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집권 4년차> 격변의 청와대 권력지도

대통령 막후서 나라 쥐락펴락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왕실장’으로 불린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물러나고 청와대의 권력지도에 변화가 생겼다. 각종 의혹에 시달리고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은 ‘박근혜의 남자’로 불리면서 정국을 좌지우지하고 있고, 문고리 삼인방은 현재까지 청와대 실세로서 암약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정권 말 청와대의 권력지도를 분석했다.

청와대엔 대한민국 권력의 중심인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해 대통령비서실이 존재한다. 비서실은 대통령비서실장과 차관급인 10명의 수석비서관으로 구성되고, 대통령비서실장 아래 총무비서관, 부속비서관, 의전비서관, 연설기록비서관이 있다. 현재 청와대 실세라고 불리는 우병우 민정수석, 문고리 3인방 등은 대통령비서실 내에서 요직을 맡고 있다.

‘2016 청와대’
우병우 천하

우병우 민정수석은 검사 출신으로 지난 2014년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으로 처음 청와대에 발을 들였다. 상부와의 충돌을 빚으면서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남자로 거듭나게 된다. 지난 2014년 11월 정윤회씨 등 현 정권의 ‘비선 실세’들이 국정을 좌지우지 한다는 내용이 담긴 ‘정윤회 문건’이 불거졌다.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이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하라고 하자 당시 김영한 민정수석은 사표를 던졌다.

김 수석은 당시 “나쁜 선례를 남기면 안 된다”는 이유로 물러났지만, 정치권에서는 우병우 민정비서관이 김 수석을 건너뛰고 김기춘 실장에게 직접 보고하고 상의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청와대를 나왔다는 것이 중론이다.

파동 당시 청와대는 비선실세로 불린 정윤회씨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찌라시 수준에 불과하다”며 일축했다. 이에 검찰은 유출에 연루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기소하고 문건 내용은 허구라는 결과를 내놨다. 이후 우 수석은 지난해 1월 민정수석에 자리에 올랐다. 그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문건 유출 파동을 깔끔히 마무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평했다.


민정수석실이 현재 권력의 핵심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고위공직자의 인사검증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당초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맡았던 인사 검증과 공직자 감찰 등의 업무가 민정비서관실로 이관되면서 이번 개각 때 발탁된 조윤선·김재수 장관등도 우 수석의 손을 거쳤다.

우 수석의 힘이 가장 많이 뻗친 곳은 사정라인이다. 검찰은 우병우 사단이 실질적으로 장악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평가다. 국내 정보를 다루는 국가정보원 2차장도 우병우의 사람으로 채워졌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우 수석은 정보를 모으고 만질 줄 안다.

검찰뿐이 아니라 국정원·경찰 등 각종 정보가 나오는 라인에 자기 사람이 있다. 우 수석과 관련해 차적 조회를 한 경찰과 기자가 입건됐는데, 경찰 내 우병우 라인의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정권초 ‘왕실장’ 득세
지금은 ‘왕수석’ 천하

우 수석의 각종 의혹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은 한 언론사 기자와의 대화에서 “감찰이 개시한다고 이원종 비서실장에게 ‘대통령께 잘 좀 말씀드리라’고 하면서 ‘이거(우 수석 사퇴 문제) 어떻게 되는 거냐’고 했더니 한숨만 푹푹 쉬더라”고 말했다. 이 전 감찰관의 대화 내용을 통해 비서실장도 우 수석을 컨트롤 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각종 의혹에 시달리고 있는 우 수석은 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 속에 요직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의 우 수석에 대한 신임은 여러 정황을 통해 확인됐다. 청와대는 이미 언론과 여야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는 우 수석에 대해서 의혹만 가지고는 물러나게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이 우 수석 검증에 나선 것을 언론에 공표하자 청와대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몰아가며 우 수석을 또 한번 지켰다. 우 수석은 박근혜정권에서 일했던 민정수석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일하고 있다. 곽상도 전 민정수석은 5개월을 채우지 못했고 홍경식 전 수석은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우 수석의 전임인 김영한 민정수석도 7개월만 채웠을 뿐이다.


김기춘-정윤회↓
문고리 권력 ↑

박근혜정권 초기 최고 실세로는 ‘왕실장’ ‘기춘대원군’의 별명을 가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꼽혔다. 그는 유신헌법 제정 참여와 정수장학회 1기 장학생 출신으로 장학회 모임 ‘삼청회’ 회장을 역임했다. 박 대통령의 원로그룹으로 알려진 ‘7인회’의 멤버로 몸담기도 했다.

김 전 실장의 권력을 보여주는 일례도 있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부의 기초연금안을 두고 박 대통령에게 면담을 신청했는데 김 실장이 이를 거절했다는 것. 이는 장관도 비서실장의 허락을 받아야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이 사건을 보도한 <국민일보>는 이 보도를 뒤집었지만 국민일보 노조는 “사실에 진 게 아니라 청와대와 김기춘의 압력에 졌다”고 비판했다. 이후 정치권의 거센 비판 속에서도 김 전 실장은 박 대통령의 신임 속에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이하로 떨어지고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자 왕실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 정치평론가 “김 실장이 좋게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하려 했을지 몰라도 결국 문고리 3인방을 김 실장이 제압하지 못한, 암묵적인 평형만 유지한 모양새로 물러나게 됐다”며 “비서실장 인선으로 청와대 기류가 바뀌진 않을 것”이라 설명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재임 당시 ‘정윤회 문건’의 주인공인 정윤회씨는 비선실세로 언론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정씨는 박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한 1998년부터 보좌진으로 활약한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인선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해당 문건 내용을 보면 정씨와 청와대 비서관 등 10인이 매달 강남의 한 중식당에서 모임을 가지며 국정 운영을 논의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비선 실세로 의심받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게다가 정씨가 승마선수인 정씨의 딸이 국가대표가 되는 과정에서 최종전에서 탈락하자 정씨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결국 경찰 수사가 이뤄졌고, 판정도 번복됐다. 2016년에는 정씨의 국정 개입정황이 드러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과 정치적 생명을 함께해온 ‘문고리 3인방’ 권력은 현재진행형이다. 대통령비서실의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부속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은 박근혜정권의 핵심 권력으로 불린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의원이던 시절 보좌관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18년 동안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이재만 비서관은 박 대통령 의원시절 당대표 업무를 포함해 전박적인 정책 문제를 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호성 비서관은 정무, 메시지 관리를 맡았고, 안봉근 비서관은 일정을 관리하는 업무를 주로 맡은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한 주간지의 ‘여권 권력지도’ 정치부 기자 ·정치평론가 100명 설문조사에 따르면 문고리 3인방은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 이정현 당대표에 이어 이재만 3위, 정호성 5위, 안봉근 6위를 기록했다. 특히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청와대 인사에 개입한다는 의혹을 받은 ‘만만회’(이재만, 박지만, 정윤회)의 일원으로 거론될 만큼 실세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 대통령 측근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박근혜정권에서는 유독 장관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정가에서 나오기도 한다. 그 원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만기친람(임금이 온갖 정사를 친히 보살핌)’형 국정 운영에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통령의 역할이 커질수록 참모진의 구실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부처 당국자는 “상가에 조화를 보내는 것조차 대통령의 결재를 받을 정도라면, 제아무리 뱃심 좋은 장관이라도 독자적으로 뭔가를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대통령의 관심 방향에 정통한 측근 보좌진과 상시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읽는 능력이 장관들에게 중요해진 이유”라고 밝혔다. 또한 문고리 3인방은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다는 점 이외에 실질적으로 정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높다.


정부 각 부처에서 청와대에 제출하는 정책 보고서가 대부분 정호성 비서관이 담당하는 부속비서관실에 전달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정부 외곽 자문그룹이나 외부조직의 비공식 의견도 같은 경로를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듯 대통령과 연결되는 보고와 지침이 오르내리는 곳에 이들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들이 문고리 권력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집권 후반 뜬
안종범·김재원

중요한 점은 제출 시점에 따라 기계적으로 집무실이나 관저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선후와 비중을 판단해 순서를 정하는 임무가 바로 ‘문고리’의 핵심 기능이라는 점이다.

청와대 한 전직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주제의 경우 단일 사안이라 해도 여러 부처에서 다양한 시강의 보고서가 올라온다. 경합하는 의견을 대통령 본인이 모두 숙지해 판단을 내리는 정부는 없다”며 “참모진이 일차적으로 이를 종합해 쟁점을 정리하기 마련이다. 이 대목에서 보좌진의 정책적 견해나 관점이 부지불식간에 반영될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고 말했다.

박 터지는 실세 경쟁 ‘누군가 보니…’
힘 빠진 비서실장…신흥 권력들 등장

관계자의 발언과 같이 보좌진의 견해나 관점이 우리나라 권력의 핵심인 대통령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된다면 이는 보좌진에게 강력한 권력이 부여되는 것과 같다.


문고리 3인방 이외에 안종범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은 떠오르는 청와대 실세로 평가받는다. 정책조정수석은 청와대 내 10개 수석비서관직 가운데 서열 1순위로 정무와 경제, 고용 노동 등 국정 전반을 조율하는 사령탑이다. 2014년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경제수석이었던 안 수석이 정책조정수석으로 이동한 것은 수평 이동이 아닌 사실상 '영전'으로 평가받는다.
 

박근혜정권서 2개 이상의 비서실을 담당했던 사람은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유일했다. 이정현 대표는 정권초기 정무수석비서관에 발탁된 뒤 3개월 만에 홍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겨 1년 동안 청와대 언론·미디어 부분을 담당하면서 친박 핵심으로 불렸다. 청와대 정무수석 자리는 청와대 실세자리로 꼽힌다. 이정현 대표에 이어 박준우, 조윤선, 현기환에 이르기 까지 이른바 진박(진실한 친박)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정무수석을 맡았다.

지난 6월 정무수석으로 발탁된 김재원 정무수석도 떠오르는 청와대 실세 중 한 명이다. 박 대통령이 처음 대선에 도전했던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캠프 기획단장·대변인을 역임하며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현 정부 들어서는 대통령 정부특보로 중용된 바 있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은 김 정무수석 임명 관련 브리핑에서 “김 신임 비서관은 국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분으로 대통령 정부특보를 역임했다”며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의정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과 능력을 바탕으로 정치권과 가교 역할을 수행해 나갈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실장 위에
수석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비서관이 수석 위, 수석이 실장 위’라는 세간의 시각은 실제 여부를 떠나 그것만으로도 비정상입니다. 국기 문란이 우려되는 국정 왜곡”이라며 “따로 역사 교훈을 운위할 것 없이 비극적 현상입니다. 박 대통령과 3인방 본인들에게도 결코 이롭지 않다”고 말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나는 새도 떨어뜨린’ 청와대 경호실장 계보

역대 청와대 경호실장은 군 출신이 강세를 보였다. 이승만 대통령 이래 총 16명의 경호실장이 나왔다. 이중 12명은 군 출신, 2명 경찰, 2명 내부승진으로 발탁됐다.

현 정부의 경호실장을 맡고 있는 박흥렬 경호실장도 군본부 인사기획처장·7사단장·3군단장·육군참모총장을 지낸 군 장성 출신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호 업무의 중요성을 감안해 경호처를 경호실로 격상시키고 경호실장을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끌어올려 실질적 권한도 강화했다.

직전 정권인 이명박정부는 장관급이던 경호실장을 경호처장으로 한 단계 낮추고 군 출신인 김인종 전 경호처장을 발탁했다. 후임으로는 경찰청장을 지낸 어청수 전 경호처장을 임명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시절에는 경찰이 대통령 경호를 담당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제3공화국을 출범시키면서 대통령 경호실을 별도로 창설했다. 이후 군사정권이 이어지던 노태우정부 때까지 경호실장은 모두 군 출신이 맡았다. 당시 경호실장들은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며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력의 실세로 통했다. <훈>

 

<기사 속 기사> 청와대-조응천 선물 공방

현 정부에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추석 선물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조 의원은 지난 7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응천만 청와대 선물을 못받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올려놓고 “선물도 못받았는데 여러분들이 후원금 좀 보태주이소”라고 적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조 의원을 일부러 배제한 일이 없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지난 8일 “여야 국회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선물을 준비했는데 일부 배달이 늦어지면서 몇 분의 문의가 있었다”며 “그런데 조 의원이 마치 자신에게만 대통령 선물이 배달되지 않은 것처럼 공론화하는 것을 보고 차제에 선물을 보내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조 의원에게 보내려던 박 대통령 추석선물은 같은 날 오전 배송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진다. 조의원은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의 배후로 지목됐으나 무죄 판결을 받고 지난 4·13총선에서 야당 소속으로 당선된 바 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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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