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거론은 시기상조…정계개편 후 고민할 것”

<대한민국 이끄는 유력 정치인 릴레이 인터뷰⑧> 이인제 의원

오는 2012년 대선을 2년여 앞둔 시점에서 <일요시사>는 ‘유력 정치인 릴레이 인터뷰’라는 기획으로 편집국장 대담을 진행한다. 지난 세월 대한민국 정치발전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고 앞으로도 큰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판단되는 여야 유력 정치인, 정계 원로와와 만남을 통해 차제의 시대정신과 정치발전 과제 등에 관한 철학과 지혜를 담아낼 예정이다. 그 여덟 번째로 5선의 무소속 이인제 의원을 만나봤다.

"정치자금법 개정안 시기와 방법에 문제 있어 난관"
"과학벨트 문제는 대통령이 정도로 풀어 나가야"

무소속 이인제 의원(충남 논산 금산 계룡)은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2~3차례 정도 지역 민심을 살피러 ‘지역구 탐방’에 나선다. 이 의원은 그동안 중앙 정치에 몰두해 지역 일에 약간 소홀히 했던 게 사실이라며 “지역민들께 송구스럽고 부끄럽다”라고 말했다.

3번의 대권 도전에 실패하고 무소속으로 남아 고뇌에 찬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이 의원. “무소속이 오히려 의정 활동이나 지역구 활동에 편하다”는 그는 차기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정계 개편에 참여한 뒤…”라는 답변으로 슬쩍 비켜갔다. 다음은 일문일답.

- 정치자금법 개정을 둘러싼 최근의 사태를 어떻게 보는지.
▲ 내용의 정당성은 미뤄놓고 국회가 갑자기 개정안을 들고 나오니 기소돼 있는 동료 의원에 대한 면죄부를 주려 한다는 얘기가 나와도 별로 할 말이 없다. 국민이 의심하는 상황이고 그런 민감한 이야기일수록 공청회 등을 통해 내용의 정당성에 대한 홍보가 필요하다. 무리하게 밀어붙인 측면이 있는데, 무모했다. 절차를 밟아 신중하게 추진하는 게 옳다고 본다.

- 개헌 얘기가 많은데 추진 가능하다고 보는가.
▲ 개헌을 하기는 꼭 해야 한다. 현행 헌법은 87년 6월 항쟁으로 권위주의 세력으로부터 항복을 받은 직선제 개헌 헌법이다. 그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다. 최근의 대통령들은 전부 임기 1~2년 앞두고 식물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의 실패는 개인의 실패가 아닌 국가의 실패로 직결된다. 경제 헌법도 손질하고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국민의 기본권도 보충할 필요가 있고 남북 관계도 질적인 변화가 있으니 통일을 대비해 일부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 초기 국민을 상대로 개헌의 정당성을 호소하고 정파 간 이해를 구하며 추진했으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대통령도 앞장서지 않고 여당도 단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도 정략적이라고 의심하니 개헌 동력이 떨어져 힘들다.

- 충청권을 지역구로 둔 의원으로서 과학비즈니스벨트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는 게 맞다고 보는지.
▲ 세종시법 수정안이 처리가 됐으면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됐을 텐데 그게 안 되다 보니 다른 지역이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대통령도 이상한 이야기를 해 충청권이 분노하고 상황이 점차 악화돼가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정도(正道)로 풀면 된다. 대통령이 표만 얻으려 공약을 한 게 아니라 전문가의 견해를 얻어 충청권이 적지(適地)라 공약을 한 거다. 더욱이 세종시는 24조원을 들여 건설하고 있다. 과학벨트는 첨단 과학 도시가 필요한데 충청권이 아닌 곳에 벨트를 유치한다면 또 다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과학 도시를 건설해야 되는데 이건 말이 안 된다. 현재 세종시에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데 정부 부처 일부만 이전하면 희망이 없다. 그러나 세종시가 과학벨트의 거점 도시가 되면 성공할 수 있고 이것이 곧 국익에 부합되는 일이라고 본다.


- 북핵으로 국민이 불안해 한다. 우리도 핵을 보유해야 하나.
▲ 북은 지금 핵을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북이) 완성된 핵무기가 있느냐, 또는 핵무기를 운반할 수단을 갖고 있느냐는 문제에 내 개인적 판단은 ‘완성은 안 됐다’이다. 지금이라도 북한 핵 포기를 위해 우리가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된다. 북이 저러고 있으니 우리도 보유해야 된다는 얘기는 말은 쉽지만 좋은 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의 핵 보유를 정당화시켜 줄 위험이 있다. 한반도는 비핵화로 가는 게 옳다. 남과 북이 핵 무장을 하면 통일은 요원해진다. 북핵은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만 우리가 핵을 갖는다 해도 북은 위협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와 협력해 최후 순간까지 북핵 저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핵 보유는 하책이다.

-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 얼마 전 재벌 총수가 ‘낙제점은 아니다’라는 말을 했던데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실업난과 빈부 격차다. 중산층 붕괴로 인한 빈부 격차는 이 정권 들어 완화됐다고 볼 수 없다. 사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단기간에 눈에 보이는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너무 나쁘게만 이명박 정부를 평가하는 것도 지혜로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해도 눈에 보이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게 없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긍정적 평가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

-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세론이 돌고 있는데.
▲ 현재 국민의 마음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국민들은 지금 선택의 시간(대선)이 가깝지 않기에 편한 마음으로 이미지에 의존해 과거 지식을 기반으로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단지 반응에 불과하다. 선거가 가까워오면 후보가 결정되고 이슈도 폭발하고 밀도가 높아지면서,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생각해 이미지를 떠나 내용을 보며 (결정)할 것이다. 그에 따라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 무소속으로 정치하기 힘들지 않나.
▲ 무소속이 너무 편하다. 소속된 정당이 없다보니 편하게 공부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과거에는 대통령을 목표로 중앙 정치에 몰두해 지역 주민에 소홀한 측면이 있었는데 지역 정치도 열심히 했다. 무소속은 예산안 등에서도 정파적 오해를 받지 않는 장점이 있다. 오로지 주민 입장만 반영되면 그만이기 때문에 정당에 있을 때보다 편했고 더 유리했다.

- 그럼 다음 선거도 무소속으로 나갈 건가. 자유선진당 입당 얘기도 돌던데.
▲ 다음 선거는 무소속으로 할 수 없고 올해 말에 상당한 정계 개편이 있을 것으로 본다. 그때는 중앙 정치 무대로 복귀할 것이다. 어떤 내용으로 정계 개편이 일어날지 아직 모르니 마음을 비워놓고 있다. 마음은 88년 초선 당시 그대로지만 정치의 마무리를 해야 되는 시점이라 신중하게 판단하려고 한다. 선진당 입당 얘기는 전혀 들은 바 없다. 의원들 개인 차원에서는 있을지 모르지만 선진당 차원에서는 단 한 마디도 없었다.
 
- 세 차례의 대권 도전 실패로 고충과 아쉬움이 적잖았을 텐데.
▲ 개인적으로는 고통스럽고 외롭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너무 다양하고 폭넓은 경험·좌절·실패를 겪으며 좀 더 균형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 정치권 내부도 비교적 균형있는 시각을 견지하고 통일을 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빈부 격차나 실업난 등 국민이 고통받는 상황을 돌파해야 되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정치 리더십이 부족해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불안하게 하고 있다. 정치적 리더십을 높이는 부분에서 내 역할이 있기를 소망한다.



- 정치권에서 보수다 진보다 말들이 많은데 이 의원께선 보수인가 진보인가.

▲ 나는 중도 우파에 속하는 사람이다. 시대 변화에 뒤지지 않는 개혁, 자유에 대한 믿음, 통일 지향 등의 나의 정체성이다. 현재 진보를 내세우는 야권의 중심은 너무 좌편향이고 통일에 대한 비전도 비현실적이다. 반면 보수를 내세우는 우파의 중심은 과거 냉전 의식이나 권위주의로부터 실용주의, 개혁주의로 많이 이동한 상태다. 차기 대선의 아젠다는 통일이다. 다음 정권 기간 동안 결정적인 통일의 기회가 올 것이다. 만약 지금과 같은 좌편향 세력이 정권을 잡는다면 그 기회를 그냥 흘러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다음 정권만은 건강한 우파세력이 결집돼 정권을 잡고 통일을 성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 과거 ‘3김 시대’에서 정·관계를 두루 섭렵하셨는데 회고 부탁드린다.
▲ 3김 시대에는 경제적으로 산업화가 시작·성숙됐으며 정치적으로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넘어감을 의미한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 시대로 이끌었고 김종필 전 총재는 산업화의 주역이면서 평화적인 민주화 이양에 상당한 협력과 기여를 한 지도자다. 나무가 크면 그림자가 큰 것처럼 양면성이 있지만 그 분들이 우리 역사에 기여한 공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세 분 지도자를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본다. 그래서 세 분 모두의 인간적 면모를 볼 기회가 있었기에 행복하게 생각한다. 세 분의 장점을 배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충청권 유력주자라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 이제껏 지역 맹주를 꿈꿔 본 일이 없다. 87년에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지역 맹주를 꿈꿨으면 오히려 김종필 총재가 이끄는 신민주공화당에 갔을 것이다. 대학 때부터 민주화 운동을 했기 때문에 그 당시 양김 분열 전 민주당에 발을 들여놨다. 출마도 경기도 안양에서 했고 도지사도 경기도에서 했다. 지역 맹주나 파벌 정치와는 거리를 두면서 정치를 해왔다. 지역 맹주가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분들도 계신데 체질에 안 맞는 이야기다.
정치를 직업으로 지분을 가지고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체질에 안 맞는다. 파벌이나 지역이 맹렬하게 힘을 쓰다보니 내가 좌절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도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중앙 정치를 시작하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 어느덧 5선 국회의원이신데 다음 총선과 대선에 출마할 의향은 있는지.
▲ 정치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됐다. 좀 더 크고 많은 일을 했어야 하는데 지역민들께 송구스럽고 부끄럽다. 6선 의원으로 만들어 주신다면 나라를 통일시키고 실업자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헌신할 생각이다. 다선이 없어지는 이유는 공천제도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국회는 다양한 선수가 섞여 있어야 좋다. 아울러 차기 대권 도전 여부는 좀더 시간을 가지고 고민할 부분이다. 정계개편 이후에나 어떤 그림이 완성되지 않을까 아직은 뭐라 말할 단계가 아니다.

- 지역구(논산·계룡·금산) 사랑이 대단하다는 평이 있던데.
▲ 다른 지역들도 그렇겠지만 우리 지역은 정말 자랑스러운 지역이다. 논산은 농업이 강하고 유교 문화 유산이 풍부하다. 딸기 등 첨단 과학적 농업이 발달했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조선 500년은 유교가 국교였다. 논산시 연산면에는 기호학파(畿湖學派)의 본산인 돈암서원(遯巖書院)이 위치해 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유교 문화가 산재해 있다. 또 육군훈련소가 위치하는 등 군사 도시이기도 하다. 계룡시는 원래 논산시 부마면에서 3군 본부가 들어오면서 시로 승격됐다. 3군 본부가 있는 군사특별시로서 첨단국방과학교육도시의 비전을 키워나가는 신생 도시다. 세계 군 문화 축제 등의 행사도 잘 추진되고 있다. 중앙에서 예산도 지원됐으며 최우수 문화 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금산은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는 인삼 약초의 메카로 건강·바이오·환경 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지향하고 있다. 세계 인삼 엑스포도 많이 열리고 있다. 생약을 이용한 바이오를 선보였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 2011년 국회의원 이인제의 개인적 목표는.
▲ 우선 올해 안에 정계 개편이 이뤄지면 좋은 정치세력과 손을 잡고 중앙 정치 무대에 복귀하는 게 소망이다. 내년에는 일단 총선에서 당선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내가 속한 정파 세력이 승리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 차기 대선에서는 다음 정권의 가장 큰 아젠다가 통일이기 때문에 통일을 멋지게 이뤄내고 통일 이후 국민적 통합을 슬기롭게 추진하는 정치인이 되겠다. 강력한 에너지로 경제성장을 이끌고 고용도 창출하고 실업자 없는, 그래서 무너져가는 중산층을 보강해낼 수 있는 리더십을 만들어내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 끝으로 지금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 일본이 대지진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는데 위로의 메시지를 남긴다면.
▲ 가까운 이웃인 일본에게 보편적 인류애를 바탕으로 아픔을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고 본다. 평소 일본에 대한 애증의 감정은 모두 잊어야 된다. 우리도 언제 그러한 자연 재앙이 닥칠지 모르는 일이다. 나는 일본이 결국 다시 일어선다고 확신한다. 일본 국민들은 시련을 잘 견디며 세계 일류 국가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이번에도 잘 극복할거라 본다. 또한 일본이 빨리 일어서는 게 우리에게도 유리하다. 우리는 일본과 가장 밀접한 국가다. 경제 교역량으로도 두 번째다. 또한 상호의존적이다. 일본이 빨리 재건돼야 우리 국익에 유리하다. 앞으로 동북아는 급속하게 협력 관계로 바뀌어 갈 것으로 본다. 유럽 여러 나라들은 한·중·일보다 자기들끼리 전쟁도 많이 하고 적대적 관계였지만 시대 변화에 맞춰 살기 위해 통합을 했다. 통합된 화폐, 의회와 대통령을 만들었다. 동북아시아도 살기 위해 어쩔 도리가 없다. 통일된 대한민국과 일본과 중국은 그 주역이 될 수밖에 없다. 뜨거운 인류에로 함께 하면 더 가까운 이웃이 되고 신뢰도 커지게 된다. 아마도 미래의 초석을 놓는 다리가 될 것이다.


<정리 = 백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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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