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카이스트 교수 ‘방송도 속고 독자도 속았다’

‘제2의 신정아’ 전정봉씨 허위학력 혐의 기소 <내막>

카이스트 교수이자 한국마케팅학술연구소장으로 알려졌던 전정봉(63)씨가 약 10년간 자신의 학력을 속여온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4년 전 허위 학력으로 동국대 교수를 지냈던 신정아 사건 이후 허위학력 파문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우리 사회의 해묵은 문젯거리다. 하지만 전정봉씨의 허위학력이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이름 석자만 빼면 모두 거짓이었다는 점과, 연구비 편취, 강의료 횡령 등 명백한 범죄 행위에 허위학력을 이용했다는 데 있다. 특히 그는 이 가짜 학력으로 방송에 출연하는가 하면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한 사람의 거짓말에 방송도 독자도 모두 놀아난 것. ‘짜가’가 판치는 세상 속 ‘인간 짜가’ 전정봉씨 허위학력 혐의 기소 내막을 들여다봤다.

미국 명문대 박사 출신 카이스트 교수 사칭 ‘10년 속여’
연구비 편취, 강의료 횡령 등 부당이득 챙겨 ‘이럴 수가’
네티즌, ‘카이스트’ 방관자 의혹? 학교 측 신고로 ‘덜미’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워싱턴대 석사, 펜실베이니아대 박사 출신의 카이스트 교수, 여기에 한국마케팅학술연구소장까지. 이 화려한 경력은 모두 가짜였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박철)는 지난 3일 가짜 경력, 허위학위로 연구비를 편취하고, 강의료를 횡령한 전정봉(63)씨를 사기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짜가’가 판친다”

실제 전씨는 눈부신 가짜 경력으로 경영 관련 책도 여러 권 내고 라디오와 TV에도 출연했으며, 2004년에는 한 케이블 방송에서 CEO 대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참으로 얄궂다.

검찰에 따르면 전씨는 지난 2002년부터 자신의 학력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에 미국 워싱턴대 석사 및 펜실베이니아대 박사학위를 획득했다고 주장·소개하며 여러 권의 책을 내고 언론사의 인물 DB에도 등록했다. 하지만 실제 조사 결과 국내 모 대학 무역학과 학사과정만 졸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전씨가 내세운 한국마케팅학술연구소 역시 사실상 1인 연구소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전씨의 대담한 사기 행각은 상식을 뛰어넘었다. 2006년 그는 자신을 카이스트 마케팅연구소 소속 교수라고 소개하고 “마케팅 전략을 세워주겠다”며 수협중앙회 전략마케팅 용역계약 담당 직원 A씨에게 접근했다.

이어 전씨는 A씨에게 카이스트 연구동에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17명의 상근 연구원과 10명의 보조 요원을 확보하고 있다는 연구계획서를 건넸다. 안타깝게도 A씨는 전씨의 허위 계약서에 속아 전씨와 계약을 맺은 뒤 용역비로 2000여 만원을 지급했고, 사기의 성공에 힘입은 전씨는 이듬해 2월까지 비슷한 방식으로 모 인터넷교육업체와 연구용역을 체결하고 4400만원을 받아내는 등 다른 기업들도 속여 연구비 명목으로 총 9580여 만원을 받아 챙겼다.

전씨는 또 위조학력과 교수 직함을 들고 철도인력개발원에 접근했다. 개발원 측은 ‘1984년 한국개발연구원 수석연구원, 1989~2007년 카이스트 교수’라는 전씨의 프로필을 믿고 강의료 90만원을 지급했다. 전씨에게 ‘돈 벌기’는 ‘누워서 떡 먹기’ 만큼 쉬운 일에 불과했다.

그런가 하면 전씨는 가짜 경력과 허위학력을 이용 사기행각을 벌이는 와중에 라디오와 방송에 출연하는가 하면 ‘중소기업을 위한 산학 연구에 몰두했다’면서 여러 권의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전씨가 낸 책은 <시장조사론> <통합마케팅> <사장학 특강> <강한기업의 경쟁력> <창업닥터> <이 시대의 작은 거인들> <일류 팀장도 놓치기 쉬운 36가지 룰> <21C 이렇게 하면 마케팅 전략 성공한다> 등 16권에 이른다.

또 전씨는 KBS 라디오와 BBS 라디오에서 <경제 레이다>와 <전정봉 교수의 열린 경제>를 오랫동안 진행했으며, MBC-TV 및 SBS-TV에서 <경제포커스>와 <기업탐구>를 진행했고, 지난해까지 CEO 대담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으로 알려진 그의 허위 명성과 그가 내세운 완벽한 서류는 누가 보더라도 의심할 여지없이 학력과 경력을 포장했고, 방송사의 제작진들 역시 감쪽같이 속았다.

더욱 황당한 것은 전씨가 지난 2009년 한국 신문기자 연합회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한민족 대상’ 마케팅경영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사실이다. ‘짜가’가 판치는 그의 경력과 학력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속았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전씨의 호사는 여기까지였다. 방송과 출판, 기업체와 공공기관들을 오가며 사기와 횡령, 편취 등으로 돈을 쓸어 모았던 전씨의 거짓은 본인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고 주장한 카이스트에 의해 들통났다. 지난해 사실 확인을 한 카이스트 측이 전씨를 형사고발한 것.

“누워서 떡 먹으면 체해”

카이스트 측은 전씨가 카이스트 내 산학협력업체에서 일할 당시 교수를 사칭한다는 소문을 듣고 2001년 전씨를 퇴출했지만 이후에도 전씨의 카이스트 교수 사칭은 계속됐다. 결국 카이스트 측은 지난해 5월 사실을 명확히 하기 위해 대전 둔산경찰서에 전씨를 형사고발했고, 10여 년간 지속됐던 전씨의 사기 행각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TV까지 나오는 대담함에 정말 소름 돋았다” “TV 출연해 말 진짜 잘하던데 다 거짓이었다니 충격적이다” “학력 위주의 사회가 불러온 폐단”이라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형사고발과 검찰의 기소로 전씨의 대담한 사기행각은 종지부를 찍었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 뿌리 내리고 있는 허위학력 실태가 다시 한 번 드러났다. 학력 위주의 사회가 어떤 폐단을 가져올 수 있는지 실태를 점검해야 한다는 경각심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