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대목’ 벌초 대행의 세계

“언제 갔다와…그냥 맡겨”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추석을 앞두고 벌초에 나서는 이들이 많다. 일가친척들이 모여 산소를 뒤덮고 있는 잔디 등을 정리하는 벌초는 가족 연례행사로 취급되고 있지만 젊은 층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벌초에 나서지 않고 벌초 대행을 통해 벌초하려 한다. 그러나 집안 어른들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하는데...

벌초 시기가 다가올수록 벌초 대행업자들의 전화는 분주하다. 사회생활에 지친 젊은 층들이 벌초에 대한 부담으로 대행을 문의하기 때문이다. 가격부터 시작해 지역, 추가비용 등 다양한 질문이 전화기를 통해 오간다.

이제 대중화

벌초 대행은 현재 세대가 핵가족화 진행이 되고 고향에 남아있는 세대가 노령화되기 시작하면서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 1980∼1990년대 구성원 세대는 주로 대가족으로 벌초를 진행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당시 벌초는 도시로 떠나지 않고 고향에 남아 있던 세대가 책임지거나 도시로 나간 세대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함께 작업을 하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참가를 못한 가족들은 감사의 의미로 벌초비 등을 전했다.

고향에 남아있는 세대가 벌초를 진행하기 힘든 경우, 고향에 살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벌초비를 주고 대행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고향에 남은 세대가 노령화되어 벌초를 진행할 수 없게 되고, 친인척들이 고향에서 먼 곳에 머무르게 되자 벌초에 대한 부담이 부각됐다.

핵가족화로 인해 구성원의 머리수가 줄어든 점도 부담을 가중시켰다. 이후 2000년에 들어 벌초전문 업자들이 늘어나 전국적으로 퍼졌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벌초로 인한 사고가 발생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지난달 22일 경상남도 함양서 벌초를 하던 50대가 말벌에 쏘여 사망했다.


벌초를 하며 일어나는 일들은 대부분 개인의 부주의에서 출발한다. 가장 많은 사례는 막걸리와 안주를 먹은 뒤 예초기를 사용하면서 일어난다. 벌초의 원활함을 위해 대부분의 가정이 예초기를 이용하는데 음주 후 이용하다보니 균형을 잃거나 주위를 잘 살피지 않아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바닥의 돌 등이 튀어 주변사람이 다치기도 한다. 간혹 예초기 날에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다.

또한 벌초를 하다 땅에 있는 말벌집을 건드려 응급실에 가는 상황도 있다. 예초기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미처 벌집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전에 말벌집을 발견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발견이 어려워 주의가 필요하다.

풀 아래 있는 뱀을 보지 못해 물리는 일도 일어난다. 이에 소방서 관계자는 “8∼9월은 말벌 번식이 가장 활발한 시기며 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말벌의 발육 기간이 짧아지고 천적인 조류의 개체수가 급감했다. 야외 활동 시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와 같이 벌초 중 사고로 곤욕을 치른 세대는 전과 같은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벌초대행업자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벌초대행업자들이 추석을 앞두고 인기를 얻는 데에는 이런 이유도 포함돼 있다.

고령화·핵가족화로 이용 늘어
보통 10만∼20만원이면 ‘뚝딱’
기성세대와 젊은층 간 논쟁도

안전과 편의를 위해 벌초대행을 이용하는 층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벌초에 참가하기 힘든 세대가 많을수록 벌초대행 이용이 많다. 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층이나 업무 특성으로 인해 벌초에 참석 못하는 이들이 주로 선호하는 편이다. 가격도 친인척들이 돈을 모으면 문제 될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보통 벌초대행 이용은 20평 이하 기준 7만∼10만원 이하다. 20평이 넘어가면 10평당 2만원이 추가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작업 전후 사진을 찍어 보내주기도 한다. 타 업체에 비해 경쟁성을 얻기 위해 진입로와 잡목을 무료로 제거해주는 업체도 있다. 벌초 장소의 거리에 따라 요금이 늘어나기도 한다. 인기가 많다보니 농협에서도 지역을 나눠 벌초대행사업에 뛰어들었다.

조상들의 산소가 있는 선산은 집안 단위로 해결하기 힘들기 때문에 벌초대행을 통해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선산이 오래된 경우, 많은 수의 산소를 벌초해야해 대행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부 집안에선 많게는 증·고조부모의 산소까지 직접 벌초하고 그 외의 지역은 벌초대행을 고용해 작업한다. 벌초대행을 이용하지 않는 집안은 여러 세대가 직계조상의 산소를 전담해 각 집안별로 벌초를 담당하는 모습을 보인다.


벌초대행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다. 특히 고향에서 가까운 곳에 친인척들이 머무를 경우 이 문제를 두고 충돌이 생긴다. 유교적 가치관이 현대에 내려와 핵가족화와 맞물려 생긴 갈등으로 대행업자의 이용여부를 두고 주장이 대립한다. 벌초대행을 거부하는 입장은 “가족이 적어도 조상님 산소는 자손들이 직접 벌초하는 것이 예의”라며 벌초대행을 이용하는 순간 벌초의 의미가 퇴색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벌초대행업자들은 유쾌하지 못한 일도 겪는다. 벌초신청을 받아 작업에 나섰더니 집안 어르신들이 제지한다는 것이다. 업자를 부르기 전에 말도 없이 미리 벌초를 해놔 업자가 도착했을 땐 벌초가 끝나있는 상황도 있다.

고객이 대행을 맡겼다가 어른들에게 걸려 혼나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진다. 그들은 이렇듯 세대 간 의견조율이 되지 않아 생기는 일을 겪으면 곤혹스럽다고 한다. 한 대행업자는 “벌초와 관련해 이와 같은 일은 평소엔 잘 생기지 않지만 추석이 다가올수록 빈도수가 올라간다”고 전했다.

해 사례도

일부업자들은 고정된 고객층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벌초대행을 한번 이용한 집안은 계속해서 이용한다는 말도 했다. 한 업체에서는 “새로 신청하시는 분들은 적지만 매년 신청하는 분들이 있다”며 고정 고객이 유지가 되고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사전에 주의를 주지 않고 벌초를 해달라는 말에 벌초를 했더니 “왜 여기 있는 나무를 벌목했냐”며 따지는 고객도 있다.


<anjapil@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벌초 안전사고 실태

지난달 20일, 강원도소방본부는 평년보다 강수량이 적고 더운 날씨가 지속되면서 벌들의 공격적인 활동이 왕성해 질 수 있다고 전했다. 또 추석 연휴를 앞두고 벌초와 성묘 시 벌쏘임과 예초기에 의한 부상 등 안전사고가 증가 할 것으로 예상돼 주의를 당부했다.

도소방본부에 따르면 벌초와 성묘에 관련된 사고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11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사망 2, 부상 116) 유형별로 살펴보면 118건 중 벌에 쏘인 사고가 51건으로 43%를 차지했으며 그 다음으로 예초기와 낫에 의한 부상이 36건으로 나타났다.

부상자의 연령은 40대가 31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후 60대 23명, 70대 이상 20명, 30대 5명 등으로 나타났다.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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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