 상무자유로, 062)717-7000, www.ramadagwangju.com
- 오아시타호스텔 : 동구 동명로20번길, 010-4145-9965, www.oasita.com
- 오가헌 : 동구 구성로194번길, 062)227-5557, www.ogaheon.co.kr
- 호랑가시나무언덕게스트하우스 : 남구 제중로47번길, 062)654-0976, www.horanggasy.kr

식당 정보
- 영명국밥(모둠국밥): 광산구 송정로8번길, 062)942-2727
- 계란밥(계란밥): 광산구 송정로8번길, 062)527-3030
- 육전명가(육전): 서구 상무자유로, 062)384-6767
- 연화식당(육전): 서구 마륵복개로, 062)384-1142
- 한옥식당(애호박찌개): 남구 백서로, 062)675-8886

주변 볼거리 용아 박용철 생가, 만귀정, 서창향토문화마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거리, 동명동 카페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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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