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특별기획⑥>2009년 하늘로 떠난 ‘거성’들





김수환, 노무현 등 사회적 파장 컸던 거목들 영면
잇따른 ‘정신적 지주’들 타계에 국민들 가슴 ‘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에 국민들의 슬픔이 커지고 있다. 한국 민주화를 일궈낸 산증인으로 국민들의 가슴속에 ‘정신적 지주’로 남은 김 전 대통령. 그의 죽음에 국민들은 동요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또 하나 국민들을 허망하게 하는 것은 김 전 대통령보다 앞서 떠난 거목들이다. 올해 들어 유독 존경받던 유명 인사들의 죽음이 끊이지 않았다.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등 마음속으로 의지했던 ‘어른’의 잇따른 타계는 국민들에게 공허함을 안겼다. 2009년 하늘의 별이 된 ‘거성’들의 발자취를 되돌아봤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 주셨는데….”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던 김 전 대통령이기에 이번에도 훌훌 털고 일어날 거라며 애써 위로했던 국민들. 그랬기에 병원에서 들려오는 위태로운 소식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3개월 만에 또…”
잇따른 별들의 죽음

그러나 지난 18일 오후, 듣고 싶지 않았던 비보는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슬픔과 그리움을 담은 조문객들의 발걸음은 빈소로, 인터넷 게시판으로 향하고 있다. 자유와 평등을 위해 한평생을 바쳤던 김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엔 이념과 지역을 초월한 슬픔이 날로 커지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죽음이 국민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허망함을 안긴 것에는 불과 3개월 전 곁을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있다. 한 해에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잃었다는 사실에 비통함이 더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2009년은 전직 대통령뿐만 아니라 사랑과 존경을 받던 거성들의 죽음이 이어지는 잔인한 해가 되고 있다.

올해 세상을 떠나 많은 이들에게 슬픔을 안긴 이 중 하나는 고 김수환 추기경이다. 한 평생 화해와 사랑을 전한 김 추기경은 지난 2월16일 향년 87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1951년 사제서품을 받고 1969년 한국인 최초로 추기경에 서임된 김 추기경은 가난한 자와 약한 자, 고통 받는 자들의 편에 서 나눔의 삶을 살았다.


김 추기경이 종교와 세대를 뛰어넘는 ‘어른’으로 존경받았던 또 한 가지 이유는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나 바른 길을 가지 못할 때 목소리를 냈다는 것. 특히 김 추기경은 독재정권 아래에서 정치적 억압에 맞서 민주화 수호를 위해 노력한 인물 중 하나다.

1972년 8월9일에는 7·4 남북공동성명발표와 8·3 긴급조치, 10월 유신으로 이어지는 정국 혼란 중 박정희 정권의 장기독재체제를 비판하는 ‘현 시국에 부치는 메시지’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성모병원이 세무사찰을 받는 등 정부의 압박은 더해갔지만 김 추기경은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오히려 각종 성명서와 강론을 통해 자유언론과 인권, 민주회복을 강조하며 민주화 수호의 의지를 표했다.

1987년 1월14일 서울대 박종철군이 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1월26일 명동성당에서 인권회복미사를 열어 6월 항쟁의 불씨를 지피는 등 민주화투쟁의 길목마다 발자취를 남겼다.

이처럼 나라를 위해 거리낌 없이 행동한 김 추기경의 선종은 국민들의 가슴을 휑하게 만들었다. 고인이 된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명동성당으로 달려간 국민들의 수는 무려 40만 명.

장례식 5일 동안 전국에서 온 조문행렬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길게 늘어 선 줄로 인해 평균 4시간을 대기해야했지만 누구도 불평 없이 김 추기경의 마지막을 눈물로 보냈다.

장례가 끝난 뒤에도 김 추기경이 남긴 파장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먼저 명동성당에는 가톨릭신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명동성당은 예비신자를 위해 6개월 과정으로 교리반을 운영하는데 김 추기경 선종 이후 열린 3월 교리반의 경우 개강 첫날 신청자가 117명에 달했다. 보통 한 달간 신청한 예비신자 수가 100명 안팎이라는 것을 따져보면 크게 늘어난 수치다.


또 하나 장기 기증에 대한 국민 인식이 한층 개선되고 장기 기증 운동이 확산된 것. 김 추기경이 각막 기증을 한 뒤 영면에 들어갔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선종 이후 2개월 간 장기 기증 신청자는 1만2000명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 4년 동안의 신청자를 모두 합한 숫자에 육박하는 엄청난 증가 추세였다. 이처럼 김 추기경은 사망 후에도 사랑의 정신을 전파하며 영원한 ‘추기경’으로 기억되고 있다.

불과 3개월 전 일어나 큰 파장을 남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도 여전히 국민들에겐 상처로 남아있다. 더구나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점에서 슬픔은 더욱 컸다. 사상초유의 전직 대통령 자살에 충격을 받은 이들로 온라인·오프라인 할 것 없이 애도의 물결이 파도처럼 일었다.

또 일부는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대대적인 촛불집회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에 집회 가능성을 곳곳에서 차단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노짱’의 비극적 죽음
상처 아물기도 전에…

그러는 동안 봉하마을을 찾는 추모객들의 수도 늘어났다. 30도가 넘는 때 이른 무더위 속에서도 발걸음은 이어졌다. 서거 이후 2개월 간 약 200만 명의 추모객이 봉하마을을 다녀갔다는 집계는 국민들의 슬픔을 가늠하게 했다.
추모 열기는 봉하마을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번졌다. 유동객이 많은 번화가에는 어김없이 분향소가 설치돼 봉하마을을 찾지 못한 이들을 위로했다.

현 정부 특히 검찰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는 것도 노 전 대통령 서거가 가져온 파장 중 하나다.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한 검찰수사 초기부터 전직 대통령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도마에 올랐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하고 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지난 3월 중순부터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를 벌여왔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아들 건호씨와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 회장으로부터 600만 달러를 받은 사실을 알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에 초점을 맞춘 수사를 진행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무자비한 수사가 진행됐다는 것이다. 또 노 전 대통령이 뇌물을 수수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 없이 정황과 상식만을 들어 죄인으로 몰고 갔다는 비난도 끊이지 않았다.

유명인 자살사건 이후 어김없이 나타난 베르테르 효과도 일어났다.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치러진 지난 5월29일에는 한 여대생이 노 대통령을 따라간다는 메시지를 남긴 채 자살했다.

여대생 A(23)양은 인천시 계양구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A양은 영결식 방송 사이트에 연결된 컴퓨터를 켜 놓고 목을 매 숨졌다. A양의 휴대폰에는 “나 노통 따라갈래. 잘 지내. 지금까지 미안했어”라는 내용의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또 지난 5월27일에는 노 전 대통령이 목숨을 끊은 방법과 시간대를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자살사건도 발생했다. 이날 B(55·여)씨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 11층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B씨는 남편에게 TV 시청을 권유한 뒤 방으로 들어가 창문을 열고 곧바로 뛰어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투신한 시각은 노 전 대통령이 투신 전 봉하마을 사저를 나간 시각과 거의 일치했다. 또 경찰조사결과 B씨는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면서 가족과 측근들이 다 행복해지는 것 아니냐, 나도 저렇게 하면 나머지 가족들도 편할 텐데”라는 말을 주변에 수차례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도 피어올랐다. 서거 직전까지 함께했던 경호원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면서 네티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미스터리는 대부분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인정하기 힘든 이들의 억측이 주를 이뤘다.

문화·체육인들의 안타까운 타계도 잇따랐다. 특히 끝없는 도전정신으로 희망을 잃은 국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줬던 체육인들의 죽음이 이어져 아쉬움을 더했다.

그중 한 명은 지난 7월17일 세상을 떠난 여성 산악인 고미영씨. 그는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8125m)를 등정하고 내려오던 중 추락해 사망했다.

현장에 있던 산악인들과 파키스탄 당국은 헬기를 동원해 그를 구조하기 위해 나섰지만 악천후와 눈사태에 의한 2차 사고 위험으로 난항을 겪다 추락 나흘째인 7월16일 오전 11시쯤(현지시간)에야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12년의 공무원 생활을 접고 끝없는 도전의 삶을 살았던 고씨. “강하다는 것은 이를 악물고 참는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란 말을 남긴 고씨는 도전하는 삶에서 행복을 찾는 의지와 용기를 국민들에게 일깨워줬다.

많은 이들이 참석해 눈물을 흘린 고씨의 영결식에서 최홍건 한국산악회장은 애도사를 통해 “고미영씨는 불나비와 같았다. 등잔불에 온몸을 다치면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며 고인의 도전정신을 되새기기도 했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씨의 갑작스런 사망도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지난 4월 재혼해 행복한 제2의 인생을 꾸려나가던 조오련은 심근경색으로 5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끝나지 않은 도전
국민에 희망 전해

1970년 열린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따 한국 수영 역사상 최고의 쾌거를 이룩한 ‘원조 마린보이’ 조오련은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도 국민들의 가슴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1980년 대한해협을 13시간 16분 만에 횡단하고 1982년 도버해협을 9시간35분 만에 횡단하면서 해외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한국인의 투혼을 세계에 알렸다.

2005년에는 또 두 아들과 함께 울릉도와 독도를 18시간 만에 횡단했다. 독도영유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독도를 33바퀴 도는 프로젝트에도 도전해 적지 않은 나이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불황과 경기침체에 지친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 대한해협 횡단 도전을 선언했던 것. 그는 지난 8월15일을 디데이로 잡고 마지막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오련은 지난 5월 한 방송사에 출연해 “50년 수영인생을 마무리하고 싶고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고 싶다”며 대한해협 횡단 도전의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는 마지막 도전을 방해했고 국민들에게 비통함을 남겼다.

전문가들은 “마음속으로 의지했던 시대의 지도자나 희망을 안겨줬던 유명인들을 잃은 상실감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이어질 수 있으니 개인의 감정조절에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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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당사자’라고 주장한 30대 오모씨의 행위와 이력을 두고 파장이 일고 있다. 그는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이자 ‘평양 무인기 작전’을 목적으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 이사였다. 2년 전부터의 행적도 수상하다. 정보사령부 휴민트 요원들과 수차례 접촉해 사실상 대북 공작을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 17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오씨와 정보사의 직접적 연결고리가 형성된 건 2024년 5월 이후다. 정보사와 오씨와의 접촉은 A 대령의 승인하에 이뤄졌다. 그는 정보사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 이후 속초 HID 부대장을 마치고 돌아온 인물로 조직개편 TF(태스크포스) 팀장 및 기반조성단장을 맡았다. 수상한 접촉 앞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인 오씨는 윤정부 시절 ‘북한 무인기 대통령실 상공 침투’에 대응할 목적에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의 이사로 근무했다. 그는 지난 16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 외관과 위장 무늬, 색 등이 자신이 북한으로 보낸 무인기와 일치한다”며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목적에 대해 “북한 우라늄 공장의 방사선과 중금속 오염도 측정”이라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무인기를 북한으로 보냈다는 취지로 읽힌다. A 대령은 ‘정보사 기능·역량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수도권 안가 설립을 기획했다. A 대령의 계획대로 B 소령은 오씨와 C 상사는 김모씨를 접촉했다. B 소령은 휴민트(HUMINT·820·인간정보) 요원이다. 이들은 오씨와 김씨를 통해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려 확보한 영상 증거를 확인했다. 이 시기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언급했던 정보사의 국방과학연구소(ADD) 접촉 및 무인기 개발 의혹이 시작되던 때와 겹친다. 당시 정보사는 ADD에 “드론에 전단통을 달 수 있느냐”고 문의한 바 있다. ADD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고 내란 특별검사팀에 진술했다. 정보사 간부는 “누구의 지시로 국방과학연구소에 드론과 관련해 연락했냐”는 특검팀의 질문에 “문상호의 지시였고 문 전 사령관이 원천희 전 국방정보본부장에게도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오씨의 영상 증거가 북한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A 대령은 이후에도 B 소령과 오씨의 접촉을 허가했다. ‘지속적 협력 관계’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A 대령은 오씨에게 이른바 ‘협조비’를 제공한 의혹을 받는다. 사비가 아닌 ‘정보사 공작금’ 수십만원을 정기적으로 전달했다는 게 골자다. 이 같은 행위는 정보기관과 협조·정보원 간 이뤄지는 통상적 거래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정보기관은 국제범죄 및 마약 관련 첩보를 제공한 ‘야당’에게 많게는 수백만원의 금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정보사가 오씨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4년 여름 ‘대북 공작’ 의심 정보사와 지속적 접촉 정보사·ADD 연락 시기 겹쳐 ‘김태효 안보실’ 연루설도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A 대령과 오씨가 일반적 협력 관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대북 공작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정보기관이라면 늘 하는 업무다. A 대령이 오씨에게 ‘무인기를 북으로 보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고 그저 오씨가 회사를 설립하는 데 지원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A 대령의 부하인 B 소령은 오씨가 북한 전문 매체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줬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언론사는 오씨가 발행인으로 있는 곳으로 2025년 3월 중순부터 첫 기사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을 끝으로 기사가 작성되지 않은 걸 보면 오씨가 언론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회사 운영에도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정보사 출신 한 소식통은 “오씨가 채널A 인터뷰에서 무인기를 세 번 날렸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 걸로 보인다. 적어도 수십번은 날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린 건 정보사 조직 차원의 지시가 아니라 오씨의 독단적 행동이다. 오씨와 접촉했던 담당자들도 그의 무리수 때문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오씨가 대통령실 출신임과 동시에 정보사와 접촉한 배경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정부 안보실 2차장 산하 정보현안대응팀에 파견됐던 HID 출신 오모 중령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오 중령은 2022년 8월 국정원장 비서실에 근무하다가 다음 해 3월 대통령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자신이 확보한 첩보를 인성한 전 2차장이 아닌 ‘안보실 실세’ 김태효 전 1차장에게 수차례 보고했다. 오 중령의 행위를 두고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비정상적 보고”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김 전 1차장은 국방이 아닌 외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대북 문제에 어떤 군사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전략을 세우는 데는 신원식 전 안보실장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평가다. 사실상 ‘국방 문외한’인 김 전 1차장은 2023년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HID 부대를 방문했다. 그는 “2023년 6월 초 정보당국 관계자들과 HID 부대를 격려 방문한 바 있지만 1년7개월 전에 있었던 군 부대 격려 방문을 이번 계엄 선포와 연결 짓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평양 작전' 준비하려 일종의 테스트 아니었나 의심” "오씨 독단적 행동 무인기 날리라 지시한 적 없어”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윤석열 전 대통령도 오려고 했다는 건 사실이다. 김태효가 그때 왜 왔는지 모르겠다. 와선 안 되는 건 아닌데 올 일이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 가지 않는 해명”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윤 전 대통령이 오고 싶어 했고 안보실이 그의 HID 방문이 검토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시에 대통령 방문 가능성 때문에 대비 회의까지 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오 중령이 2023년 12월 안보실 2차장 산하 국가위기관리센터 정보현안대응팀에 들어가게 된 건 김 전 1차장이 HID를 방문한 직후다. 오 중령은 인 전 2차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인 전 2차장도 “공개된 자리서 말하기 어렵지만 제가 통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중령을 포함한 팀원들의 보고서는 인 전 2차장이 아닌 김 전 1차장이 검토했다. 안보실은 이 비밀 TF가 “규정화된 테두리 밖에서 대북 특수정보를 분석하는 팀”이라며 계엄과 관련해 정보사와 소통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비밀 조직이 아니라 위기관리센터에 배치된 ‘정보융합팀’이다. 정보융합팀은 문재인정부의 정보융합비서관실을 대북 정보 분석에 특화시켜 슬림화한 조직으로, 2022년 5월1일 대통령직 인수위 브리핑서도 해당 조직의 신설 취지와 배경을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정보사 차원에서 북한으로 무인기를 보내는 건 부담이 크다. 그래서 민간과 협업해 일종의 테스트를 진행한 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안보실이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적극적으로 기획 및 실행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대북 공작 준비? 그러나 이는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오 중령의 경우 내란 특검팀 소환 조사에서 김 전 1차장에게 정보 보고를 했던 사실은 인정했으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기획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정부는 현재 군·경합동조사TF를 꾸려 무인기를 북한에 보낸 정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수사 중이다. 무인기를 보냈다고 주장한 사람의 과거 이력과 정보사와의 접촉이 확인된 만큼 숨겨진 목적에 대해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