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사태 쪽박 찬 기업들 현주소

정부 믿다가 망하게 생겼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돌아왔다. 북한의 심상치 않던 움직임에 정부가 개성공단 운영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온 것이다. 남북 간에 흐르는 미묘한 긴장감은 개성공단의 정상 운영이 언제쯤 이뤄질지 기약조차 할 수 없게 만든다. 개성에 발이 묶인 입주기업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조짐이다.

지난 10일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응으로 개성공단의 운영 중단 조치를 결정했다. 사실상 이날부터 개성공단은 전면 폐쇄와 다름없는 상태에 돌입하게 된 셈이다.

우려가 현실로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총 124곳. 정부는 지난달 12일부터 개성공단에 생산과 직결된 인원만 체류할 수 있도록 추가 제한 조치를 시행해왔고 공장 가동률은 약 80%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 결정되자 최소 1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개성공단의 전면 중단 조치로 인한 피해금액을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며 “현재로서는 1조원 규모의 피해액을 예상할 뿐 피해액 규모는 추후에 명확히 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올해 매출 예상액은 6000억원 수준이다. 출입 제한 조치가 시행된 한 달 동안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피해액은 4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점쳐진다. 여기에 개성공단 조성을 위해 투자한 금액과 각종 부대비용을 포함하면 피해액은 한층 불어나게 된다. 일단 입주기업들은 개성공단 폐쇄의 직격탄을 피하기 힘들다. 벌써부터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124개 입주기업 가운데 자회사·계열사 등을 형태로 개성공단에서 상품을 생산하고 있는 상장사는 좋은사람들, 신원, 인디에프, 로만손, 재영솔루텍, 한국단자공업, 자화전자, 쿠쿠전자, 태광산업 등 모두 9곳이다. 특히 개성공단 생산 비중이 높은 좋은사람들, 신원, 인디에프 등 섬유업종 입주기업의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의류제품을 제조 및 판매하는 코스닥상장사 좋은사람들은 개성공단 생산량이 전체 비중의 20~25%를 차지한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 실적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좋은사람들은 북한에 의해 개성공단이 약 6개월간 중단된 2013년에도 영업이익이 77% 감소한 전례가 있다.

유가증권상장사 신원 역시 이번 개성공단 조업 중단으로 매출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신원은 자회사 에스더블유성거나를 통해 신원에벤에셀개성을 100% 보유하고 있다. 신원 생산품목에서 개성공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생산량의 10%로 추정되고 있다.

유가증권상장사 인디에프는 장마감 후 공시를 통해 “모회사 글로벌세아가 100% 투자한 인디에프 개성이 개성공단 내 공장 가동 중단 여파로 의류제품 생산이 중단된다"고 밝혔다. 생산 중단 분야의 매출액은 428억4200만원으로 전체 매출액의 22.8%에 해당한다.

태광산업, 로만손, 한국단자공업, 쿠쿠전자 등 나머지 상장사들은 개성공단 매출비중은 대부분 5~10%에 불과해 그나마 피해가 덜하다. 다만 공장 중단 장기화 등을 대비해야 하긴 마찬가지다. 가동 중단이 장기화 될 경우 수백억원대의 투자자산이 제대로 된 관리 없이 묶이게 되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폐쇄 결정…피해액 최소 1조
입주기업이 봉? 성에 차지 않는 보상안

개성공단 중단에 따른 실적 감소는 업체별로 조금씩 편차가 있지만 주가 동반 급락세는 모두에게 큰 부담이다. 재영솔루텍은 전 거래일보다 무려 23.9% 내린 1590원에 장을 마감했다. 재영솔루텍의 자회사인 재영솔루텍개성은 지난해 3분기 기준 매출이 약 60억원, 자산총액 123억원이다. 이 기간 다른 자회사 혜주솔루텍공업유한공사와 JYCO 모두 영업적자를 냈으나 유일하게 재영솔루텍개성만 9억3000만원 흑자를 기록했다.


좋은사람들(16.9%), 로만손(13.62%), 인디에프(18.44%), 신원(8.78%), 쿠쿠전자(5.90%) 등도 동반 급락세를 보였다. 개성공단 관련주 전체 시총은 단 하루만에 2500억원이 증발했다.

과거 개성공단이 중단됐을 당시에도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크게 주저앉았다. 2013년 초 1500원에 거래됐던 신원은 북한 핵실험에 이어 개성공단 중단에 2013년 4월에는 1200원대로 내려갔다. 좋은사람들 역시 연초 1700원에서 4월 1500원대로 하락했고 연말에는 1200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투자한 개인주주들의 손해도 불가피하다. 2014년 말 기준 개성공단 입주 상장사 전체 개인주주는 약 3만6000명에 이른다. 이미 증권가에서는 공단 폐쇄 조치가 입주기업들에 대한 투자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앞 다투어 밝힌 상황이다.

문제는 정부가 추진하는 피해보상 방안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는 데 있다. 통일부와 수출입은행·금융당국·중소기업중앙회 등 관련 부처는 2013년에 이어 또다시 피해를 보게 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손실 보전을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특별대책반을 꾸리고 1대 소통창구를 마련했으며 남북경제협력사업보험(경협보험)이 입주기업의 피해를 얼마나 축소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에 돌입했다.

일단 입주기업들은 경협보험의 대상이다. 경협보험은 개성공단 투자기업이 피해를 볼 경우 남북협력기금을 통해 보상해주는 제도다. 사업 중단 조치에 따라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면 보상받는다는 조건이 명시돼 있다. 다만 사업이 1개월 이상 정지돼야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 기간에 손실금이 계속 누적되더라도 방도가 없다.

그나마 입주기업들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정작 이들에게 납품하는 5000여곳의 협력업체들은 구제방안마저 기대하기 힘들다. 당장 판로가 막히는 건 둘째고 공단이 언제쯤 재가동될지조차 장담할 수 없다. 협력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자 12만5000명이 순식간에 실업자로 전락할 위기에 몰린 셈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와 통일부 모두 보험가입 기업이 아니거나 회원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2013년에도 같은 문제로 입주기업들이 협력업체들에 납품대금 지급을 미뤄 소송으로 이어진 사례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 협력업체들은 어쩔 수 없이 피해를 감내해야 했다. 통일부가 추산한 2013년 개성공단 한국기업들의 가동중단 피해 신고액 중 원청업체 납품채무는 2427억원이다.

입주기업들의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정책 결정이란 점도 논란의 대상이다. 정부는 2013년 북측의 일방적 폐쇄 통보로 촉발된 개성공단 중단 사태 당시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공단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다고 천명했지만 2년만에 공염불이 됐다. 보는 시각에 따라 정부가 남북경협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향후 기업들에게 참여를 독려할 명분을 없앤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안이다. 

실제로 개성공단기업협회는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방침을 무리하고 성급한 조치로 받아들이는 인상이 짙다. 기업들의 피해 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되풀이하고 있다.

막심한 손해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2013년 공단 폐쇄 당시 정부가 밝힌 피해규모 1조566억원에는 영업 손실이나 영업권은 포함돼지 않았다”며 “이번에는 갑작스럽게 중단 결정이 내려지면서 손실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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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