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 오리온 비자금 수사 관전포인트

‘7부 능선’ 검풍…담철곤 회장 덮칠 일만 남았다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검찰의 ‘오리온 비자금’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검은돈’을 만든 혐의로 오너 가신과 브로커가 쇠고랑을 찼고, 그 주변인들이 속속 검찰에 불려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자금 출처와 조성 경위, 사용처 등 각종 의혹들이 ‘양파 껍질’ 벗겨지듯 하나씩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까면 깔수록 입이 떡 벌어진다. 세간의 시선은 ‘최종 타깃’에 쏠린다. ‘7부 능선’을 넘은 검풍이 오너일가를 덮칠 일만 남았다.

100억대 비자금 조성 혐의 ‘핵심고리’ 2인방 구속
오너일가 개입 여부 집중수사…소환 조사 ‘초읽기’


검찰은 오리온그룹이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의심됐던 40억원을 훌쩍 넘어선 금액이다. 추가 수사 상황에 따라 금액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게 검찰의 설명. 비자금 출처와 조성 경위, 사용처 등 혐의 입증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검찰은 막바지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검찰의 ‘오리온 비자금’수사가 시작된 것은 지난 3월. 지난해 8월 오리온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인 국세청의 수사 의뢰를 받은 검찰은 기초적인 자료 검토 등 내사를 마친 뒤 본격적인 ‘털기’에 나섰다. 그 신호탄이 서울 용산구 문배동 오리온그룹 본사와 계열사 사무실 8∼9곳을 압수수색한 것이다. 이어 압수수색 범위를 넓히면서 관련자들을 줄소환했다.

그 결과 오리온그룹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우선 ‘오리온 금고지기’로 불리는 그룹 전략담당 사장 조경민씨를 횡령, 배임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조씨는 비자금 조성을 총괄 지시해 실행에 옮기고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조씨의 비자금과 횡령, 배임, 탈세 총액은 160억원에 달한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는 2006년 8월 중순께 부동산 허위·이중 매매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다. 오리온그룹 계열 건설사 메가마크가 시공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 고급빌라 ‘마크힐스’시행사인 E사와 짜고 209억여원짜리 부동산을 169억여원에 위장 거래하는 수법으로 비자금 40억원을 만들었다.

조씨는 서미갤러리 계좌를 통해 이 돈을 송금 받아 횡령하고 법인세 10억원을 포탈한 의혹도 있다. 뿐만 아니다. 조씨는 그룹에 제과류 포장재 등을 납품하는 ‘위장 계열사’인 I사를 통해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부동산 위장 거래
임원 급여 빼돌려


이외에 ▲중국법인 자회사 3개 업체를 I사로부터 인수하는 형태로 이들 회사의 법인자금 200만 달러(한화 20억원) 횡령 ▲I사의 중국법인 자회사 L사의 지분 53억원어치를 오리온의 홍콩 현지법인 P사에 22억원에 넘기는 ‘헐값 매각’을 통해 I사에 31억원 손해 ▲I사 임원들의 급여와 퇴직금을 가장해 38억원 횡령 등의 혐의도 있다.

검찰은 “I사 지분은 전·현직 대표와 그 친족 등이 76.66%를, 창투사 등 기타 주주가 23.34%를 각각 소유하고 있지만, 이 지분은 그룹 사주인 담철곤 회장, 이화경 사장 부부의 차명 지분”이라고 밝혔다.

수사 초기 검찰 안팎에선 조씨가 ‘검은 돈거래’를 진두지휘한 ‘몸통’으로 지목됐었다. 국세청은 검찰에 수사 의뢰하면서 조씨를 피고발인으로 적시했다.

‘비자금 키맨’으로 찍힌 조씨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오리온그룹 오너일가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조씨는 전략통이자 재무통으로 그룹 경영 전반에 깊숙이 관여해온 막후 실력자다. 그룹 내부에선 담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오리온 집사’로 통한다. 그를 ‘삼성 집사’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에 비교하기도 한다.

1980년대부터 오리온에서 근무한 조씨는 그룹 몸집을 늘리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는 등 오리온그룹의 성장을 이끈 주역으로 인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오너일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한때 10여개 계열사의 등기이사를 겸임하기도 했다.

전직 계열사 한 임원은 “조씨는 그룹 전반의 자금줄을 훤히 알고 있다”며 “그를 털면 ‘검은돈’의 실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번 사건의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검찰은 조씨를 상대로 한 수사 과정에서 담 회장 등 경영진이 회삿돈으로 외제 고급 슈퍼카를 굴린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는 계열사 법인자금으로 외제 고급 차량을 사들이거나 리스해 담 회장 등이 개인적인 용도로 쓰게 했다.

조씨가 2002년 10월부터 2006년 5월까지 회삿돈으로 마련한 차량은 ‘포르쉐 카레라 GT’,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포르쉐 카이엔’, ‘벤츠 CL500’등이다. 조씨는 이들 차량을 담 회장과 계열사 김모 대표 등에게 제공했고, 계열사가 리스료와 차량보험료, 자동차세 등 5억7000여만원의 비용을 모두 부담하게 했다.

검찰은 “‘자동차 마니아’로 알려진 담 회장은 회삿돈으로 고급 외제차량을 리스해 자녀 통학 등 개인 용도로 무상 사용했다”고 전했다.

담 회장 등이 ‘공짜’로 몰고 다녔던 차량들의 가격은 웬만한 집 한 채보다 비싼 고가다. ‘스포츠카 황제’로 불리는 ‘포르쉐 카레라 GT’는 수입가가 8억8000만원에 달한다. ‘람보르기니 가야르도’는 3억5000만원, ‘포르쉐 카이엔’과 ‘벤츠 CL500’는 각각 2억원대를 호가한다.

조씨도 2004년 11월부터 지난 4월까지 계열사 명의로 빌린 포르쉐 등 외제 차량들을 몰고 다녔다. 계열사는 여기에 들어간 비용 13억9000만원을 댔다.

회사가 빌린 차로
‘똥폼’ 잡고 다녔다

검찰은 조씨 외에 온미디어(현 CJ E&M) 전 대표 김모씨도 수사 중이다. 일단 협력업체로부터 부정한 청탁과 함께 수억원을 받은 개인비리 혐의다. 김씨는 2007∼2008년 방송·미디어 사업과 관련해 협력 관계에 있는 A사 관계자로부터 “편의를 봐 달라”는 취지의 청탁과 함께 6억원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다.

다만 검찰은 김씨가 온미디어 대표로 재직할 당시 이 회사가 오리온그룹의 비자금 조성 창구로 활용됐거나 비자금 조성에 개입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또 담 회장이 온미디어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통해 90억원에 달하는 차익을 남긴 의혹에 대해서도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설립된 온미디어는 케이블TV 프로그램 공급 사업을 하다 지난해 6월 CJ그룹에 인수, CJ그룹 계열사들과 합병되면서 미디어 전문업체인 CJ E&M으로 재출범했다. 그전까지 ‘오리온 비자금’조성에 깊숙이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는 조씨와 담 회장이 김씨와 함께 대표이사로 재직하며 경영에 관여했었다.

검찰은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방어권 보장의 필요성이 있고,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검찰은 보강 수사를 거쳐 영장을 재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검찰이 지금까지 거둔 성과 중 하나는 그동안 요리조리 수사망을 피했던 서미갤러리 대표 홍송원씨를 구속했다는 점이다. 검찰은 오리온그룹 본사 등을 압수수색할 당시 홍씨의 집도 뒤져 광범위한 미술품 거래 내역을 확보한 뒤 홍씨를 2차례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홍씨는 ‘오리온 비자금’조성에 관여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오리온그룹이 ‘마크힐스’를 짓는 과정에서 조성한 비자금 40억원을 입금 받아 미술품을 거래하는 방식으로 ‘돈세탁’을 해 범죄수익을 숨겨준 의혹이다.

‘회삿돈=회장돈?’ 8억대 외제차 굴려
‘고급 슈퍼카’ 자녀통학 등 개인유용


홍씨는 오리온 계열사 등 고객이 위탁판매를 맡긴 고가의 미술품들로 담보 대출을 받아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위탁 미술품 중엔 오리온그룹 미디어 계열사 M사가 소유했던 미국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스틸라이프’시리즈 중 한 작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틸라이프는 리히텐슈타인이 1970년대 주로 시도한 정물화 시리즈물로 가격은 수십억원에 이른다.

홍씨는 재벌가 비자금과 악연이 깊다. 2004년 해외 미술품 유통 비리와 관련해 관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데 이어 2008년 삼성 비자금 수사 당시 삼성을 대신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 ‘행복한 눈물’을 해외 경매를 통해 샀다는 의혹을 받았다. 최근엔 그림로비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부하를 시켜 최욱경 화백의 그림 ‘학동마을’을 구입한 곳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검찰과 끈질긴 악연을 이어온 홍씨는 매번 예봉을 피했지만, 이번엔 ‘오리온 덫’에 걸려 철창신세를 면치 못했다.

검찰 관계자는 “조씨와 김씨, 홍씨 외에도 오리온그룹 비자금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인사들을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이들은 현재 참고인 신분이지만, 언제든 피의자 신분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오리온그룹 관련 인사들이 잇달아 구속되거나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담 회장의 사법처리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검찰 안팎에선 담 회장 등 오리온그룹 오너일가의 소환 조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담철곤 소환 임박 
사법처리 가능성도

‘오리온 비자금’을 캐고 있는 검찰의 칼끝은 ‘윗선’을 겨누고 있는 상황. 검찰은 조씨와 홍씨가 비자금의 실체를 규명하고 오너일가의 개입 여부 확인에 ‘핵심 고리’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먼저 구속된 조씨의 혐의들이 담 회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인지 등을 밝혀내는데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또 홍씨가 비자금의 돈세탁을 돕는 과정에서 담 회장 등과 접촉했는지 여부도 조사 중이다. 검찰은 두 사람의 조사가 끝나는 대로 담 회장 등 그룹 수뇌부 소환 일정을 정할 방침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객관적인 관점에서 한두 푼도 아니고 100억원이 넘는 비자금 있다면 오너의 지시나 묵인 없이 임원이 개인적으로 조성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담 회장의 혐의가 짙든 옅든, 죄가 있든 없든 의혹 해소 차원에서 소환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간의 시선은 ‘키맨 2인방’진술에 쏠리고 있다. 둘의 입에 따라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수도 닫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오리온 비밀을 머금고 있는 이들은 어떤 입장을 취할까. 검찰 수사에 순순히 협조할까. 당장은 입을 꾹 다문 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언제 어느 때 뒤집을지 모를 일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