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리더십 vs 불도저 리더십 전격 비교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 vs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 위기수습능력

최근 대한민국 금융안전망에 큰 구멍 두 개가 연이어 뚫렸다. 현대캐피탈 고객정보 유출사건과 농협중앙회의 전산장애 사태가 바로 그것. 두 회사 모두 변명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현대캐피탈은 두 달 동안 고객의 금융정보가 줄줄 새는지 까맣게 몰랐다. 농협은 며칠이 지나도록 복구는커녕 원인조차 밝히지 못했다. 현대캐피탈과 농협 모두 금융기관의 취약한 전산관리 시스템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위기 대응 방식은 정반대였다. 대체 무엇이 어떻게 다른 걸까. <일요시사>가 집중 조명해봤다.


정 사장, 해외 출장 일정 취소하고 귀국해 고객에 사과
최 회장, “나도 당했다” 직원 호통에 책임 떠넘기기도

지난 7일 오전 9시, 현대캐피탈 직원에게 한통의 이메일이 날아들었다. 내용인 즉, 현대캐피탈 고객 정보를 해킹했으니 협상을 하자는 것이었다. ‘친절하게’ 고객 정보 샘플도 첨부돼 있었다. 화들짝 놀란 현대캐피탈은 즉각 사실 확인에 나섰다.


현대캐피탈이 자체적으로 1차 조사를 벌인 결과 고객 42만 명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이메일, 휴대전화 번호 등이 유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1만3000명 이상 고객의 프라임론패스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및 고객 신용등급도 해킹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해커들이 돈을 빼내가기 직전까지 간 셈이다. 현대캐피탈은 발칵 뒤집어졌다.

현대캐피탈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후 해커를 검거하기 위해 범인이 지정한 계좌로 최소한의 금액을 송금했다. 경찰은 곧바로 범인검거작전을 펼쳤고, 8일 오후 5시쯤 해커 소재지로 파악되는 곳을 급습했다. 그러나 검거는 실패로 돌아갔다.

비슷한 사고지만
극명한 대응방식


그로부터 1시간 후 해커는 “돈을 보내지 않았으니 오후 7시 인터넷에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다. 현대캐피탈은 결국 이날 오후 6시30분, 모든 사실을 고객과 언론에 털어놨다. 총부리는 현대캐피탈을 이끌고 있는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의 미간에 정조준 됐다. 고객정보관리를 소홀이 했다는 원성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둘째 사위인 정 사장은 지난 2003년 10월 현대캐피탈 부사장에 취임, 7년 만에 적자에 허덕이던 현대카드를 업계 2위로 올려놨다. 톡톡 튀는 발상과 아이디어로 현대카드의 이미지 쇄신에도 큰 몫을 했다. 초우량 고객(VVIP)을 위한 서비스, 카드 디자인 혁신, 슈퍼시리즈 등이 모두 정 사장의 작품이다. 회사 안팎에선 “현대카드의 힘은 ‘정태영’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될 정도다.

하지만 이번 일로 정 회장이 이제껏 공들여 쌓아올린 탑이 한순간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정 사장이 취임한 이래 첫 위기다. 처음 치고는 강도가 만만찮다. 신뢰가 가장 큰 자산인 금융업에서 보안에 허점을 드러낸 만큼 정 사장의 위상에 치명타가 불가피해 보였다. 업계의 이목이 정 사장의 해법에 쏠렸다.

이 가운데 정 사장이 내놓은 카드는 ‘정면돌파’였다. 노르웨이 출장 일정을 단축하고 급거 귀국한 정 사장은 “고객정보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면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부하직원을 내세워 책임을 전가하던 여느 ‘로열패밀리’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책임의식도 보였다. 이 회사는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객들에게 일일이 위험을 알렸다. 2차 피해를 막는데도 양팔을 걷어붙였다. 현대캐피탈은 자동응답전화(ARS)나 인터넷, 모바일, 제휴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을 통한 프라임론 대출시 본인확인을 철저하게 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단 해킹된 정보(주민등록번호, 이메일, 비밀번호 등)만으로는 대출받을 수 있는 길을 막아 놨다.

그로부터 며칠 뒤인 지난 12일, 이번엔 농협에서 사상 초유의 대형사고가 터졌다. 전산망 장애가 발생한 것. 농협은 “곧 복구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복구가 먼저라며 함구했다. 그 복구마저도 예정시간을 수차례 넘겨 지연됐다.

농협은 사건이 발생한지 30여분이 지난 이날 오후 5시35분쯤 “오후 6시30분이면 복구가 완료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사건이 커지자 “창구 입출금 거래는 13일 오전 9시, 창구업무 전체 거래는 오후 1시, ATM은 오후 3시, 인터넷뱅킹은 밤 11시에 정상화할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다음날인 13일에도 농협의 ‘말 뒤집기’는 계속됐다. 창구 입출금 거래가 낮 12시에 정상화할 것이라고 밝힌 것. 결국 창구 입출금 거래는 최종적으로 낮 12시 35분경 정상화됐다.

농협은 이날 오후 1시쯤 농협 지점 내 무통장입금, 신용카드로 창구에서 통장출금 등의 작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로부터 수 시간이 지나도 일부 점포에서는 이 작업이 정상화되지 않았다. 큰소리만 떵떵 쳐놓고 고객과의 약속을 저버린 꼴이다. 농협은 ‘양치기 소년’이라는 불편한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농협 양치기 소년
불편한 꼬리표

그간의 사태수습을 진두지휘해야 할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의 얼굴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비난이 극에 달한 지난 14일 오후 늦은 시간이 돼서야 마지못해 수습에 나섰다. 최 회장은 이날 약 2분 동안 고개를 숙이고 농협에서 발생한 전산장애로 3000만 고객들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농협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최 회장의 사과가 형식치레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금세 드러났다. 최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 내내 고객들에게 이해와 용서를 빌기보다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최 회장은 “나도 사고 관련 보고를 바로 못 받았다. 곧 복구될 거란 직원들 말만 믿었다가 당했다”며 직원에게 호통 쳤다. 회견장에 모인 이들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최 회장은 또 “(전산장애와 관련해) 이런 일이 생긴 것은 내가 알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나는) 비상임이어서 업무를 잘 모르고, 내가 한 것도 없으니까 책임질 것도 없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사방에서 싸늘한 시선이 꽂혔다.


최 회장, 말만 “복구한다”, 숨기기 급급…‘양치기 리더십’
정 사장, 전고객 공지…최 회장, 우수고객에만 개별연락

대국민 사과에 나선 최 회장의 태도도 문제였다. 최 회장은 기자회견 도중 “농협지주 설립과 관련해 지역 단위 조합에 설명회가 있어 일어나야 한다”며 회견장을 나서려다 “지금 해킹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 어디 있느냐”는 기자들의 항의에 어색하게 다시 주저앉았다.

또 최 회장은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최 회장은 “고객정보와 금융거래 원장은 모두 정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확인결과, 신용거래 내역이 손실된 것으로 드러났다.

농협은 카드거래 내역과 원장의 거래내역이 맞지 않아 수작업으로 확인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즉, 농협 서버에서 신용카드와 체크카드의 거래내역이 손실돼 수작업으로 기록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다. 농협이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거래를 재개하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관리도 부실했다. 농협의 고객들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이메일, 전화로 전산 복구 상황을 설명 받거나 사과문을 전달받지 못했다. 일부 지점에서는 거액을 예치한 우수고객에게만 개별 연락을 돌려 빈축을 사기도 했다.

현대캐피탈과 농협 모두 금융기관의 취약한 전산관리 시스템을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위기 대응방식은 너무 달랐다. 이에 따라 두 회사의 수장의 위기관리 능력과 리더십에 대한 평가도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최 회장 수습 후
즉각 사퇴하라”

정 사장에게 이번 사고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위기관리 능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고 직후 싸늘한 시선을 보내던 이들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다. 업계에선 “역시 정태영”이라는 찬사가 울려 퍼졌다. 한 업계관계자는 “위기상황에 대한 유연하고 신속한 대처는 업계의 귀감”이라며 “정 사장의 리더십이 위기 상황에서 더욱 빛났다”고 평가했다.

반면, 최 회장은 위기에 무능력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두고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고객 무서운 줄 모른다는 비아냥도 들려온다. 심지어 일각에선 최 회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전국농협노조, 전국축협노조, 전국사무연대농협중앙회지부 등 농협 관련 3개 노조는 지난 19일 서울 중구 충정로 농협중앙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과 임원진은 이번 사태가 일단락된 뒤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노조 측은 “농협은 사상 최고, 최대 규모의 금융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이 됐고, 3000여만 명에 이르는 국민이 직·간접적인 손실을 봤다”며 “상황이 이런 데도 최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은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책임 떠넘기기와 문제 회피에만 급급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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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