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녀 ‘애인모드’에 남성들 ‘급흥분’

깔끔한 인테리어에 1:1 쾌적한 공간 남성들 ‘득실득실’
샤워부터 마무리까지 ‘애인모드’ 충실, 만족감은 두배

이른바 ‘오피스텔 성매매’는 최근 들어 가장 인기 있는 성매매 가운데 하나다. 물론 그 시작은 성매매특별법에 의한 집창촌에 대한 ‘융단폭격’식 단속이었다. 폭격을 맞은 집창촌 여성들은 서둘러 그곳을 떠나기 시작했고, 손님들도 발길을 끊고 ‘잠행’을 했었다. 하지만 성매매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기는 결코 쉽지 않은 법. 이들은 ‘동병상련’의 심정이자 ‘이심전심’의 논리에서 안전한 성매매 창구를 찾기 시작했고 가장 적절하게 떠오른 답이 다름 아닌 ‘오피스텔 성매매’였다. 물론 오피스텔 성매매 역시 경찰의 단속 대상이다. 하지만 적발 위험이 적어 오늘도 오피스텔로 향하는 남성들의 숫자는 부지기수다. 과연 오피스텔이 이렇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업주와 경험자들로부터 오피스 성매매의 성공 비결을 들어봤다.

과거 집창촌보다 더욱 깔끔한 인테리어에 1:1이라는 쾌적하고 안락한 공간, 그리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다가도 성매매를 할 수 있다는 이색적인 경험, 단속의 손길이 쉽게 미치지 않는다는 안정감들이 합세해 이제 오피스텔 성매매는 많은 남성들이 꼽는 최고의 성매매 수단이 되었다.

오피스텔 성매매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남성들은 한결같이 ‘만족감’을 표시한다. 그들은 ‘이제껏 나온 성매매의 형태 중에서도 제일 고급스럽고 안락한 분위기다’라고 이야기한다. 우선은 ‘애인모드’라는 것이 그들을 만족시키는 첫 번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직장인 최모(33)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협상의 여지’ 얼마든지
원하는 서비스만 ‘쏙쏙’

“오피스텔은 말 그대로 그 시간만큼은 완전히 나의 공간에서 나의 애인과 같은 여자와 만족감 높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치 ‘세컨드’처럼 나를 맞아주고 샤워를 시켜주고 함께 가볍게 맥주 한 잔 한 뒤 할 수 있는 섹스는 최상의 만족도를 안겨준다. 거기다가 과거의 집창촌처럼 사람들이 바깥에서 왔다 갔다 하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그 시간에 집중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섹스를 끝낸 뒤 깔끔하게 그곳을 나오면서 모든 것이 끝난다. 이제까지 나온 성매매 시스템으로는 최고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남성들에게 어느 정도의 ‘작업의 여유’를 준다는 점에서 오피스텔 성매매는 또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는 아가씨와의 협상 여부에 따라 비용을 더 지불한 뒤 얼마든지 자신만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가 있다. 아가씨가 싫어하는 것만 아니라면 그 어떤 자유도 허락되는 곳 또한 이곳 오피스텔 성매매이기도 하다. 하이힐과 스타킹에 페티시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한 남성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실 약간의 페티시는 남성도 좋아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여성미를 한껏 발휘하기를 좋아하는 여성도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 같은 경우는 섹스를 할 때 여성이 스타킹에 하이힐을 신고하는 것을 좋아한다. 때로는 별도의 비용 없이도 이를 들어주는 여성이 있다. 굳이 어려운 일도 아닌데, 손님을 만족시킨다는 점에서는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집창촌이나 이발소 같은 곳에서 그런 요구를 한다면 과연 여성들이 그걸 들어주겠는가. 어림없는 소리다. 하지만 오피스텔 같은 곳에서는 얼마든지 그것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일부 오피스텔의 경우 포르노를 틀어놓고 그와 똑같은 행위를 할 수 있는 별도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역시 과거의 집창촌과 같은 곳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집창촌의 경우 컴퓨터와 모니터를 설치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깨끗하고 깔끔한 욕조에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남성들을 유혹하는 요인이다. 사실 유부남의 경우라도 아내와 샤워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또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부부끼리는 워낙 잘 알기 때문에 ‘흥분’이라는 것 자체가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남성들은 “낯선 여성이 깨끗한 욕조에서 샤워를 해주는 것은 ‘급흥분’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다”라고 말한다. 또 다른 경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실 남성들이 어느 곳에서 그렇게 정성스러운 샤워 서비스를 받아볼 수 있겠는가. 낯선 여인의 손길이 내 몸을 훑고지나갈 때마다 쭈뼛쭈뼛 온 몸의 솜털이 다 서는 것 같은 쾌감이 느껴진다. 거기다가 그곳은 한 여자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욕실이 아니가. 그런 은밀한 공간에서 그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적지 않은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도대체 어떤 여성들이고 한 달의 수입은 얼마 정도나 될까. 우선 ‘오피스녀’들은 기존의 성매매 여성과 신규로 성매매 시장에 진입한 여성으로 나눠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 관련자들의 이야기. 과거 한 집창촌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솔직히 집창촌을 떠난 여성들이 가긴 어디로 가겠는가. 처음에 상당수는 이발소나 안마 업소로 가기는 했지만 대부분 해당 업종에서 필요한 스킬이나 노하우가 별로 없어서 힘들어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오피스텔이었다. 별도의 안마 기술에 대한 노하우도 필요 없고 과거의 집창촌의 방보다는 훨씬 좋은 인테리어에 깔끔한 분위기 때문에 오히려 아가씨들이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의 아가씨들이 오피스텔로 향하곤 했다. 현재 오피스텔에서 일하는 많은 아가씨들이 만족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그녀들도 다시 집창촌 같은 곳에서는 일을 하기 힘들 것이다. 근로조건이 좋은 곳에서 일을 해본 사람이 어떻게 다시 밑으로 내려갈 수 있겠는가.”


오피스텔 아가씨
‘억대연봉’ 벌기도


결국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오피스텔에서 일하는 상당수의 여성들이 과거 집창촌에서 일을 하던 여성들이라는 것. 그럼 그녀들이 벌 수 있는 돈은 얼마 정도일까. 오피스텔 성매매를 위해서 남성들이 지불하는 비용은 대략 1회에 16만원 정도. 이 중에서 업주와 아가씨는 5:5로 나누게 된다. 그러니까 아가씨가 가져가는 돈은 8만원. 하루에 5명 정도만 받는다고 하면 하루 일당은 40만원. 한 달 20일 동안 일하면 800만원이라는 고수익이 된다.

물론 하루에 3명을 받는 여성도 있고 7명을 받는 여성도 있다. 따라서 적게는 500만원, 많게는 1000만원이 넘는 상당한 비용이 된다. 1년이면 ‘억대 연봉’을 벌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20대 여성이 한 달에 1000만 원을 벌 수 있는 일은 사실 이 대한민국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들이 단속의 위험 속에서도 결코 오피스텔 성매매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에 있다. 그녀들의 조건은 사실은 룸살롱보다 훨씬 좋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룸살롱 아가씨들 중에서도 1000만원에 가까운 돈을 버는 아가씨들이 많지만 그녀들은 매일 남성들과 술을 마시며 흥청망청해야 한다. 그 와중에 몸은 망가지고 때로는 진상을 받으며 마음고생도 해야 한다. 하지만 오피스텔 성매매의 경우 만취자가 1차적으로 걸러져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오피스녀들은 이렇게 술 취한 사람들의 진상 짓을 받아줄 필요가 없다. 결국 ‘깔끔하게’ 오피스텔에서 생활하며 남성과의 성매매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성매매가 엄연히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만큼 사법당국은 ‘함정수사’를 통해서라도 이들을 단속해야한다는 여론이 높다. 가정주부 박모(38·여)씨는 “사실 예전에는 몰랐는데 한 여성지를 통해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면서 “도대체 경찰들은 왜 이런 곳을 단속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런 불법 성매매에 대해서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단속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오피스텔 성매매의 경우, 도심에서 매우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향후 더욱 더 광범위한 확산이 예상된다. 따라서 애초에 이런 불법에 대해서 철저하게 단속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욱 큰 문제가 될 것이 틀림없다. 사법당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하루 빨리 이러한 업소들에 대한 철저한 단속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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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