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언증에 걸린 사람들 백태

관심 끌려고 거짓말 또 거짓말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반사회적 인격장애 ‘허언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상인 사람이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과는 달리, 인격장해를 기반으로 병적 또는 의식적으로 공상적인 목적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허언증 환자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허언증을 놀이처럼 공유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 일각에선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한다.

허언증 환자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단순히 허풍이나 과장이 심한 경우와 달리 자신이 왜곡한 사실을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허언증의 종류도 다양하다. 병적 허언과 실제로 체험하지 않은 것을 사실로 단정 짓는 회상착오가 병행되는 것을 ‘공상허언증’이라고 말한다.

허구를 진실로

또한 실제로 앓고 있는 병이 없음에도 아프다고 거짓말을 일삼거나, 자해를 해서 타인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등 사기병과 결부된 것을 ‘뮌하우젠 증후군’이라 하고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말과 거짓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한다.

‘허언증 갤러리’라는 커뮤니티도 생겼다. 허언증 갤러리에는 누가 봐도 허무맹랑한 거짓말들이 계속해서 업데이트되고 있으며, 누가 더 거짓말을 잘하는지 끊임없이 경쟁하고 있다. 개설된 지 10여일 만에 메인갤러리로 승격한 허언증 갤러리에는 하루에도 수백개의 거짓말들이 올라온다.

자신의 능력과 화려한 스펙 등을 어필하는 능력 ‘어필형’과 증명 불가능하고 누가 봐도 거짓말인 게시물을 올리는 ‘허풍형’, 정치와 취업난 등을 다룬 ‘풍자형’ 등 게시물의 종류도 다양하게 나뉜다.


허언증 갤러리가 이처럼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타인의 과도한 기대에 따르는 부담감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모 및 스펙 지상주의가 만연한 현실 속에서 벗어나 온라인에서라도 누군가에게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환자로 분류
죄책감 못 느끼고…타인 피해도

하지만 인터넷상에서 재미를 위해 시작한 허언증 놀이가 단순 놀이에서 끝나지 않고, 본인의 실제 상황과 혼동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발생한 세 모자 사건을 들 수 있다.

당시, 두 아이 엄마 이씨는 수년간 집단 혼음을 강요받으며,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고, 전 남편과 그의 친·인척 등 44명을 수사기관에 고소했다. 이씨가 올린 글은 빠른 속도로 국민들에게 전해졌고, 이를 접한 많은 사람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세 모자 사건은 무속인에게 조종당한 엄마의 허위 자작극으로 드러났다. 무속인은 이씨의 두 아들에게 아버지와 함께 샤워했던 기억을 친족 간 성폭행의 기억으로 바뀌게끔 성폭행 기억을 주입했다. 이러한 배경이 바탕이 돼, 세 모자는 기자회견을 하는 등의 과감한 행보가 가능했고, 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는 데 성공했다.

해외 언론에도 보도되는 등 전 세계 이목을 끌었던 사기극은 무속인이 검찰에 기소되며 막을 내렸지만, 세 모자가 행한 거짓말은 사회적 혼란을 일으켰고 다수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 외에도 성공 압박이 만들어낸 천재 소녀 사건도 있었다.

미국 공립과학고인 토머스 제퍼슨(TJ) 과학고 12학년에 재학 중인 김양이 하버드대에 조기 합격한 뒤, 스탠퍼드대 등에서도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는 사실이 매체에 보도되며 사건은 시작됐다.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가 수학에 재능이 있는 김양을 서로 입학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학년을 쪼개 두 학교 모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협의했다는 내용이 알려지며 김양은 천재 소녀로 불렸고 유명인이 됐다.


하지만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에 김양의 동급생이라고 주장하는 한 네티즌의 폭로성 글이 올라오는 등 의혹 제기가 이어졌다. 결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가 공식적으로 김양에게 입학 허가증을 내준 적 없다고 부인하며 사건은 마무리됐다. 위의 두 사례를 통해 거짓말이 재미를 추구하는 놀이의 범위에서 벗어나,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신뢰를 해칠 수도 있고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인의 인생을 도용하는 사례도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시행한 개인정보보호수준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이용자 10명 가운데 30.1%가 개인정보 침해 경험이 있었다. 그 중, 62.7%가 인적사항 등의 개인정보를 도용당했으며, 40.1%가 자신이 언급된 글, 20.3%가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통해 피해를 입었다. 타인의 인생을 빼앗는 리플리증후군의 사례는 현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누가 더 거짓말 잘 하나’
커뮤니티 업데이트 놀이

2004년 발생한 ‘거여동 여고 동창 살인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거여동 여고 동창 살인사건은 리플리 증후군을 앓던 이씨가 자신의 동창인 박씨의 행복한 삶에 질투와 분노를 느껴 박씨의 일가족을 모두 살해한 사건이다. 당시 이씨는 “친구가 내가 보는 앞에서는 잘해주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내가 결혼하지 못했다고 무시하는 것 같았고 친구 시댁에서도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언급했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멜리스>가 개봉해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멜리스는 화목한 가정과 안정된 직장 등 모든 것을 가진 친구 은정에게 극도의 질투를 느낀 가인이 자신이 은정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2014년 ‘신입생 엑스맨’으로 방송을 탔던 김씨 역시 리플리 증후군 증상을 보였다. 그는 2009년 한양대를 시작으로, 연세대, 홍익대, 서울대, 고려대 등 48개 대학에서 신입생 행세를 했다. 김씨는 동아리, MT등에 참석하고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김씨는 다른 학생의 신분을 사칭하고 이를 이용해 문자로 협박하는 등 범죄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피해학생은 “김씨 때문에 수강신청도 못하고, 자신을 해칠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혔다”고 털어놓았다.

허언증은 외부로부터의 기대 혹은 자신 스스로 채우지 못한 욕구를 만족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통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더 큰 문제는 소설처럼 잘 짜여진 거짓말로 다수의 사람을 속이지만 이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또한 자신의 주장에 이의가 제기되면 지나치게 화를 내기도 한다.

범죄로 이어져

한 전문가는 “그들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타인의 관심을 얻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선에서 행해지는 거짓은 재미로 넘길 수 있지만, 타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안겨주는 거짓말은 사회적으로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그는 “지속해서 높아지고 있는 허언증 환자 발생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무관심한 사회 분위기에서 탈피해 가족과 사회공동체의 따뜻한 관심이 절실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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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