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하다’ 소문난 네티즌 수사대 '앞과뒤'

경찰 수사 도우미? 방해꾼? ‘누구냐 넌’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크림빵 뺑소니’사건 범인이 자수했다. 경찰은 CCTV를 추가 확보해 뒤늦게 용의 차량이 ‘윈스톰’임을 확인하고 추적에 나섰다. 용의자는 뺑소니 차량으로 지목되자 압박감을 느껴 경찰서로 자수했다.

언론은 용의차량이 윈스톰으로 밝혀짐에 따라 초기 용의차량을 BMW로 본 경찰 초동 수사에 문제가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과연 경찰 초동 수사만의 문제일까? 네티즌 수사대는 그간 사고 직후 뺑소니 차량 동영상을 분석하며, 용의 차량을 BMW라고 추정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대단하다, 엄청나다’ 등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그들의 집요함과 CSI에 버금가는 분석력이라며 극찬했다. 지난 27일부터 ‘크림빵 뺑소니 BMW’ 키워드는 네이버 실시간 검색 순위에서 상위권에 머물며 뜨거웠다. 
 
단순 조언인데
마치 사실인양
 
이런 여론을 의식한 경찰 또한 수사력을 BMW 차량을 찾는 데 집중했다. 국립과학연구소의 분석 결과도 네티즌 수사대가 주장한 차량과 유사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헛짚은 셈이 됐다. 용의 차량은 완전히 달랐다. 결국 처음부터 BMW라고 분석한 네티즌 수사대의 주장은 혼란만 야기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그간 네티즌 수사대가 이룬 공적도 무시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사건사고 중심에는 언제나 네티즌 수사대의 활약이 있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총알의 진실> <황우석 사태> 등에 대해 누구보다 먼저 문제 재기를 했다. 이들 사례는 대부분 네티즌 수사대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났으며, 사건의 결정적 증거 확보에 이바지했다. 이처럼 모 아니면 도가 될 수 있는 네티즌 수사대의 양면성. 그들은 누구인가?
 
네티즌 수사대는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처음 시작됐다. 인터넷의 정보를 근간으로 불특정 다수의 네티즌이 활동하며 ‘NCSI(Netizen Crime Scene Investigation)’로 불리기도 한다. 미국 과학수사대 ‘SI(Crime Scene Investigation)‘ 네티즌의 머리글자인 N을 합친 신조어다. 이들은 이번 크림빵 뺑소니 사고처럼 경찰 수사만으로 해결하지 못한 사건사고와 사회 이슈 등을 파헤친다.
 
네티즌 수사대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불특정다수일 뿐이다. 이 불특정다수는 지나가는 네티즌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조명을 받고 있다면, 지나가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의 파편을 공유할 수 있다. 불특정 다수이기에 그 능력은 제각기로 자신의 역량에 맞는 다양한 방식의 정보를 제공한다. 검색을 잘하는 네티즌은 정보를 구할 수 있으며, 그림 편집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그동안 모인 정보를 토대로 그럴듯하게 짜 맞춘 그림을 만들어 사람들의 관심을 더 환기할 수 있다. 
 
크림빵 뺑소니 사고처럼 사진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사진을 분석할 수도 있다. 흔히 네티즌수사대는 질보다는 양이라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일수록 유능한 네티즌들이 그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다 보면 결정적인 단서를 가진 사람이 올 수도 있다. 반면 이번 크림빵 사건처럼 잘못된 정보로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묻힌 사건 국민적 관심 높이는 역할
‘CSI 버금’ 전국서 한마음으로 제보
 
경찰처럼 전산 조회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네티즌수사대는 어떻게 이름부터 취향까지 다 밝혀내는 걸까. 이들의 수사는 포털사이트 구글, 네이버 등에 이름이나 아이디를 검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나온 조각난 정보를 바탕으로 개인의 신상 정보를 모아간다. 이름과 나이 등 기본적인 정보를 토대로 미니홈페이지 검색으로 확장해간다. 수사대상자들이 무심코 올렸던 글 하나, 댓글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이 같은 과정은 혼자만 하는 게 아니다. 새로 밝혀진 단서는 네티즌들에게 공유하고, 공유된 이 단서를 토대로 다른 네티즌은 또 수사를 이어간다. 반복되면서 잘게 쪼개진 정보는 점점 완성된 형태로 모양을 갖춰간다. 일종의 공조 수사인 셈이다.
 
모인 정보를 바탕으로 상세 정보 취득과 파악을 통해 쉽게 이해되는 약칭을 만든다. 약칭을 만들 때는 <크림빵 뺑소니><국정원 댓글><개똥녀>와 같이 사건에 있어 상징적인 단어를 결합한다. 일단 약칭이 만들어져 인기검색어가 된다면 순식간에 네티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새로운 정보가 쏟아진다. 이 과정 이슈화가 돼 언론의 주목을 받아 하나의 쟁점으로 떠오르게 된다.
 
집요함 기본 
분석력 극찬
 
2011년 해군의 소말리아 해적 진압 당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의 다리에서 발견된 총알 1개는 우리 해군이 쏜 것으로 조사됐다. 복부 등에서 수거한 탄환 1개는 의료진이 분실했다. 이에 따라 석 선장이 누구의 총에 맞아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졌는지 의문이 일었다. 수사본부는 석선장의 몸속에 있던 탄환 가운데 1발이 우리 해군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경찰이 공식 발표하기 전부터 이 같은 의혹을 제기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네티즌 수사대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석 선장 총상 6발, 해적이 쐈나, 아군 오발인가? 의혹증폭’, ‘석선장 과연 해적이 쐈나?’, ‘석 선장 총알 관련 아덴만 여명 작전 5대 의문점’ 등의 글이 올라왔다. 글을 올린 네티즌은 “MP5는 테러 진압용이며, 테러범 몸통을 관통한 총알이 혹시 다른 인질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총알의 위력이 약하다. 따라서 몸에 남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주장했다.
 
인터넷에서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석 선장이 있던 곳에서는 교전이 벌어지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한나라당의 안형환 대변인은 네티즌들의 의문 제기를 간첩들의 행위와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네티즌 수사대의 추론이 맞았다. 강하게 의혹을 제기했던 한 네티즌은 논란이 한창일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석해균 선장의 몸속에서 추출한 총알이 바꿔치기 당하기 전에, 총알을 사진으로 찍고 총알의 지름을 재서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입니다. 총알의 지름이 7.62mm이면 AK소총, 총알의 지름이 9mm이면 MP5소총의 것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뜨거운 감자 국정원 댓글 사건(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전말을 밝힌 것도 네티즌 수사대이다. 한 평범한 직장인 네티즌은 SNS에서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의 흔적을 찾았다. 그는 국정원 트위터 핵심 계정을 가지고 추적을 시작해 꼬리를 물며 트위터 작성 글과 연동된 또 다른 트위터 계정을 찾았다. 그는 밝혀진 아이디를 구글로 검색해 그 아이디가 올린 다른 게시물을 찾았다. 그리고 해당 게시물의 제목들로 다시 검색해 관련 글들을 검색했다. 
 
이 과정  중ㅍ 기존에 없던 아이디도 추가로 나왔으며, 국정원 측에서 트위터를 삭제했더라도 구글에 ‘저장된 페이지’ 등으로 남아 있었다. 삭제됐던 국정원의 핵심 계정 10개도 이 방법으로 찾았으며, 검색과 검색 끝에 국정원 계정으로 올린 트위터 121만 건을 찾아냈다. 그가 찾아낸 국정원 트위터 글은 대부분 삭제된 경우이다. 이 네티즌은 이 사실을 <뉴스타파>에 제보했으며, <뉴스타파>는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핵심계정 10개를 공개했다. 그중 핵심 계정으로 꼽힌 ‘nudlenudle’가 국정원 심리전담 직원 이모씨라는 것을 밝혀냈다.
 
정보력·파급력
폭발적인 반응
 
언론은 검찰 수사팀에게 트위터를 조사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서버가 미국에 있어 조사가 힘들다고 밝혔다. 하지만 포털에 흔적이 있다면 미국 서버를 뒤질 필요가 없이 신원확인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단순히 논란으로만 남아 영원히 묻힐 수 있었던 국정원 트위터 진실을 한 네티즌 수사대가 찾아낸 것이다.
 

이렇게 네티즌 수사대가 기존 언론을 능가한 사례도 많았지만, 이번 크림빵 사건처럼 혼란을 초래한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2013년 미국을 테러공포에 몰아넣었던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용의자도 네티즌 수사대의 활약으로 닷새 만에 체포됐다. 미국 네티즌은 FBI(연방수사국)에서 공개한 용의자 사진, 동영상, 인상창의, 단서 등을 적극적으로 퍼뜨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네티즌 수사는 혼란도 키웠다. 마치 이번 크림빵 뺑소니 사건처럼 집요하게 파고들었지만, 잘못된 정보로 수사에 방해만 초래한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잘못된 용의자를 지목해 엉뚱한 사람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잇따랐다. 브라운대 학생인 서닐 트리파시는 레딧과 트위터에서 용의자로 지목돼 페이스북 페이지가 악성 댓글로 덮이는 봉변을 당했다. 고교생 에딘 바르훔도 자신의 사진이 용의자로 인터넷에 공개됐고 일간지 <뉴욕포스트>가 1면에 사진을 실었다. 그는 혐의사실이 없다는 경찰 발표 뒤에도 “주변 시선이 무서워 밖에 나갈 수 없다”고 호소했다.
 
‘믿을까 말까’ 양면성 딜레마
잘못된 정보로 수사 난항도
 
애꿎은 뺑소니 차량을 BMW라고 지적한 것처럼 엉뚱한 사람을 지목해 마녀사냥을 당하게 만드는 것도 네티즌 수사대 때문이다. 특히 SNS식 여론몰이가 마녀사냥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정인을 공격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른바 신상털기가 이뤄지는데, 상대방의 자료를 검색해 폭로하는 일종의 사이버 테러다. 사실상 신상털기는 비인격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등 특정인에 대한 처벌로 이뤄지게 된다. 최근 도를 넘어 전화번호, 주소, 개인 사진 등 인적 사항을 전부 적나라하게 파헤쳐, 사생활 침해와 명예를 훼손시킬 만큼 무자비하게 공격해 논란이 일고 있다. 
 
2012년 성균관대에서 성폭행 가담 학생 입학을 취소한 경우도 가담했던 공범 학생들이 잘못 공개돼 애꿎게 마녀사냥을 당하기도 했다. 같은 해 서산 아르바이트 여대생이 성폭행 당한 후 자살했다는 사건에서는 네티즌 수사대의 무차별적인 공개로 엉뚱한 사람이 마녀사냥을 당한 것은 물론 피해자 유족들까지 큰 고통을 입었다. 
 
 
마구잡이식 신상털기는 개인 자체를 사회적으로 매장해버리는 ‘인격 살인’이 문제시되면서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동명이인 등 사건과 무관한 제3자가 지목되면서 엉뚱한 사람의 신상 정보가 퍼지거나 가족, 지인들이 정신적인 충격을 입는 등 2차 피해가 우려돼 ‘무차별 신상털기’가 사회적 문제로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상대방과의 의견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막말, 조롱 등의 원색적인 악성 댓글을 주고받으며 감정이 격해져 상대방을 직접 찾아 나서기 위한 신상털기까지 이어지고 있어 심각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사이버 공간에서의 다툼이 현실에서 끔찍한 범죄까지 이어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2010년 가수 타블로의 학력 위조 의혹이 불거졌다. 일부 네티즌은 타블로가 3년9개월 만에 미국의 명문 스탠퍼드대에서 석사학위까지 땄다는 사실을 검증하겠다고 나섰다.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인터넷 카페가 만들어졌고 회원은 18만 명이 넘었다. 이 카페는 타블로가 실제 스탠퍼드에 다니지 않았다는 증거를 내놓아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마치 이번 뺑소니 사건처럼 언론에 나온 몇 초밖에 되지 않은 CCTV를 토대로 차종을 분석하며 검증을 시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타블로는 이 의혹 제기를 무시했으나 나중에는 분위기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돌아가자 일부 네티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결국 수사기관이 직접 나섰으며, 경찰은 스탠퍼드대 한국 동문 관계자와 당시 기숙사 동료를 직접 만나 타블로가 스탠퍼드대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타진요 회원 10명 중 3명은 징역 10개월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다. 나머지 6명은 각각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결국 타진요 네티즌 수사대는 사생활 캐기의 촌극으로 끝났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군집행동(herd behavior)의 예를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군집행동은 곤충이나 동물에서 흔히 발견된다. 평소에 무리를 지어 행동하고, 위기가 닥치면 무리를 지어 도망간다. 생물학자 해밀턴은 1971년 쓴 논문에서 위험에 처한 동물이 무리를 지어 도망가는 이유는 각자가 될 수 있는 대로 무리의 중심에 가까이 감으로써 자기에게 돌아오는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데서 나타난다는 것을 밝혔다. 이는 합리적인 행동이다.
 
‘생사람 잡는’
마녀사냥 우려
 
인간도 자주 군집행동을 하는데, 이 중에는 비합리적인 행동이 많다. 특히 금융시장, 부동산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주식, 부동산을 사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은 뭔가 이익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따라가게 된다. 이를 ‘악대효과’(밴드왜건 이펙트)라고도 말한다. 마을에 서커스가 등장해서 나팔을 불고 다니면 사람들이 덩달아 구경을 가는 것이니 일종의 군집행동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타블로 사건도 네티즌수사대의 본질인 군집행동이 공익적 목적이 아닌 악의적이고 공격적인 형태로 빚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현실화된 ‘현피’ 공포
 
‘현실’의 앞글자인 ‘현’과 PK(Player Kill)의 앞글자인 ‘P’의 합성어로. 게임, 메신저 등과 같이 웹상에서 벌어지는 일이 실제로 살인,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을 나타내는 신조어다. 대부분 직접 만나 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끝났지만, 2013년 부산 해운대구 살인 사건은 현피가 살인까지로 간 이례적인 사건으로 꼽히고 있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불붙은 정치적 논쟁이 인신공격성과 신상털기가 이어지면서 상대방의 신상을 확보해 직접 찾아가 잔인하게 살인까지 한 사건으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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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