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테마2>돈 권력 그리고 사람들…대통령 아들 수난사

‘견물생심’ 못 참은 덕에 ‘비리열전’ 주인공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긋지긋하게 되풀이되는 것 중 하나가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열전’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전 대통령 아들의 비리가 드러나 시끌시끌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박연차 리스트에 오르고 검찰조사를 받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이다. 박 회장이 건넨 300만 달러가 건호씨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되면서 그도 역대 대통령의 아들들처럼 법의 심판을 받는 수모를 겪을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함께 말 많고 탈 많았던 역대 대통령의 아들들도 함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돌아봤다.

노 전 대통령 아들 건호씨 박연차 회장과 연루 정황 포착
건호씨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3백만 달러 흘러 들어가

대통령 아들의 비극이 시작된 것은 고 이승만 전 대통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와의 사이에 자녀를 보지 못한 이 전 대통령은 이기붕 전 부통령의 아들 강석씨를 양자로 삼았다.
이로 인해 부통령의 아들에서 대통령의 아들이 된 강석씨의 비극은 4·19 혁명으로 이 전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낸 뒤 일어났다. 권총으로 이기붕 전 부통령과 어머니 박마리아, 그리고 동생 강욱씨를 차례로 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각종 유혹 떨치지 못해
줄줄이 이어진 구속 행진

그 뒤를 이어 수난의 인생길을 걸은 대통령 아들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다. 한때 지만씨의 인생을 나락에 빠뜨린 것은 돈도, 권력도 아닌 마약이었다. 그는 번번이 백색가루의 유혹을 떨치지 못해 가족과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지만씨가 처음 마약혐의로 적발된 것은 1989년 10월. 당시 그는 코카인을 복용한 혐의가 드러났으나 초범인데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란 것과 부모의 비극적인 죽음에 따른 충격 등을 이유로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그 후 지만씨는 치료감호소에 들어가 마약 전문치료를 받은 뒤 사회에 복귀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지만씨는 마약의 유혹을 거스르지 못했다. 1991년, 1994년, 1996년, 1998년 등 수차례 마약투약혐의가 드러나 구속된 것. 이처럼 반복해 마약범죄를 저질렀지만 법원은 그에게 늘 관대했다.

2004년에는 법원이 검찰의 치료감호 청구를 기각하기도 했다. 당시 2심 재판부는 “박씨가 사건 당시 8차례 마약을 복용한 점 등은 객관적인 치료감호 요건에 해당된다”며 “그러나 재범을 하지 않겠다는 본인 의지가 확고하고 보호관찰에 성실히 응한 태도 등으로 미뤄 박씨 상태가 대법원 판결 때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판결이유를 밝혔다
2006년에는 지만씨에게 마약을 건넨 40대 남성이 법조브로커 김홍수씨에게 사건 해결을 청탁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도 법의 심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하면서 71억여 원의 증여재산을 은닉하고 조세를 포탈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6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 뒤 서대문세무서는 재용씨가 지난 2000년 외조부로부터 증여받은 167억원 상당의 국민채권 중 73억5000만원어치는 외조부로부터, 나머지 93억5000만원어치는 아버지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보고 증여세 80억원을 부과했다.
재용씨는 이에 “이 채권은 지난 1988년 결혼축의금으로 들어온 20억원을 외조부께 관리를 맡겨놓은 돈으로 외조부가 이 돈을 관리하면서 증식돼 2000년 말 채권형태로 돌려받은 것”이라며 증여세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역대 대통령 아들들, 부정·비리 사건 비일비재
마약, 부적절한 사생활, 정경유착 등 수난 반복


재판부는 그러나 “원고는 20억원을 결혼축의금이라고 하지만 결혼축의금을 조성하고 그 돈을 증식한 경위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자료는 전혀 없다”며 “일반 거래관념에 의할 때 20억원의 자금을 13년 만에 200억원으로 증식했다고 믿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서대문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바 있다.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도 세간에 오르내렸다. 재용씨는 이혼과 재혼을 반복해 현재 탤런트 박상아씨와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그런데 2003년 5월 전 부인과 혼인관계가 유지된 상태에서 박상아씨와 미국에서 법적 결혼을 해 이중혼 논란에 휩싸이는 등 수많은 의혹을 받기도 했다.

‘소통령’ 권력 누리다
연이어 ‘철창’ 신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역시 대통령 아들로서의 권력을 마음껏 누리다가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김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소(小)통령’으로 불릴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현철씨의 비리가 처음 드러난 것은 1997년으로 한보그룹 비리 사건에 연루된 것이 포착되면서부터다.
사건의 발단은 한보그룹이 부도를 내면서 불거졌다. 부실 대출의 규모가 5조70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인데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 천문학적 금액의 돈을 대출하는 과정에서 정계와 금융계가 유착해 부정과 비리가 행해진 것이 드러나 온 나라가 떠들썩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비리 수사 과정에서 현철씨가 깊숙이 관여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33명이 조사를 받았는데 그중 한 명이 현철씨였던 것. 그는 기업인 6명으로부터 66억여 원을 받고 12억여 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1997년 2월 구속됐다. 이 일로 인해 아버지 김 전 대통령은 임기 말 참담한 표정으로 대국민사과까지 한 바 있다.
그러나 현철씨의 비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조동만 전 한솔 부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20억원을 받아 또 한 번 구속이 된 것이다.

아들 셋 모두 비리연루
비운의 역사는 계속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도 부정과 비리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장남인 홍일씨는  2003년 ‘나라종금 로비’ 수사과정에서 1억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가 드러나 불구속 기소됐다. 차남 홍업씨는 2003년 5월 기업체 이권에 개입해 청탁 대가로 25억여 원, 정치자금 명목으로 22억여 원을 받고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구속됐다.

삼남 홍걸씨는 2001년 3월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로비와 공사 수주 로비 대가 등으로 36억9000여 만원을 받고 2억2000여 만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철창신세를 졌다. 또 ‘대우그룹 구명 로비’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들의 아들들은 권력의 최측근인 혈육이라는 점을 이용해 권력을 누리다 법과 대중들의 심판을 받는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설마’했던 노 전 대통령의 아들마저 검은돈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는 정황들이 나오면서 또 한 번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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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