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집권 위해서라면 ‘수위’라도 하겠다”

<대한민국 이끄는 유력 정치인 릴레이 인터뷰⑥>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오는 2012년 대선을 2년여 앞둔 시점에서 <일요시사>는 ‘유력 정치인 릴레이 인터뷰’라는 기획으로 편집국장 대담을 진행한다. 지난 세월 대한민국 정치 발전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고 앞으로도 큰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판단되는 여야 유력 정치인, 정계 원로와의 만남을 통해 차제의 시대정신과 정치 발전 과제 등에 관한 철학과 지혜를 담아낼 예정이다. 그 여섯 번째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나봤다.

형님 정계은퇴 촉구, 국정원 인사 비밀회동설 휘말려 화제
4·27 재보선 필승 전략은 야권 연대 “과감한 양보 필요하다”

최근 정가 안팎의 시선이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를 향하고 있다.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개헌 논의를 일축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정계 은퇴를 촉구한 이유에서다. 여기에 박 원내대표가 국정원 고위 인사를 만나 정국 현안을 논의했다는 언론 보도가 전해지면서 박 원내대표에 대한 관심의 수위는 한층 높아지는 분위기다.

이러한 정치 이슈를 비롯해 성큼 다가온 4·27 재보선에 대한 이야기와 얼마 남지 않은 원내대표 임기, 연말에 있을 조기 전당대회에서의 당권 도전 여부까지…. 수많은 궁금증을 안고 꽃샘추위로 옷깃을 여며야 했던 지난 2일 박 원내대표를 찾았다.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의원의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 질의를 끝까지 챙기고서야 돌아온 그를 원내대표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당장 오늘 아침 전해진 소식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지난달 28일 서울 한 호텔에서 국정원 고위 인사와 비밀 회동을 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는데….
▲ 전혀 (사실이) 아니다.

- 당시 상황은 어떻게 된 것인가.
▲ 에리카 김 때문에 기자들이 잠복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 사람은 문 앞에 서 있었다. 대화 내용 중 일부는 사실이다. 내가 평소에 하던 말들로 간헐적으로 듣고 짜 맞추기 할 수 있었을 것이다.
 
- 분위기를 바꿔 목전으로 다가온 4·27 재보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민주당은 어떤 전략으로 재보선을 준비하고 있나.
▲ 민주당뿐만 아니라 모든 야권이 하나의 전략을 갖고 있다. 이번 재보선은 물론 총선과 대선을 위해서도 반드시 승리하는 야권 연합연대가 필수적이다. 야권은 지금까지 연합연대를 지켜왔고 특히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큰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이번에도 모두 함께 논의해서 승리의 길로 가도록 노력할 것이며, 산술적인 연합연대로 한나라당에 승리를 안겨주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할 것이다.
 
강원도로 당력 집중
“제 3후보 나설 수 있다”

- 민주당이 ‘순천 무공천’을 거론해 화제다.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순천 무공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 연합연대 논의 과정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이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고 과감한 양보가 필요하다는 열린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순천과 김해가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야권 연대를 해야 승리할 수 있고,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민주당은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단의 방법을 토론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손학규 대표가 전남 의원들과 7시부터 조찬을 함께 하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민주당은 이번 재보선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다. 이 중 화력을 집중하기로 ‘선택’된 곳이 강원도지사 선거로 보이는데, 강원도 수성을 위한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 민주당은 강원도뿐만 아니라 모든 선거구에서 총력을 다할 것이다.
특히 강원도는 3년간 성실한 의정활동과 MBC 사장으로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언노련위원장으로 노동자와 서민을 위해 일했던 최문순 의원과 백전노장 조일현 전 의원이 후보로 나서고 있기 때문에 경쟁력있는 후보를 선출하고 당력을 집중해 지원할 것이다.
여론조사에서도 20대부터 40대, 50대 초반의 강원도민들이 민주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주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반드시 강원도를 지키고 이광재 전 지사를 찾아오겠다.
 
- 오늘 엄기영 전 MBC 사장이 한나라당 입당과 함께 강원도지사 재보선 출마를 선언했다. 엄 전 사장은 만만치 않은 후보인데….
▲ 엄 전 사장은 100m 미인이다. 멀리서 보면 ‘엄기영’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리더십이 없다. 최문순 의원과 조일현 전 의원, 그리고 또 한 명의 후보가 나타날 수 있다. 강한 경선을 해서 흥행을 이끌어 낼 것이다. 

형님 정계 은퇴 촉구
“기립박수 터져 나오더라

- 4·27 재보선도 결국 정권 교체를 위한 한걸음이다. 앞으로 민주당이 정권 교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 이명박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야권 연합연대를 통해서 후보를 단일화해 한나라당과 1:1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연합연대는 승리가 목표이기 때문에 여러 정당의 후보들이 공정한 방법을 통해 가장 확실한 후보로 단일화해야 한다.
민주당이 수권 정당으로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며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민주당의 정체성을 살리고 견제와 감시라는 야당의 본분을 다하면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면 이명박 정부의 실패로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국민들은 ‘그래서 민주당이 필요하구나’라고 느끼고 지지할 것이다.
또한 민주당의 인물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민주당 지도부는 때로는 충돌하고 부딪치면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지도부에 항상 ‘개인이 아닌 당원을 보고, 계파가 아닌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의 훌륭한 인물들이 민주당원의 존경과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간다면 반드시 정권 교체를 달성할 수 있다.

-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현 정권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최근 취임 3주년을 맞은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3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 대통령 따로, 국민 따로의 실패한 3년이었다. 대통령은 ‘할 만하다’고 했지만 국민은 ‘너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고물가, 구제역, 전월세 대란, 실업난으로 국민들은 먹고 입고 잠자는 문제를 걱정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그런 국민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BBK 등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았지만 국민들이 ‘경제는 잘하겠지’ 하는 기대로 당선시켰는데 지금 국가 채무는 제2의 IMF 사태를 우려할 정도로 엉망이다. 교류 협력으로 발전하던 남북 관계도 ‘불바다’ ‘몇 배의 응징’ 등 전쟁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의 목소리와 야당의 충고를 새겨듣고 남은 임기를 성공하는 2년으로 만들기를 기대한다.
 
- 다양한 정치 현안이 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이중에서도 개헌 논의와 관련,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18대 국회에서 개헌이 논의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앞으로 개헌에 대해서는 일체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건가.
▲ 개헌은 이미 실기했고 명분도 없다. 물리적으로 총선이 1년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개헌을 추진하면 민생 문제 등 모든 국정 현안이 개헌의 블랙홀에 빠져버린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에서 친이와 친박으로 나뉘어 혈투를 벌이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통일된 안이 나올 수 없다. 따라서 실현 가능성이 없는 개헌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일부 개헌 추진론자들도 하루빨리 개헌의 미몽에서 깨어나 민생 대란에 신음하고 있는 국민을 보살피는 국정을 펼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촉구한다.


-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중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의 정계 은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왜 ‘지금’ 정계 은퇴를 촉구하게 된 것인지 듣고 싶다.
▲ 그 내용은 이미 대표연설에서 모두 밝혔기 때문에 또다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국민들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는 언론 보도나 트위터, 인터넷을 통해 국민들의 충분한 반응이 나왔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서나 본인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길인지 잘 알 것으로 믿는다.


- 이 의원의 정계 은퇴를 촉구하자 본회의장에 소란이 일었었는데….
▲ (실제로는) 별 소란이 없었다. 장제원·이병석·강석호·이은재 의원 등 다섯 명 정도만 항의했지 나머지 분들은 가만히 있었다. 소리는 오히려 민주당에서 ‘앉으라고’ 지른 것이었으니, 정리해 보면 ‘한나라당이 손가락질하고 효과음은 민주당이 낸 격’이다. 발언이 끝나니, 국가원수 앞 외에는 기립박수를 치지 않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당 의원들의 기립박수가 터져나오더라. 
 
파란만장 원내대표 1년, 정권의 저격수 역할 ‘톡톡’
당권 도전? “지금은 원내대표 직분에 충실할 때”

- 남북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고 갈 수 없다. 남북 관계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빠른 시일 내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지길 희망했는데, 성사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보나.
▲ 어떤 경우에도 남북 간 대화의 끈을 놔서는 안 되고, 특히 남북정상회담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의 TV 대화와 3·1절 기념식에서도 ‘북한과 언제든지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씀했기 때문에 이제 이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대통령의 말씀에 진정성이 있다면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본다.
또한 대화를 위해서는 남북이 모두 상대방을 대화의 대상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북한은 ‘불바다’ ‘조준 격파 사격하겠다’고 과민 반응을 하고 우리는 대북 삐라를 살포하면서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북한도 민감할 필요가 없고 우리도 자제해서 대화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하루속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북한 핵 문제도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5월이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다. 4·27 재보선 일정 등으로 봤을 때 이제 ‘곧’인데, 그 때까지 꼭 이뤘으면 하는 것이 있나.
▲ 민주당은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3년 연속 예산안과 법안 날치기에 항의해 국민과 함께 투쟁하다가 4대 민생 대란에 고통받고 있는 국민을 외면할 수 없어 2월 국회를 민생 국회로 만들기 위해 등원했다. 따라서 2월, 3월 국회가 국민을 위해서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또한 한상률 게이트, 대포폰과 민간인 불법 사찰 등 이명박 정부의 권력형 비리와 부조리에 대해서도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는 노력을 다할 것이다. 아울러 4월 재보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

- 어떤 원내대표였다는 평가를 받고 싶은가.
▲ 원내대표 취임 일성으로 ‘싸우지 않고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켰고 집시법 개정 저지로 1500여 명의 촛불 민주 시민도 지켜냈다. 철저한 인사 청문회로 총리와 감사원장, 검찰총장, 장관 2명 등 5명을 낙마시켰고 민간인 불법 사찰, 영포게이트 등 권력형 비리와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등 정권의 부도덕성을 파헤치면서 민주당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또한 비대위 대표로 민주당의 새로운 지도부가 탄생한 전당대회를 순조롭게 치러냈다. 이 모든 것을 민주당의 집권을 위해서 벽돌 하나라도 놓겠다는 심정으로 모든 열정을 바쳐 해 왔다.
원내대표로 지난 1년간 대화의 정치를 복원하고 민주당의 존재감을 확인시켜 정권 교체라는 희망의 싹을 틔운 기간이었기를 기대한다.

차기 당권 도전?
“지금은 직분에 충실할 때”

- ‘대화 정치’를 강조했던 여당 파트너 김무성 원내대표와의 1년을 평가한다면.
▲ 김무성 대표와는 여야 원내대표로서 각자의 입장이 있고 김 대표는 정치가 무엇인지 아는 분이다. 그래서 여야 간에 많은 쟁점이 있었지만 김 대표와 협상을 통해 비교적 대화로 잘 해결해 왔다.
그런데 지난 연말 이명박 대통령의 3년 연속 예산안 날치기와 날치기 법안으로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특히 민주당은 성공한 집권 경험을 가진 성숙한 야당이고 저 스스로 청와대와 정부에서 국정을 경험했기 때문에 충분히 대화와 타협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과 국회를 무시한 처사는 큰 오점이었다고 생각한다.

- 여야의 파트너십은 어떠했다고 보나.
▲ 한나라당이 자주적 입장에 있는 권력 구조가 아니다. 청와대의 지배가 강하다. 그런데 청와대와 대통령은 국회를 경시, 무시하고 귀찮은 존재로 치부한다. 대화를 해 봐야 결국 청와대의 생각이 중요하게 행동으로 나타나니 딱히 뭐라고 얘기할 수 없다.

- 민주당은 당권·대권 분리 원칙에 따라 연말 즈음 조기 전당대회를 개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차기 당권에 대한 의중을 듣고 싶다.
▲ 원내대표 임기가 5월 둘째 주까지다.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은 오로지 원내대표 직분에 충실할 때다.
평의원 때나 정책위의장, 원내대표일 때도 한결같이 ‘민주당의 집권을 위해 수위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일해 왔다. 제 마음속에는 오직 민주당의 집권을 위해 지금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뿐이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정리=장미란 기자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