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24)무모한 시도

전문 암살자도 아닌데 성공할까?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아울러 암살을 시도한다면 박정희 대통령이 공식 행사에 참석했을 때가 적기라 판단했고 아마도 국가 기념일 등 경축 행사에서 일을 도모할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렇다면 가장 가까운 경축행사는 삼일절이 될 터였다.

하여 신영수 부장에게 부탁했던 일이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학수고대했던 터였는데 급기야 오늘 전화가 걸려왔다. 동일이 문석원의 얼굴을 또한 국경일 행사를 주로 개최하는 국립극장을 떠올렸다.

문석원처럼 젊고 무모한 사람이 그리고 전문 암살자가 아닌 이상에 암살 장소는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일전에 박 실장과 신 부장에게 설명했었던 대로 방법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동일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신년 초라 그런지 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한산하게 느껴졌다. 아니 본국이 아닌 이국의 날씨가 우중충해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몰랐다. 

처음 문석원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아울러 아마추어의 일시적인 객기를 잘만 활용하면 자신의 주도로 이루어졌던 윤대중 납치사건의 여파를 한 번에 해소할 수 있다 판단했다.


그 판단에 따라 상부에 보고가 이루어졌고 역시 현 실정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또 그 방편을 알고 있는 윗선은 선선히 허락해 주었다. 그리고 부장의 약속대로 조총련 측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창가를 서성이다 먼발치에서 바라본 문석원의 얼굴을 생각하며 자리로 돌아가 소소한 일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얼추 시간이 되어 자리를 정리하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오사카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횟집에 들어서자 세기문화사 사장을 언급했다.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한 룸으로 이동했다. 안내원이 문을 열자 마치 전부터 잘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반갑게 맞이했다.

곧바로 문이 닫히자 상대방이 명함을 건넸다.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세기문화사 차주선이라 간단히 쓰여 있었다. 동일도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정 팀장께서 혹여 회를 좋아하시지 않는 건 아닌지요?”

“음식 가리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그저 씹히면 뭐든 맛있게 먹습니다.”

간단한 대화가 끝나자 동일이 긴장을 풀고 다시 한 번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자 차주선도 자신의 직위, 조총련 중앙위원 직책을 맡고 있음을 밝혔다.

“지금부터는 철저하게 정보를 함께 공유해야겠지요?”

“당연합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아무래도 차 사장께서 주도적으로 임해주셔야 할 일입니다. 어차피 제 활동은 한국 내에 치중될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문석원과 관련해서입니다.”

차주선이 곧바로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었다.

“차 사장께서는 문석원에 대해 알고 계시는 모양입니다.”

“비단 저뿐만 아니라 이미 조총련 쪽에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아울러 일전에 그 친구를 직접 만나본 적 있습니다.”

문석원에 대한 소문이야 그렇다고 해도 이미 직접 만나보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뚫어지게 응시하다 가볍게 혀를 찼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동안 나름대로 문석원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습니다만, 그 부분을 실기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조총련 오사카의 이코노 지부 정치부장으로 이호룡이란 작자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일전에 북한의 정치국 지도원과 함께 만나 식사한 적 있습니다. 물론 일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부연되는 이야기를 듣자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겠다 공언하고 돌아다니는 그 친구를 차주선이 놓칠 리 만무했다. 동일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에서도 긴가민가…불안감 고조
다가오는 거사일, 초조해진 암살단

“이호룡이란 사람은 어떻습니까?”

“이번 일에 있어 또 다른 문석원으로 간주하면 좋을 듯 싶습니다.”

“선뜻 이해되지 않습니다만.”

“그저 천방지축으로 나대는 사람으로 문석원과 조금도 차이나지 않는다 보시면 무방할 것입니다.”

동일이 그 의미를 새기고 가볍게 혀를 찼다.

“아울러 문석원이 지금은 이호룡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나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할 듯합니다.”

“교체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교체라기보다는…”

차주선이 말하다 말고 표정을 밝게 했다.

“결국 차 사장께서 그 일을 지휘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그리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일입니다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습니까?”

“어차피 이번 일이 저나 정 팀장에게 일본에서의 마지막 임무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멋지게 해결해야지요.”  

동일이 그 말의 의미를 새기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중에 주문한 음식이 들어오고 있었다. 상에 차려지는 음식을 바라보며 차주선이 음식들에 대한 품평회를 열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동일 역시 맞장구를 쳐주었다. 물론 한국말이 아닌 일본말로였다.

“제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문석원이 국경일에 한국내로 잠입하여 권총으로 암살을 시도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상이 차려지고 종업원이 물러가자 동일이 말문을 열었다.

“정 팀장의 분석이 정확합니다. 문석원 본인 말에 의하면 권총으로 시도하겠다는 분명한 암시를 준 바 있습니다. 아니 이제 제가 기획하게 되는 일인 바 반드시 그리 되도록 일을 이끌어가야겠지요.”

“부연하여 말씀드리자면 문석원이 적기로 잡고 있는 때가 금년 삼일절 행사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리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금년 삼일절 행사 시는 곤란합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박정희 대통령 근처는커녕 행사장에 들어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차주선이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는지 상 위에 음식들로 시선을 주었다.

“우리는 문석원에게 확실한 잔칫상을 차려주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실리만 취하겠다는…”

“바로 그렇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살피면 금번 삼일절 행사에는 잔치판조차 열 수 없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습니다.”

“박 실장의 물 샐 틈 없는 경호 관례를 살피면 당연히 그리 되겠지요. 하면?”

“광복절로 잡아주십시오.”

“상황을 조성할 수 있겠습니까?”

동일이 답하지 않고 술병을 들었다.

“한잔 하시겠습니까?”

차주선이 잔을 들자 동일이 술을 따랐다.

“하여 이번 삼일절 행사를 빌미로 삼으려 합니다. 그를 이용하여 광복절 행사에 문석원이 참석할 수 있는 여지를 조성하려 합니다.”

차주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일의 잔을 채워주었다.

“차 사장께 한 가지 더 부탁드리려 합니다.”

함께 잔을 비워내고 서로의 잔이 채워지자 동일이 입을 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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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