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레드모델바’ 김동이 대표의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 27>

마마의 배신, 꼬여버린 ‘블루문’ 생활

전국 20여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000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 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낸다. <일요시사>는 김 대표의 책 발행에 앞서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지마마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마마 우진이가 1600만엔을 들고 도망간 것이다”

■ ‘블루문’의 지마마
나 스스로도 손님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섰다. 오전에 밥이나 차를 함께 마시기도 했고 때로는 선수들끼리 사우나에서 우애를 다지기도 했다. 나는 팔방미인이 되어야 했다. 대화, 노래, 댄스, 유머와 위트까지 갖춰야 했다. 한마디로 만능엔터테이너가 되지 않으면 손님을 모을 수 없고, 지마마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없었다. 때로는 고객들을 위한 쇼킹한 이벤트도 준비했다. 에로틱한 스트립쇼 비슷한 것이었다. 하지만 진짜로 옷을 벗는 건 아니고 그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해 손님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다. 아마도 가와사끼의 블루문에서 나는 유흥가의 속성을 가장 잘 파악했으며 그것을 실제 현실에 적용, 손님들에게서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게 됐을 것이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은 행운을 얻게 된 경우가 있었다. 우리 가게에 50대로 보이는 클럽마마가 가끔씩 놀러오곤 했다. 그녀는 나를 앉히고 놀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지마마이기 때문에 한 곳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마마는 그게 아쉬웠는지 한번은 강승모의 ‘무정블루스’를 한번 불러 달라고 했다. 고객이 원하면 무엇이든 하는 것이 선수들의 자세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최선을 다해 노래에 임했다. 원래 즐겨 부르는 노래는 아니었지만 몇몇 가수들이 TV에서 그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났다. 1절을 마치고 반주가 흐르고 있을 때 갑자기 ‘와~!’하는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슨 소리일까. 쟁반이었다!
‘설마, 저 쟁반이 바로 나에게?’ 쟁반을 받쳐 든 사람은 부쪼였고, 모든 선수들과 손님들은 그 쟁반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좋다고 팔짝팔짝 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직 노래도 다 끝나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면서 나의 머리는 팽팽 돌아갔다.
정우가 쟁반을 받은 이후로 나는 한 번도 쟁반을 받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쟁반은 바로 호스트빠에서 성공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찰찰 넘치는 현금이 쟁반에 담겨 고스란히 선수에게 전달되는 것은 모든 선수들이 꿈꾸는 희망이기도 했다. 노래가 끝나고 쟁반에 놓여 있는 돈이 보였다. 200만엔. 정우가 받았던 바로 그 액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밖에 없었다.
다시 클럽마마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렇게 큰돈을 받아도 되는지 물었다. 그리고 왜 나에게 쟁반을 주었는지도 궁금했다.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지마마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너무 멋있고.”
인생은 그런 것인가? 불행 끝에 행복이 찾아오고, 행복한 시절이 지나면 또 어느 정도는 불행한 시기가 다가오고. 지바에서의 불행과 악몽은 오히려 나에게 약이 되었던 부분도 있다. 맞으면서 배웠던 댄스와 쇼가 이곳에서 나의 위상을 에이스 중의 에이스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가와사키는 나에게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나는 배웠다.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하라고. 그러면 반드시 기회가 생기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성공을 잡을 수 있다고.
나는 블루문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노력했다. 그 후에 나는 지바의 호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그곳에서 도망쳐 나온 뒤로 사쪼는 나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것도 잠깐이고, 가게의 매출이 점점 떨어졌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우가 없는 가게, 그리고 그 뒤를 이었던 내가 없는 가게는 경쟁력을 많이 잃을 것이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가게 문을 닫게 됐고 마마도 한국으로 갔다고 했다. 나는 그제야 긴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가게가 문을 닫았으니 이제 더 이상 나를 찾을 일도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블루문은 한창 상한가를 치고 있었다. 매달 한국 돈으로 1억원이 넘는 큰 매출을 올리고 있었으며 손님들은 끊이지 않고 가게를 찾아와 주었다. 
 
■ 마마의 배신 ‘당황’
어느 날 사쪼가 숙소로 찾아와 나와 마마를 불렀다. 한국에 급한 일이 생겨서 한두 달 동안 나갔다 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굳이 사쪼가 가게를 지키기 않아도 영업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음 날 사쪼는 한국으로 출국했고 나는 금전출납과 카운터를 마마에게 맡겼다. 복잡하게 계산하는 일을 딱 싫어했던 나는 일에만 집중했다. 사쪼는 가끔씩 전화로 “별일 없느냐”고 물었고 그때마다 나는 아무 일도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다시 한 달 뒤. 드디어 월급을 주는 날이 돌아왔다. 
‘캬~ 이번 달에도 매출이 엄청나구만!’
기분이 좋았다. 블루문은 나의 모든 것이 투여된 곳이다. 월급을 주는 날 모두들 출근을 했다. 각종 정산을 내가 미리 해두었으니 마마가 돈을 가지고 오면 나눠주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새벽 1시가 되어도 마마가 오질 않았다. 이제까지 그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새벽 2시, 3시가 되어도 도대체 연락이 안 되는 것이다. 가게에는 손님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부쪼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지금 마마한테 전화 왔는데, 갑자기 그냥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어.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순간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설마. 나와 부쪼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마마 우진이가 1600만엔을 들고 도망간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 했다. 아무도 믿지 말라는 정우의 말을 나는 내 성공에 도취되어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어쩌면 모든 것은 내 잘못인지도 몰랐다. 내가 조금 더 확실하게 했다면 이러한 일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쪼를 따로 커피숍으로 불러 이야기를 해봤다. 결론은 빨리 사쪼에게 알리고 일을 수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수습이란 돈이다. 그러니 수습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마 우진이를 찾아내지 않는 이상 수습이 아니라 또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그러나 마음먹고 도망간 우진이에게서 다시 돈을 가져올 수 있는 길은 없는 듯이 보였다. 새벽에 전화를 받은 사쪼는 곧바로 다음 날 일본으로 오겠다고 했다. 사쪼가 오기 전까지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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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