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특집> ‘숨은 명소’ 7대 캠핑장 탐방

날씨 좋고 풍경 좋고 “당장 떠나세요”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본격적인 봄나들이 철이 다가오면서 캠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맞춰 캠핑 마니아들을 설레게 하는 특색 있는 캠핑장들도 속속 선보이고 있는 상황. <일요시사>에서는 봄기운이 완연한 4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7곳의 이색 캠핑명소를 소개한다.

곡성 청소년야영장은 고달면 가정리에 있다. 원래는 오곡초등학교 예성분교가 있던 곳으로, 1946년 개교해 1995년 폐교했다. 폐교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2005년 청소년야영장으로 새 단장을 했다. 야영장이 위치한 곳은 섬진강 물길이 바로 보이는 곳.

이 물길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17번 국도와 철길이 나란히 달리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섬진강, 길, 철로가 10km 넘는 구간을 함께 흘러간다. S라인 물길을 따라 유유히 흐르는 철길의 모습은 ‘빨리’만을 외치는 요즘의 직선 철로와는 사뭇 다른 풍경.

[곡성 열차테마]

유홍준 교수는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이 길을 우리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길 중 하나로 꼽았다. 옛 곡성역에서 가정역까지는 하루 다섯 번 증기기관차가 왕복으로 운행된다. 사실 옛 곡성역은 1999년 기능을 잃었다.

전라선이 직선화되면서 새로운 곡성역이 생겼기 때문. 하지만 옛 곡성역은 ‘열차’를 테마로 한 ‘섬진강 기차마을’로 변신해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야영장에 앉아있으면 강 건너에서 ‘뚜우∼’하며 증기기관차 기적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람들은 아련하게 들리는 이 소리에 시간 여행을 떠난 듯 착각에 빠져든다. 야영장에 텐트를 내려놓고 ‘섬진강’과 ‘열차’를 테마로 즐길 거리를 찾아 나선다. 곡성 청소년야영장의 장점은 텐트를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40여 동의 텐트 중 10여 동은 섬진강 둔덕에 있고, 바로 옆에는 개수대와 전기 시설이 마련돼 있다. 나머지 30여 동은 청소년야영장 본관 옆 운동장에 설치돼 있는데 이곳은 그늘이 드리워져 한여름에 시원하게 야영을 즐길 수 있다.

오토캠핑객은 섬진강 바로 앞 잔디밭에 텐트를 칠 수 있다. 수해로 인해 잔디와 일부 시설이 유실됐지만, 따로 구획이 나뉘지 않아 텐트와 그늘막을 자유자재로 칠 수 있다. 단 래프팅 체험을 이곳에서 하기 때문에 낮에는 조금 시끄러울 수 있다는 게 단점.

조용하게 자연을 만끽하고 싶다면 야영장에서 자전거길을 타고 두계마을 쪽으로 1㎞ 가면 청소년야영장에서 관리하는 야영사이트가 있다. 청소년야영장에서 관리하는 부지인데 잔디와 들꽃이 보송보송하게 자라나 있으며 이곳에선 조용하게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양평 중미산 천문대]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중미산 자연휴양림 캠핑장은 초보 캠핑족이 첫 캠핑으로 도전하기 좋다. 그 이유도 간단하다. 적당히 불편하고 적당히 한적하다. 이곳에는 총 56개의 캠핑 데크가 있고 산림청이 운영하는 38개의 휴양림 가운데 올해부터 예약제 캠핑장을 시범 운영하는 6곳 중 한 곳이다. 예약하고 와야 하며 초보들이 도전하기에 좋다.

본격적인 나들이 철…사람 몰리는 야영장
승마체험부터 번지점프까지 다양한 체험


계곡을 따라 십여 개의 캠핑 사이트가 드문드문 들어서서 숲에 둘러싸인 느낌이 일품이다. 화장실, 샤워실, 식수대도 갖췄지만, 매점이나 전기가 없는 것은 아쉽다. 그래도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떼워가며 지내는 게 캠핑인지라 초보들이 도전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또 가족 단위 소규모 캠핑족이 대부분이라 여유롭다. 차를 바로 옆에 두는 오토캠핑, 등산 중에 동그란 알파인 텐트를 치고 즐기는 산악캠핑, 넓고 고른 땅에 집처럼 크고 넉넉한 텐트를 치고 즐기는 캠핑 등 종류도 다양하다.

10여 개의 오토캠핑 사이트를 제외하면 중미산 캠핑장은 산악캠핑에 가깝다. 캠핑 사이트도 산기슭을 그대로 살려가며 꾸며졌다. 다만 앞뒤 사이트의 간격이 좁아서 밤에는 옆 텐트에서 코를 고는 소리도 들리지만, 풀벌레 소리나 시냇물 소리에 묻혀버린다.

자연휴양림이라 주변 환경이 좋고 숲 산책로는 가볍게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숲 체험코스 1.2km, 태교의 숲길 600m, 등산로 6.4km가 있다. 또한, 숲 해설사가 친절한 설명도 해주니 아이들과 함께 둘러보기 좋다. 등산로는 40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데, 정상에서는 남한강, 북한강은 물론 서울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오리엔티어링 프로그램도 있다.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길을 찾아가는 게임인데 이 게임뿐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 덕택에 아이들도 즐거워한다. 주변에는 대형 리조트도 있고 천문대도 있으니 미리미리 알아두면 둘러볼 곳이 많다.

[동해 망상해변]

7번 국도를 타고 강원도 바다로 떠나보자. ‘망상해변’은 여행객의 로망이다. 약 2km에 달하는 모래사장 앞으로 넘실대는 쪽빛 바다에 먼저 마음을 빼앗기고 소나무 숲 사이로 유유히 모습을 드러내는 캠핑카를 보면 ‘망상’에 대한 열망은 커져 간다. 캠핑카에 누워 파도 소리에 잠드는 것.

영화에서만 보는 장면이 아니다. 망상오토캠핑리조트에서는 직접 ‘캠핑카’ 이색 휴양을 체험할 수 있다. ‘망상’은 원래 너른 들판이라는 뜻으로 마상평(馬上坪)이라 불렸다.

조선 시대에 망상(望祥)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상서로움을 바라다’, 즉 ‘좋은 일을 꿈꾼다’는 의미를 갖게 됐는데, ‘망상’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인 정철이 지은 시 제목이기도 하다. 강원도 관찰사 직책을 수행하던 정철은 삼척에서 ‘소복’이라는 관기와 사랑에 빠지는데, 나중에 소복을 다시 찾았을 때 그녀는 다른 유생의 첩이 돼 있었다.

옛 삼척을 뜻하는 ‘진주길’을 밟으며 정철은 애달픈 마음을 시로 남겼는데, 그 시가 망상해변의 이름이 됐다. 망상캠핑장의 강점은 바로 망상해변이다.
 

캠핑장 바로 앞에 있는 옥빛 바다는 맑고 투명하다. 여름에는 해양스포츠와 물놀이를 즐기기 좋아 많은 인파가 몰린다. 굳이 ‘여름’이 아니어도 망상의 즐거움은 많다. 여름에만 야영을 허용하는 해수욕장과는 달리 망상캠핑장은 365일 문을 연다. 망상에 거점을 두고 주변 관광지 탐방에 나서는 것도 동해 캠핑의 또 다른 재미.

천곡동굴, 무릉계곡, 묵호항, 추암촛대바위, 끝자리 3·8일에 서는 북평5일장 등은 동해 삼척 여행의 주요 테마다. 또 고성∼속초∼강릉∼동해∼삼척까지 7번 국도를 따라 강원도 바다 여행도 추천한다. 크고 작은 항구와 이름 모를 해수욕장을 지나다 마음이 끌리는 곳에 차를 세우다보면 ‘망상해변’보다 더 아름다운 ‘나만의 해변’을 발견할 지 모를 일이다.


[안성 승마목장]

말이 뛰어놀던 목장이 캠핑장으로 변신했다. 드넓고 푸른 잔디밭에 텐트를 치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특별하다. 목장을 지키던 울타리는 아이들의 골대가 되고, 마굿간은 취사장으로 바뀌었다. 말에게 먹이를 주며 말과 친해진 아이들은 말처럼 건강하게 캠핑장을 누빈다.

이색 캠핑의 1번지로 떠오르는 안성승마오토캠핑장 덕분에 주말이 기다려진다.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안성승마오토캠핑장은 캠핑과 승마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안성시 일죽면 은석사거리에서 캠핑장으로 들어서면 승마장과 캠핑장 갈림길을 만난다.

오른쪽은 승마장인 하노바승마클럽이고, 왼쪽은 캠핑장이다. 캠핑장으로 들어서면 넓은 초원과 하얀 울타리가 정겨운 목장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획일적으로 사이트가 배치된 캠핑장과 달리 광활한 자연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자유을 선사한다. 울타리 한편에 텐트 치기를 마치고 나면 목장 주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교관이 말을 타고 캠핑장에 나타나면 저마다 놀이에 빠져 있던 아이들이 삽시간에 말 주위로 몰려든다. 말이 몸무게를 견딜 만큼 작은 아이들은 교관과 함께 말에 올라보는 행운도 누릴 수 있다.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토요일 오후 2시30분. 잔디 운동장을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놀아도 아이들은 말을 만나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린다. 정식 자격증을 가진 교관이 이끄는 말을 직접 타볼 수 있다.

트랙을 돌 때마다 다른 속도와 방법을 지도해주기 때문에 승마 재미에 쉽게 빠져든다. 말의 이름도 불러보고, 내려서 말 볼에 뽀뽀까지 하고 난 아이는 말과 친구가 된다. 토요일 오후 2시30분에 진행되는 마방 체험과 승마 체험 말고도 일요일 오전이면 훈련하는 선수들의 마장 기술과 승마하는 모습을 관람할 수 있다.


안성승마오토캠핑장은 원래 말 휴양소였다. 튼튼해 보이는 말들은 약해서 피부염에 걸리기도 하고, 발톱을 다치기도 한다. 체중에 비해 약한 발목은 염증으로 고생한다.

이곳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그런 말들을 치료하던 곳이었다. 폐장 후 한적한 잔디밭에서 승마장 체험객들과 지인들이 캠핑을 즐기게 됐고, 점점 입소문을 타며 2011년 9월에 정식으로 캠핑장 문을 열게 됐다.

[임진강 번지점프]

임진강번지점프캠핑장은 캠퍼들 사이에 색다른 캠핑 명소로 떠오르는 중이다. 거기에는 임진강을 배경으로 즐기는 짜릿한 모험 레포츠가 한몫한다. 낮에는 국내 최고 높이의 번지점프대에서 용기를 시험하고, 스릴 만점의 라인 드라이브로 임진강을 가로지른다. 사륜바이크(ATV)로 산길과 강변을 마음껏 달리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사위에 어둠이 내리면 숲 속 캠핑장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자연 속에서 평화로운 휴식을 취한다. 캠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시설은 임진강 절벽을 끼고 세워진 번지점프대다. 거대한 규모의 철 구조물이 우뚝 솟아 있어서다. 번지점프대는 높이가 수면에서부터 73m로 국내에서 가장 높다.

용기가 있다고 모든 사람이 번지점프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학생(15세) 이하와 50세 이상, 체중 125kg 이상, 신장 130cm 이하인 경우 점프에 제한을 받는다. 고소공포증이나 심혈관 질환 등 신체적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내·자녀들이 더 좋아하네∼”
진짜 마니아들의 백패킹 성지는?

번지점프가 수직하강을 하는 것이라면 라인 드라이브는 수평하강을 하는 공중 레포츠다. 라인 드라이브란 양편에 지주대를 설치하고 그사이를 튼튼한 와이어로 연결한 뒤 트롤리라는 도구를 이용해 빠르게 이동하는 스포츠다. 별도의 전기 장치 없이 무동력으로 하늘을 나는 듯 활강하는 쾌감이 있어 번지점프만큼이나 인기가 많다. 연천과 파주의 경계를 이루는 임진강을 가로질러 쇠줄이 연결된 구간은 300m.

점프하는 순간부터 착륙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40초. 최고 시속 100km로 빠르게 활강한다. 임진강에 어둠이 내리면 모험 레포츠는 막을 내리고 자연 속에서 캠핑을 하며 달콤한 휴식을 즐길 차례다.

캠핑 사이트는 모두 140여 동. 너른 터에 여러 개의 텐트가 옹기종기 모여 캠핑을 할 수 있는 오토캠핑장(120여동)과 나만의 쉼터를 보장받을 수 있는 숲 속 야영장(20여동) 중 원하는 장소를 선택해 자연과 하나 되는 시간을 가지면 된다.

[마포 난지]

난지캠핑장은 지난 2002년에 문을 열었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캠핑이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게 2005년 즈음이니 난지캠핑장은 캠핑장의 맏형쯤 된다. 한강을 바라보며 도심에서 즐기는 여유로운 캠핑, 난지캠핑장으로 떠나보자.

토요일 오전이면 난지캠핑장 입구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모두 캠핑장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캠핑장 입장은 11시부터 가능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이 만들어지는 건 선착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피크닉장 때문이다.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피크닉장은 이름처럼 야영에 대한 부담 없이 한나절 편히 쉬었다 올 수 있는 공간. 피크닉장은 이동 통로를 제외한 모든 공간에 그늘막이나 돗자리를 펼칠 수 있다. 여유로운 공간이지만 그래도 명당은 있다.

바로 평상이나 나무테이블이 설치된 곳이 그것. 나무테이블과 평상은 별도의 추가 비용 없이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다. 그래서 입장 후에는 무엇보다 자리를 먼저 잡는 게 중요하다. 난지캠핑장에는 피크닉장 외에 숙영지도 마련돼 있다.

난지캠핑장 숙영지는 자가 텐트를 이용하는 구역, 대여 텐트로 이뤄진 구역, 그늘막 텐트로 구성된 구역, 단체를 위한 구역으로 나뉜다. 난지캠핑장의 장점 중 하나는 캠핑에 필요한 대부분의 물품을 대여해준다는 점이다.
 

그늘막은 물론 테이블, 의자, 바비큐 그릴, 휴대용 가스레인지 그리고 아이스박스와 랜턴까지. 특히 바비큐 그릴은 1∼3인용에서 11∼20인용까지 각기 다른 4가지 종류를 갖추고 있다. 숯이나 부탄가스 같은 소모품은 매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매점에서 각종 고기류와 채소 등도 판매하기 때문에 별다른 준비 없이 와도 하루 이틀 머물기에 부족함이 없다.

[백패킹 성지 함허동천]

오토캠핑이 각광을 받는 요즘 ‘불편함’을 자처하는 이들도 있다. 훌훌 털어버린 일상을 가방에 넣은 채 혼자 나만의 캠핑장으로 떠나는 사람들. 바로 ‘백패킹족’이다. 야영생활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떠나는 등짐여행인 백패킹(backp acking)은 등산과 트레킹을 모두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장비를 가방 하나에 의지해야 하다 보니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데, “백패킹을 처음 한다면 이곳을 찾아라”라며 백패킹족들이 입을 모으는 곳이 있다. 바로 강화군 마니산 자락에 위치한 ‘함허동천 야영장’이다.

주차장에서부터 손수레, 일명 ‘리어카’가 눈에 띈다. 주차장부터 등산로 입구까지 100여미터. 무거운 오토캠핑 장비를 준비한 캠핑객은 여간 난처한 게 아니다. 한 번에 짐을 싣지 못하면 손수레로 오가기를 몇 차례. 텐트를 치기도 전에 이마엔 구슬땀이 맺힌다.

함허동천 야영장은 산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까지 손수레로 짐을 날라야 한다. 매표소에서 산 위 1km까지 야영장 4곳이 펼쳐진다. 매표소 바로 앞에 위치한 제1야영장에는 오토캠핑객이 주로 묵는다.

계곡 길을 따라 발길을 옮기면 차례로 야영장이 나타난다. 4개 야영장에 모두 80개의 평상이 설치돼 있지만, 평지에 텐트를 설치하는 사람도 많다.

한여름이면 200동이 넘는 텐트가 함허동천 야영장을 물들인다. 함허동천(涵虛洞天)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함허’는 조선 전기의 승려 기화(己和)의 당호다.

마니산 계곡에서 수도를 하던 기화가 마니산에 정수사를 중수한 사실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 계곡 너럭바위에 기화가 직접 새긴 ‘함허동천(涵虛洞天)’ 글자는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함허천 야영장은 1988년 7월 처음 문을 열었다.

암반과 나무가 적절히 어우러진 마니산 자락이 아늑한 캠핑장을 선사한다. 야영장 곳곳에는 취사장을 비롯해 족구장, 놀이마당 등이 갖춰져 있어, 야유회 장소로 함허동천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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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