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16)이이제이 전법

선생님 납치사건은 해프닝?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지금은 시원스럽게 저희 측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였으나 일본 내에서 많은 저항에 직면할 듯 보입니다. 특히 야당과 언론 쪽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당연하겠지. 그러니 그와 관련해서 임자가 적절하게 조처 취하도록 하게.”

“단지 그 일을 떠나서 경제협력 차원에서 일처리하려 합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고. 그런데 윤대중 사건만 놓고 보면 일본 측 잘못도 없는 게 아니야.”

“무슨 말씀이신지요?”


“비록 윤대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제지하지 않았지만 윤대중이 일반 여권으로 일본에 들어간 게 아닌가.”

“당연히 그렇습니다만.”

“그런 사람이 정치 활동하는데 일본에서 제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측에서 요구하지 않았는데 일본이 자발적으로 제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듯합니다. 특히 어디까지 정치 활동으로 보아야 하는지 그도 불투명하고.”

박 대통령이 김 총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며 연기를 뿜어냈다.

“임자!”

“네, 각하.”


잠깐 동안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윤대중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떻게 생각하다니요.”

“그 사람은 정치를 이상하게 배웠어.”

김 총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박 대통령 가까이 다가갔다.

“오로지 자신의 입지만 생각하니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이 민족과 국가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으니.”

창밖을 바라보던 박 대통령이 고개 돌려 김 총리를 주시했다.

“지난 6대 대선 때 유세하면서 내가 했던 말 기억하는가?”

“무슨 내용인지요?”

“거 야당에서 영남 쪽 우선 개발한다고 지역감정 조장했었지 않았는가?”

“그야 호남 표를 의식해서 그랬던 거지요.”

“내가 그래서 한 유세장에서 말한 적 있네. 이 나라가 근대화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 특히 야당 의원들의 머리 역시 근대화되어야 한다고.”


“그 부분은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 총리가 미소 지으며 답하자 박 대통령이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훗날 역사는 이 일을 어떻게 기록할까?”

“윤대중 납치사건 말입니까?”

“그러이.”

김 총리가 답에 앞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침묵을 지켰다.


“이병선과 윤대중의 해프닝 정도로 기록되어야 마땅하지요.”

박 대통령이 해프닝을 되뇌며 미소를 보였다.

“여하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하게.”

“당연히 그리할 일입니다. 괜한 일로 마음고생 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일로 일본과의 관계가 변하지는 않겠지?”

박 대통령이 동문서답하듯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각하,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 임자 말이 맞아. 이 일이 기회가 되도록 만들어 보라고. 그리고 이병선 말이야.”

김 총리가 순간 긴장했다. 어차피 윤대중 사건의 마무리는 이병선 처리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각하의 의중은 어떠하십니까?”

“이제는 그만 나랏일에서 손을 떼게 해야 할 듯하네. 그 사람은 나랏일과 개인 일을 제대로 구분 못하고 있어.”

“그래서 결국 이런 사건이 발생했고요.”

“그런데, 임자.”

청와대, 정치 시나리오 가동
신민당 이용해 사건 덮는다?

박 대통령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은근하게 바라보았다.

“정말 이병선이 나를 제치고 권력을 차지하려 했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병선 본인이 그럴 만한 위인이 되는지도 모르겠고 말입니다.”

“이 사람들이 한 국가를 경영하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모르는 모양이야.”

박 대통령이 흡사 고뇌로부터 흘러나오는 넋두리 마냥 말하고는 은근한 시선으로 김 총리를 주시했다.

“김 총리!”

“말씀하십시오.”

“내 지금 이 순간까지 임자 외에는 생각해본 적 없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무슨 말은 무슨 말. 내 차기 문제지.”

순간 김 총리의 얼굴에 곤혹감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너무 걱정 말게. 외부에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각하!”

“말하게.”

“이번 사건으로 김효 주일 대사와 장경호 외무장관으로부터 요청받은 일이 있습니다.”

김 총리가 이야기를 급히 돌려야겠다 생각한 모양이다. 그를 감지했는지 박 대통령 역시 슬그머니 미소를 보였다.

“무슨 내용인데.”

“두 사람 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각하께 심려를 끼쳐드렸다면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 하였습니다.”

“그게 왜 그 사람들 잘못인가. 일은 이병선이 저질렀는데.”

“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향후 일본과 관련하여 수세적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으니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리를 대체토록 해달라는 청이었습니다.”

“김효 대사는 이해되지만 외무장관은 상관없는 게 아닌가.”

“물론 그렇습니다만.”

박 대통령이 김 총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사람아, 본론으로 들어가 본론.”

“김효 대사는 이제 그만 나랏일에서 손을 뗐으면 좋겠다고 했으니 그 의견을 존중하여 잠시 휴식 시간을 주었다가 다른 일을 맡겼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일이라면?”

“노년을 마감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 합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세.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지. 그리고 장경호 장관은 어떻게 하려는가?”

“각하께서 허락하신다면 통일원으로 이동시키려 합니다. 어차피 이제 일이 마무리되어가는 마당에 남북관계에 좀 더 치중해야 할 것 같고‥‥‥.”

박 대통령이 통일원을 되뇌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임자.”

김 총리가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 개각의 결론은 이병선 아닌가.”

“그 부분은 제 소관사항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 내 일이 곧 자네 일이고 자네 일이 내 일 아닌가?”

“하면‥‥‥.”

“말하게.”

“방금 전 말씀하셨듯이 나랏일에는 맞지 않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이번 참에 이병선을 은퇴시켜주려 하네.”

박 대통령이 시선을 창으로 주었다.

“후임은 생각해보셨습니까?”

“지금 검찰총장으로 있는 신영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라면 무난할 듯합니다.”

김 총리가 재고 말고 없이 즉각 대답하자 박 대통령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면 그렇게 하지.”

“곧 바로 착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려는가?”

“신민당의 손을 빌려야지요.”

“신민당이라니?”

“지금 신민당에서도 윤대중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입장이니 그들 기를 살려주는 방향으로 추진하겠습니다.”

“허허, 그야말로 이이제이네 그려.”

 

<다음호에 계속>

 

[저자는?]

▲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 정당사무처 공채(13년 근무)
▲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중퇴
▲ 소설가

▲ 주요작품
단편소설 <해빙> <파괴의 역설>
장편소설 <삼국비사> <여제 정희왕후> <수락잔조> 등 다수
희    곡 <정희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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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