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돈 돌려준' 착한 회장님 열전

없으면 아껴쓰고 있을땐 나눠쓴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독립운동가이자 유한양행 창업주인 고 유일한 박사는 기업경영의 목표는 이윤추구가 아닌 사회헌신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공익활동에 앞장섰던 그의 행적은 죽은 지 40년이 훌쩍 지나도록 참된 기업인의 표상으로 남아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동안 그를 대체할만한 존경받을만한 기업인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딸 맥스의 출산 소식과 함께 재산의 99%를 생전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던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에게 전 세계는 환호했다. “재산 대신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저커버그의 뜻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미약하게나마 국내에서도 ‘자선 자본주의’ 물결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고생한 직원에
주식 무상지급

대규모 신약 수출 계약건으로 제약업계 최대 주식부호로 올라선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얼마 전 통 큰 결정을 했다. 지난 4일 한미약품은 임 회장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주식 약 90만주를 한미약품 그룹 직원 약 2800명에게 지급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장 마감일을 기준으로 결정된 무상지급 주식 90만주는 임 회장이 보유한 개인 주식의 약 4.3%, 한미사이언스 전체 발행 주식의 1.6%에 해당한다. 2015년 12월30일 종가 기준 한미약품 주가가 12만9000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총액 규모는 1100억원이다. 한미약품 임직원은 월 급여의 1000%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식으로 지급받는다. 직원 1인당 평균 약 4000만원을 받는 셈이다.

임 회장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땀 흘려가며 큰 성취를 이룬 주역인 한미약품 그룹의 모든 임직원들에게 고마움과 함께 마음의 빚을 느껴왔다”며 “이번 결정이 고난의 시기를 함께 이겨낸 그룹 임직원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2015년 한 해 동안 글로벌 제약기업인 일라이릴리, 베링거인겔하임, 사노피, 얀센 등에 총 8조원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이 발표될 때마다 한미약품, 한미사이언스의 주가는 크게 뛰었다. 2015년에 1만5200원으로 시작한 한미사이언스 주가는 지난해 말 기준 12만9000원으로 올랐다. 그사이 임 회장은 2조원이 넘는 평가 차익을 거두며 제약업계 최고 주식 부호가 됐다.

보유 주식 떼 임직원에 보너스로
“회사는 직원 것” 상생 오너들 늘어

이명근 성우하이텍 회장은 임 회장보다 먼저 본인 소유의 회사 주식을 내놓았다. 지난해 12월23일 이 회장은 본인 보유의 회사 주식 일부를 전 직원에게 무상으로 지급했다.

발표가 있던 날 성우하이텍 종가는 주당 9000원이었고 직원들이 받은 주식은 1인당 평균 983만원씩 총 164억6505만원에 이른다. 또한 주식 지급일로부터 만 3년 이내 주가가 주당 1만5000원에 미달할 경우 차액에 대한 보상을 원하면 증권거래세 및 매도수수료를 차감한 금액을 보전해주기로 했다.

법인에서 주식의 일부를 직원에게 지급하는 게 아니라 최대주주가 전 직원에게 주식의 일부를 무상으로 지급한다는 점에서 이 회장의 결정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회사 측은 지난 1997년 해외시장에 진출한 후 세계 75위에 부품회사로 선정되기까지 함께 고생한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한 순수한 보상의 의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회장의 결정으로 성우하이텍, 아산성우하이텍 전직원은 회사에 기여한 공로에 따라 근속연수를 기준으로 총 182만9450주를 지급받게 된다. 이는 전체 발행주식 6000만주의 3.05%에 해당한다. 이 회장의 지분은 42.26%에서 39.21%로 줄었다.

코스닥 상장기업 링네트는 2000년 창사 이래 지금껏 임직원에게 285만주에 이르는 자사주를 무상으로 지급해왔다. 이 회사를 진두지휘하는 이주석 대표의 대범한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까지 총 285만주(전체주식대비 19.5%)를 지급됐으며 그 사이 링네트는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2010년부터 최근 5년간 ROE 평균 15.6%를 유지하고 신용등급을 A+로 높이는 등 비약적인 성장이 눈에 띈다.

링네트 관계자는 “창사 이래 한 번도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며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종업원들이 ‘내가 회사의 주인’이라는 인식과 사업에 대한 열정으로 생산성과 수익성이 좋아 지게 된 결과”라고 밝혔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5년째 통 큰 배당금 기부를 이어가면서 금융투자업계의 기부왕으로 불린다. 2010년부터 박 회장이 시작한 배당금 전액 기부는 올해로 무려 5년째 이어지고 있다. 5년 연속 누적된 배당금 금액 기부는 168억원에 이른다. 올해 역시 별다른 사유가 없는 한 배당금 기부가 계속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박 회장의 기부 행보는 ‘돈은 꽃이다’라는 평소 그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기부금 전액은 다양한 복지사업과 장학생 육성에 쓰이고 있는데 결국 '배려있는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박 회장의 소신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 설립연도 다음해인 1998년 미래에셋육영재단을 만들었고, 2000년 75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을 설립했다. 돈 버는 일도 중요지만 미래의 희망인 젊은이들을 육성하는 일을 진행하는 박현주 재단도 벌써 15년째 이어지고 있다.

기부가 생활
쓰임새 다양

임 회장과 이 회장이 함께 고생한 회사 구성원들에게 몫을 돌렸다면 포괄적인 쓰임새를 고려해 자산을 쾌척한 기업인들도 눈에 띈다.

지난해 8월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은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에 사재 2000억원을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이 명예회장이 출연하기로 한 비상장회사 주식에는 대림산업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대림코퍼레이션 주식이 포함됐다. 지주회사의 주식을 사회에 기부하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이 명예회장이 순수한 개인 재산을 2000억원이나 기부했다는 사실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왔다. 기업 명의의 기부는 활성화돼 있지만, 기업인이 개인재산을 털어 돈을 내는 일은 많지 않은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명예회장처럼 대기업 오너 경영인이 자발적으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것은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명예회장이 외부 재단에 기부한 것도 대기업 오너 사이에서는 이례적이다. 회사 소유의 재단이 아닌 점에서 사회적 의미는 더 클 수밖에 없다. 더 적극적인 사회 공헌활동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오뚜기 창업주인 함태호 명예회장의 통큰 기부 역시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일이었다. 지난해 11월 함 명예회장은 자신이 소유한 회사 주식 3만주를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에 기부했다. 함 명예회장의 보유주식은 기부 직전 60만543주에서 57만543주로 줄었는데 사용처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3만주가 기부로 쓰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가서야 알려졌다.

복지사업에 남몰래 기부
순수 개인재산 통큰 쾌척
연봉 삭감 등 분담 노력도


오뚜기 관계자는 “함 명예회장이 밀알재단의 장애인 자활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주식 기부도 해당 재단 쪽으로 결정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간 오뚜기가 지원해오고 있던 밀알복지재단에 개인적으로 기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아들인 함영준 오뚜기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함 명예회장은 대표적인 사회공헌 기업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철학에 따라 오뚜기는 1992년부터 심장병 어린이 후원사업을 통해 지난해까지 약 4000명에 이르는 심장병 환자들에게 수술비를 지원했다.
 

이번에 함 명예회장이 주식을 기부한 밀알복지재단과는 2012년부터 인연이 닿았다. 주로 장애인들의 자활을 돕는 이 재단에 오뚜기 측은 선물세트 조립 임가공을 위탁해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고향인 전남 순천시에 통 큰 기부를 약속했다. 순천시는 최근 이 회장이 고향인 순천시에 전남공무원교육원이 유치된다면 교육원 시설(교육동 1만㎡, 생활관 2500㎡) 건축비용 250여억원을 투자해 직접 건립한 후 순천시에 기증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그간 전국의 110여개 학교에 기숙사·도서관·체육관 등을 건립·기증하는 등 교육재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신념을 누누이 밝힌 바 있다. 해외에도 600여개의 학교를 지어주는 등 교육기부에 각별한 열정을 보여 왔다. 부영그룹은 지난해 매출액 대비 기부금 비중이 가장 높은 기업이었다.

자발적 연봉삭감
구조조정 최소화


경기 불황의 여파로 기업의 구조조정이 한창인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연봉을 삭감하거나 인력 감축 최소화를 결단한 경영진도 상당수에 이른다.

지난해 9월 한동우 신한금융그룹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각각 연봉의 30%를 반납하기로 했다. 연간 총보수가 5억원 이상인 등기임원 연봉을 공개하도록 한 자본시장법 규정에 따라 발표된 지난해 김정태 회장 연봉은 17억3700만원, 한동우 회장은 12억3300만원이다. 윤종규 회장은 지난해 총보수가 5억원 미만이어서 공개 대상이 아니었다.

이번 보수 반납 결의는 3대 금융지주 회장 조찬 회동에서 논의돼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3대 금융지주 회장은 청년 일자리 창출, 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뜻을 함께했다. 저금리, 저성장 기조 지속 등 갈수록 어려워지는 금융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자구노력의 필요성을 공감했다고 봐도 무방한 사안이다.

3대 금융지주 회장의 연봉 30% 반납 선언 이후 ‘연봉 반납’ 움직임은 전 금융권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금융권 협회장, 지주 계열사 은행장, 카드 보험 사장들도 자발적으로 연봉반납에 동참할 뜻을 밝히며 일자리 창출에 발벗고 나섰다. 3대 금융그룹은 연봉 반납으로 마련된 재원을 계열사 인턴, 신입사원, 경력직 사원 등 연간 신규 채용 확대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에도 몇 차례 수장들의 자진 연봉 삭감은 있었지만 이렇게 급물살을 타고 금융권 전역으로 퍼져 나가긴 처음”이라며 “경기불황에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금융권 수장들이 앞장서 연봉을 삭감한다고 나서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사태가 새해를 앞두고 극적으로 타결된 가운데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 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에게도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쌍용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30일 쌍용차 노사는 2009년 법정관리에 따른 대규모 해고 사태 이후 해고자 복직을 위해 종적으로 결의했다. 쌍용차 노사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희망퇴직자 가운데 입사 지원자에 한해 기술직 신규인력 채용 수요가 있으면 단계적으로 채용하기로 뜻을 모았다.

쌍용차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모기업인 쌍용그룹이 무너지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이 여파로 쌍용차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한 희망퇴직이나 정리해고로 많은 근로자가 직장을 잃었다. 노조는 이에 반발해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에 들어간 바 있고, 일부는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등 비극이 초래된 바 있다.

이러한 노·사간의 극한대립은 마힌드라그룹이 쌍용차의 새 주인으로 등장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지난 1월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과 쌍용차, 쌍용차 노동조합,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의 만남에서 소통이 본격 시작됐다. 당시 마힌드라 회장은 "쌍용차의 경영상황이 개선되면 2009년 퇴직했던 생산직 인원들을 단계적으로 복직시키겠다"고 밝혔다. 이후 쌍용차는 주력 제품인티볼리를 내세워 부활하고 있고 마힌드라 회장도 통큰 결단으로 화답했다.

함께 일군 수익
구성원과 함께

일각에서는 사회 지도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사회공헌활동에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다른 조건 없이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나눠주는 통 큰 회장님들의 담대한 결정은 분명 박수 받아 마땅하다. 세상에 내 돈 아깝지 않은 사람은 없다. 형식과 내용은 다르지만 이들의 행동은 일종의 청량제 역할을 한다. 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는 데 위아래가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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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