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내가 유전자 쇼핑으로 태어난 아이라면?

비과학자인 시민에게 묻는다. 배아는 인간인가 아닌가. 생명공학은 더 발전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제라도 자연에 대한 도전은 그만두어야 하는가. 왜 그걸 비과학자들에게 묻느냐고? 시민들이 과학계에 모든 것을 맡기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출 때마다 인류는 끔찍한 참사를 겪어 왔기 때문이다. 우생학의 미몽에 빠져 독일의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가 그랬고,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한 일도 그렇다. 기록하고 반성하는 동물로서 다시 그러한 실수를 되풀이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들에 당혹스러워하지 말기를. 대신 이해하고 판단하라. “당신이 가난한 까닭은 열등한 유전형질 때문이다”라는 식의 유전자 결정론에 휘둘리다 보면 우리는 생명공학 시대의 들러리가 될 수 있다. “인간은 자연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라는 근본주의에 얽매이면 더 많은 혜택을 얻을 기회를 잃고 말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는 미래 사회를 주도하게 될 생명공학에 대해 독자 개개인이 하나의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풍부한 지지대를 마련하고 있다.
나와 유전적으로 동일하여 외양과 형질이 거의 같은 누군가가 세상을 활보한다고 생각해 보라. 내 존재의 독자성이 침해받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자연스러운 본능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 개체 복제는 개인의 정체성에 혼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복제’라는 단어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많은 이들이 생명공학에 있어서의 복제가 ‘어떤 사람의 복사본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전적으로 동일한 구성을 가진 일란성 쌍둥이도 엄연히 다른 인격과 정체성을 가진다. 나와 똑같은 복사판을 거리에서 마주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제너가 천연두를 치료하기 위해 소의 고름에서 짜낸 우두를 인간에게 접종하는 우두법을 개발했을 때, 사람들은 “제너는 인간을 소로 만들 작정인가?”라며 조롱했다. 이렇듯 새로운 치료법은 늘 거센 저항을 받곤 했다. 유전자 쇼핑도 지금은 종교적·관습적 거부감이 크지만 언젠가 제너의 우두법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류가 안고 가야 할 두려움도 크다. 유전자 개량이 수백년, 또는 그 이상 지속되었을 때 인간의 유전자 분포에 영향을 줄 가능성, 그것은 언젠가 자연의 철퇴를 맞아 처참하게 무너질 또 하나의 바벨탑인지도 모른다. 
생명공학 기술을 통한 질병치료에 희망을 갖는 이들은 가만히 앉아 불행을 겪느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편이 낫지 않느냐며 생명공학의 발전을 지지한다. 그들은 초기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며 이렇게 주장한다. “누군가 내일 당장 맹장수술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역사상 그 어느 시대의 뇌수술보다 안전할 것이다. 최초의 사용은 위험하다. 그러나 선대의 희생을 토대로 의료기술이 진보했듯이, 어느 정도의 희생은 때로는 감수해야 할 사항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 반대하는 입장도 확고하다. 희생되어도 좋은 생명이 있는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견해 뒤에 “비장애인이 되기 위해 이런 위험 정도는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냉혹한 인식이 깔려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문이다.
생명공학 기술이 안전성을 확보하면, 분명 소수의 부자들이 일찍, 양질의 시술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계급 사회를 불러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생명공학 발전으로 인한 불평등이 고착화된 사회는 공정한 경쟁에서 일어나는 활력이나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일종의 디스토피아가 아닐까?그런데 이를 예방하겠다고 기술을 통제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들은 사회정의를 위해 오히려 생명공학의 베일을 벗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도기에 소수에게만 혜택이 주어지는 불평등을 감수하는 대신, 전체적으로 혜택의 범위를 넓혀 가는 것이 자본주의에서 평등을 창조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정혜경 저/ 뜨인돌 펴냄/ 9천5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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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