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 게이트' 또 다른 의혹들

연예인과 성관계? ‘이대로 묻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법조계 비리 의혹 사건의 주인공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관련해 새로운 의혹들이 차례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회사 자금을 횡령해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포착됐고 호텔 여직원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고 심지어 가래침까지 뱉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또 그런 과정이 고스란히 녹음된 보이스펜에 관한 소문도 있어 그 존재 여부에 대해서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파기만 하면 나오는 의혹들. 당분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부하 직원에게 “돈을 가져오라”고 지시하고 개인금고를 열듯 회삿돈 18억원가량을 꺼내 쓴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정 대표의 다양한 로비 의혹과 네이처리퍼블릭 자금의 연관성을 추적해온 검찰은 조만간 정 대표에게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속도내는 수사

횡령 범죄의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이면 특경가법에 따라 가중처벌을 받는다. 정 대표는 지난해 1월2일 최대주주 신용공여 형식으로 네이처리퍼블릭으로부터 17억9200만원을 빌렸고, 40여일 뒤인 2월13일 상환을 완료했다고 투자자들에게 공시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거래가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검찰은 정 대표가 부하 직원에게 “돈이 필요하니 가져오라”는 식의 지시를 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이후에 돈을 채워 넣었다고 하더라도 횡령에 해당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원석)는 지난 17일, 부산에 있는 Y사 등 네이처리퍼블릭 납품사와 일부 대리점, 직영점 관리업체 등 5∼6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네이처리퍼블릭이 Y사 등 납품사로부터 화장품 등을 공급받는 과정에서 단가를 부풀린 뒤 차액을 챙기는 수법 등의 비자금 조성 단서를 포착했다. 이번 압수수색은 검찰이 정 회장의 상습도박 관련 법조계 구명 로비뿐 아니라 서울메트로와 군(軍), 롯데면세점 등을 대상으로 매장 입점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에 대해 ‘정조준’한 것으로 해석된다.
 

네이처리퍼블릭이 이들을 상대로 로비한 자금원을 포착하기 위한 압수수색이라는 의미다. 검찰은 정 대표가 로비 자금 마련을 위해 이 같은 부당한 거래를 지시한 게 아닌지 살펴보고 정 대표가 꺼낸 대여금·가지급금이 석방 및 사업청탁 로비, 원정도박에 쓰였는지도 수사하고 있다. 해외 상습 원정도박 혐의로 구속 수감된 정 대표가 다음달 5일 출소를 앞두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빠른 시일 내에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정 대표 역시 최근 접견을 온 지인들에게 “여기서 2∼3년은 더 살아야 할 것 같다”고 한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의 회삿돈 유용은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의 원정도박 수사 과정에서는 선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검찰은 경영비리가 아닌 기업인 개인의 일탈 수사로 한정해서 진행했다. 정 대표 이외에도 맹모 수도권 골프장 회장, 문모(57) 해운업체 대표 등 기업인 10여명에 대한 수사가 동시에 진행됐지만, 압수수색이 이뤄진 기업은 없었다. 특수1부가 횡령 혐의를 본격 수사하면서 검찰과 정 대표 사이의 악연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정 대표는 ‘해피존’ 사업을 동업한 유명 로비스트 심모(62)씨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그러나 심씨는 법정에서 그가 검찰 진술을 완전히 번복하면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곤경에 처했던 검찰은 지난해 정 대표의 해외 원정도박 수사를 강도 높게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언론사에 따르면 정 대표와 최유정 변호사 두 사람의 대화를 녹음한 보이스펜이 있다는 사실을 사건의 핵심 관계자로부터 확인했다.

고구마 줄기처럼…캐면 캘수록 새 의혹
비자금·횡령 제기…스타 성매매 주장도
 

이 관계자는 “현재 정 대표가 연루된 사건은 단순히 해외원정 도박만이 아니다. 단순 폭행에서 성폭행까지 현재 걸려있는 민·형사 소송이나 고소·고발만 10여건에 이른다”며 “최 변호사는 해외원정 도박사건의 항소심을 맡으면서 정 대표가 연루된 민·형사 사건을 해결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일례로 정 대표는 지난해 10월 검찰에 구속되기 직전까지 서울 P호텔의 수면 방을 자주 이용했다. 이 과정에서 호텔 여직원과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정 대표가 “(너 같으면) 이런 이불에서 남자친구랑 XX할 수 있겠느냐”고 따졌던 것. 심지어 이 여직원에게 가래침까지 뱉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직원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며 정 대표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정 대표와 여직원의 시비는 호텔과의 갈등으로 번졌다. 정 대표는 호텔 사우나에 여직원이 근무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P호텔 측은 정 대표의 행동을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맞섰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양측은 극적인 합의를 이뤄냈다. 호텔 여직원을 다른 부서로 발령내는 선에서 사건을 봉합한 것이다. 하지만 호텔 여직원은 얼마 후 호텔을 그만뒀다. 이후 정 대표를 상대로 고소를 준비하다가 그후 사건은 조용히 마무리됐다.

그 배경에 최 변호사가 있었고, 이 내용 역시 녹음파일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변호사는 매일 정 대표를 개인 접견한 내용을 보이스펜에 녹음했다. 이후 최 변호사는 자문 변호인단을 통해 관련 사건에 적합한 변호사에게 일을 나눠 맡겼다.

즉, 문제의 그 보이스펜에 담긴 녹음파일은 정 대표 사건을 총망라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보이스펜에는 그동안 도움을 받았거나 도움을 줄 이들의 실명이 모두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와 최 변호사는 최근 공방전을 벌였다. 4월 말 구치소 접견 과정에서 폭행을 당했다며 최 변호사가 정 대표를 경찰에 고소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 과정에서 최 변호사 측은 다소 민감한 내용도 공개했다. 최 변호사의 한 측근은 “3개월 동안 아무 일도 못 하고 매일 접견하고 도박 사건은 물론, 성추행과 폭행 피해자를 달래는 등 온갖 민·형사 사건의 뒤치다꺼리를 했다. 20억원을 받았지만 남는 것은 별로 없다”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 측은 이 보이스펜을 정 대표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마지막 카드’로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변호사에 따르면 정 대표는 청담동에 위치한 M유흥주점에서 정재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로비하며 여자 연예인 성접대까지 제공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성매수 한 여자 연예인들에 대해 주변인들에게 자랑삼아 알리기도 했다. 이때 거론된 여자 연예인은 주연급 배우 A씨와 조연급 B씨, 걸그룹 출신 솔로가수 C씨다. 다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세를 가진 연예인들로, 현재도 왕성한 활동 중이다.

성접대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 업소 관계자는 연예인이 업소에 출입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라면서도, 사실상 출입을 시인했다. 일각에서는 허풍이 세고 자기 과시가 강한 정 대표의 일방적인 주장인 만큼 좀 더 사실 확인이 필요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 검찰 역시 법조계 로비, 횡령 등 보다 굵직한 사안이 즐비해, 당장 연예인 성매매 혹은 성접대까지 사건을 확대할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벌써부터 연예계는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소문이 맞나

사실 여부를 떠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 만으로도 막대한 이미지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이미 최근 연예인 원정 성매매 사건으로 인해, 한번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이후라서 더욱 그렇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각종 찌라시 등에서 이름이 거론될 경우 활동에 막대한 타격을 입는다”며 “차라리 빨리 수사가 진행돼 선의의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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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