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논란의 사외이사 막전막후

권력기관 출신 모시기 경쟁 '박 터진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사외이사 제도는 경영진의 횡포를 막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다. 전문성을 갖춘 외부 인사를 사외이사로 앉혀 경영진을 견제하자는 게 기본 취지.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사외이사는 이사회의 결정에 순응하는 ‘거수기’로 전락했다. 정기주주총회 현장을 뜨겁게 달군 사외이사 적격성 논란 역시 따지고 보면 사외이사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한다.

3월이 되면 주주들의 이목은 주주총회에 집중된다. 거의 모든 상장사들이 매년 이 시기에 주총을 거행하는 까닭이다. 올해 3월에 주총을 개최한 상장사만 해도 800곳이 넘는다. 그사이 핵심 관전 포인트였던 사외이사 선임 안건은 거의 모든 주총에서 무사통과 됐다.

일부 사외이사들의 지난 행적이 논란을 야기했지만 별반 달라진 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외이사 선임 안건은 아직까지 갖가지 구설을 양산하고 있다. 이해관계에 취약한 구조적인 문제가 곳곳에서 부각된 덕분이다. 회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인물이 사외이사로 발탁돼 독립성을 저해하는 경향 역시 마찬가지였다.

되풀이되는
우리 편 뽑기

이해관계자를 임명하는 행태는 사외이사 선임 논란에 불을 지피는 단초가 된다. 하이트진로와 하이트홀딩스는 25일 주총에서 회사 임원 출신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조판제 하이트진로 사외이사는 과거 하이트맥주 임원을 지낸 인물이다. 하이트홀딩스는 김명규 사외이사를 재선임했다. 그 역시 하이트맥주, 하이트음료, 진로 등에서 임원을 거쳤다. 둘 다 독립성을 중시하는 사외이사에 적합하지 않다는 문제제기가 계속됐다.

조현덕 한진칼 사외이사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2013년 대한항공을 인적분할해 한진칼을 설립해 지주회사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자문용역을 수행했다.


일부 사외이사는 회사와 이해관계가 상충된다. SK텔레콤 오대식 사외이사는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이다. 태평양은 LG유플러스의 법률 대리인으로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을 반대하고 있다.

LG화학 안영호 사외이사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이다. 김앤장은 정부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 처분 취소소송에서 LG화학 등의 법률 대리를 맡고 있다. 한진해운 노형종 사외이사는 KSF선박금융 감사다. 노 사외이사는 자신이 감사로 재직한 회사와 거래관계가 있는 한진해운 사외이사로 선임됐다는 점에서 이해상충 소지가 다분하다.

현대엘리베이터 서동범 사외이사 후보는 사모투자펀드 운용사인 이음프라이빗에쿼티 상무로 재직 중이다. 이 회사와 특수관계인 이음제이호기업재무안정사모투자합자회사는 현대엘리베이터 전환사채를 인수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주총에서 이옥섭 바이오랜드 부회장을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옥섭 사외이사는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의 화장품생활 연구소 수석연구원 출신으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장(부사장) 등을 지낸 인사다.

뜨거운 감자 ‘독립성’ 한계
“보험처럼 갱신” 정권 따라 교체

일부 대형 금융지주사들은 임기가 끝난 사외이사를 이사회에 잔류시켜 논란을 키우는 모습이다. 경영진이 친정 체제를 구축하려 한다는 지적과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 24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신한금융지주는 5년 임기를 채운 남궁훈 사외이사를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했다. 금융회사 사외이사 임기는 최장 5년으로 정해져 있지만, 기타비상무이사는 임기 규정이 없기 때문에 사외이사로서 임기를 채웠더라도 이사회에 남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사례는 지금껏 극히 드물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한동우 회장이 차기 회장 선임 과정에서 지배구조 안정화를 꾀하기 위해 이사회를 경영진과 교감할 수 있는 인물들로 꾸렸다고 평가한다.

KB금융지주는 지난해 3월 주총을 통해 임기 1년의 사외이사로 임명했던 7명을 전원 유임시켰다. 사외이사의 힘이 너무 크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사외이사 임기를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KB금융지주가 이번에 사외이사 전원에 대해 유임 결정을 내리면서 임기도 다시 2년 으로 돌아오게 됐다. 지배 구조의 연속성을 위한 선택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김종준 전 하나은행장은 하이투자증권 사외이사로 금융권에 복귀했다. 그는 과거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 조치를 받았던 전례가 있는 인물이다. 그는 2012년 3월 행장으로 취임한 이후 2014년 4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2011년 하나캐피탈 사장 시절 영업정지된 미래저축은행을 부당 지원한 사실이 적발돼 문책경고 제재를 받았다. 도덕성이 요구되는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것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제기된다.

일 안 해도
재선임 OK

업무 능력이 검증되지 않거나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는 인물을 사외이사에 선임하는 경우도 되풀이됐다. 매번 사외이사를 선임 과정에서 잡음을 만들던 기업도 더러 눈에 띈다.

지난 18일 종로구 LG광화문빌딩에서 열린 주총에서 LG생명과학은 ▲재무제표 승인 ▲이사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등을 처리했다. 다만 이번에 재선임 된 양세원 사외이사의 저조한 이사회 출석률은 논란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양 이사의 지난 3년간 이사회 출석률은 71%, 75%, 75%로 평균 73.7%이다. 일각에서는 이사회 출석률이 75% 미만인 이사들에 대해서는 업무의 충실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해 재선임에 반대를 권고하기도 했다.

현대상선은 이사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외국인 사외이사를 재선임해 논란을 키웠다. 홍콩 국적의 에릭 싱 치 입(ERIC SING CHI IP)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린 지난 10년간 이사회에 거의 참석하지 않은 인물이다. 지난 2005년 3월 처음으로 사외이사에 선임된 이래 불과 6번 출석한 게 전부였다. 2011년부터는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중공업은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2년 연속으로 잡음에 휩싸였다. 계획보다 일주일 미뤄진 25일이 돼서야 가까스로 주총을 치렀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외이사가 중도에 사퇴하면서 주총에 차질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당초 주총에서는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이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민유성 후보가 이사직 자진 사퇴 의견을 밝힘에 따라 홍기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교체됐다. 민 후보는 최근 SDJ코퍼레이션에 몸담고 맡아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에 개입한 데다 정부와 연관된 산업은행장을 역임한 약력이 있어 적격자로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인물이다.

권력기관 출신
정경유착 고리

현대중공업의 사외이사 자질 논란은 지난해에도 일어난 바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주총을 앞두고 사외이사 후보를 송기영 법무법인 로고스 상임 고문변호사에서 유국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로 변경했다. 송 변호사의 경우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인 정몽준 전 의원과 특수관계에 있어 비판이 일었다. 송 변호사는 정몽준 대주주와 현대중공업이 출연해 세운 아산나눔재단의 감사를 맡은 바 있다.


대기업 사외이사 자리에 권력기관 출신 인사들이 진출하는 모습도 변함없이 재현됐다. 사외이사가 경영 투명성이 아닌 정경유착의 고리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비판에 자유롭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벌닷컴이 10대 그룹 상장사의 신규 또는 재선임 예정인 사외이사 후보 140명을 분석한 결과, 43.6%인 61명이 정부 고위관료, 국세청, 금감원, 판·검사 출신으로 나타났다. 전직 장·차관도 16명이나 된다.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장관(GS건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장관(두산인프라코어), 김경한 전 법무부장관(한화생명), 박봉흠 전 기획예산처장관(삼성중공업)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권도엽 전 장관은 요주의 대상이다.

GS건설은 18일 열린 주총에서 권도엽 전 국토교통부장관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권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5월부터 2013년 3월까지 국토해양부장관을 지냈다. GS건설은 사외이사 선임을 두고 권 전 장관의 전문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다만 독립성에 국한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신이 주무 장관으로 있던 분야에서 기업의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따를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검찰 고위간부 출신 변호사들이 소속 지방변호사회의 허가 없이 대기업 사외이사로 선임됐거나 활동했던 사실이 공개돼 사외이사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권력기관 출신 변호사들을 대거 영입해 방패막이로 삼거나 향후 돌발상황에 대비한 보험 명목으로 활용한다는 지적이다.

검찰총장 출신인 송광수 변호사는 삼성전자 사외이사로 영입된 이래 3년 동안 20차례 이사회에 참석하며 60여개 의안에 모두 찬성 입장을 냈다. 두산 사외이사로도 활동하는 송 변호사는 이 회사에서도 찬성표를 던지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름만 대면 아는…퇴직 후 방패막이 역할 
전직 검찰 간부들 겸직 위반

법무부장관을 지낸 김성호 변호사도 2013년부터 CJ 사외이사로 활동하며 자신이 참석한 모든 안건에 찬성 입장을 개진했다. 지난해 기아자동차 사외이사로 선임된 이귀남 변호사 역시 7차례 이사회에서 모두 찬성 의견을 나타냈다. 이 변호사는 2009∼2011년 법무부장관을 역임했다.

일부 인사는 재직 시절 수사했거나 직무와 직·간접으로 연관이 있었던 기업과 연고를 맺었다. 송광수 변호사는 검찰총장 시절 삼성가의 편법 경영권 승계 수사를 지휘했지만 퇴임 후인 2013년 삼성전자 사외이사를 맡았다. 올해 주주총회에서 다시 선임돼 3년간 활동한다. 이재원 변호사는 자신이 지검장을 지냈던 서울동부지검장 관할 구역에서 제2롯데월드를 추진하던 롯데쇼핑의 사외이사가 됐다.
 

기업이 판·검사 출신 법조인을 영입한 것은 새삼스러운 그다지 일은 아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최태원 SK 회장 형제가 회삿돈 횡령 등 혐의로 재판을 받던 2012년 1월 이 회사에 전무급 이사로 영입되기도 했다.

물론 해당 기업이 충분한 검토와 자문을 거쳐 결정한 사안인 만큼 찬성, 반대 여부만으로 모든 상황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실상 거수기 역할에 그칠 뿐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굳건한 방패막이
회사와 한통속

실제로 시민단체들은 권력형 사외이사 선임을 ‘방패막이’ 쯤으로 평가한다. 권력형 인사의 경우, 풍부한 인맥과 경험을 통해 기업에 유리한 정책입안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 사정기관 동향파악 등 사실상 방패막이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방패막이 역할을 자처하는 그릇된 사외이사의 행태가 곳곳에서 드러난다"며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를 선진화하기 위해서라도 전관예우 문제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가시화된 오너 2·3세 승계작업

정기주주총회를 거치며 대기업들이 경영 승계 작업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오너일가 2·3세들이 그룹 주력 계열사 사내이사 명단에 잇달아 이름을 올린 형국이다.

재계의 대표적인 3세 경영인으로 꼽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총괄 부사장은 지난 18일 열린 대한항공 주총에서 대표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조 부사장은 그룹 지주회사인 한국공항의 대표이사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미 한진칼과 대한항공, 한국공항 등 그룹 내 주요 12개 계열사에서 등기이사를 맡고 있는 조원태 부사장은 지난 1월 단행된 대한항공 ‘2016년 정기 인사’에서 회사 전 부문을 관장하는 총괄 부사장으로 선임되면서 존재감을 드러낸 바 있다. 지주회사와 주력 계열사 대표이사에 오르자 일각에서는 사실상 조 부사장을 중심으로 한 한진그룹의 경영 승계가 정지작업을 마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실 사장은 올해 정기 주총에서 등기이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금호산업은 28일 열린 주총에서 박세창 사장의 사내이사 신규 선임 안건을 통과시켰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30.08%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박세창 사장의 금호산업 등기이사 선임은 그룹 경영 승계를 더욱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세아그룹의 3세 경영인 이태성 세아베스틸 전무도 등기이사 명단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 전무는 세아베스틸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이번 세아베스틸 등기이사 선임으로 이태성 전무는 세아홀딩스와 세아특수강 등 그룹 핵심 계열사의 경영 전면에 나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지난 2009년 세아그룹 지주사인 세아홀딩스에 입사한 이태성 전무는 지난해 세아홀딩스와 세아베스틸 전무로 승진한 바 있다.

한술 더 떠 두산그룹은 오너가 4세 경영 시대를 열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큰조카인 박정원 ㈜두산 지주부문 회장에게 넘기면서다. 박정원 회장은 25일 주총에 이은 이사회에서 의장 선임절차를 거친 뒤 그룹 회장에 정식 취임했다.

두산그룹은 박두병 창업 회장의 유지에 따라 형제간에 경영권을 승계해왔다. 박 창업 회장의 장남인 박용곤 회장부터 시작해 박용오, 박용성, 박용현, 박용만 회장까지 차례로 경영권이 이어져왔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일가 1세대가 그룹의 기틀과 성장을 이끌었다면 2·3세대는 신사업과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며 “그룹의 전면에 등장한 이들의 활약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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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