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손자 자살로 본]비운의 삼성가 야인들

‘황제’에 까인 ‘왕족’들이 사라졌다

삼성가 3세가 자살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 ‘쩐’으로 좁혀진다. 돈 많은 재벌 집안에서 뭐가 그리 어려워 극단적인 선택을 했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삼성과 등진 채 살아온 탓일까. 아니면 외면당해서일까. 그의 쓸쓸한 최후를 통해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진 ‘삼성가 사람들’을 재조명해봤다.

창업주 차남 아들 이재찬씨 아파트서 투신자살
‘돈 많은 집안에서…’극단적 선택 배경 미스터리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손자 이재찬씨가 자살했다. 재찬씨는 지난 18일 오전 7시께 자신이 살던 서울 용산구 이촌동 D아파트 현관 앞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한 경찰은 경비원, 가족, 지인 등의 진술로 미뤄 재찬씨가 투신자살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생활고 시달려
부인과는 별거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유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유서나 증언이 없어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을 두고선 여러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 현재로선 재찬씨가 수년간 직업과 고정소득이 없었던 점과 부인과 별거 중이란 점에서 생활고 또는 신병 비관, 가정불화 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추정된다.

올해 46세인 재찬씨는 이 창업주의 차남 고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의 차남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조카인 셈이다. 재찬씨는 1983년 경복고를 졸업한 뒤 1989년 미국 디트로이트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1997년 부친이 이끌던 새한그룹의 계열사 새한미디어 사장과 생활서비스부문장 등을 지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앞날이 훤한 3세 기업인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을 겪은 새한그룹이 2000년 워크아웃 되면서 암운이 드리웠다. 그는 당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특별한 직업 없이 투자활동을 해 왔으나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엔터테인먼트 등의 개인사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 종사했는지도 불분명하다. 재찬씨는 사고 직전까지 D아파트 5층에 거주했는데 한 달에 150만원 하는 월세였다. 이마저도 본가에서 도와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재찬씨가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최근엔 그 정도가 심해 우울증 약까지 복용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찬씨의 가정도 불안했다. 그는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장녀 선희씨와 결혼했다. 그러나 5년 전부터 별거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혼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고등학생과 중학생인 두 아들이 있는데 현재 선희씨가 데리고 있다. 재찬씨는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혼자 아파트에서 거주해왔다.

비운의 길을 걸은 것은 재찬씨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새한의 몰락과 함께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재찬씨의 부친 이 전 회장은 범삼성계열에서 분리된 삼성, CJ, 신세계, 한솔, 새한 등 가운데 새한을 맡았다. 하지만 새한그룹은 삼성 ‘위성그룹’중 유일하게 무너졌다.

삼성그룹에서 상무, 이사 등을 역임한 이 전 회장은 삼성그룹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혔지만, 1966년 ‘한비사건’(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수감되는 등 부친의 신임을 받지 못하고 1973년 동생 이건희 회장에게 자리를 내주고 독립해 새한미디어를 세웠다. 재기의 칼날을 갈던 이 전 회장은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1991년 58세의 나이에 혈액암으로 미국에서 치료 도중 타계했다. 대신 부인 이영자 여사가 ‘지휘봉’을 잡았다. 이 전 회장과 이 여사는 일본 와세다 대학 유학시절 만나 연애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이 창업주를 비롯해 삼성가 집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부친 사망, 그룹 붕괴, 장남 구속…’
‘쓸쓸한 몰락’ 새한일가 비극의 연속
10년째 범삼성가와 등 돌리고 지내


이 여사는 일본인이다. 마쓰이물산 중역 출신인 나카네 쇼지의 딸로, 결혼 후에도 일본이름 ‘나카네 히로미’로 지내다 1986년 지금의 한국이름으로 개명했다. 둘은 3남1녀(재관-재찬-재원-혜진)를 뒀다. 장남 재관씨는 김용대 동방그룹 회장의 딸 희정씨와, 3남 재원씨는 김일우 서영주정 회장의 딸 지연씨와, 막내딸 혜진씨는 조내벽 전 라이프그룹 회장의 아들 명희씨와 혼인했다.

이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 그룹은 가족경영으로 전환됐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96년 이 여사와 재관씨가 각각 그룹 회장과 부회장을, 재찬씨와 재원씨가 각각 새한미디어 사장과 이사를 맡아 공격적인 경영으로 몸집을 불려 한때 재계 서열 20위권에 들기도 했으나 무리한 투자로 불과 5년 만인 2000년 공중분해됐다.

2003년엔 재관씨가 워크아웃 직전 분식회계를 통해 대규모 불법 대출을 받은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실형을 선고받는 등 불운이 이어졌다. 이들 가족은 새한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 이후 범삼성가와 등을 돌리고 지내왔다. 지난 2월 호암 탄생 100주년 행사 등 집안 모임에도 일절 참석하지 않았다. 새한일가는 벌써 10년 가까이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비운의 새한일가 외에도 삼성가엔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잊혀진 사람들이 꽤 있다. ‘삼성가 양녕대군’으로 불리는 이맹희씨가 대표적이다.
이 창업주는 고 박두을 여사와 사이에 3남5녀(맹희-창희-건희-인희-숙희-순희-덕희-명희)를 뒀다. 이중 인희씨(남편 조운해 전 강북삼성병원 이사장)와 명희씨(남편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는 각각 한솔그룹과 신세계그룹을 갖고 분가했다. 두 그룹은 현재 3세들이 모두 실권을 쥐고 있다.

비운의 새한그룹 일가
뿔뿔이 흩어져 은둔

숙희, 순희, 덕희씨 등 나머지 딸들은 내로라하는 집안으로 시집갔다. 숙희씨는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3남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순희씨는 서강대 영상대학원장을 지낸 김규 교수와, 덕희씨는 이종기 전 삼성화재 부회장과 결혼했다. 이들의 3세들도 각자 전문분야에서 아무런 탈 없이 자리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큰 아들이다. 이 창업주의 장남 맹희씨는 20년 넘게 칩거 중이다. 그는 잠정적인 삼성 후계자로 막강한 권력을 차지했었다. ‘한비사건’당시 이 창업주가 책임을 지고 물러난 자리에 앉았지만, 1976년 ‘경영능력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이건희 회장에게 밀려났다.

삼성에서 퇴출당한 맹희씨의 야인생활이 시작된 게 이때부터다. 맹희씨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한국과 외국을 들락거리다 1993년 회고록을 발간한 후 종적을 감췄다. 중국, 몽골, 필리핀 등 동남아를 돌며 여생을 보낸다는 추정만 있다.

그의 자녀들인 이재현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 이재환 상무가 이끌고 있는 CJ그룹 측도 그의 거취를 모른다. CJ그룹 관계자는 “(이맹희씨는) CJ그룹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곱씹어 보면 맹희씨가 삼성과 CJ로부터 두 번 버림받은 게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이 창업주는 8명의 자녀뿐만 아니라 2명의 소생이 더 있다. 이 창업주가 일본을 드나들면서 만난 일본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4남 태휘씨와 6녀 혜자씨다. 당시 본처인 고 박두을 여사가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배다른 남매는 박 여사의 자녀로 호적에 올라있다.

맹희, 덕희, 화영, 수영, 태휘, 혜자, 재관, 재원, 혜진… 그들은 지금 어디서 뭘?

이들 역시 한국을 떠나 지내고 있다. 물론 근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건희 회장보다 11살 적은 태휘씨는 일본 게이오대학 출신으로 이 창업주 시절 삼성그룹 비서실 이사와 제일제당 상무를 지내기도 했다.

태휘씨보다 9살 적은 혜자씨에 대해선 아직까지 알려진 게 없다. 태휘씨와 혜자씨는 1987년 이 창업주 타계 전까지 국내에 거주하다 사망 후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전해진다. 또 남매 모두 일본인과 결혼했다는 게 전부다. 삼성 측도 이들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창업주와 유일한 형제인 고 이병각 전 삼각유지 사장도 숨겨놓은 자식들이 있다. 이 전 사장은 애첩인 김송자씨와 사이에 1남2녀를 뒀다. 아들 덕희씨와 딸 화영·수영씨다.

1960∼80년대 삼청각, 대원각과 함께 국내 3대 고급요정인 ‘청운각’기생이었던 김씨는 1996년 <나비야, 청산가자더니>란 제목의 자서전을 통해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이 전 사장과의 은밀한 관계를 폭로했다. 일반인들은 출입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청운각은 한국 막후정치와 밀실회담의 본거지로 유명하다.

이 자서전에 따르면 ‘재계 풍운아’로 유명했던 이 전 사장은 청운각의 문지방을 자주 넘으며 김씨를 품에 안았다. 이 전 사장은 1966년 공교롭게도 ‘한비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던 와중에 불국사 석가탑과 황룡사 초석, 통도사 부도 등을 파헤친 경주일대 도굴사건의 장물 최종 취득자로 구속돼 중과실 장물취득과 문화재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결국 둘은 3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김씨가 홀로 어렵게 키웠다. 김씨는 “가슴 속에 묻어둔 채 무덤까지 가지고 가려했던 지난날의 삶을 세상을 향해 고해하듯 털어 놓음으로써 절망에서 벗어나 마지막 희망을 찾으려 한다”며 책에 삼성가로부터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자신과 자녀들의 아픔을 담았다.

‘정식 혼인은 물론 세 자녀를 낳고 살다 남편의 죽음과 함께 버림을 받아 자녀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요정에서 기생으로 있던 중 19세의 나이로 38년이나 연상인 이씨와 만나 행복했습니다. 이도 잠시. 이씨의 돌연한 죽음 이후 문밖으로 내몰려 지하 월세방에서 누추한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거취·근황 미확인
직계 가족들 수두룩

이건희 회장과 이복사촌인 덕희·화영·수영씨가 지금 어디서 뭘 하며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단 삼성가와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은 분명하다. 아직까지 가족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평양 무인기’ 안보실 비밀 작전 주도 의혹

‘평양 무인기’ 안보실 비밀 작전 주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정부는 북한 도발에 역대 정부 중 가장 적극적이었다. 대북 확성기를 틀거나 삐라를 날리면서 군사적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북한도 오물 풍선과 무인기를 날리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물론 윤정부도 참지 않았다. 북한처럼 평양에 무인기를 날렸다. 이 비밀 작전은 국가안보실이 주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은석 내란 특검팀은 군 관계자로부터 국가안보실 지시로 북한 평양에 무인기를 날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6개월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언급했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라는 평가다. 안보실 중 국방·안보 파트는 1차장 소관이다. 나머지는 각각 외교와 경제를 담당한다. 지난해 안보실 국방·안보 파트 담당은 김태효 전 1차장이었다. 계속되는 군 거짓말 내란 특검팀은 지난해 10월 북한이 평양에 추락한 우리 군 무인기라며 공개한 사진 외에도 우리 군이 보낸 또 다른 무인기가 있다는 진술을 군 관계자로부터 확보했다. 이 관계자는 특검팀에 “백령도에서 날린 무인기 두 대 중 한 대는 평양에 추락했고, 나머지 한 대는 평양 인근에 추락했다”고 주장했다. 그간 김명수 합참의장과 김용대 드론작전사령관은 “확인해줄 수 없다”며 사실관계 공개 자체를 거부해 왔다. 앞서 평양 무인기 침투 의혹은 북한 외무성이 지난해 10월 “한국이 10월3일, 9일, 10일 심야 시간을 노려 무인기를 평양 상공에 침범시켜 삐라(대북 전단지)를 살포했다”고 밝히면서 불거졌다. 국방부 국방과학연구소는 국회에 제출한 ‘북 전단 무인기 비교분석’ 보고서에서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와 우리 군 드론작전사령부(드작사)에 납품한 무인기의 전체적인 형상이 매우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등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려고 무인기를 평양에 침투시켰다며 외환 의혹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2022년 있었던 북한군의 서울 상공 무인기 침투와 2024년 오물 풍선 살포에 대응한 대북 작전이었다는 게 군 관계자들의 입장이다.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이 이뤄진 지난해 10월은 남북 관계가 긴장 국면으로 치달았을 때다. 북한은 2022년 12월 무인기 5대를 수도권 일대 영공에 침투시켰다. 그중 1대는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용산구 일대 비행금지구역 안에 진입해 국가원수 경호 방공망이 뚫렸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다가 2024년 5월부터11월에는 북한이 오물 풍선 수천 개를 한국에 살포하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윤 전 대통령은 그해 6월 현충일 기념사에서 오물 풍선 도발을 겨냥해 “정부는 북한의 위협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합참 지휘부는 대응 작전과 관련해 신중한 기조를 유지했다. 남북 긴장이 충돌로 이어지는 것을 막겠다며 상황 관리에 치중했다. “국방·안보 1차장 소관”…정보융합팀 추진? 국군조직법상 부적절…당시 실장들은 몰랐다 그러자 민주당 등에서도 오물 풍선의 자유 낙하를 기다리는 군의 대응이 미온적이라며 휴전선 상공에서 풍선을 격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당시 “북한이 한계선을 넘어가고 있다. 다양한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드론사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특검은 드론사에 무인기 침투 작전을 지시한 최종 결정권자가 누구인지 수사 중이다. 군 안팎에선 ‘김 전 장관→김 의장→이승오 합참 작전본부장’을 거쳐 드론사에 지시가 내려갔을 가능성과, 김 전 장관이 김 의장이나 이 본부장을 건너뛰고 드론사에 직접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합동참모본부와 방첩사령부도 이 사건에서 자유롭지 않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김 사령관은 무인기 북파 시점을 전후해 이승오 합참 작전본부장과 김 의장을 잇달아 면담했다. 특검팀은 “2024년 6월 드론사 방첩대가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알고 있어서 놀랐다”는 군 현역 장교의 증언도 확보했다. 당시 드론사 방첩대 지휘는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맡았다. 드론사는 적 무인기 등에 대응하기 위해 2023년에 출범한 육·해·공군 및 해병대 합동 전투부대로, 국군조직법에 따라 합참의장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안보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부대다. 그러나 특검팀에 출석한 군 관계자는 “모든 군 작전은 상급 기관인 합동참모본부의 지시를 받는데 무인기 침투 작전은 대통령실 안보실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았다”며 “북한이 무인기 추락 사실을 공개한 날 작전을 수행한 드론사령부에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이 격려금을 보냈다”고 증언했다. 관계없는 안보실 왜? 민주당 부승찬 의원도 “김용대 드론작전사령관이 V(대통령)의 지시라며 국가안보실 직통으로 무인기 침투 작전을 하달했다”는 내부 증언을 공개하기도 했다. 민주당 외환유치진상조사단은 올해 초부터 드론사가(歌) ▲무인기 기종 재고 현황 ▲평양에 드론이 침투한 지난해 10월 드론사 상황일지 ▲삐라통을 제작할 수 있는 3D 프린터 보유 여부 등의 자료 제출에 성실히 응하고, 수사기관이 김 사령관과 핵심 참모들에 대한 수사에 즉각 착수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안보실은 당시 기자단 공지를 통해 “인성환 제2차장이 지난 2024년 3월 드론사를 공식 방문한 바 있다”며 방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이는 육·해·공군 주요 사령부 현장 확인의 일환으로 진행된 부대 방문이며, 당시 드론사의 업무보고 등 공식 일정에 다수의 드론사 장병들이 함께했다”고 해명했다. 또 “김용대 드론사령관은 같은 해 8월 국가안보실 방문 당시 드론 전력화 방안 및 국방혁신위원회 안건 등을 논의하기 위해 국방부 및 방사청 관계관 다수와 함께했던 것으로 확인했다. 다수의 인원이 함께한 공식 방문과 안보 태세 강화를 위해 정상적으로 추진한 업무를 ‘북풍 몰이’로 연결 짓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자, 터무니없는 정치공세”라고 주장했다. 특검팀은 외환 의혹 관련 윤 전 대통령의 ‘지시 연결고리’를 수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군 통수권자인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방부 장관, 군부대까지 이어지는 지휘체계 전체가 조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특검팀이 김 전 국방부 장관을 추가 구속하고, 군검찰과 협조해 여 전 사령관·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추가 구속한 것도 외환 수사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계엄 비선’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해 추가 구속영장 발부를 요청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노상원 수첩’의 경우 ‘NLL(북방한계선)에서 북한 공격 유도’ 등 이른바 ‘북풍’ 준비 정황이 담겨 있어 실체 규명이 필요하다. 노 전 사령관이 정보사 비선 조직을 활용해 북한을 자극해 대남 도발을 유도했다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다는 게 정보기관 간부들의 설명이다. 수상한 연결고리 김봉규 정보사 대령의 “(노씨가) 북한 오물 풍선 얘기를 시작했다. 언론에 특별 보도가 날 거라고 했다”는 경찰 진술 등도 특검으로 송부됐다. 특검팀 관계자는 “언론에 보도된 부분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주는 것도 하나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드론사가 안보실의 지시로 무인기 침투 비밀 작전이 진행됐다는 의혹이 가리키는 시기는 지난해 8월이다. 안보실은 산하에 1·2·3 차장을 둔다. 이들은 각각 국방과 외교, 경제를 담당한다. 지난해 안보실 국방·안보 파트 담당은 김 전 1차장이었다. 안보실장은 장호진·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었으나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사실상 허수아비에 불과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안보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던 관계자는 “김 전 차장이 실세 중의 실세였다. 최종적으로 안보실장이 모든 보고를 받지만 핵심 정보는 김태효 전 차장이 먼저 훑는 경우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김 전 차장은 국방이 아닌 외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대북 문제에 어떤 군사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전략을 세우는 데는 신 전 실장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평가다. 사실상 ‘국방 문외한’인 김 전 차장은 2023년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북파공작부대(HID)를 방문했다. 그는 “2023년 6월 초 정보 당국 관계자들과 HID 부대를 격려 방문한 바 있지만 1년7개월 전에 있었던 군 부대 격려 방문을 이번 계엄 선포와 연결 짓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윤석열 전 대통령도 오려고 했다는 건 사실이다. 김태효가 그때 왜 왔는지 모르겠다. 와선 안 되는 건 아닌데 올 일이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 가지 않는 해명”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윤 전 대통령이 오고 싶어 했고 안보실이 그의 HID 방문이 검토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시에 대통령 방문 가능성 때문에 대비 회의까지 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속초 갔던 김, HID 출신 용산 스카우트 왜? “방문 이례적” 대북 공작 플랜 일환이었나 김 전 차장이 HID를 방문한 이후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인간정보 특기(820) 육관사관학교 60기 출신 오모 중령이 2023년 12월 안보실 2차장 산하 국가위기관리센터 안보현안대응팀에 들어갔다. 오 중령은 인성환 당시 안보실 2차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인 2차장도 “공개된 자리서 말하기 어렵지만 제가 통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중령을 포함한 팀원들의 보고서는 인 2차장이 아닌 김 전 1차장이 검토했다. 안보실은 이 비밀 TF가 “규정화된 테두리 밖에서 대북 특수정보를 분석하는 팀”이라며 계엄과 관련해 정보사와 소통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비밀 조직이 아니라 위기관리센터에 배치된 ‘정보융합팀’이다. 정보융합팀은 지난 정부의 정보융합비서관실을 대북 정보 분석에 특화시켜 슬림화한 조직으로, 2022년 5월1일 대통령직 인수위 브리핑서도 해당 조직의 신설 취지와 배경을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안보실이 당시에 언급했던 것처럼 오 중령이 소속된 팀은 ‘대북 특수정보’를 다룬다. 대북 문제에 대해 깊숙하게 알지 못하는 김 전 1차장을 사실상 보좌하는 팀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오 중령은 정보사 내 얼마 남지 않은 ‘대북 공작’ 전문가로 꼽힌다. 12·3 내란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정성욱 정보사 대령의 계보를 잇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안보실의 지시로 드론사가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실행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오 중령이 속한 팀이 작전의 밑그림을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보사 내부의 분석이다. 무인기를 언제 평양에 보내고 어떤 방법을 구사해야 하는지도 대북 공작의 한 종류기 때문이다. 일부러 들키려 분명한 목적 정보사 한 고위 관계자는 “무인기를 날린 시기를 보면 대북 공작 플랜을 한두 달 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 때나 막 날리는 게 아니다. 어떤 목적을 정한 이후 그다음 시기를 정한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통상 대북 공작은 일부러 들키게 하거나 정말 들키지 않아야 하는데 일부러 들키려 한 공작은 ‘북풍 공작’이다. 이 방법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쓰지 않았던 방법이다. 자칫하면 수많은 인명피해를 야기할 수 있고 실패할 경우 정보사의 피해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