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舌禍)에 데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세무조사, 회장님 혀끝에서 시작됐나?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국세청 조사가 한창인 지금, 삼성의 표정엔 고민이 가득하다. 세무조사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조사가 ‘회장님 혀끝’에서 비롯됐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어서다. 지난달 10일 전경련 회의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의 ‘낙제점 발언’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삼성은 95년에도 ‘설화’로 큰 타격을 입은 전력이 있어 지난 악몽이 되살아날까 잔뜩 겁에 질린 모습이다.

삼성물산, 호텔신라, 삼성중공업 세무조사가 ‘한창’
현정부 경제정책에 대해 “낙제점은 아닌 것 같다”

삼성물산을 시작으로 호텔신라, 삼성중공업 등 삼성 계열사를 대상으로 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한창이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지난 2월 삼성물산을 시작으로 호텔신라, 삼성중공업 등 삼성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섰다. 국세청 조사2국은 4일부터 호텔신라에 대해 2개월가량의 일정으로, 조사1국은 삼성중공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사에 대해 삼성그룹은 통상적으로 있는 4년 주기의 정기세무조사라는 입장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하지만 재계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삼성그룹의 계열사가 일제 세무조사를 받는 배경에 이 회장의 “(현 정부가) 낙제는 면했다”는 발언에 대한 ‘괘씸죄’가 적용됐다는 것이다.

낙제점 발언에
MB 괘씸죄 적용?

이 회장은 지난달 10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지난 10년에 비해 상당히 성장을 했으니 낙제점을 주면 안 되겠죠. 흡족하다기보다는 낙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이 회장 발언에 정부는 불편한 기색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은 “당혹스럽고 실망스럽다. 정부정책의 지원을 받은 대기업 총수가 낙제점 운운하는 것이 서글프다”고 말했다. 수출을 많이 하는 삼성그룹은 정부의 고환율 정책으로 가장 큰 수혜를 누렸는데, 배은망덕하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비판도 이어졌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 회장이 청와대 성적을 평가하는 채점자냐. 너무 오만하다”는 다소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정부와 여권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자 삼성은 즉시 진화에 나섰다.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장은 “이 회장은 ‘발언의 진의가 그게 아니었다’며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분노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삼성 정부 간 냉기류 세무조사에 영향 미쳤을 것”
“이 회장 특유의 화법과 리더십 때문에 생긴 오해”

결국 이 회장이 직접 나섰다. 이 회장은 지난달 31일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활동을 위해 출국하면서 “내 뜻은 그게 아니다. 완전히 오해하신 것 같다”고 적극 해명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통하지 않은 듯하다. 정치권은 여전히 싸늘한 시선으로 이 회장을 바라봤다. 이 회장의 출국을 두고 “정치권의 반발과 세무조사 등 삼성그룹을 둘러싼 미묘한 기류를 감지하고 도피성 출국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할 정도였다.

그로부터 4일 뒤, 국세청 세무조사가 이어졌다. 타이밍이 지나치게 절묘하다. 삼성은 “이 회장의 발언과 어떤 관련도 없으니 확대 해석하지 말아 달라”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적어도 이 회장의 발언 이후 정부와 삼성그룹 간에 형성됐던 냉기류가 이번 세무조사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으리란 게 재계의 공통된 견해다. 특히 이번 세무조사에서 포착된 몇 가지 특이사항은 이 같은 의혹에 무게를 더했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세무조사 기간이 105일로 통보됐다. 통상적인 조사 기간이 2개월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뭔가 석연치 않다. 조사인력도 대폭 증원돼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하고 있다. 국세청이 같은 그룹 계열사 2곳(삼성중공업·호텔신라)에 대한 세무조사를 같은 날 동시에 착수한 것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세무조사 기간 105일
조사인력 대폭 증원


이 회장의 발언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자 삼성은 되살아나는 악몽에 치를 떨고 있는 모습이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지난 1995년 중국 베이징 특파원 간담회에서도 “한국의 정치는 4류, 행정과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격노했고, 급기야 고강도 세무조사가 이어졌다. 이로 인해 삼성은 상당기간 곤욕을 치러야 했다.

결국 삼성은 이 회장의 발언 5일만에 정부에 고개를 숙였다. 이후 이 회장은 정부정책에 대해 입을 꽉 다물었다. 지금껏 전경련 회장 후보로 가장 많이 추천된 이 회장이 한사코 회장직을 맡지 않은 것도 참모진들이 설화를 우려해 반대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삼성은 이 같은 오해가 빚어진 건 이 회장의 독특한 화법과 리더십 때문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삼성그룹 측 관계자는 “그룹 안과 밖에서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르겠지만 내부에서라면 ‘낙제는 아닌 것 같다’고 하는 말 자체는 상당히 고무적인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03년 삼성 사장단과 저녁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이 회장은 삼성전자 휴대폰사업을 맡고 있던 이기태 사장에게 “이제 겨우 졸업했군”이라고 말한 게 그 일례라는 설명이다. 당시 이 사장은 위기에 처한 휴대폰사업을 정상화시키라는 특명을 받고, 품질개선과 독창적 모델 개발에 힘써 애니콜 브랜드 인지도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애니콜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이 사장은 삼성전자의 간판 최고경영자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이 회장이 이 사장에게 한 발언은 휴대폰사업부문이 현재 성과를 내고 있다고 절대 자만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해서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라는 의중에서였다. 이번 낙제점 발언과 뉘앙스가 비슷하다.

달리는 말 채찍질
주마가편 리더십

이 회장은 칭찬에 인색하기로 유명하다. 계열사 CEO들이 뛰어난 실적을 내도 좀처럼 다독여 주는 일이 없다. 되레 혹독한 매질을 한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가하는 주마가편(走馬加鞭)의 리더십이다.

지난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며 대대적인 경영혁신에 나선 당시 “앞으로 5년, 10년 후를 생각하면 등에 식은땀이 난다”고 말해 사장단을 잔뜩 긴장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다.

삼성전자가 최근 수년간 반도체 휴대폰 LCD등의 호조로 사상 최고의 실적을 매년 갈아치울 때도 “지금이 중대고비다. 앞으로 10년 후를 내다보고 신수종사업을 키워야 한다”며 담금질했다.

이 회장은 계열사들에 대해서도 혹독한 비판을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신경영 선언 이후 유화 중공업 등 계열사에 대해선 ‘암3기 환자’ ‘선천성 불구자’ 등의 격한 표현도 서슴지 않으며 품질 혁신과 구조조정, 신수종 사업 등을 통해 환골탈태할 것을 촉구했다.

삼성특검 이후 일선에서 퇴진했다 지난해 경영으로 복귀하면서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전자의 주력제품들이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다”며 위기 경영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낙제점’ 발언 사태 일지>

♦2010년 11월, 국세청 삼성의 지주회사 격인 삼 에버랜드 세무조사 착수

2011년 2월, 국세청 삼성물산 세무조사 착수


2011년 3월10일, 이건희 회장 “과거 10년에 비해 상당히 성장을 해 왔으니, 낙제점을 주면 안 되겠죠. 흡족하다기 보다는 낙제는 아닌 것 같다” 비판

3월11일, 여권 관계자 “이 회장이 청와대 성적을 평가하는 채점자냐. 너무 오만하다”

3월14일,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 “당혹스럽고 실망스럽다. 정부정책의 지원을 받은 대기업 총수가 낙제점 운운하는 것이 서글프다”

3월16일,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장 “이 회장은 ‘발언의 진의가 그게 아니었다’며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3월29일,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 “동반성장 위해 15대 대기업총수 만나겠다”

3월31일, 이 회장 “골치가 좀 아팠다. 이런저런 면에서 (정부가) 잘했다는 뜻이었다”

4월4일, 국세청, 삼성중공업·호텔신라 세무조사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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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