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만난 휴식 ③울산광역시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는 초록 세상

대나무가 무성한 숲을 이뤘다. 한여름 불볕더위가 아무리 기세등등해도 대숲에 들어서면 금세 서늘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태화강 십리대숲은 울산 시민이 사랑하는 도심 속 쉼터다. 대숲 가운데 산책로가 있고 죽림욕장에는 평상을 놓아 가족, 친구와 함께 걷거나 홀로 사색을 즐기기 좋다. 대숲은 음이온이 풍부해 머리를 맑게 하고 심신을 안정시킨다. 이만한 피서지가 또 있을까.

무더위에도 서늘한 십리대숲 산책길
태화강공원서 가족·애인과 자전거 데이트

십리대숲은 태화강을 따라 구 삼호교에서 태화루 아래 용금소까지 10리(약 4km)에 걸쳐 있다. 십리대숲이라는 명칭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이곳에 언제부터 대나무 숲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1749년 울산 최초의 읍지인 <학성지>에 ‘오산 만회정 주위에 일정 면적의 대밭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전부터 태화강 변에 대나무가 자생한 것으로 짐작한다.

십리대숲 양 끝 지점인 구 삼호교와 태화루의 내력도 살펴보자. 구 삼호교는 1924년 태화강에 건설된 울산 지역 최초의 근대식 철근 콘크리트 교량이다. 등록문화재 104호로 지정됐으며, 신 삼호교가 개통한 뒤 차량 통행이 금지됐다. 십리대숲과 구 삼호교 사이에는 음식점이 즐비한 십리대숲 먹거리 단지가 조성되었다.

태화루는 신라 선덕여왕 때 태화사의 누각으로 건립됐다.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와 함께 ‘영남 3루’로 불렸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지난 2014년 복원했다. 바람이 솔솔 부는 누각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멀리 십리대밭교를 바라보며 쉬어 가기 좋다. 보행자 전용 교량인 십리대밭교는 조명이 들어오는 밤에 더 예쁘다.

영남 3루
태화루 복원


십리대숲 전체를 조망하고 싶다면 강 건너편 태화강전망대에 오른다. 본래 있던 취수탑에 건물을 올려 4층 높이 전망대로 만들었다. 전망대와 십리대밭을 오가는 나룻배도 여기에서 탈 수 있다. 총 길이 47.54km에 이르는 태화강은 울산을 동서로 가로질러 동해로 빠져나간다.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이 최근 반세기 동안 겪은 변화는 드라마틱하다. 1960년대 초 울산이 공업단지로 지정되고 산업 수도의 영광을 누리는 동안 오·폐수와 쓰레기로 오염돼, 물고기 한 마리 살 수 없는 죽음의 강으로 전락했다. 태화강 살리기가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중반이다.

오·폐수 유입을 막고 수중과 수변을 정비해 수질을 1급수로 개선하고,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등 친수(親水) 공간을 만들었다. 대나무 생태원, 실개천, 초화단지 등을 갖춘 태화강대공원도 이때 조성됐다. 여의도공원 2.3배 크기인 태화강대공원에 십리대숲이 포함된다. 울산시 중구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대여소도 있다. 1인승부터 커플용, 가족용 자전거까지 보유해 인기다. 태화강 건너편에는 삼호대숲이 있다. 십리대숲이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면, 삼호대숲은 철새들의 보금자리다. 4월이면 백로 8000여마리가 이곳에 날아와 번식하고 10월에 동남아시아로 떠난다. 그 빈자리는 겨울 철새인 떼까마귀가 채운다.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 살아가는 강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 결과다.

다양한 볼거리
울산 숲과 바다

숲의 에너지로 심신을 가득 채운 뒤에 바다로 가자. 목적지는 울산 동구의 대왕암공원과 슬도, 울주군의 간절곶과 진하해수욕장이다. 대왕암은 신라 문무대왕의 비가 호국룡이 되어 잠겼다는 전설을 품은 바위다. 경주 앞바다에 있는 문무대왕릉보다 훨씬 크다. 주변의 아름드리 해송, 동해안에 있는 등대 중 가장 오래된 울기등대 등과 함께 공원으로 조성했다. 울산12경에 드는 대왕암공원의 송림은 해금강에 버금가는 절경으로 꼽힌다.

대왕암에서 2km 남짓한 해안 산책로를 따라 푸른 바다와 기암괴석이 만드는 비경을 즐기며 걷다 보면 슬도(瑟島)에 이른다. 무인 등대 앞 벤치에 앉아 파도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거문고 소리처럼 들린다고 섬 이름이 슬도다. 벤치는 포토존으로 인기다. 최근 슬도 입구에 소리체험관도 개장했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 산사의 종소리 등 울산 동구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아홉 가지 소리를 포괄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울산대교가 개통하면서 울산 동구로 넘어가는 길이 훨씬 수월해졌다. 울산대교와 공단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울산대교전망대도 놓치지 말자. 전망대는 울산대교 주탑과 같은 해발 203m로, 오후 9시까지 개장한다. 

간절곶은 해맞이 명소다. 바다를 향해 탁 트인 산책로를 걸으며 이국적인 풍차와 잔디광장, 해맞이축제의 상징인 소망우체통, 간절곶등대를 볼 수 있다. 진하해수욕장은 간절곶에서 5분 거리다. 수심이 얕고 파도가 잔잔해 해수욕을 즐기기 좋다. 해안 가까이 거북 등 모양 작은 섬인 명선도가 있고, 백사장 끝에 야간 조명이 아름다운 명선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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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코스

태화강 십리대숲→대왕암공원→울산대교전망대


1박2일 코스
첫째 날: 태화강 십리대숲→대왕암공원→슬도→울산대교 전망대
둘째 날: 진하해수욕장→간절곶

관련 웹사이트
· 울산관광 http://guide.ulsan.go.kr
· 태화강 http://www.ulsan.go.kr/taehwagang/index
· 관광울주 http://tour.ulju.ulsan.kr
· 간절곶 http://ganjeolgot.ulju.ulsan.kr

문의 전화
· 울산광역시청 관광진흥과 052-229-3853
· 울산종합관광안내소 052-229-6350~3
· 울산대교전망대 안내데스크 052-209-3345
· 대왕암공원 관리사무소 052-209-3738

대중교통(기차) 서울역-울산역: KTX 하루 30여회(05:15~23:00) 운행, 약 2시간20분 소요.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울산: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30여회(06:00~다음 날 00:35) 운행, 약 4시간20분 소요.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코버스 www.kobus.co.kr, 울산고속버스터미널 1688-7797

자가운전
울산고속도로 울산 IC→남부순환도로→삼호교남교차로에서 울산항·시청 방면→북부순환도로→와와교차로에서 왼쪽→십리대밭교 앞 좌회전→남산로→태화강전망대

숙박
· 경원비즈모텔: 동구 녹수7길, 052-233-2000, www.e-hotel.co.kr
· 신라스테이 울산: 남구 삼산로, 052-901-9000, www.shillastay.com/ulsan
· 롯데시티호텔 울산: 남구 삼산로, 052-990-1000, www.lottehotel.com/city/ulsan/ko
· 올림피아호텔: 남구 문수로483번길, 052-271-8401, www.hotel-olympia.co.kr

식당
· 함양집: 한우물회, 남구 중앙로208번길, 052-275-6947
· 진상가든: 갈비살·등심·육회, 남구 왕생로, 052-274-7800
· 낙원횟집: 물회·복국, 남구 돋질로21번길, 052-269-3023
· 태화강숯불장어구이: 장어구이·장어추어탕, 중구 신기길, 052-243-0554
· 효정밥상: 게장정식·생선구이, 울주군 청량면 신덕하1길, 052-227-4995

주변 볼거리
일산해수욕장, 강동·주전해안 자갈밭, 정자항, 장생포 고래문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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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