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4주년 특별기획<4>대한민국 뒷골목 움직이는 3대 축<유흥·조폭·마약> 현주소

어두컴컴 ‘뒷골목’ 따라 ‘범죄 씨앗’ 싹 튼다

“세상이 무섭다.” 최근 국민들의 심정이다. 각종 대형사고가 전국을 강타하는가 하면 성폭행과 살인 등 각양각색의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 까닭이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마음 한 곳에는 불안감이 가득한 것이 현재 국민들의 마음이다. 이런 가운데 악의 축으로 손꼽히는 조폭, 유흥, 마약 등 3대 암적 세계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사정당국의 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진화의 진화를 거듭하며 새 모습으로 단장하고 있는 것. <일요시사>에선 창간 14주년을 맞아 이들 분야의 현주소를 파헤쳤다.

유흥가…변태업소들 성황 속 주택가로 잠입화
조폭…의리는 옛말, 피도 눈물도 없는 ‘피바다
마약…검증체계 구멍 ‘숭숭’ 서민들 ‘해롱해롱’
국민들 한마음으로 공공의적 퇴치에 앞장서야


대한민국 뒷골목을 움직이는 가장 주요한 세력은 역시 조직폭력배(이하 조폭)다. 조폭의 움직임에 따라 유흥가와 마약세계의 지도까지도 변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폭들은 최근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조폭들이 조직의 법칙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한번 건달은 영원한 건달’이라며 ‘폼생폼사’를 내세웠던 그들은 이제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것으로 법칙을 바꿨다.

체면을 벗어던지고 돈벌이에 열중하는 게 조폭들의 현주소다. 큰돈을 벌수만 있다면 서민들의 등골을 빼먹는 치졸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치밀하게 사전계획에 따라 범행을 저지르는 것은 다반사다. 비호세력의 보호막을 범행에 이용하는가 하면 국경을 넘나들며 이익을 얻기 위한 몸부림도 치고 있다.

조폭 ‘폼생폼사’는 옛말
먹을거리 찾아 동분서주

최근 조폭들의 또 다른 변화는 점조직이다. 개인이 추종자들을 규합해 소규모 신흥조직을 구성한 다음 필요할 때 조직간 연계활동을 강화한다. 경찰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다.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조폭들은 최소 10명에서 많게는 50명의 조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추세다. 이들 중 40대는 두목, 30대는 행동대장, 20대와 10대는 행동대원의 형태다. 한 조직 당 행동대장은 2~3명 정도. 조직은 세포분열하고 유사시 연합하는 형태다.

조폭들의 먹거리도 달라졌다. 건설업, 유통업, 벤처사업, 재개발관련 이권개입, 카드할인업, 상가분양 개입, 보험범죄, 도박 등 다양하다. 이권이 있는 곳이면 어느 분야라도 개입해 폭력적 수단을 사용하면서 조직의 자금원을 확보한다.

이들의 전쟁터는 경기도로 파악되고 있다. 예전 이권을 둘러싼 암투와 유혈이 낭자했던 서울 조폭 풍속을 최근 경기도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게 조폭 전문가 L(46)씨의 전언이다.

L씨는 “서울을 주무대로 활동하던 조폭들은 물론 기존 경기도를 주무대로 삼던 조폭, 지방에서 먹잇감을 가로채기 위해 상경한 조폭들이 엉키면서 전쟁터가 됐다”며 “신개발 붐이 일고 있고 무엇보다 ‘돈’이 있기 때문에 수원과 평택 등 노른자위를 중심으로 조폭들이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폭 세계 변화의 또 다른 모습은 이방인들이 조폭지도를 새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외국인 조폭들의 행각은 더욱 잔혹해지고 있다. 게다가 전국을 무대로 범죄행각을 일삼는 ‘해외파 조폭’ 등장은 조폭 세계의 새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법무부 발표에 따르면 범죄자의 국적은 중국이 가장 많다. 그 뒤는 몽골과 미국, 베트남과 일본순이다. 이에 따라 사회 곳곳에선 외국인들의 중대범죄율이 갈수록 증가세를 보이면서 더 이상 외국인 범죄를 사소하게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한 관계자는 “최근까지 외국인 범죄를 보면 주로 동 인종간의 폭행, 살인이었다”면서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외국인 범죄가 점점 거대화, 조직화 되고 있어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최근 서울 남서부 지역에서 세력을 넓히고 있는 중국계 조직폭력배와 부산 지역 러시아 마피아 등이 국내 폭력조직과 손을 잡으면서 긴장상태를 늦추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심각한 것은 ‘백색가루’까지 손을 대는 조폭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뽕쟁이’들이나 취급한다고 손가락질하던 마약사업 전선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 조폭들이 마약시장에 나서면 파급력이나 규모가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조폭들이 마약에 손을 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돈줄이 막혔기 때문이다. 사행성 게임업종, 불법 추심업, 유흥업 등을 주 수입원으로 삼았던 조폭들은 조폭 수 증가와 불황 지속으로 ‘돈맥경화’에 걸리자 새로운 먹거리를 찾았고 그것이 마약인 것.

전직 조폭 조모(51)씨는 “만약 해외조폭들처럼 국내조폭들도 마약거래를 주 수입원으로 삼게 되면 마약시장의 규모가 광역화될 것이 자명하다”면서 “대부분의 조폭조직이 단단한 연결고리로 짜인 만큼 빠르게 파급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그 이유”라고 주장했다.

보다 더 자극적으로
변태 업소 우후죽순

뒷골목을 화려한 색으로 장식하는 유흥가 역시 생존을 위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면 현재 유흥가는 어떤 모습일까. 유흥마니아 S(36)씨에 따르면 유흥가 트렌드는 일본의 변태성문화가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일례로 지하철 성추행 체험이나 구멍 뚫린 벽 틈 사이로 훔쳐보기 등의 업소가 성행하고 있다고.

성매매 업소들은 크게 ‘이미지클럽’과 ‘페티시클럽’으로 대별된다. 갖가지 상황을 설정해 성행위를 하는 이미지클럽의 경우 주로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회원제로 운영된다. 뚫린 구멍 사이로 옷을 갈아입는 여성을 훔쳐보거나 지하철 여자 승객을 뒤에서 성추행하는 등 불법적이고 변태적인 것들이 주 메뉴다.
반면 남성이 고른 복장을 착용한 여성이 유사성행위를 해주는 페티시클럽의 경우에는 교복, 간호사복, 망사복장 등 갖가지 의상들을 비치해 놓고 있다. 새디스트 고객을 위한 코너도 마련돼 있다. 남성들은 기호(?)에 맞는 옷을 입은 여성과 성행위를 할 수 있다.

이처럼 현재 유흥가의 현주소는 변종 성매매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성매매 단속이 본격화된 이후 유흥가에선 ‘단속에도 걸리지 않고 쾌락의 강도는 더욱 높은’ 업소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 선두는 ‘도우미 PC방’이었다. 이곳은 글자 그대로 PC방과 ‘성인’ 혹은 ‘도우미’라고 하는 성매매 콘셉트가 결합되면서 남성마니아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같은 성인PC방은 서울 도심보다는 경기도 외곽지역에 둥지를 틀고 성업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누드쇼와 비디오방이 결합된 업소도 인기다. 각각의 방들이 있고 그곳에 사람들이 들어가면 방 앞 설치되어 있는 유리 너머로 여성들이 음란한 자태로 춤을 춘다. 남성은 편안히 방에 앉아 누드쇼를 관람하다가 흥분 상태에 들어가면 별도의 아가씨와 오럴섹스나 유사성행위를 한다. ‘스트립방’의 인기도 고공행진 중이다. 서울 시내에 곳곳에서 성행하고 있는데 관음증을 가지고 있는 남성들이 많이 찾는다고.

‘나가요’ 세계도 달라진 모양새다. 일단 활동무대가 서울에서 경기지역으로 바뀌었다. 경찰의 단속과 불황 탓이다. 수원·인천·고양·부천·동두천 등 경기도내 유흥가에는 서울 동대문, 강남, 용산 등지에서 소위 잘나가던 ‘나가요걸’들로 북적이고 있다.

이들의 활동무대 이동은 경기도 유흥가를 신흥강자로 만들어 내고 있다. 낯선 동네에서 낯선 유흥문화를 즐기고 낯선 여성과의 잠자리를 원하는 남성들의 발걸음이 잦아들면서 활력을 불어 넣기 때문이다. 욕망의 탈출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유흥가 전문 분석가 K씨는 “국내 유흥가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 성매매 업소의 진화는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든 실정이다”라면서 “이들 업소는 대중들의 성적 취향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는 쉽게 예측하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유흥가 지도는 계속 뒤바뀌고 있는데 경찰의 집중적 단속이 이뤄지면서 서울의 유흥가는 움츠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반면 서울 외곽과 경기도는 형형색색 불을 밝히며 남성들을 유혹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수원·인천·안산 등지로 재편되기 시작하면서 특히 수원은 유흥의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상태”라며 “서울과 인근에 있는 오산, 안산 등지에서 유흥문화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약세계도 진화를 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대한민국이 ‘마약청청국’이란 위상을 잃은 지 오래다. 각종 마약들이 서민들의 생활에 파고들고 있다.
지난 4월말부터 울산해양경찰서가 양귀비와 대마 밀경작에 대한 특별단속에 들어갔다. 해경은 특별단속반을 편성하고 해·육상의 입체적 감시활동을 통해 단속활동에 나선 상태다. 또한 검찰 등 유관기관과 공조체제를 구축해 효과적인 단속을 펼치고 있다. 이 같은 단속은 그만큼 마약이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지난해 9월에는 마약수사 일선현장에서 근무했던 전직 경찰관이 월급을 차곡차곡 모은 사재를 털어 마약범죄를 예방하는 교육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한국마약범죄학회가 그곳이다. 이들이 뭉친 이유는 교도소 출소 마약사범 10명 중 7명이 재범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민간교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작전명 “꼭꼭 숨겨라”
단속반과 숨바꼭질

이처럼 대한민국이 마약에 찌들고 있는 것은 검증체계에 구멍이 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실례는 지난해 11월 국내 유치원과 학교 등에서 영어를 가르쳐온 외국인 마약사범이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된 사건을 꼽을 수 있다.

미국인 S씨는 1999년 한국에 들어온 뒤 10년간 불법체류 상태에서 영어강사로 활동해왔다. 그는 유명 여성그룹의 뮤직비디오와 인기 오락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면서 교회부설 학교에서 영어강사로 일했는데 마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다른 강사들도 모두 중·고교 시절부터 마약을 접해왔고 일부는 마약을 투약한 채 강의를 하기도 했다.

마약 밀수 수법도 기상천외하게 달라지고 있다. 사람이나 동물의 몸속, 여성용품, 콘돔 등 세관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이용하고 있다.
세관들이 놀랐던 것은 사람의 몸속에 마약을 넣어 오는 수법이다. 주로 항문을 통해 뱃속으로 마약을 숨기는 방식이다. 여성의 성기 안이나 직장, 창자 등의 장기 속에 마약을 숨겨 들어오는 것도 꼽힌다. 속옷이나 생리용품 등 여성들의 물품도 단골이다. 음식물 속에 마약을 숨겨 오는 고전적인 수법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다이어트 약물중독이다. 살을 빼기 원하는 이들에게 참을 수 없는 유혹인 다이어트 약이 종국에는 사망까지 이르게 하고 있다. 실례로 지난해 12월 마약 성분이 함유된 식욕억제제에 중독으로 인해 30대 여성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여성은 사망원인은 펜터민이란 약물중독.
J제약 한 관계자는 “펜터민은 전문적인 비만 치료제로 쓰이지만 ‘살 빼는 마약’으로 불리는 향정신성 의약품의 일종”이라며 “때문에 유럽에선 처방이 금지돼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반드시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이어 “현재 인터넷에는 펜터민 처방이 많은 병원 명단이 나돌고 있고 개인적인 불법 거래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허술한 처방전과 인터넷 판매는 여성들의 다이어트 약물중독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데 이는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사회 곳곳에선 독버섯들이 국민들을 압박하고 있다. ‘돈만 벌면 된다’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을 사지를 내몰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사정당국이 단속을 강화하는 등 뿌리를 뽑기에 노력하고 있지만 이들은 교묘하게 빠져나가 더욱 깊숙이 숨어버리고 있다”면서 “국민들이 마음을 모아 사회 공공의 적인 유흥과 조폭, 마약, 도박 등을 근절시켜야 하는데 앞장 설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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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