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계도 예외일 수 없는 <도핑테스트>

알면 별것 아닌 반드시 필요한 검사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는 지난 3월5일 서울 태평로 프라자호텔에서 2009년도 정기총회를 열고 도핑테스트 도입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도핑시기와 대상은 2009년 정규투어 4~7개 대회 중 무작위로 선수를 선정하여 실시할 예정이다. 세계적으로 골프는 ‘멘탈운동’이고 프로골퍼 간 실력 차이는 백지장 한 장 정도이며 승부는 얼마나 집중하느냐에 달렸다는 인식이 강해 최근까지도 도핑테스트가 도입 되지 않았다.

KLPGA 올해부터 도핑테스트 시행
도핑테스트 이해하고 부작용 막아야

물론 타이거 우즈나 아니카 소렌스탐 같은 뛰어난 선수들을 향한 어느 정도의 시샘 어린 의혹이 간간이 있어 왔다. 또 모한 선수가 약물을 사용했다는 일방적인 주장도 있었지만 소수의 검증되지 않은 의견 때문에 도핑테스트를 도입할 수는 없었다.
소수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운동선수는 오랜 시간 운동으로 몸을 단련한 사람이라 갑자기 근육이 생긴다고 해서 운동능력이 향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탓도 있다.

약물의 힘 빌린다?

사실 이런 의견도 도핑테스트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나온 말이긴 하다. 도핑테스트는 스테로이드같이 근육 강화제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신경안정제인 베타안정제도 도핑테스트에 걸리는 약물로서 ‘골프는 집중력이 중요한 경기’라는 의견만을 놓고 보자면 약물의 힘을 빌려 심리적 안정을 얻고자 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골프계 도핑테스트는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대회에서 처음 시작됐다. 지난 2006년 7월 국제골프연맹(IGF)이 “약물복용 근절운동에 동참하겠다”며 세계 아마추어팀 골프선수권대회에서 약물검사를 시행했던 것. 게다가 타이거 우즈, 그렉 노먼, 잭 니클로스 등이 스스로 검사를 받겠다며 발 벗고 나서자 PGA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PGA는 2007년 11월 “12월부터 2008년 6월까지 약물검사에 대한 교육을 한 뒤 2008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약물검사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LPGA와 EPGA, JGA도 세계 골프계의 흐름에 동참하겠다며 뜻을 함께했으며 올해 우리나라의 KLPGA도 도핑테스트를 시행하게 됐다.
도핑테스트의 실시를 미뤄왔던 단체들이 내세우는 것 중 하나가 테스트에 드는 비용문제였다. 그러나 도핑테스트라는 것이 모든 이들에게 하는 것이 아닌 무작위로 선정된 몇몇 선수에 해당하는 것이라 그리 많은 금액이 들지는 않는다. 개개인은 약 40만원, 단체로 테스트를 받게 되면 약 20만원의 비용이 든다.

도핑테스트는 적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시행 자체에 의의가 있는 것으로서 테스트에 선정된 선수가 의혹 어린 시선을 받는 중이라면 많지 않은 비용으로 자신의 결백을 알릴 수 있게 된다. 선수로서 도핑 없이(금지방법의 사용 없이) 깨끗한 환경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 확인을 하는 것이다.
지난 2002년 문화부는 각 프로 스포츠 단체에 도핑검사 도입을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그간 이를 실행한 것은 KBO뿐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K리그)은 선수계약서 제4조 9항에 ‘협회, 연맹이 지정하는 도핑테스트에 참가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외국인 선수 입국 시 단 한 차례 검사할 뿐이었다. 국내 선수는 이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난해 의무분과위원회에서 “2008시즌부터 팀당 2명씩 연 1회 이상 도핑검사를 하자”는 건의가 나왔지만 이사회에서는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들에 대해 “도핑테스트의 필요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아쉬운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골프 역시 이런 비난의 화살에서 벗어날 수 없었지만 올해부터는 달라지게 됐다. KLPGA는 올시즌 첫 시행을 앞둔 도핑테스트와 관련 “도핑테스트는 2016년 하계올림픽에 골프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도록 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됨에 따라 지난 2007년 롤렉스 세계랭킹 회의 당시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JLPGA),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등과 시행하기로 이미 합의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작위 선수 선정 도핑테스트

이어 “미국은 이미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고 우리도 애초 지난해부터 추진키로 했다가 1년여의 준비시간을 더 가졌다. 하지만 오는 4월 초 LPGA, JLPGA 등이 모두 참석하는 가운데 열릴 도핑 관련 회의 이후 본격적으로 시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KLPGA는 이에 따라 올시즌부터 4∼7개 대회에서 도핑위원이 무작위 방식으로 선수를 선정해 도핑테스트를 실시키로 했으며 적발된 선수는 1회 위반 시 1년 자격정지, 2회 위반 시 2년 자격정지, 3회 위반 시 영구 제명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테스트를 받게 되는 선수도 주위에서도 ‘놀랄 것이 없는 검사’이긴 하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있다. 프로골퍼가 ‘도핑테스트 때문에’ 아파도 약을 맘대로 먹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투어 프로들이 큰 고민에 빠져 있다.
실제 2008년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 시즌 개막전인 ANZ 레이디스마스터스에서 ‘골프 지존’ 신지애는 코스보다는 감기 몸살과의 싸움을 펼쳐야만 했다. 경기 전부터 감기 몸살로 고열에 시달리고 편도선염까지 도저 응급실 신세까지 졌다. 그러나 도핑테스트 때문에 감기약도 함부로 먹지 못했다. 겨우 해열제 한 알과 병원에서 링거를 맞는 게 전부였다.

신지애가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미국 무대인 LPGA투어는 지난해부터 무작위 선택(랜덤)으로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를 병행한 도핑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 도핑테스트에서 첫 번째 양성반응은 1년간 자격정지, 두 번째 양성반응은 2년간 자격정지, 세 번째부터는 영구 제명된다.

“이젠 진통제도 못 먹어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양선수에게 종종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한약과 건강보조식품이다. 체력 소모가 많은 선수들은 한약이나 보양식 등을 자주 먹게 되는데 이런 제품 혹은 식품은 단일 성분의 정제된 약과는 달리 수많은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금지약물이 검출될 수도 있다.
따라서 선수들은 그 성분이 명확지 않은 약제나 건강보조식품 등은 함부로 복용해서는 안 되고 복용을 원하는 경우 반드시 사전에 함유 성분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실제 한약재나 보양식에 대한 도핑테스트를 의뢰, 결과를 지켜보고서 복용하는 프로선수가 늘고 있다.

최나연은 지난해 LPGA투어 진출에 앞서 45만원을 들여 KAIST 도핑센터에서 검사를 받기도 했다. 안선주는 “감기에 걸리면 집중력이 떨어져 쇼트 게임이나 퍼팅할 때 어려움이 많다. 또한 프로들은 허리나 무릎, 발목 통증이 잦지만 이제는 진통제도 먹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불법적인 방법이 아닌 합법적으로 약국에서 구하는 약의 상당한 부분에 금지약물이 포함돼 있다. 시판되는 약이라고 해서 금지약물로부터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금지약물 포함 여부를 확인할 시간이 없을 정도의 응급 상황이 발생하여 불가피하게 금지약물을 사용한 경우, 치료 즉시 ‘치료목적사용 면책’을 신청하여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드물게 발생하는 상황으로 응급상황에서의 소급 치료목적사용 면책은 정밀한 검토 후에 승인 여부가 판정되니 이를 유념해야 한다.

스포츠에서 경기력 향상 목적의 약물복용행위(doping)는 근절되어야 할 불법행위일 뿐만 아니라 선수 건강에 위해가 되며 스포츠 윤리에도 크게 반하는 행위다. 단 도핑테스트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되겠기에 선수 개인이나 주위에서는 경기력 향상을 위한 노력과 함께 항상 도핑에 대해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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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