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최종회) 저격

  • 황천우 작가 shs@ilyosisa.co.kr
  • 등록 2016.09.09 18:05:47
  • 호수 10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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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 가슴에 총을 쏘다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네 놈이 어떤 행동을 하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네가 살고 조국과 가족을 살릴지 아니면 네놈도 죽고 네 주변 모두를 몰살시킬지는 전적으로 네놈이 판단할 일이다. 알겠는가!”

“저도 살고 모두 살릴 겁니다. 그러니 제발‥‥‥.”

석원의 애걸하는 모습을 살피자 갑자기 한숨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권총을 석원에게 내밀었다.

“이 총 받을 수 있겠나!”


순간 석원이 고개 들어 권총과 무표정한 동일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한다는 듯 눈을 깜박였다.

“반드시, 반드시 거사를 성공시키겠습니다.”

“이따위 정신 상태로 네놈이 무슨 수로 거사를 성공시키겠다는 이야기냐. 그저 계집 구멍이나 밝히는 놈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동일의 강경한 반응에 석원이 다시 고개 숙여 바닥에 이마를 대었다.

“나는 이쯤에서 내일 거사를 취소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물론 네놈은 물론이거니와 네놈의 처자식 그리고 어머니와 형제들 그리고 이 계획에 참여했던 기미코 등 모든 사람들까지 몰살을 면치 못하겠지만.”

“지도원 동무, 아니 나카소네 상. 정말입니다. 정말로 이 목숨 바쳐서라도 거사를 성공할 터이니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석원이 급기야 이마를 바닥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한심한 놈 같으니라고. 네 놈이 이 거사의 중요성을 진정으로 알고 있는 게냐? 또 너를 위해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북조선에서 들인 공이 어느 정도인지 아느냐?”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나카소네 상. 그러니 제발.”

“아는 놈이 이따위로밖에 못해! 북조선이 네 놈 장난감인 줄 아는 게냐!”

“아닙니다, 나카소네 상. 하라시는 대로 모두 하겠습니다.”

“정녕 그렇다면 각서를 쓰도록 해라.”

동일이 목소리를 낮추자 석원이 다시 고개 들었다.

“네 뭐든지 다하겠습니다.”

동일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석원을 테이블 앞에 앉도록 했다.

이어 자신이 주었던 노트와 펜을 가지고 오게 하여 각서를 쓰도록 했다.

물론 거사를 성공시키지 못할 시 기미코를 포함하여 가족 등 모두의 목숨을 북조선의 처사에 기꺼이 일하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오라 지시했다.

가져온 물을 병째로 마신 동일이 석원에게 건넸다.


“마셔!”

석원이 강압적인 분위기에 밀려 마지못해 한다는 듯이 물을 마셨다.

“지금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듣도록 해!”

동일이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석원에게 지금까지 여러 경로를 통해 그에게 주입시켰던 이야기를 깊게 각인시켰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하게도 불안감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TV를 켰다.


막상 TV를 켰으나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들이 머리까지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한순간 그 현상을 느끼고는 그 사유를 생각해보았다.

물론 크든 작든 어떤 일을 시도하게 되면 알게 모르게 불안감은 발생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일의 예측 가능성을 타진하며 불안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일은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결의에 찬 저격 계획…음모에 빠져
울려 퍼진 총성…붉게 물든 국립극장

전혀 불안해 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미 완벽하게 시나리오를 작성하였고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그리 진행되게 되어 있는데 솟구치는 불안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오히려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오늘 벌어질 일을 그려보았다.

석원이 다섯 발의 실탄을 장착한 권총을 바지 주머니 속에 넣고 택시를 이용하여 행사장에 도착한다.

그의 도착과 맞추어 이강철이 나서서 초청장을 확인하고 비표를 교환해주어 자연스럽게 행사장 입장을 유도한다.

아울러 문석원의 조바심을 자극하면서 행사장 내 가장 먼 거리에 좌석을 배치하도록 되어 있다.

이어 행사가 진행되는 순간 발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권총의 공이치기를 뒤로 후퇴하도록 했다.

그리고 강철이 문석원의 지근거리에 앉아 있다 문석원이 첫 발을 발사하는 낌새가 일어나면 그 순간보다 먼저 천장으로 실탄을 발사해서 혹시나 모를 일에 대해 사전에 조처 취하도록 했다.

아울러 김경수는 문석원의 시선에서 벗어나 박정희 대통령 바로 뒤에 위치하여 강철과 보조를 맞추기로 하였다.

사전 각본에 의하면 여하한 경우라도 박정희 대통령이 위해를 입는 일은 불가능했다.

또한 주변 사람들의 안위도 생각했다.

그런 연유로 전례에서 벗어나 박 대통령의 연설대를 연단 정면 한복판이 아닌 한쪽으로 치우쳐 설치하도록 했다.

하여 문석원이 사전 지침에 따라 행동한다면 행사장에 참석한 그 누구도 위해를 입을 수 없었다.

내친 김에 일이 끝난 후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점검해보았다.

문석원은 죽이지 않고 산채로 생포하기로 되어 있다.

만약 실패할 경우 문석원은 지침 받은 대로 일본인으로, 또 단독작품으로 몰아갈 일이었다.

권총 역시 일본의 한 파출소에서 탈취하여 입국 시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숨겨 들어왔다 고백할 것이다.

그리고 이외의 사항에는 강력하게 묵비권을 행사할 것이다.

그러나 이내 그의 정체가 우리 측 조사에 의해 밝혀지고 아베 고타로와 그의 연인 기미코 또 조총련 정치부장인 이호룡의 행적까지 드러나고 그 이외의 일은 영원히 미제로 남을 터다.

모든 과정을 꼼꼼하게 살펴보았으나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행사가 거행되는 국립극장 쪽을 바라보았다.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바로 가까이 있는 듯했다.

잠시 그곳을 주시하다 시계를 바라보았다.

막 열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시선을 TV에 주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애국가를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심호흡했다.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

마음을 다잡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 상태에서 하늘을 바라보기를 잠시,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대통령이 연설대로 자리를 옮겨 연설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소리를 들으며 화면에 집중했다. 흐릿한 화면에 행사장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만족하리만큼 행사장 배치가 제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의 목소리는 그저 귓가에서 윙윙대고 있었다.

방금 전처럼 머리로 입력되지 않았다.

잠시 후 갑자기 화면에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 모습이 잡혔다.

박 대통령이 연설대 뒤로 몸을 숨기고 연단에 있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엉덩이를 천장을 향해 들고 있었다.

순간 연단 뒤에 있던 경호실장이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나섰다.

그 옆을 바라보았다.

바로 곁에 앉아 있는 육영수 여사께서 초연한 자세를 유지하며 고개를 약간 돌려 앞을 주시했다.

마치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확인하겠다는 듯이.

바로 그때 동일의 입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안 돼!”

<끝>

<지금까지 ‘스러진 달’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호부터 ‘삼국비사’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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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