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참사 계기…한반도 안전성 <긴급진단>

지진·쓰나미·화산·원전“방심은 금물…한반도도 위험하다!”


지난 11일 일본에서 발생한 규모 9.0의 강진은 일본열도를 뒤흔들었다.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지는가 하면 대형 쓰나미까지 몰려와 일부 지역을 초토화시켰다. 원전과 규수지방 화산이 폭발하고, 이제는 일본의 상징 후지산 화산 폭발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된 것. 지진 강국이라 불리는 일본이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한반도도 안전지대는 아니다’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이에 <일요시사>는 이번 일본 대참사를 계기로 한반도의 자연재해 안전성에 대해 긴급 진단했다.

한반도, 판 내부에 있어도 안심은 금물 1~2년 사이 강진 가능성?
쓰나미 가능성 배제할 수 없는데 기상청에는 쓰나미 전문가 없어

일본 대지진 발생 이후 국민들의 관심이 일본에 쏠린 가운데 국회 보고서 하나가 관심을 끌고 있다.

“규모 6.5 지진 발생. 사망자 7726명, 부상자 10만7534명, 이재민 10만4011명, 건축물 전파 2만7582개동, 부분손실 51만7269개동.”
국회 보고서에 적시된 이 같은 각종 수치들은 최근 일본 도호쿠 지역 대지진과 연이은 쓰나미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일본의 상황이 아니라 서울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를 가정한 피해상황 예측이다.

한나라당 박대해 의원은 놀랍게도 지난 2월 소방방재청 산하 방재연구소에 이 같은 내용의 실험과 분석을 의뢰했고, 이는 이미 일본 대지진 이전에 경고된 내용이었다.

한반도, 지진·해일 위협?
더 이상 안전지대 아냐

전문가들에 따르면 규모 6.5의 지진은 한반도의 지질학적 특성과 과거 지진 사례를 감안할 때 남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지진으로 분석된다. 때문에 위와 같은 수치들은 우리나라 지진 대책의 미비함을 여실히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실제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한반도 내에서도 6회의 지진이 발생했고, 그 중 세 차례는 모두 제주도 인근 해역인 것으로 탐지됐다.

지난해에는 한반도와 인근 해역에서 모두 42회의 지진이 있었고, 이 가운데 사람이 진동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규모 3.0 이상은 5회로 집계됐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북한의 평양에서 10회로 가장 많이 발생했고, 대구 경북에서 5회, 대전 충남에서 5회, 광주 전남에서 2회, 경기와 전북에서 각각 1회 지진이 관측됐다. 해역에서는 동해와 남해에서 각각 7회, 서해에서 4회 발생했다.

이번에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의 규모에 비하면 갓난아기 같은 수준이지만 어쨌든 한반도에도 꾸준히 지진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의 지진 안전성’에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저마다 이론에 기대 답을 내놓고는 있지만 100% 자신하지 못하는 입장이다. 지진은 아직도 예측 불가능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한반도도 지진으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금까지 전문가들은 유라시아 판에 위치한 한반도는 지각 판의 경계면이 없어 지진에 비교적 안전하다는 견해를 내놨었다. 하지만 지진은 지각 등에 쌓여 있는 에너지가 분출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큰 지진과 함께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면 결국 그 에너지는 주변 지역에 다시 쌓이게 된다. 이같이 에너지가 계속 축적될 경우 한반도 역시 언젠가 지진 활성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는 판 경계에서 약간 떨어진 유라시아 판 내부에 위치해 지진 발생 빈도가 낮은 편이지만 역사 문헌 기록에도 약 2000회 지진 발생이 발견됐고, 최근 지진 발생 횟수도 증가 추세에 있기 때문에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나아가 일각에서는 이번 일본 강진의 영향으로 1~2년 이내에 한반도 주변에서도 큰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판의 내부에 위치한 중국 탕산에서 1976년 대지진이 발생한 점을 고려하면 안심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런 주장의 배경이다.

그런가 하면 한반도는 지진해일, 즉 쓰나미의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서·남해안은 대륙붕 및 일본열도가 막고 있기 때문에 안전하지만 일본 북해도 연안에서 지속적으로 대규모 해저 지진이 발생하고 있어 우리나라 동해안에 지진해일 내습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또 이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태평양 등지에서 발생하는 지진보다 가까운 지역에서 발생하는 지진해일과 달리 한반도에 도착하는 시간이 현격하게 줄어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1983년 아키다 근해 지진해일은 한반도 동해안 울릉도에 77분 만에 최대 1.36m로, 묵호에는 95분 만에 2.00m로, 속초에는 103분 만에 1.56m로 각각 도달했다.

1993년 훗카이도 오쿠시리 해역 지진해일도 울릉도에는 90분 만에 1.19m로, 속초에는 103분 만에 2.03m로, 동해에는 112분 만에 2.76m로 각각 몰려와 해안 시설물과 정박했던 선박에 피해를 줬다.

‘33년 무사고’ 한국 원전
“안일하다” vs “안전하다”

충격적인 것은 쓰나미를 예보하는 박사급 전문가가 우리나라 기상청에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석사급 인력이 1명 있는데 이 연구원은 쓰나미는 물론 다양한 해양 관련 연구를 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지진으로 아비규환의 현장이 된 일본열도에서 현재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은 원전이다. 후쿠시마 원전 1~4호기가 잇따라 폭발을 일으켰고, 5, 6호기에서까지 이상이 감지된 상황이다. 특히, 2호기는 격납용기가 손상돼, 세슘과 요오드 같은 방사선 물질의 대량 확산 우려가 점차 현실화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원전 안전성에 대한 궁금증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가동 중인 21개의 국내 원전은 규모 6.5의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건설됐다. 하지만 최고의 내진 시스템을 자랑했던 일본마저 원전이 폭발하는 등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진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다.
K대 원자력공학과 모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성은 지난 33년간의 무사고 운전 실적으로 대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있을 수 있는 모든 사고에 대비했고, 그 동안 안전조치를 강화해 왔으므로 이번 일본의 사고 원전보다는 훨씬 안전하다는 것. 또 이번에 문제가 된 비상 노심냉각 능력도 훨씬 높고 격납용기의 건전성도 훨씬 높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한국형 원자로를 설계한 핵심자급 인사 역시 비슷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관련, 언론에서 노심이 녹으면 무조건 체르노빌과 같은 대형 참사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도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노심을 둘러싸고 있는 탱크 형태의 원자로 용기가 깨지지 않으면 큰 문제가 없고, 설사 깨진다 하더라도 그 밖을 둘러싸고 있는 격납용기가 파손되지 않으면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민들이 우려하는 국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서도 설명을 더했다. 가장 노후된 고리원자력도 후쿠시마 원전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라는 것. 특히 체르노빌 사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원전 안전에 대한 보강 조치가 강화됐기 때문에 후쿠시마와 유사한 사고는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주장이다.

‘33년 무사고’ 자신감 내비친 한국 원전, “안일하다” vs “안전하다”
‘백두산 화산 폭발 임박설’ 모락모락…가능성은 완전 충분하다고?
  

또 그는 “한국형 원자로의 경우 그 어떤 원자로에 비해 안전하다”면서 “사고 발생 확률은 10만년에 1번꼴이다. 현재 그 사고 가능성을 더욱 낮추는 기술개발에 진력하고 있다. 국내 원전은 안전한데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인해 국민들이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조성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내 원전 설계가 30년 전 기준이어서 상향 조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규모가 더 큰 지진에 대비하기 위한 안전성 보강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

특히, 울진과 경주, 월성 등의 해안에 집중된 우리나라 원전은 지진보다 쓰나미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 대지진은 쓰나미와 원전 폭발이라는 후폭풍을 몰고 왔고, 규수지방의 화산이 폭발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일본의 상징 후지산이 화산 활동을 다시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번지자 우리 국민들은 몇 해 전부터 불거져 나온 백두산 화산 폭발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 역시 상황의 심각성을 감지했는지 지난 17일 백두산 화산 문제를 공동으로 조사할 것을 우리 측이 제의해왔다.

이에 우리 정부는 “긍정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조만간 백두산 화산 문제를 매개로 남북 당국 간 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백두산 화산 폭발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먼저 이번 일본 대지진이 백두산 화산 폭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백두산이 화산 폭발에서 안전한가’라는 물음에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백두산이 판의 경계에서 떨어져 있어 영향을 덜 받긴 하지만 확률은 존재하는 이유에서다. 또 근래의 백두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후지산 화산 폭발 가능성에
우리 국민 “백두산은?”


한국지질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백두산에서는 지난 2003년부터 2005년 사이에 월 최대 270회의 지진이 발생했다. 게다가 백두산은 ‘활화산’이다. 여기에 전문가 의견까지 더해지면서 ‘백두산 화산 폭발설’은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윤성효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근래에 백두산 폭발 가능성을 논하면서 “화산가스인 이산화황이 지난해 11월 백두산에서 배출됐다는 증거를 공개하며 ‘백두산 폭발 임박설’에 무게를 더했다.

윤 교수에 따르면 백두산은 약 1000년 전 폭발적인 대분화를 한 뒤, 1403년, 1668년, 1702년, 1904년 등 역사시대 분화 기록을 가진 활동적인 화산체로 2002년 이후 백두산 천지 칼데라 호수 내에 화산성 군발 지진의 진앙이 집중 분포해 그 전원의 깊이가 지하 -2km에서 -4km에 집중되어 있다. 또 GPS 관측과 수준계를 통한 지표면의 팽창이 10cm 이상이고, 화산가스에서 헬륨의 농도 증가, 화산가스의 방출로 인한 삼림의 고사, 산사태, 암석 균열 등이 감지됐다.

윤 교수는 “이 같은 사실은 백두산이 화산 폭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면서 “화산 재해를 경감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백두산 화산 폭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만약의 경우 백두산 화산 폭발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그 피해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북한과 중국의 경우가 가장 심각하다. 우선 백두산 천지 칼데라 호수에는 20억 톤의 물이 존재하기 때문이 화산이 폭발할 경우, 이 물이 쏟아지면서 엄청난 홍수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화산재로 인해 농사가 불가능해지면서 식량난을 가중시킬 수 있고, 화산재가 북한으로 날리면서 철도, 도로, 전기, 수도 등 사회 기반 시설이 무력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화산재로 인한 정밀제조업 결함, 호흡기 질환 증가, 항공기 결항 등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지만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백두산이 폭발하면 규모 7.5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다”면서 한반도 내에도 피해가 상당할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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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