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원로 릴레이인터뷰> ③박찬종 변호사

"안철수 새정치 도전…성공한다면 기적"

[일요시사=정치팀]여야의 정쟁은 그칠 줄을 모르고,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2014년 대한민국 정치권의 현주소다. 이럴 때 정치계 원로의 충고 한마디는 망망대해에서 만난 등대의 한줄기 빛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이정표를 잃어버린 정치권의 탈출구는 어디일까? <일요시사>에서 준비한 정계원로들과의 릴레이인터뷰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 <일요시사>가 이번 호에 만난 정계원로는 5선 국회의원을 지낸 박찬종(74) 변호사다.




박찬종 변호사의 정치 역정에 대해선 두 가지 극단적 평가가 교차한다. 첫 번째는 권위주의 정치, 3김 정치(김영삼·김대중·김종필)에 도전했으나 끝내 실패한 시대를 앞선 정치인이라는 평가다. 두 번째는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지 못했던 독불장군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박 변호사는 세간의 평가를 모두 부인하며 "나의 도전은 실패하지 않았다. 새정치의 뿌리를 내렸다"고 자평했다.

실제로 박 변호사는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에 저항한 학생들을 가장 많이 변호한 인권변호사로, 또 정치인으로 시대의 불의에 끊임없이 저항했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신정치개혁당을 창당해 현재의 '안철수 새정치 바람'과 유사한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부산 서구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낙선하며 정치권을 떠난 그는 이후 변호사로 돌아와 석궁 테러사건의 수학자 김명호, BBK사건의 김경준,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사건,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 등의 변론을 맡아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시대의 불의에 맞서 끊임없이 도전했고, 지금은 현실정치에서 한 발 물러나 법률구조사업에 전념하고 있는 박 변호사에게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꽉 막힌 대한민국 정치권이 나아갈 길을 물어봤다.

다음은 박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 변호사님 반갑습니다. 최근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정치권 밖에서 일반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정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가끔은 방송 토론회에 나가 입장을 밝히기도 하구요. 또 변호사로서 에너지가 닿는 범위 내에서 법률구조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 지난 대선 때 지지했던 후보가 있으십니까?

▲당시 박근혜·문재인 대선후보 양측에서 도와달라는 강력한 요구가 있었으나 모두 거절했습니다. 정당 대결 논리, 당 내에선 힘의 논리에 의해 뽑힌 후보 중에서 고르려니 적임자가 없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정당을 떠나 가장 우수한 정책을 가진 사람, 정직하고 깨끗한 사람을 가려 뽑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들 가운데서는 눈여겨보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앞으로 차기 대선이 다가오면 눈에 띄는 사람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없습니다.

- 국가정보원 대선개입사건 수사와 관련해 축소·은폐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최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와 관련, 여야가 정반대의 입장을 보이며 다투고 있는데 변호사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된 선진경제국가입니다. 하지만 김용판 전 청장의 1심 판결을 두고 여야가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 다투는 것을 보면 아직 진짜 선진국 수준에는 오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다른 OECD에 소속된 국가들은 이 사안으로 다투는 우리를 우습게 여길 것입니다. 

- 판결 자체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법조인 입장에서 보면 이번 판결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번 재판은 '사실이냐 아니냐' 증거를 따지는 것인데, 1심 판사는 김 전 청장의 혐의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본 것 같습니다. 이념에 대한 사안이 아닌 사실관계에 대한 판결을 두고 논란이 이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법관·검찰에 대한 불신이 깊기 때문인데, 국민들은 유권무죄(권세가 있으면 무죄), 유전무죄(돈이 있으면 무죄)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민생 건성건성 챙기는 정치인은 '건달'과 같아"

"윤진숙은 임명 자체가 실수…바꿀 사람 더 있다"

 

-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잦은 부적절한 언행으로 결국 경질됐습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요?

▲윤진숙 전 장관은 원래 연구자입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서 연구원으로는 우수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수부 장관이라는 자리는 한 부처를 총괄하고 국가의 전체 정책방향에 해수부 정책을 접합시켜 나가는 총괄능력을 갖춰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는 이런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쉽게 말해 기본이 안 된 사람이 장관이 됐기에 결국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마이너스가 됐고, 본인도 불명예 퇴진할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 임명 자체가 실수였다는 말씀이신지요?

▲결론적으로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제가 아는 김영삼 전 대통령 외 문민시대 대통령들은 장관을 임명할 때 직접 면접을 한 후 임명을 했습니다. 대통령의 장관 후보자 면접은 함께 일할 부처의 장을 뽑는 것이기에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윤 전 장관을 기용할 때 면접을 안 본 것 같습니다. 면접을 했다면 조직을 맡기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판단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윤 전 장관 해임을 계기로 야권은 물론 여권 내에서도 개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개각론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나라와 비슷한 정치체계를 가진 미국의 경우를 보면 대통령과 장관은 임기가 거의 같이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질·능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자꾸 나오다 보니 개각 목소리가 벌써부터 불거지는 것이지요. 기본적으로는 미국처럼 가는 것이 맞다고 보지만 특별한 재주를 가진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 말실수도 잇따라 한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경제팀은 한 번 바꿔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람이 있을까?'(웃음)하는 생각도 듭니다.

-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첫 선고가 2월17일 있을 예정입니다. 이 사건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RO라는 조직의 실체가 있는지, 비밀회합에서 오고간 말을 내란 선동으로 볼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증거 유무가 핵심입니다. 담당변호사가 아니기 때문에 확실히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전체적으로 통진당의 성격이 '대한민국은 기분 나쁜 나라다'라는 생각을 가진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과격하게는 '박정희·전두환정권의 후예인 박근혜정권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정권'이라는 생각을 가진 듯합니다. 그러나 생각만으로 처벌할 수는 없기 때문에 판결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 통진당은 정부에 의해 해산심판도 청구되는 등 사실상 정부가 '종북정당'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요?

▲불행하게도 종북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상당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왜 종북이 생겨났는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현대사를 되돌아보면 종북이 싹틀 여지가 있었는데, 특히 전두환정권인 5공 시대에 종북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 많았습니다. 전두환씨의 불법적인 정권 탈취와 반민주적 국가 운용에 대한 반발 심리로 "차라리 김일성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북에서 벗어났지만 아직도 일부가 남았고, 이것이 통진당 사태라 봅니다.

- 종북의 싹이 5공 때부터 생겨났다는 말씀이신가요?

▲종북의 토양은 전두환씨가 만들었습니다. 80년대에 반정부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학생들 변론을 가장 많이 했던 변호사가 바로 저입니다. 당시 운동권 학생들은 양심을 지키기 위해 정권에 저항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생적으로 종북주의화 했지만 민주화 시대로 접어들며 대부분은 여기서 벗어났습니다. 이에 따라 분열의 씨앗을 처음 퍼트린 전씨는 국민에게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군 사이버사령부 대선개입 수사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국방부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처음부터 외부기관, 예를 들면 특검을 통해서 조사를 했어야 합니다. 군 검찰이 상당히 수사를 잘 한 것 같은데 국방부 울타리 안에서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지다 보니 결과를 신뢰받지 못하고,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군 사이버사 요원들의 활동을 보고 받은 것으로 알려진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군 검찰과 군 법원 양쪽의 지휘관이기 때문에 비판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 지방선거의 가장 큰 변수로 꼽히는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 창당 준비 과정과 전망에 대해 한 말씀 하신다면?

▲새정치를 열망하는 국민들은 지방선거에서의 전면적 정당 공천을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야가 논의 중인 기초단체뿐 아니라 광역 시·도의 장에 대한 정당 공천도 폐지해야 합니다. 나아가 광역 단체를 제외한 시·군·구 의회도 폐지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것이 새정치의 방향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안 의원은 새정치라는 이름을 내걸고 정당을 창당해 이 판에 뛰어든다고 선언했습니다. 새정치도 구호 외에는 모호한데 이런 사람이 성공한다면 저는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새정치연합에 대한 희망은 없습니다.

 

"모호한 새정치…새정치신당 희망 없다"

"지난 1년 정치권, 정당 놀이판 전락"

 

- 정치 선배이자 원로로서 여야 정치권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지요.

▲지난 1년 정치는 정당의 놀이판이었습니다. 민생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났고 여야 의원들은 정쟁만 했습니다. 아마도 지방선거까지도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날 것으로 보입니다. 말로만 민생을 찾고 실제로는 호주머니 채울 궁리만 하고 있는 작금의 정치인은 완전히 '건달'이 됐습니다. 민생을 건성건성 여기는 정치인들 반성해야 합니다.

- 오는 25일이면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꼭 1년이 됩니다. 박근혜정부의 지난 1년을 총평 하신다면?

▲인사, 공약 실천 여부, 소통 3가지로 나눠 봤을 때 모두 A학점을 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D나 F학점을 주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는 주요 인사를 앞두고 대통령이 면접을 직접 진행하는 등 신중을 기하고 공약은 이행 여부를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얘기해야 합니다. 예컨대 65세 이상 전원 기초연금 20만원 지급 등의 공약을 못 지키게 됐으면 '보류'라는 말로 포장할 것이 아니라 '파기'라고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면서 소통에 나서야 합니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변호사님 본인의 정치인생에 대해 자평하신다면?

▲저는 1992년 14대 선거 때 신정치개혁당을 만든 사람입이다.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를 한다고 하는데 저는 이미 신정치에 개혁까지 붙여서 시도했었습니다. 영·호남과 충청의 탄탄한 지역구도 위에 김영삼·김대중·김종필씨가 대장 노릇을 할 때 덤벼들어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실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새정치의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허주렬 기자 <carpediem@ilyosisa.co.kr>

 

박찬종 변호사는?

▲법무법인 다올 고문변호사

▲올바른사람들 공동대표

▲아시아경제연구원 이사장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5선 국회의원(9·10·12·13·1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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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