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절 터를 찾아서... ⑤강원도 원주시

왕의 스승이 머물던 남한강의 절터

절도, 승려도 없는 폐사지는 빈터지만 폐허라 부르지 않는다. 외려 ‘공(空)의 극치’라 여기는 이들이 많다.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폐사지 답사가 ‘절집 답사의 고급 과정’으로 ‘답사객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감’이라 했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폐사지가 3000여곳, 문화재로 지도에 이름을 올린 경우만 약 100곳에 이른다.

천년 고찰 흥법사지, 거돈사지, 법천사지
옛 가람 규모 상상하며 걷는 사유의 시간

원주 역시 폐사지의 명승이다. 폐사지 답사 좀 다닌 이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하다. 서쪽 남한강 자락의 흥법사지, 거돈사지, 법천사지가 대표적이다. 세 사찰은 대략 신라 시대에 지어져 임진왜란 때 불탄 천년 고찰이다. 특히 고려 시대 왕의 스승인 국사들이 머물며 전성기를 누렸다. 빈터에는 국사나 왕사의 탑이나 탑비가 역사를 증언한다. 국보, 보물급 문화재다.

답사보다 고즈넉한 폐사지의 정취를 느끼고 싶을 때는 거돈사지가 으뜸이다. 흥법사지는 발굴 전이라 허전하고, 법천사지는 발굴 중이라 어수선하다. 낭만(?)이 어린 사유의 풍경과 거리가 있다. 그에 반해 거돈사지는 말끔하게 정돈한 폐사지다. 여행자들이 그리는 모습에 가깝다. 폐사지가 첫 방문인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거돈사지는 문막 IC나 원주 시가지에서 섬강을 지나고 남한강을 거슬러 이른다. 동쪽에 정산저수지가 있어 과거 사찰 앞까지 배가 드나들었음을 부연한다. 사찰 아래 옛 정산분교에 당간지주가 있어 그 영역을 가늠한다.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석축과 수령 1000년이 넘는 느티나무다. 고찰은 4~5m 옹벽 위에 지어 길에서 보이지 않고, 남서쪽 석축 위의 느티나무만 가지를 내려 인사한다. 고목은 뿌리가 석축 사이를 파고들어 마치 돌을 움켜쥔 듯하다. ‘돌을 먹고 사는 나무’라 부르는 이유다. 

느티나무를 지나면 석축 가운데로 계단이 났다. 거돈사지는 계단에 오를 때마다 그 높이만큼 제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삼층석탑의 상단이 보이고, 금당 터가 차츰차츰 빗장을 연다. 마치 지상에서 천상으로 걸음을 옮기는 듯하다. 금당 터는 내벽과 외벽의 주춧돌이 있고, 그 가운데 불상의 좌대가 있다. 불상이 절 한가운데 자리 잡은 구조다. 삼층석탑의 높이를 감안하면 2층 규모로 보인다. 그 주변으로 가람의 한옥이 너른 터를 채웠으리라.


소문 자자한
폐사지 명승

무심한 듯 옛 가람의 축과 터를 디뎌 안쪽 가장 높은 땅의 원공국사탑에서 가장자리 1000년 느티나무까지, 땅의 숨결을 더듬어 오간다. 무너진(廢) 땅과 깨달음의 절터(寺址)라는 상반된 조합이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퍼즐을 맞추듯 시간의 단편을 유추하지 않아도, 사라진 절터를 걷는 일은 누구나 한번 꿈꾸는 사유의 여행임을 새삼 실감한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을 때는 폐사지 답사 고급 과정의 행복감을 맛보자. 

흥법사지와 법천사지를 아우르는 답사로 꾸릴 때는 탑과 탑비를 눈여겨볼 일이다. 몇몇 탑과 탑비는 일제강점기 반출 과정에서 서울로 옮겨졌지만, 남은 석물로 고려 불교미술의 매력을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경우 탑과 탑비가 세워진 연대순으로 흥법사지, 거돈사지, 법천사지를 찾는다.

흥법사지에서 발굴된 염거화상탑(국보 104호)과 진공대사탑 및 석관(보물 365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고, 진공대사탑비(보물 463호)의 몸돌은 경복궁에 있다. 지금 흥법사지에는 삼층석탑(보물 464호), 진공대사탑비의 머릿돌과 받침돌만 한 몸인 양 겹쳐져 있다. 머릿돌은 구름 사이에 용의 움직임이 힘차고, 받침돌은 여의주를 문 용머리 거북이 생동감 있다. 고려 초기 탑비의 형태로 왕가의 위엄이 서렸다.

거돈사지에는 원공국사탑비(보물 78호)와 원공국사탑(보물 190호)이 있다. 원공국사탑비는 진공대사탑비에 비해 거북 받침돌이 입체적이다. 머릿돌은 용이 한층 깔끔하게 정돈되었다. 진공대사탑비에 비하면 80여년이 지난 시기로, 고려의 안정기에 해당한다. 원공국사탑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고, 거돈사지에 재현한 것은 손상된 부분을 되살려 겉보기는 외려 완성품에 가깝다. 중간부의 서까래 조각이 사실감 있다.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국보 59호)는 세 폐사지 유물 가운데 가장 후대 작품이다. 지광국사탑(국보 101호)이 경복궁에 있어 탑비만 남았다. 그런데도 묵직한 존재감이 돋보인다. 우선 몸돌은 이전의 탑비와 달리 정교한 조각이 가능한 점판암이다. 윗부분은 세밀한 도솔천을 그렸고, 측면은 화려한 용무늬를 새겼다. 머릿돌은 반야용선의 배 모양을 형상화했다. 몸돌의 도솔천 그림과 조응한다. 지광국사를 향한 왕의 지극한 마음이다. 받침돌은 거북이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거북 등에는 다른 폐사지와 달리 만(卍) 자 대신 왕(王) 자를 새겼다. 남한에서 유일한 형태로, 가히 고려 탑비의 정수라 할 만하다.

석물로 보는
고려 불교미술


폐사지를 돌아본 뒤에는 일몰이 유명한 흥원창으로 걸음을 옮긴다. 고려에서 조선 시대까지 조창이 있던 자리다.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강원도와 충청도, 경기도가 마주한다. 세곡 200석을 실은 평저선이 원주의 은섬포와 개경, 한양을 오가던 풍경을 상상한다. 저무는 노을빛이 마치 평저선이 가른 물길인 양하다. 흥원창과 폐사지가 고려 시대 원주의 번성을 상징한다면, 조선 시대는 강원감영이 대신한다. 강원감영은 500년 동안(1395~1895년) 강원도의 중심이었다. 지금의 원주 시가지 일산동 일대다. 포정루를 지나 선화당까지 짧은 거리지만, 긴 역사를 되짚어 걷기에 부족함이 없다.

시장 나들이를 겸한 코스로 삼아도 무난하다. 중앙시장과 자유시장은 원주의 대표 전통시장이다. 강원감영에서 걸어 오갈 수 있다. 만두골목, 한우골목 등의 먹거리도 입맛을 돋운다. 근래에는 원주중앙시장 2층의 미로예술시장이 각광받는다. 아름다움〔美〕과 맛〔味〕, 미래〔未〕가 있는 시장이다. 원래 중앙시장 상점의 창고가 있었으나, 2013년부터 젊은 예술인들이 터를 잡기 시작해 ‘청년몰’로 거듭났다. 현재 67개 점포가 운영 중이다. 예전부터 있던 금속 세공점이나 보리밥 집과 새로 문을 연 카페, 공방, 갤러리가 뒤섞였다. 개업을 준비하는 상점도 여럿이다. 4개 동으로 구성되어 건물을 미로처럼 오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3월부터 둘째 토·일요일에 벼룩시장이 열린다.

좀더 한적한 휴식을 원할 때는 행구동의 발효초컬릿황후가 좋다. 자칭 ‘장 상궁’ 장지은 대표가 세계 최초로 배양한 발효 카카오 효소를 활용해 초콜릿을 만든다. 인공 첨가물은 넣지 않고 옹기에서 발효한다. 여느 수제 초콜릿보다 부드럽고 입안에 번지는 풍미가 장점이다. 카카오 베이스 97%인 다크초콜릿, 고다치즈나 홍삼을 넣어 숙성한 초콜릿 등에 조선왕조 공주의 이름을 붙여 판매한다. 어느새 원주를 대표하는 전국구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커피도 발효 커피를 낸다. 은은한 향과 중량감이 특징이다. 친구나 연인끼리 찾아 느릿한 시간을 보내기 좋다. 꽃잎 발효 초콜릿 만들기, 시리얼을 넣은 카카오 바 만들기 등은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자료제공: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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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코스

역사 체험 코스: 원주 강원감영→원주 거돈사지→원주 법천사지→흥원창
힐링 코스: 원주 거돈사지→흥원창→미로예술시장→발효초컬릿황후
1박 2일 코스
첫째 날: 흥법사지→원주 법천사지→원주 거돈사지→흥원창
둘째 날: 원주 강원감영→미로예술시장→발효초컬릿황후
관련 웹사이트
· 원주시 문화관광 http://tourism.wonju.go.kr
· 발효초컬릿황후 http://chocohwanghu.co.kr
· 원주미로예술시장 http://wjjamk2015.modoo.at
문의 전화
· 원주시 관광안내소 033-733-1330
· 원주시청 관광과 033-737-5123
· 원주미로예술시장 033-747-6082
· 발효초컬릿황후 033-765-7306
대중교통(기차)
청량리역-원주역: 무궁화호·새마을호 하루 18회(06:40~23:25) 운행, 1시간~1시간20분 소요.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대중교통(버스)
서울-원주: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10~30분 간격(06:10~22:25)운행, 약 1시간30분 소요.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www.ti21.co.kr
자가운전
영동고속도로 문막 IC→문막IC사거리 부론·여주 방면 좌회전→원문로 14.8km→부론면입구삼거리 부귀로 방면 좌회전 4.8km→정산로 방면 좌회전 2.8km→원주 거돈사지
숙박
· 베니키아호텔문막: 문막읍 왕건로, 033-734-7315, www.munmakhotel.co.kr
· 호텔K: 원주시 시청로, 033-812-3000~1, http://hotelk.co.kr
식당
· 장터추어탕: 추어탕, 문막읍 문막시장3길, 033-735-2025
· 대감집: 보리밥, 문막읍 석지1길, 033-734-5637, www.대감집.kr
주변 볼거리
충효사, 미륵산 미륵불, 원주레일파크, 간현관광지, 박경리문학공원, 원주한지테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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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