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 실태 충격보고④전문가의 진단과 사회적 처방

자신을 고립시키고 사회와 동떨어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을 외톨이라고 한다. 최근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자신만의 공간에서 사회와 담을 쌓고 살아가는 ‘운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가 늘고 있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역시 ‘은둔형 외톨이족’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2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들 가운데 사회를 이끌어나가야 할 20·30대가 많다는 사실이다.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에 대해 진단해보고 전문가들의 처방과 사회적 안전망에 대해 알아보았다.

“삶의 동기와 잠재력을 이끌어 내라”

최근 개봉한 영화 ‘외톨이’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를 소재로 한 국내 첫 공포스릴러 영화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히키코모리란 ‘(어떤 장소에) 틀어박히다’는 뜻의 일본어로, 주로 어려워진 상황을 피하기 위해 산이나 시골로 은둔하는 정치인들에게 자주 쓰이던 말이었다. 1990년대 초부터 일본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급증하기 시작한 히키코모리족은 현재 12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1억2천만 일본 인구의 1%에 달하는 엄청난 수다. 히키코모리 가운데 30%가 30세 이상이며 10명 중 7명이 남성이라고 한다. 이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사회문제화 되고 있어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 퇴치’ 운동마저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은둔형 외톨이’의 수는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대략 2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며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일본에 비해 이들의 수가 적기도 하지만 최근 급증하고 있어 이들에 관한 연구나 대책이 초기 단계 수준이다.
지난 2002년 8월28일 국내 정신과 전문의들은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제12차 세계정신의학회에서 한국형 ‘은둔형 외톨이’의 출현을 공식 보고했다.
삼성생명공익재단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소장 이시형)와 강북삼성병원, 서울 동남정신과의원(원장 여인중)이 2000년 1월부터 2002년 5월까지 동남클리닉을 방문한 외래환자 총 2천4백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중 31명이 친구가 한 명도 없고, 가족간의 대화가 없으며, 혼자 식사하는 ‘은둔형 외톨이’인 것으로 조사됐다.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은둔형 외톨이는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병원을 찾는 환자 중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유형’이라며 ‘국내에서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조사는 처음이다’라고 설명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들 가운데 사회를 이끌어나가야 할 20~30대가 많다는 사실이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자신만의 작은 세계에 갇혀 살아가게 됐을까?

밤낮 바꾼 채 몇년 동안 TV-컴퓨터로만 생활 방에서 두문불출
주변의 따뜻한 관심과 시선…전문의와 상의· 대화 많이 나눠라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10대들은 집단 따돌림과 가정불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20~30대들은 사랑과 이별을 통해 겪은 아픔, 취업실패 등의 이유가 많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인터넷 중독자들도 쉽게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다.
국내 연구팀이 밝힌 은둔형 외톨이의 특징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3년씩 방 안에 틀어박혀 지내지만 5-10년 넘게 이 생활을 계속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대개 학교나 직장도 없다. 일체의 사회활동을 거부하기 때문에 친구가 없고 가족 사이의 대화가 단절돼 있다.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인터넷과 TV에 몰두해 보내고 낮,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고 있으며, 대인공포증, 우울증, 성격장애, 강박증 등의 등 건강 문제를 수반하고 있어 해결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들의 정신적 질환이 점점 심화될수록 자살과 살인이라는 상황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크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연구팀에 참여한 정신과 전문의 여인중 박사는 “은둔형 외톨이를 병자로 보아야 하느냐 아니냐는 경계가 애매한 것이 사실이다”며 “방에 박혀 두문불출한다고 해서 이를 병자로 보기는 힘들다”고 신중론을 폈다. 여 박사는 “문제는 은둔형 외톨이의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정신과를 찾지 않는 것”이라며 “풍부한 사례 분석이 이뤄져야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정확한 병증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운둔형 외톨이 치료 방안과 대응책
그렇다면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방안과 은둔형 외톨이들을 다시 사회로 끌어들이기 위해 어떠한 대응책이 있는지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보았다.  

대안1 에너지 발산할 통로와 따뜻한 관심 필요
은둔형 외톨이가 범죄성향 또는 공격성향이 있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만나보면 은둔형 외톨이들은 반사회적 성향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받은 상처를 발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외톨이가 된다는 지적이다.
미디어전문가 박준표씨(연세대 청년문화원)는 “자신의 에너지를 건강하게 발산할 수 있는 통로나 채널, 한국적 안전망이 너무 없는 상태에서 이른바 ‘외톨이’를 문제로 보는 것이 과연 맞는지 의문”이라며 “결국 ‘외톨이’를 잠재적 문제로 보는 사회적 시선, 누구도 그들의 에너지를 생산적 기획으로 연결시켜 보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역설했다.
또 이미 외톨이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이다. 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는 달리 내면에는 애정과 관심에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성격이 그래서’ 혹은 ‘저러다가 말겠지’ 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방치해 두면 안된다. 정신과적 문제가 주된 원인이 된다면 전문의를 찾아 치료적 차원에서 접근을 해야 할 것이다. 또 사회 환경적 부적응에 주된 원인이라면 부모, 선생님, 상담사 등이 함께 나서 문제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진로 관련 상담 청소년종합상담센터에서도 심리검사나 적성검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검사 결과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도 있지만 청소년의 진로 분야에 특화된 상담기관을 찾는 것도 좋다. 개인이나 시민단체가 운영해 직접 상담을 받으려면 일정한 비용을 내야 하지만 온라인 상담은 대개가 무료로 이뤄진다. 1990년 생긴 YMCA 청소년진로진학상담실에서는 다양한 진로탐색 프로그램과 함께 게시판과 전자우편, 채팅 등을 활용한 사이버 상담이 활성화 돼 있다. 안창규 한국진로교육학회 부회장이 소장을 맡고 있는 한국진로상담연구소도 면접 상담은 유료이지만 게시판을 통한 사이버 상담은 무료로 진행한다.

대안 2 가정방문 통해 ‘1대1’ 상담 치료
대부분의 심한 은둔형 외톨이들은 바깥출입을 전혀 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가정 방문을 통한 1:1 상담이 우선된다. 병원에 의뢰를 하면 상담자가 가정집을 방문하는 것인데, 주로 사회복지나 청소년학을 전공한 자원봉사 대학생들이 ‘외톨이’ 아이들과 결연을 맺고 대화와 활동을 함께 유도하는 멘토(Mentorㆍ조력자) 프로그램이 활용되고 있다.
멘토링을 이끌고 있는 신은정 사회복지 치료사는 “처음에는 꼼짝 않고 방안에만 있다가 서너 달 지나면 영화 구경을 가는 등의 외출도 한다”고 말한다. 신씨는 “이들은 자폐아처럼 정신지체 증세는 없으나 혼자 방안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라며 “부모에 의해 병원을 찾긴 하지만 말은 하지 않아도 분명 프로그램 참여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신씨는 “뚜렷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각자 정신적인 충격 원인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혼자 있으려고 하는 성향을 보이면 다그치거나 혹은 내버려두지 말고 빨리 신경정신과를 찾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만을 집중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은 별로 없는 듯하다. 게다가 1:1 프로그램을 신청할 경우 비용도 만만치 않아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동남병원의 여인중 박사는 “‘외톨이’는 질병이 아니나 그냥 놔두면 신경정신과적 질환으로 발전할 수도 있으므로 신경정신과에 심리 치료를 의뢰하거나 각 공공기관의 사회복지사나 자원봉사자를 통해 꾸준히 상담을 받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대안 3 한부모 ‘부자가족 지원’ 강화
한부모가족은 배우자 없이 가족생활을 책임져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자녀교육, 주택, 사회적 편견 및 차별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사례로 중학교 2학년인 김모군(15)은 은둔형 외톨이로 얼마 전 병원에 입원했다. 부자가정에서 자란 김군은 아버지와 함께 있을 시간이 적고 대인관계의 폭도 줄어들어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발생한 일이었다.
한국한부모가족연구소 황은숙 소장은 “남성 한부모의 경우 직장생활로 늦게 귀가하기 때문에 자녀를 돌볼 시간이 부족해 자녀가 혼자 집에 있는 동안 게임에 중독되거나 은둔형 외톨이가 될 수 있다”며 “한부모가정지도사와 같은 전문인력을 가정으로 파견하여 한부모가족의 자녀를 지도할 수 있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모자가정에 비해 자녀양육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자가족의 비율은 한부모가구의 21%를 차지하는 수준으로 매년 증가폭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남성 한부모에 대해 돌봄 능력을 강화시키는 부모역할교육 및 훈련기회를 제공하고, 건강가정지원센터를 중심으로 남성한부모 멘토링 사업과 서로 유사한 한부모가정을 연계해 남성 한부모가족의 자조능력을 배양하는 프로그램 개발 중이다.

대안4 지역사회와 정부의 지원 필요
운둔형 외톨이 치료를 위해 보건복지가족부와 한국청소년상담원 같은 정부와 기관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세부 프로그램으로 심리검사와 상담 전문가를 통한 운둔형 외톨이의 위험성 인식, 자기통제감과 사회적 문제해결 능력 향상, 진로탐색 등이 이루어지며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이 참여하는 낙관주의 교육과 분노조절 훈련프로그램, 레크레이션 전문가와 함께하는 대안활동으로 이뤄지고 있다.
대안활동에는 공동체놀이, 승마, 도예, 셀프 다큐멘터리, 야영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를 통해 단계적으로 감정순화, 안정감, 긍정적 사고 기르기, 의욕과 활력 배양을 목표로 한 수련을 하게 된다.
한국청소년상담원 차정섭 원장은 “이들은 흔히 왕따나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외톨이로 남게 된다”며 “입시위주의 경쟁에서 뒤쳐지게 되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아예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차 원장은 “최근 들어서 인터넷 가상공간에 몰입하면서 은둔하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면서 “문제 예방과 올바른 인터넷 사용방법 정립을 위해 인터넷중독 치료학교와 같은 프로그램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사회적응을 위한 은둔형 외톨이의 직업교육을 사설기관의 교육에만 떠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라 정부와 시민단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일본의 카나가와현에서는 이를 실행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카나가와현의 NPO와 대학, 지역시민단체가 연계하여 사회 적응도를 높이는 직업교육을 실행하고 있다.
서울시 대안교육센터 강원재 부센터장은 “공교육 안에서 그 동기를 못 찾았을 때 강요나 질책이 아니라 내재된 동기를 찾아주는 것, 삶의 멘토로서 동기와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단순한 직업교육을 벗어나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통한 지역의 전통적인 문화에 대한 습득과 함께 유대관계를 형성해 나감으로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다”며 당국의 적극적인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위기의 아이들 찾아가는 청소년 동반자
보건복지가족부 청소년동반자 사업 전국 확대
보건복지가족부는 가정해체, 학교부적응 등으로 인한 위기청소년에게 상담, 정서적지지, 기관연계, 사례관리 등을 제공하는 청소년동반자(Youth Companion)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청소년동반자는 일정수준의 자격을 갖춘 전문상담인력이 위기청소년의 삶의 현장(가정, 학교 등)에 직접 찾아가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사업으로써, 2007년 청소년동반자 사업 추진결과 청소년들의 만족도와 프로그램 권유도에서 98점을 기록해 높은 성과를 나타내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가족부는 2007년 14개 시도(37개 시군구)에서 추진하던 본 사업을 올해는 16개시도(64개 시군구)로 확대하고 청소년동반자 수도 4백70명까지 확충할 예정이다.
또한, 그간의 운영성과와 지역사회의 높은 수요를 반영하여 서비스지역과 청소년동반자 수를 지속적으로 확대하여 위기청소년 사회안전망이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뿌리내릴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2012년까지 청소년동반자를 6백명 수준까지 확대하고 134개 시군구까지 서비스를 제공하여 위기청소년의 복지와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할 할 예정이다.
지난해 9월부터 청소년 동반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정화(40)씨는 “위기 청소년이 겪는 문제는 대단히 복잡한 경우가 있어서 상담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많다”고 했다. 상담지원뿐만 아니라 숙식, 교육, 의료, 법률, 여가, 직업훈련 등 생활지원까지 이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씨는 “위기 청소년들을 만나 마음을 열고 고민을 해결한다고 해도 집에 돌아갔을 때 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느끼면 같은 문제는 언제든 다시 발생한다”며 “더구나 위기 청소년을 지켜보는 부모도 상당한 상처를 입었을 것이 분명하므로 부모도 상담을 통한 정서적 치유가 필요하다”고 했다. 위기 청소년 한 명을 구하는 데도 그가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복원이 전제돼야 하는 셈이다.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이나 부모님은 전국 어디서나 국번없이 “헬프콜 1388”로 문의하면 소정의 절차를 거쳐 동반자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문의 아동청소년상담자활과
02)2023-8805, 청소년전화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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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이후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미묘한 시기에 사정기관의 칼끝이 문재인정부를 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 기관에 대해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다’고 비판한다. 권력의 향방에 따라 행보를 달리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과도기’ 상황에 놓여있다.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탄핵안 인용으로 파면됐고 새 대통령은 아직 뽑히지 않았다. 헌법은 대통령 궐위 이후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존재하긴 하지만, 한정된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기에 우리나라는 이른바 ‘반쪽짜리 정부’ 상태에 있는 셈이다. 새 정부 앞두고… 대선 정국이 시작되면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움직임은 느려진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전 정부와 180도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 보고 변화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 형태로 직에서 물러나면서 다음 정부는 여느 정부보다 ‘전 정부 지우기’에 몰두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서 새로운 정책을 펴거나 기존 정책을 발전시키는 행보는 무의미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사정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선거에 미칠 영향 때문에라도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편이다. 특히 유력 후보와 관련한 사건은 대선 이후로 미루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칫하다가는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 이번 대선은 선거 기간이 짧아 국민의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작은 사건이 대선에 나비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검찰과 감사원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후보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전 대통령이 표적이 됐다. 이전부터 해온 수사와 조사의 결과를 내놓는다고 하기엔 시기가 미묘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4일 검찰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021년 12월 시민단체 고발 이후 3년5개월여 만이다. 검찰은 문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서모씨의 항공사 특혜 채용 의혹 등을 수사해 왔다. 서씨가 취업했던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도 뇌물공여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문 전 대통령의 딸인 다혜씨와 서씨는 기소유예 처분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다혜씨, 서씨와 공모해 이 전 의원이 실소유한 이스타항공의 해외법인 격인 타이이스타젯에 서씨를 임원으로 채용하도록 했다. 서씨는 2018년 8월 취업 이후 2020년 3월까지 타이이스타젯에서 급여로 약 1억5000만원, 주거비 명목으로 6500만원을 받았다. 집값 통계 조작 결과 발표 청와대 외압 정황도 나와 검찰은 서씨의 취업으로 문 전 대통령이 그간 다혜씨 부부에게 주던 생활비 지원을 중단한 점을 들어 문 전 대통령이 이 금액만큼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봤다고 판단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 직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의원은 “터무니없고 황당한 기소”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보복성 기소”라는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윤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린다. 그는 “법정서 진실을 밝히는 것을 넘어 검찰권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행사되고 남용되고 있는지 밝히는 계기로 삼겠다”며 “수사권 남용 등 검찰의 불법행위에 대해 형사 고소하는 것은 물론, 검찰을 개혁하는 기회로 여기겠다”는 발언도 내놨다. 검찰 기소에 앞서 감사원도 문정부에 대한 감사 결과를 내놨다. 문정부 임기 동안 부동산 등 국가 통계를 광범위하게 조작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청와대와 정부가 통계 작성 기관 등에 압박을 가한 사실도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지난달 17일 감사원은 ‘주요 국가 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전국 주택가격 동향 조사(주택통계), 가계동향 조사(소득통계), 경제활동인구 조사(고용통계) 등을 감사한 자료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11명)·국토교통부(7명)·한국부동산원(7명)·통계청(6명) 등 총 31명에 대해 징계 요구(14명)·인사자료 통보(17명) 등 엄중 조치하는 한편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와 통계청 등에 통계의 정확성·신뢰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고 향후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제도개선 통보 및 주의 요구를 처분했다. 검찰 기소 왜 지금? 감사원은 2023년 9월 대통령비서실·국토부·통계청·한국부동산원(이하 부동산원) 소속 22명 가운데 일부 주요 관련자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 의뢰한 바 있다. 당시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및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홍장표 전 경제수석,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이 수사 의뢰 대상에 포함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청와대와 국토부는 주택 가격에 대해 부동산원에 ‘통계 결과를 미리 알고 싶다’며 사전 제공하도록 지시했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통계 결과를 임의로 수정하고 통계 개선 명목으로 표본 가격을 조작하는 등 통계 왜곡을 은폐했다. 이렇게 집값 관련 통계 수치를 조작한 사례는 감사원 확인 결과 102건에 달했다. 청와대와 국토부가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구체적인 정황도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외압은 2018년 1월 서울 양천, 성남 분당의 주택 매매 가격 주간 변동률 왜곡 등에 처음 시작됐고, 2018년 하반기 부동산시장이 요동치자, 객관적 근거도 없이 특정 지역 개발계획 철회 등 정부 발표 내용이 시장 안정에 효과를 준 것처럼 통계에 반영토록 요구했다. 감사원은 “국회·언론은 국정감사 등에서 주택 가격 동향 조사 변동률 등이 시장 상황 및 민간 통계 등과 다르다며 통계의 정확성·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으나 개별 표본 가격 등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공개되지 않아 표본 가격이 시장가격과 격차가 벌어진 사실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감사원 감사 결과 문정부가 핵심 정책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통계를 조작한 사실도 드러났다. 문정부는 출범 때부터 ‘소득 주도 성장’을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양질의 일자리 만들기’도 정부 주도로 진행했다. 문제는 그 효과를 정부 차원에서 왜곡했다는 점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통계청은 2017년 각각 2·3·4분기 가계소득을 가집계한 결과 전년 대비 감소로 확인되자, 정당한 절차 없이 표본 설계에 없는 가중값을 임의로 적용해 가계소득을 증가시켰다. 부동산·고용 다 건드렸다 소득 불평등과 관련해서도 ‘마사지’가 들어갔다. 청와대는 2018년 1분기 소득5분위 배율이 역대 최악(5.95)으로 나타나자 통계청에 개인정보 등이 포함된 통계자료를 사전 제공하도록 부당한 지시를 했다. 또 한 노동연구원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개인별 근로소득 불평등 개선’으로 보고·발표하도록 지시했다. 통계청은 청와대 지시에 따라 통계자료 제공 관련 보도 설명 자료 등을 사실과 다르게 작성·발표했다. 감사원 결과가 나온 이후 정치권은 들끓었다. 국민의힘은 ‘국기 문란 범죄’라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감사원의 ‘표적 감사’라고 맞섰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이 모든 실패를 통계 조작으로 감추고 국민의 고통 위에 거짓의 탑만 쌓아 올렸다. 거짓의 탑이 무너지려고 하자 최재해 감사원장을 탄핵했다”며 “한술 더 떠서 이재명은 감사원을 민주당 자신들이 장악한 국회 아래로 이관해 손아귀에 틀어쥐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 한준호 최고위원은 “표본도, 지수 작성 방식도, 자료 수집 방식도 다른 통계를 동일선상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 중의 상식”이라며 “이미 전 정권이 돼버린 윤석열정권의 잔당들이 전 정권(문재인정부)의 숨통을 기어이 끊어놓겠다는 의지가 부른 희대의 사건”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발표한 시기도 지적했다. 한 최고위원은 “윤석열정부 출범 4개월 만에 착수한 감사를 새 정부 수립을 불과 47일 앞둔 때에 마무리한 저의가 대체 무엇인가”라며 “대통령선거에 개입하겠다는 저열한 의도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이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북한 GP 파괴 두고도 수사 요청 민주 “해체 준하는 개혁” 반발 감사원은 지난달 24일에도 문정부 당시 군 인사 6명을 수사해달라 요청했다. 이들은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북한이 파괴한 북한군 최전방 감시초소(GP)에 대한 우리 측의 불능화 검증을 부실하게 진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경두·서욱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국방부·합동참모본부 관계자들이 수사 요청 대상자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2018년 체결한 9·19 군사 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내 GP 10개씩을 파괴하고 1개씩은 원형을 보존하면서 병력과 장비를 철수시킨 뒤 상호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당시 군 당국은 북한군 GP 1개당 총 7명씩 총 77명으로 검증단을 파견해 현장 조사를 한 뒤 북한군 GP가 완전히 파괴됐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북한군 GP 지하시설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우리 군 당국이 이 부분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나왔다. 전직 군 장성 모임인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은 지난해 1월 이 내용을 포함한 북한군 GP 불능화 검증 부실 의혹에 대한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그 결과가 이번 감사원의 수사 요청인 셈이다.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와 감사원의 연이은 문정부 ‘공격’에 민주당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검찰과 감사원이 노골적으로 대선에 개입하며 ‘신 관권선거’를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5일 국회 소통관서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기소하고 감사원이 북한의 GP 파괴 관련 결과를 내놓은 이후다. 조 수석대변인은 “권력기관이 이제 대통령선거에까지 사실상 개입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라며 “마지막까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졸개이기를 자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은 내란 세력이 벌이는 최후의 저항을 국민과 함께 막아내고 내란 세력을 철저히 뿌리 뽑아 국민 주권을 돌려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대세 영향 미칠까? 앞서 민주당은 집값 등 통계 조작 관련 감사원 발표 이후 ‘해체에 준하는 개혁 대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민주당 전 정권 탄압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서 나온 발언이다. 민주당은 “독립 기관이라는 존재 가치를 상실한 채 내란 옹호 기관이라는 오명을 안은 감사원에 닥칠 결말은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도 문정부 표적 감사, 윤정부 부실 감사 등을 이유로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헌재가 탄핵안을 기각해 최 원장은 직무에 복귀했으나 감사원장이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당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