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공인’ 특A급 전관 변호사 리스트

검복 벗고도 무소불위 무한권력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정운호 게이트’ 관련 홍만표 변호사의 전관예우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역대 검찰총장 출신들의 퇴임 이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검찰의 대통령, 검사의 꽃으로 불리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검찰총장. 그들은 ‘옷’을 벗은 뒤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역대 검찰총장 출신 40명 중 변호사 미등록자는 단 한 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대한변호사협회가 1대 검찰총장부터 40대 김진태 검찰총장까지 변호사 개업 여부를 파악한 결과 제10대 총장을 지낸 정창윤 검찰총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변호사 활동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론은 반대
회의적 반응

특히 사망·휴업자를 제외하고 현재 개업 중인 검찰총장 출신 변호사도 18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법무법인에 들어가는 경우보다 단독 사무소를 개설하는 경우가 2배가량 많았다. 일부는 현역 총장 시절의 지명도를 발판으로 정치권이나 기업에 진출하거나, 변호사 업무 외에도 저서 집필에 몰두하는 이들도 있다.

제39대 검찰총장을 지낸 채동욱 전 총장은 아직까지 칩거 상태다. 채 전 총장은 갑작스러운 혼회자 논란으로 사퇴했다. 채 전 총장은 절친한 지인들과는 연락하지만 사회와는 사실상 격리된 상태다. 전 국가정보원 직원이 국정원 관련 ‘댓글 부대’ 의혹을 제기해온 현직 기자를 고소했다. 이 직원은 또 과거 ‘종북 세력 척결’을 내세웠던 제38대 한상대 전 검찰총장을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한상대 전 검찰총장은 이명박 정부 말인 2011년 8월 취임하면서 ‘종북 좌익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등 논란이 됐던 인물이다. 2012년 뇌물수수와 성 추문 등 잇따른 검찰 내부 비리와 항명이 불거진 상황에서, 대검 중수부장과 대립하다가 결국 2012년 12월 초 “검찰총장으로서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며 불명예 퇴진했다.


검찰총장 재직시절부터 국제통으로 평판이 자자했던 제37대 김준규 전 검찰총장은 퇴임 후 미국 일리노이대 법과대학원(UIUC 로스쿨) 연수 중 강연 활동 등을 하다 귀국해 개인 사무소를 운영했지만, 현재 법무법인 화우로 옮겨 일하고 있다.

김 전 총장은 변호사 업무 외에 연수 중 수집한 자료와 강의를 바탕으로 ‘형사사법 분야 국제협력에 관한 새로운 방향 모색(New Initiative on International Cooperation in Criminal Justice)’이라는 전문서적을 발간하기도 했다.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 검찰총장을 역임한 제36대 임채진 전 검찰총장도 퇴임 후 개인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사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경우도 있다.
 

대형로펌인 법무법인 화우의 고문변호사 인 제34대 김종빈 전 검찰총장은 변호사 활동뿐만 아니라 법학 전문대학원 교수로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김 전 총장은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초빙교수로 후배들에게 법학 지식을 전파하고 있으며, 지방 로스쿨에서도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정수학원의 제12대 이사·CJ오쇼핑의 사외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역대 검찰총장 퇴임 이후 행보 보니…
40명 중 39명 개업…미등록자는 1명

대형 로펌에 소속돼 자신의 현직 경험과 법률적 지식을 활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제33대 송광수 전 검찰총장은 퇴임 후 개인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로 활동하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서 현재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송 전 총장은 퇴임 후 회사 자금 횡령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주수도 제이유 그룹 회장의 법률적 대리인으로 선임계를 냈다가 여론에 반발에 수임료를 반납하고 변호사를 사임하기도 했다. 퇴임 후 법조계가 아닌 기업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총장도 있다.


국민의 정부 마지막 검찰총장이었던 제32대 김각영 전 총장은 퇴임 후 하나금융지주 자회사인 하나대투자증권 사외이사를 맡아 활발히 활동하다 2010년에는 하나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의장으로 활동하던 김 전 총장은 법조계로 다시 돌아와 현재 개인법률사무소를 열어 활동하고 있다.

법조인에서 정치인, 공기업 이사장으로 팔색조의 변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제22대 김기춘 전 검찰총장은 퇴임 후 정치인으로 변신 15∼17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제3대 한국에너지재단 이사장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했고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도 근무했다.

로펌행보다
단독 사무소

기업가로서의 제2의 인생을 사는 총장들도 있다. ‘비즈니스’에 관한 한 제30대 신승남 전 검찰총장을 빼놓을 수 없다. 신 전 총장은 현재 신원CC의 회장으로, 이사회를 이끌고 있다. 이름은 명예회장이지만 경영기획 재무 인사 등 골프장의 경영 전반에 대한 의사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총수 역할을 맡고 있다.

신 전 총장은 재임 시절 ‘싱글’ 골퍼로 유명했으며, 현재도 80대 초·중반의 스코어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 전 총장은 지인들과 어울려 골프를 치면서 “검찰서 승진하는 것보다 골프장 오너가 되고 싶었다. 골프장을 지어 소원을 이뤘다”고 종종 말했다고 한다.

문민정부의 마지막이자 국민의 정부 초대 검찰총장을 역임한 제28대 김태정 전 총장은 지난 2000년 국내 최초로 민간법률구조재단인 ‘로시콤’을 설립해 공익 활동에 남은 인생을 쏟고 있다. 20대 이하 총장들은 평균 나이가 80이 넘은 경우가 많아 병환으로 별세하거나 사실상 현역에서 은퇴했다.

제18대 정치근 전 검찰총장은 공증사무실을 운영하며 공증업무 자문을 하고 있지만, 조만간 자문 업무를 접고 퇴직할 계획이다. 65세가 넘으면 변호사로서의 활동을 사실상 할 수 없고, 공증업무의 정년도 만 75세이기 때문이다.

정 전 총장은 “퇴임 후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 운영하다가 얼마 전 공증사무실로 바꿨다”며 “올해 안으로 공증사무실도 정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31대 이명재 전 총장과 제23대 정구영 전 총장은 각각 녹십자 두산중공업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김도언 전 총장은 금호산업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검찰동우회장을 맡고있는 정 전 총장은 “총장 출신 변호사 중 일부는 오랜 식견과 경험, 수사 노하우, 다양한 정보 등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활용하길 기대하는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대다수는 현실적인 제약으로 ‘사회원로’로서 조용한 기여에 보다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총장 출신 법조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은 ‘전관예우’다. 퇴직 공직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전관예우라고 부른다. 공직자의 퇴직 후 벌어지는 이해 충돌의 문제는 퇴직공직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현직의 공직자와 연결고리를 통해 이해 충돌의 가능성은 부패로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부패 또는 부패의 가능성은 공직자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정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 변호사 선임계조차 내지 않고 거액의 수임료를 받는 ‘전화 변론’은 전관예우의 대표적인 사례다. 전직 검찰총장은 존재감만으로도 기업의 입장에서는 든든한 우군이다.

기업의 형사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사무 처리에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외에 대형 사건의 피의자들도 전관 출신 변호사를 선호한다. 단군 이래 최대 다단계 사기 사건으로 불린 제이유 사건에서 송광수 전 검찰총장은 피의자인 주수도 회장의 변호를 맡았다.


퇴직 후 1∼2년
바짝 버는 시기

이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의 비난이 빗발쳤다. 검찰총장을 지낸 사람이 어떻게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사기 사건의 변호를 맡을 수 있냐는 것. 제이유 피해자들은 송 전 총장을 향해 “수임료를 공개하라.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받았기에 희대의 사기꾼 주수도를 변호하나”고 항의하기도 했다.

검찰총장 퇴임 1년이 안 돼 사건을 맡은 점도 ‘전형적인 전관예우’라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에서는 이들의 법조계 지위 자체가 기업의 방패막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전관예우의 또 다른 활용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2011년 변호사법이 개정됐다. 공직에서 퇴임한 변호사는 국가기관 사건을 일정 기간 수임할 수 없도록 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관예우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단적인 예가 최근 물의를 빚은 검찰총장 출신 변호사들의 대기업 사외이사 겸직이다. 많은 고위공직을 거친 퇴직 공직자들이 재취업을 하고 상당한 대우를 받는다. 취업하는 곳의 상당수는 공직에서 하던 일과 관련이 있는 기업이다. 변호사단체들은 전관예우 관행을 근절하려면 법조계 고위직 출신들이 사건을 수임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변호사 활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반발 중이다.

검찰과 법원 내부에서도 수십년 공직생활을 명예롭게 끝낸 제40대 김진태 전 검찰총장을 변호사로 만나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변호사협회는 지난해 12월4일 퇴임한 김 전 총장에게 전관예우 악습 근절을 위해 변호사 개업 자제를 권고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변호사협회는 김 전 총장에게 발송한 서한에서 “민주국가이자 경제선진국인 대한민국 법조계가 국민으로부터 큰 불신을 당하는 것은 뿌리 깊은 병폐인 전관예우 때문”이라며 “검찰과 법원에서 고위직을 지낸 사람들은 변호사로 개업해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고액의 수임료를 받고 재직 당시 직위·친분을 이용해 후배 검사·판사에게 전화 변론을 하는 등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라고 지적했다.


대부분 변호사 활동
정치권·기업 진출도

변호사협회는 이어 “개업을 하지 않아도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공익법인대표 등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길은 많이 있다”며 “대법관을 퇴임한 후에도 많은 이들이 공익 활동에 전념하고 있고, 새로 취임한 몇몇 대법관들 역시 퇴임 후 사익을 취하는 변호사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국회에서 선서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변호사협회는 또 “검찰 최고위직에 있었던 김 전 총장이 변호사 개업을 한다면 검찰의 일인자였던 사람이 사익을 취하려 한다는 자체로 국민적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며 “전직 검찰총장이 형사사건을 수임해 후배들 앞에 나타난다면 후배 검사들은 사건 처리에 심리적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고 공정하게 사건 처리를 못하면 자괴감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과 법원 일부에서도 검찰총장 출신 변호사 개업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대선배였던 사람들이 변호사의 신분으로 후배들에게 청탁 전화를 하거나 답변서를 내는 것 자체가 후배들에게 부담이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한 검사는 “대한민국의 모든 검사를 지휘했던 검찰총장이 사건을 맡아 도움을 요청하면 기분이 묘하지 않겠냐”며 “전관예우 관행을 줄이려면 고위직 간부들의 변호사 개업부터 막아야 한다”고 털어놨다.

수원지방검찰청의 한 검사도 “실제로 내 직속 선배가 변호사 개업을 하고 내게 소소한 부탁을 했을 때도 부담이 컸다”며 “하물며 검찰의 총수 출신이 내게 부탁을 하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부담이 더 큰 게 사실 아니냐”고 반문했다.

법원 내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의 큰 어른 격인 대법관이 변호사로 신분을 바꾸고 내게 답변서를 제출하거나 법정에서 만나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며 “전관예우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신경 쓰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변호사단체들이 김 전 총장의 변호사 개업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밥그릇 지키기로 꼽고 있다. 변호사 수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로 인해 늘어난 상황에서 전관 출신들까지 변호사 개업을 하면 기존 변호사들이 수임하는 데 있어 타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전관 출신인 한 중견 변호사는 “나도 법원에서 나와 개업하려고 할 때 일부 변호사들이 개업을 반대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견제였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어 “변호사단체들이 이번에도 김 전 총장의 변호사 개업을 반대하는 건 월권행위”라며 “본인들은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고, 법조계 간부 출신들은 개업할 수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항상 따라붙는
전관예우 꼬리

로스쿨 출신인 한 변호사는 “변호사협회와 서울변호사회가 항상 편파적으로 변호사 출신을 나누는 성향이 있다”며 “로스쿨 출신들을 배척하고 사법연수원 출신들을 옹호하는 변호사협회가 전관예우 관행을 염려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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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