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1) 음모

  • 황천우 작가 shs@ilyosisa.co.kr
  • 등록 2016.12.05 10:21:59
  • 호수 10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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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 선 고구려, 그 선택은?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그런 연유로 충과 효를 거론하였네.”

흥수가 의미를 헤아린다는 듯 술잔을 주시했다.

“선왕께서 교기를 포함하여 사택비 주변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취하지 말라는 유명을 주셨었다네.”

“아니 되옵니다, 전하.”

순간 흥수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특히 사택비에 대해서는 각별한 말씀을 주셨었네.”

의자왕이 흥수의 말에 개의치 않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자 흥수의 입에서 절로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오면, 전하께서는?”

“그래서 군사에게 충과 효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물었던 게 아니겠는가. 백제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군사의 말대로 조처를 취해야 하건만 선왕에 대한 효의 문제로 접근하면…”

의자왕이 말을 하다 말고 잔을 비워내자 흥수가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로고.”


“하오나, 전하.”

“말해보게.”

“전하께서는 이제는 한 아버지의 아들에 앞서 한 나라의 군주이시옵니다.”

“그 말인즉.”

“전하께서 판단하실 일로, 여하한 경우든 소신들은 전적으로 따르겠사옵니다. 다만 부디 선왕의 아들만이 아닌, 백제의 아버지로서 판단해 주셔야 하옵니다.”

“백제의 아버지라.”

“전하의 판단에 백제의 명운이 걸려있사옵니다. 하옵고.”

“말해 보게.”

“사택비의 경우 선왕의 후궁이었던 만큼 여하한 경우든 정실로 들일 수는 없사옵니다.”

의자왕의 표정이 알듯 모를 듯 변해갔다.

당나라 수도 장안의 국학에서 공부하던 고구려의 태자 고환권이 돌아오자 영류왕이 조촐한 자리를 마련하고 측근들과 함께했다.

“태자는 국학에서 무엇을 배웠는고?”


영류왕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동생 고대양과 이리 등의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분에 넘치지 말며 항상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순간 고대양이 미간을 찡그렸다.

“아우는 왜 그러는가?”

“그저 저들에게 고분고분 처신하라는 의미 아닌지요.”

“허허, 왜 그리 곡해하시는 게요?”


곁에 있던 이리가 혀를 차며 반응했다.

“그게 어찌 곡해란 말이오!”

“대인께서는 세상 이치를 그리도 모르십니까!”

고대양이 목소리를 높이자 이리 역시 목소리를 높였다.

“세상 이치라니요!”

“지금 중원을 장악하고 있는 당나라의 세를 모른다 하지는 않겠지요!”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오!”

“무슨 상관이라니요. 한창 기승을 부리는 세력에는 대항하지 말라는 기본 원칙도 모르십니까!”

“그러면 우리는 지금 세가 기울었으니 그저 저 오랑캐 놈들의 신하 노릇이나 하고 있어야 합니까!”

“말씀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신하라니요, 협력관계지요!”

“지금 되어 가는 꼴이 협력이오!”

“그만들 하시게!”

고대양이 핏대를 높이자 가만히지켜보던 영류왕이 제동 걸고 나섰다.

“그를 두고 왈가왈부할 필요 없네.”

“형님, 아니 전하. 우리 고구려가 왜 이리 되었습니까. 우리에게 빌붙어 먹기 급급했던 선비족들이 세운 당나라에 왜 이리도 줏대 없이 설설 기어야 합니까?”

“그거 참, 이 좋은 날 그만 두라고 해도.”

당나라 양면정책 고수…위기감 느낀 영류왕
‘고대양’과 ‘이리’ 논쟁… 전쟁 가능할까?

영류왕이 목소리를 높이자 고대양이 헛기침하고는 슬그머니 고개 돌렸다.

“숙부, 이제 그만 진정하세요. 전술상 후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아니꼽더라도 잠시 그들의 분위기를 맞추어주는 일이 이롭다는 생각입니다.”

나이 어린 조카의 이야기에 고대양이 헛기침했다.

“태자의 눈으로 본 저들의 세는 어떤고?”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당나라 수도의 위용과 그들의 세 확장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그런 연유로 그들을 적으로 간주하여 전쟁을 치르는 일보다는 화친을 도모하는 편이 이롭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영류왕이 그 의미를 새긴다는 듯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울러 조만간 사절을 보내리라 하였습니다.”

“사절이라니요?”고대양이 다시 나섰다.

“당나라 황제께서 소자의 방문에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병부 직방낭중(職方郎中)인 진대덕을 사절로 보내겠다 하였습니다.”

“지금 병부 직방낭중이라 하였소?”

“그렇습니다, 숙부.”

“병부 직방낭중이라면 군사 지도 제작과 공물에 관한 일을 보는 사람 아닙니까?”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어떻게 사절입니까! 이놈들이 고구려를 치기 위해 군사지도를 작성하려는 의도로 입국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 틈을 타고 고대양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왜 그리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십니까?”

가벼이 한숨을 내쉰 이리가 나섰다.

“뭐라! 부정적이라!”

“지금 당나라와 고구려 사이에 가장 민감한 부분이 병부 관련사항 아닙니까. 그러니 새로이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양국 간에 정보도 나누고 물물교환을 논의하기 위해 들어올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보시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말이 되는 소리라니요!”

“이 놈들이 양면 작전으로 접근하려는 모양인데 그를 두고 새로운 관계설정이라니. 도대체 그 말이 가당키나 하다 생각되오!”

“양면이라니요?”

흡사 영류왕의 생각을 이리가 대변하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고구려를 칠 방도를 구하고 다른 편으로는 조공을 빌미로 경제적인 실리를 취하겠다는 뜻임을 정말 모릅니까?”

고대양이 목소리를 높이자 이리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영류왕을 바라보았다.

“이보게, 아우.”

“말씀하시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당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해야 하는가?”

“딱히 전쟁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고구려의 자존심을 지키고 저들의 술수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하자는 말입니다.”

“그게 그거 아닙니까?”

찌그러져가던 이리가 다시 나섰다.

“당장 전쟁을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유사시에 전쟁이라도 불사할 마음의 자세를 견지하며 오랑캐를 상대하자 이 말씀입니다.”

고대양이 이리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영류왕을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유사시 전쟁을 한다고 치세. 그러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겠는가?”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 국력으로는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는 당나라에 적수가 될 수 없사옵니다.”

고대양이 자신에 앞서 이리가 답을 하고 나서자 고개를 돌려 기가 막힌 듯한 표정을 지으며 노려보았다.
“당신 고구려 사람 맞소!”

“그 무슨 망발입니까. 지금 어떻게 하면 고구려를 살릴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사람에게 어찌 그리 무례한 소리를 하는 게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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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