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 야구인생 19년 희로애락

'IMF 시련' 국민에 희망을 던졌다

[일요시사=연예팀]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전격 은퇴를 선언하며 프로인생을 마감했다. 1994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LA다저스에 진출해 아시아 선수로는 최다승인 124승을 기록한 박찬호. 이제 마운드 위에서 당당했던 그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IMF 금융위기 때 희망을 던진 박찬호의 불같은 강속구는 국민의 뇌리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야구영웅 박찬호가 마운드를 떠난다. 단지 소속팀을 이전한다는 게 아니다. 현역을 은퇴하며 19년 프로선수의 화려한 삶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한화 구단은 “박찬호가 금일 오후 본인의 은퇴 의사를 구단에 전달했고, 구단은 박찬호의 은퇴 결정을 존중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국야구의 ‘살아있는 레전드’ 박찬호는 정든 마운드를 떠나게 됐다.

국민영웅 등극

박찬호는 한국야구의 선구자나 다름없다. 충청도 공주 출생인 그는 공주중동초-공주중-공주고를 거쳐 한양대에 입학했다. 학창시절부터 빠른 강속구를 던지며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던 박찬호는 한양대에 진학한 후 최고 구속 156km를 찍는 등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그는 공주고 3학년 시절인 지난 1991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를 통해 처음 다저스스타디움에 발을 디뎠다. 이후 1993년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1승2세이브 평균자책점 1.10으로 활약해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 대학교 2학년이었던 지난 1994년, 박찬호는 LA 다저스와 120만달러의 금액을 받고 성공적인 계약을 이끌며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게다가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17번째 선수라는 타이틀도 얻게 됐다.


그러나 미국 프로야구의 벽은 높았다. 단 2경기 만에 마이너리그로 내려가게 된 것. 그는 마이너리그에서 2년간 칼을 갈며 재기할 생각만 다졌다. 1996년이 되던 해, 2년 간 다잡았던 노력과 땀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중간계투로 종횡무진 활약하며 5승(5패)을 거둔 박찬호는 마침내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는데 성공했다. 이듬해부터는 믿고 쓰는 선발투수로 발돋움하며 승승장구했다.

이어 그는 1997년 14승(8패), 1998년 15승(9패), 1999년 13승(11패), 2000년 18승(10패), 2001년 15승(11패)으로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따내며 다저스의 에이스이자 메이저리그에서도 손에 꼽는 특급 선발투수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이 시기는 우리나라가 IMF라는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었기 때문에 박찬호의 빛나는 활약이 국민에게는 실낱같은 희망과도 같았다. 즉 박찬호는 국민 영웅으로 우뚝 올라선 것이다.

국가의 위상을 드높인 그는 이윽고 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와 계약했고, 시즌 후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간 최대 6500만달러라는 초대형 FA 계약을 터뜨리며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기대를 한몸에 받고 간 텍사스에서 박찬호는 첫 번째 시련을 맞이했다. 2002년 9승(8패)으로 기대에 한참 못 미친 성적을 보여준 그는 허리와 햄스트링 부상을 차례로 당하며 2003년 1승(3패), 2004년 4승(7패)에 머물렀다. 박찬호를 향한 텍사스 주 지역여론은 차갑게 식었고 팬들의 비난이 들끓면서 육체적·정신적으로 고초를 겪었다.

긴 시련 끝에 부상에서 회복된 그는 2005년 텍사스에서 8승을 거두며 개인 통산 100승을 채우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박찬호는 고액 연봉에 비해 한참 못 미친 성적으로 ‘먹튀’라는 오명을 떠안게 됐고,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로 트레이드 돼버리고 말았다.

숱한 좌절과 고비에도 박찬호는 같은 해 2005년, 12승(8패)을 거두며 재기에 성공, 2006년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7승(7패)을 거뒀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다름 아닌 장출혈이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건강악화에 박찬호의 재기는 기약할 수 없을 듯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그가 아니었다. 박찬호는 생애 첫 포스트시즌을 위해 불굴의 의지를 보이며 빠르게 회복을 찾아갔고, 데뷔 후 처음으로 가을잔치 무대를 밟는 영광을 누렸다.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아시아 선수 최다승
‘굿바이 마운드’ 한화 유니폼 입고 전격 은퇴


축제도 잠시 그에게는 또 다른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7년 뉴욕 메츠와 계약한 박찬호는 단 1경기 출전이라는 굴욕을 맛봐야만 했다. 이어 불안한 성적 때문에 시즌 중 방출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방출된 뒤 그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계약했다. 그런데 이는 메이저 계약이 아닌 마이너 계약이었다. 또 다시 마이너리그로 추락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해 박찬호는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이후 가장 오랜 시간 마이너리그에서 보냈다. 모두가 “포기하라”며 고개를 저었다.

주위의 만류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2008년 친정팀 LA다저스로 돌아온 박찬호는 선발투수가 아닌 불펜투수로 4승(4패)을 거두며 보란 듯이 부활했고, 2009년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옮겨 3승(3패)으로 불펜의 한축을 맡으며 생애 첫 월드시리즈 무대까지 밟았다. 이듬해 2010년 박찬호는 우승반지 하나만 노리고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으나 부진을 면치 못해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됐고,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옮겼다. 시즌 성적은 4승(3패) 평균자책점 5.12로 다소 인상적인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

지난 1994년 처음으로 발을 디딘 후 17년간 9개의 팀을 옮겨 다닌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 476경기 124승98패, 평균자책점 4.36, 탈삼진 1715개로 통산 승수는 아시아 출신 선수로는 최다승이며 1993이닝으로 최다 투구이닝을 달성했다.

오랜 시간 동안 야구인생을 엮어나갔던 메이저리그 생활을 청산한 뒤 그는 일본프로야구 오릭스에서 7경기 중 1승5패, 평균자책점 4.29를 기록했다. 그리 훌륭한 성적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그는 1년 동안 일본에서 메이저리그와는 다른 야구를 배웠다.

18년간의 해외 선수 생활을 뒤로 한 그는 우여곡절 끝에 오랜 꿈이었던 고향 팀 한화이글스 유니폼을 입었다. 명성에 걸맞게 연봉을 백지위임하며 최소 연봉 2400만원, 옵션 6억원 전액을 야구발전 기금으로 쾌척하는 위엄을 보였다.

개막 후 7경기 연속 선발등판한 날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티켓파워’를 대대적으로 과시한 박찬호는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녹슬지 않은 기량을 펼치며 국가대표 에이스 류현진과 함께 원투펀치를 이뤘다.

‘먹튀’ 오명도

베테랑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국내 야구팬들은 살아있는 레전드 박찬호가 투구를 던질 때마다 환호를 내지르며 열광했다. 그러나 허리와 팔꿈치 통증이 도진 후반기에 그는 타 팀 타자들로부터 난타 당하기 일쑤였고, 체력도 예전만큼 받쳐주지 못했다. 결국 마지막 프로인생 1년 동안 23경기 5승10패 평균자책점 5.06의 아쉬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마감 후 박찬호는 오랜 고민 끝에 은퇴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며 20여 년에 이르는 프로선수로서의 삶을 내려놓았다.

이제 프로야구선수 박찬호는 없다. 그러나 그가 몸소 보여준 야구 열정과 힘들 때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게 해준 불꽃같은 희망은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