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④사치스러웠던 사무라이

금장식한 갑옷, 은으로 만든 투구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올해는 광복 69주년이 되는 해다. 내년이면 벌써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훈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무엇인가 자국 군인과 국민들에게 충성심과 용맹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시키고자 했던 군국주의의 일본 정부가, 이 책의 주 내용을 정신 교육용으로 채택한 것이다. 원래 말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한 입을 거치고 두 입을 거치면 눈덩이 불어나듯 부풀려지는 것이다. 군국주의자들이 전투력을 높이려고 정신 교육을 강화하기 위하여 교육시킨 ‘사무라이 정신’이라면, 당연히 과장하고 미화시켰을 것은 명백한 일이다. 근거도 없이 저자가 상상을 하며 제멋대로 쓴 책의 주장을, 정훈교육 관점에서 홍보하고 교육시키면서 더욱 과장하고 미화 시켰다. 그리고 한 번 불기 시작한 바람은 더욱 거세지면서 많은 어용학자들이 나서서 시시콜콜한 사무라이들의 이야기조차도 무슨 대단한 일인 양 부풀려 가면서 자국 국민들을 세뇌시켰다.

자국 국민 세뇌

일본 정부는 문단총동원(文壇總動員)령을 내려 문인들로 하여금 침략전쟁을 선동하고, 어용 논리를 만들어 주변국 침략을 정당화하면서 침략전쟁을 일본 민족의 성전이라며 선동하고 참전 열풍을 일으켰다. 사무라이와 관련된 논문과 책이 대량으로 발행된 것도 바로 이때였다.

이렇게 하여 정확한 역사 사실에 대한 조사도 없이, 단지 37세의 젊은이가 멋대로 상상하며 쓴 엉터리 창작품 무사도가 오늘날 일본인들의 기본 정신으로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일본이 전쟁을 준비하면서 옛 봉건시대 무사들의 행태를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이름으로 과장하고 미화시켜 자국 국민들을 세뇌시킨 모든 사례를 하나하나 지적할 수는 없지만,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의 예를 들어 보겠다. 첫째, 무엇보다, 무사도(武士道 : 사무라이 정신)라는 개념 자체가 서양의 기사도로부터 착안해 만든 모방된 개념이 아닐까 하는 강한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니토베 이나조’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유럽과 미국에서 유학하고, 미국인 여자와 결혼까지 한 서구 문화에 상당히 익숙한 젊은이라는 점, 책 곳곳에 나오는 기사도와 무사도와의 비교, 그리고 책 저술 과정에 깊이 관여하는 미국인 부인과 친구들의 이야기 등을 고려하면 이러한 의혹이 더해진다. 그의 책 무사도를 읽어 보면 그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서양 문화와 문학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사람으로 이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는 어두웠던 사람이었다. 심지어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읽는 수필집 <쓰레즈레구사(徒然草)>조차도 몰랐다고 회상했다고 한다. 작가 스스로 “서양의 기사도와 일본의 무사도가 매우 비슷하다.”고 밝힌 것처럼, 일본 사무라이들의 행태를 서양 문화와 기사도에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으나, 책을 쓴 과정과 환경 등을 살펴보면 서양 문화와 기사도의 여러 행태에 일본 문화와 사무라이의 행태를 끼워 맞추어 쓴 것이라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영국 왕실과 일본 왕실, 성서와 중국의 왕양명(王陽明), 그리스도교와 맹자, 플라톤과 미토 요시고우, 그리고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부루투스의 죽음에 동정을 보냈던 얘기를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이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에게 소금을 보낸 일화와 비교하는 등 서양의 예를 일본과 동양 문화에서 찾아내어 비교하는 방식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청빈한 사무라이? 지어낸 허구
역사상 가장 사치스러웠던 시대


또한 일본의 무사도를 설명하는 책에 등장하는 일본인은 20여명인 데 반하여 외국인은 140명이 넘으며, ‘서양 문화에 있는 것은 일본 문화에도 있으며, 서양 사람들이 보기에 이상해 보이는 점도,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라는 식으로 옹호하고 있다.

수백 년 전 동양의 사무라이들에게도 복부는 영혼과 애정이 깃들던 곳으로 이곳을 자르는 할복을 고귀한 행위라고 설명하기 위해, 성경 이야기와 그리스 어의 어원, 그리고 해부학과 생리학까지 동원하고 있으며, 무사들의 검소함과 청빈함을 강조하려고 셰익스피어 작품 <아테네의 타이먼(Timon of Athens)>에서 “기사의 덕목인 명예심은 이익을 얻어 오명을 쓰는 것보다 손해를 선택한다”는 대사까지 인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의 사무라이들도 그러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쨌든 만일 ‘무사도’라고 하는 개념이 사무라이들에게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던 정신적 규범이었다면, 어째서 일본 역사에 있어 ‘무사도’라는 개념이 사무라이 시대가 끝난 뒤, 서구 문화에 흠뻑 젖은 젊은이에 의하여, 그것도 미국에서 영어로 처음 등장하는가?

둘째, 사무라이들이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을 했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맞지 않는다. 일본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던 문화를 모모야마(桃山) 문화라고 한다. 모모야마 문화는 전국시대 후기에 시작하여 에도 막부 초기까지 40여년간 일본 사회의 주류를 이루던 문화였다.

이 문화는 호화롭고 사치스러우며 웅대한 성격의 문화로, 당시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불교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화려하고 사치스럽고 과시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 주는, 보다 세속적인 문화였다. 건축물은 계리 궁이나 동소궁, 오사카 성처럼 크고 화려하게 지어졌고, 건물의 내부 또한 호화로운 조각과 그림으로 장식되었다.
일반인들의 풍속 역시 화려해져 포르투갈풍의 남반문화가 유행하였다. 서양식 외투, 서양식 모자, 서양식 바지에 만토, 비로도 등 화려한 옷이 등장하였다. 옷감에 아름답고 사치스러운 무늬가 염색되었고, 여자들의 옷 입는 방식이 새롭고 화려해지는 것은 물론, 사무라이들의 예복으로 ‘카미시모도’라고 하는 화려한 옷이 등장했다.


세속적인 문화

이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모모야마 문화를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이 바로 전국시대의 ‘오다 노부나가’였다. 전국시대에 일본 평정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오늘날 일본에서 사무라이 중에 사무라이로 인정받는 ‘오다 노부나가’였다. 성격이 잔인하고 위세 부리기를 좋아했던 ‘오다 노부나가’는 전란 속에서도 그가 거처하는 성의 건축과 잔치를 웅대하고 화려하게 했던 것이다. 그가 거처하는 성은 일왕이 거처하던 교토의 성보다 크게 지었고, 그가 즐겨하던 화려한 잔치는 결국에 그가 부하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로부터 살해당하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