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호 특집> 미제사건 파일6 ②화성 여대생 살인사건

실종 46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금방 온다던 문자메시지가 마지막이었다. 싸늘한 주검만 발견됐을 뿐 십수 년이 지나도록 누가 어떤 이유로 범죄를 저질렀는지 명확히 밝혀진 게 없다. 인근지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연쇄살인의 흔적만 아른거릴 뿐이다.

2004년 10월27일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와우리서 대학생 노모양이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행방이 묘연했던 노씨는 실종 46일 만에 변사체로 발견됐다. 이 사건은 여전히 미제로 남아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잘못된 수사

학교서 중간고사를 치른 노씨는 오후 3시경 귀가했다. 집으로 돌아온 노씨는 동생 둘과 함께 집 근처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김밥을 먹고 헤어졌다. 노씨가 발길을 돌린 곳은 집에서 약 3km 떨어진 화성복지관 수영센터. 수영강습을 받기 위해서였다.

수영강습을 받기 직전인 오후 7시경 노씨는 어머니와 통화했다. 수영강습이 끝나면 자동차로 데리러 오길 부탁했다. 하지만 노씨 어머니의 일정 때문에 둘은 함께 귀가하지 못했다. 이 통화가 생전 노씨가 남긴 마지막 목소리다.

오후 8시25분경 수영강습을 마치고 안녕동 화성복지관 근처 버스정류장서 경진여객 소속 34번 버스에 탑승 후 노씨는 집에 있던 남동생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누나 금방 갈게.” 그러나 노씨는 영영 오지 못했다.


오후 8시35분경, 노씨는 수원대학교 정류장을 지나 봉담읍 와우리공단서 서너명의 승객들과 함께 하차했다. 와우리공단은 노씨의 집에서 3km 떨어진 곳이다. 정류장서 내리는 장면이 버스 CCTV에 포착된 후 노씨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오후 11시까지 귀가하지 않는 딸이 걱정된 어머니는 통화를 시도했으나 노씨의 휴대전화는 전원이 꺼져 있었다. 곧바로 태안지구대에 실종신고가 접수됐고 경찰과 가족은 다음 날인 28일 새벽 3시까지 집 주변을 수색했으나 어떤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오전 7시30분경 노씨의 휴대전화 번호로 가족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 동네 신문 배달부인 38세 김모씨. 오전 5시 신문배달을 하던 중 김씨는 노씨의 휴대전화을 주웠고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통화 목록을 보고 전화를 걸었다. 발견 당시 휴대전화는 흠집 하나 없는 깔끔한 상태였다.

휴대전화가 발견된 곳은 노씨의 집 반대 방향으로 화성복지관서 4km나 떨어진 협성대학교 근처 커피자판기 옆이었다. 노씨가 자발적으로 집에서 반대 방향인 협성대학교 근처로 갔을 가능성은 낮았다. 이에 경찰은 노씨의 신변에 이상이 있음을 가정하고 휴대전화 발견 장소를 중심으로 수사를 개시하기에 이른다.

아른거리는 ‘화성연쇄살인’ 기억
눈 앞서 놓쳐버린 살인범 어디로?

오전 10시30분 휴대전화 발견 장소에서 노씨의 집 방향으로 1.6km 떨어진 곳에서 보라색 티셔츠와 검은색 후드점퍼가 발견됐다. 티셔츠 곳곳에 주로 야산서 자라는 주름조개풀이 묻어 있었다. 노씨의 흔적은 계속 모습을 드러냈다. 티셔츠가 발견된 지점서 200m 떨어진 곳에서 정액으로 추정되는 액체가 묻어 있는 청바지가 발견됐다.
 


청바지 발견 지점서 800m 떨어진 곳에서 브래지어, 브래지어 발견 지점서 50m 떨어진 곳에서 흰색 양말, 양말 발견지점서 200m 떨어진 곳에서 운동화 왼쪽 부분을 찾아냈다. 나머지 운동화 오른쪽은 40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곳은 노씨 자택서 약 700m 떨어진 지점이었다. 모든 유류품은 실종된 노씨의 소품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후 4시 운동화가 발견된 근처 화성시 정남면 보통리저수지서 노씨의 면티, 팬티, 가방, 화장품이 발견됐고 31일 오후 12시30분경 저수지 근처 도로변서 수영강습에 쓰인 수영모와 물안경, 3시30분경 수영복과 쇼핑백이 연이어 목격됐다.

그러나 정작 노씨의 신원은 좀처럼 파악하기 힘들었다. 이렇게 46일이 흘러간 후 노씨는 싸늘한 주검이 돼 모습을 드러냈다.

12월12일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보통리 태봉산서 부동산 거래를 위해 일대를 둘러보던 부동산업자 홍모씨는 괴이한 광경을 발견했다. 들쥐들이 모여 무언가 부지런히 갉아 먹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들쥐들이 갉아 먹던 것은 살점이 일부 남은 채 뼈가 드러나 있는 사람의 시신이었다.

부패가 꽤나 진행된 상태라 신원 파악이 어려웠지만 결국 이 시신은 12월14일 국과수의 부검 결과 노씨로 밝혀졌다.

시신의 위장서 떡조각, 양배추 등이 나왔다. 실종 당시 노씨가 동생들과 분식을 먹었다는 점에서 실종 당일 살해됐다고 추정 가능한 대목이다. 시신에서 흉기로 찔리거나 골절 등의 흔적이 거의 없는 걸로 봐서 질식사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노씨의 신원이 파악된 후 경찰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청바지서 발견된 정액을 기초로 노씨 주변인물과 화성 일대 택시기사, 전과자들의 DNA 샘플 검출작업이 이뤄졌다. 당시 용의선상에 이름을 올린 인원만 4600여명에 달한다. ‘인권침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유가족과 경찰은 더 이상 지체할 틈이 없었다.

그러나 국과수 감정 결과 어느 하나도 일치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건 당일 노씨를 태운 버스기사와 승객에게 최면수사도 감행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살인자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상태서 온갖 억측이 쏟아졌다. 일각에선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의 연관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과거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 지역과 매우 인접한 데다 수법도 상당히 비슷했다. 노씨의 휴대전화를 발견한 신문 배달부 김씨도 유력한 용의자로 몰렸다. 김씨가 전과 4범이었던 탓이다. 하지만 명확한 물증은 끝내 찾지 못했다.

서서히 잊혀가던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은 2015년 2월28일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다시 주목받았다. 청바지서 채취한 DNA가 오염됐을 가능성이 제기됐고 사실 확인 결과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국과수 측의 입장이 뒤늦게나마 전해졌다.

기회 놓쳤다

재감식을 통해 범인을 붙잡을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했다. 그러나 끝내 유가족의 염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청바지의 행방을 두고 경찰과 유가족이 상반된 주장을 펼친 까닭이다. 수사 담당 경찰 측은 검식이 끝난 상황이기 때문에 청바지를 유가족에게 돌려줬다고 주장했고 정작 유가족 측은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진 셈이다. 2019년 10월27일 만료 예정이었던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2015년 형사소송법 개정에 따라 시효 무기한 연장이 이뤄졌다는 게 그나마 위안 삼을 만한 구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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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