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풀살롱-호텔 연계 '풀살롱' 잠입취재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1.30 12:06:27
  • 댓글 0개

2차 티켓 불티…경찰 덮쳐도 불야성

[일요시사=사회팀] 룸살롱과 호텔은 '공생관계'다. 그래서 생긴 게 '풀살롱'이다. 풀살롱은 성매매 단속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오히려 더 생겨났다. 호텔 내에 있는 만큼 적발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또 불황을 맞아 '2차'까지 포함한 가격이 비교적 저렴해진 측면도 손님을 끄는 요소다. 객실 한 층을 통째로 성매매 장소로 이용해온 L호텔을 시작으로 강남권 대형 풀살롱들을 돌아봤다.

 

지난 18일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L호텔 내부에 풀살롱을 차려놓고 성매매를 한 업자와 호텔 운영자, 성 매수 남성 등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호텔 안 풀살롱과 연계해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강남 L호텔 사장 고모(56)씨와 F풀살롱 업주 이모(35)씨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또 성 매수남 7명, 여종업원 7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호텔과 룸살롱의
이유 있는 '공생'

지난 14일 단속을 벌인 경찰에 따르면 고씨와 이씨는 지난 2010년 7월부터 최근까지 지하 6층~지상 15층 규모의 L호텔의 12층과 13층에서 F풀살롱을 차려놓고 성매매를 알선했다. 강남 일대에서 '고품격 란제리 클럽'으로 유명한 이 풀살롱은 한 건물에서 2차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편리함 때문에 높은 인기를 누렸다.

호텔 업주와 풀살롱 업주는 호텔 객실을 성매매 장소로 이용하기로 계약한 뒤 손님들로부터 1인당 34만원을 받고 음주와 2차 성매매까지 가능한 풀살롱 영업을 해왔다. 또 열쇠전담 직원까지 두면서 신원 노출을 꺼리는 성 매수 남성들이 로비에 갈 필요 없이 객실로 바로 내려갈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했다.

L호텔과 F풀살롱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 협력해왔음이 밝혀진 것이다. 타 호텔 및 숙박업소도 호텔 내 있는 풀살롱과 안전한 '2차'를 위한 공모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


경찰에 따르면 L호텔의 12∼13층에는 661㎡(200평) 규모로 운영되는 룸살롱이 있었고 10층 객실 19개는 성매매 장소로 이용됐다. L호텔의 중국 및 일본 관광객들은 성 매수 남성과 여종업원이 한 엘리베이터를 사용해 불쾌하다는 중국 및 일본 관광객의 민원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이에 경찰은 현장답사 후 호텔을 급습해 성관계 현장을 적발한 것.

당시 경찰은 "호텔 10층 키를 풀살롱 직원이 관리하며 객실로 손님을 안내하는 등 성매매를 알선한 점이 확인됐다"며 "해당 호텔에 대해 관할구청에 행정처분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자는 경찰 발표 다음 날 7시30분께 L호텔을 다시 찾아가봤다. 경찰의 단속 후 영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L호텔에 다다르자 짙은 화장을 한 아가씨들이 호텔로 들어가고 있었다.

L호텔 란제리클럽 단속 직후 가보니 "여전히 성업중"
"나 어제 뉴스에 나왔어" 호스티스·웨이터들 비웃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문에 있어야 할 무궁화 호텔 등급표시가 없었다. 앞서 많은 언론에서 L호텔을 두고 무궁화 5개짜리 특급호텔이라고 보도된 것을 본 터라 의아했다. 프런트 직원에게 "몇 등급 호텔이고 왜 무궁화 표시가 없느냐"고 물으니 호텔직원은 "L호텔은 특2급에 해당한다"며 "지금 등록절차가 진행 중이다"고 답했다.

의문을 품은 채 단속이 있었던 객실을 둘러보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F풀살롱 종업원으로 보이는 아가씨 4명, 남자 직원 1명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연히 이들의 대화를 엿듣게 됐다.

아가씨들은 전날 있었던 언론보도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듯 했다. 이들은 "뉴스에 나온 거 봤어? 동영상 보니 완전 대박이더라" "어떻게 그렇게 찍혔을까" "뉴스 보니까 정말 끝까지 다 나오더라. 내 모습도 나왔잖아"라는 등의 대화를 하며 웃었다. 의외로 밝은 모습이었다.

이들이 12층에서 내리는 것을 확인한 후 10층 단속 현장으로 향했다. 기자는 불과 5일 전 단속이 이뤄진 만큼 객실이 비워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붉은 조명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고 있는 객실 복도는 단속이 있었던 곳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 조금 기다리자 일본인 관광객 2명이 10층의 한 객실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F풀살롱이 있는 12층으로 향했다. F풀살롱도 정상적으로 영업하고 있었다. 업소 직원이 2명이 기자를 반기며 "몇 번 방을 찾아 왔습니까"라고 물어왔다. 이에 신분을 밝히고 언제부터 영업을 재개한 것인지 물었다. 그러자 그와 풀살롱 직원들은 기자를 경계하며 "지금 영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것보다 더 큰 타격이 있겠느냐"며 손가락으로 텅 비어있는 예약판을 가리켰다. 이어 "기자들이 너무 많이 와서 마음 같아서는 입구에서부터 못 들어오게 막고 싶다"며 기자를 엘리베이터 쪽으로 이끌었다.

단속에 걸려도…
성매매 알선 여전

건물을 빠져나온 후 다음 날 F풀살롱이 성매매 영업을 계속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손님을 가장해서 한 직원과 통화했다. 예약을 하고 싶은데 설명해달라고 하자 그는 "1차는 란제리 입은 여종업원과 룸에서 1∼2시간 즐기고, 2차는 호텔 객실로 직행해서 1시간 즐거운 시간을 가지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더 캐묻자 "쩜오급 되는 여성들이 하루에 70명 정도 출근하고 있는 만큼 하드코어 업소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단속이 심해져서 요즘엔 10시 이전에는 정상영업만 하고 10시 이후에 와야 2차까지 가능하다"고 답해왔다.

이 직원의 말에 따르면 불과 며칠 전 갑작스러운 경찰의 단속을 맞아 업주와 종업원이 검거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매매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영업정지가 내려진 것이 아니고 행정처분 대기 중이기 때문에 영업을 계속하는 것"이라며 "성매매를 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면 손님이 떨어져 나가니까 일단 그렇게 말한 것 아니겠느냐. 또다시 적발되면 건물 전체 허가가 취소될 마당인데 성매매 영업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를 의아하게 만들었던 '무궁화 없는 특급호텔'은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L호텔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다. 호텔 소개 상단에는 '신개념 비즈니스 특급관광호텔'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등급은 '특2급 예정'이라고 돼 있었다. 2008년 12월16일 개관해 4년이 흘렀는데 아직 한국관광호텔업협회 등에 등록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관광호텔업협회 관계자는 "L호텔 업주는 4년 전께 심사절차를 받기 위해 찾아온 적은 있지만 이후 서류가 제출되지 않았다"며 "내년부터 법이 바뀔 예정이지만 현재로는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처벌규정도 없고 강제성도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 시내에서 L호텔 정도의 큰 규모의 호텔이면서 등록하지 않은 곳은 없다"며 "업계에서도 이번 언론보도도 그렇고 L호텔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매직미러 초이스
'아가씨 쇼핑'

기자는 L호텔처럼 호텔 내부에 풀살롱을 두고 성매매를 일삼는 곳을 더 찾아보기로 했다. 서초구 잠원동에 위치한 B관광호텔은 지하에 D풀살롱을 두고 있었다.

B호텔 지하 1∼2층에 있는 D풀살롱은 B호텔 로비를 거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했다. 즉 D풀살롱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곧바로 B호텔 객실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D풀살롱 프런트 근처에 몰려있던 4명 이상의 직원들이 기자를 반겼다. 한 직원이 안내했다. D풀살롱은 규모가 엄청났다. 복도를 따라 다닥다닥 늘어선 룸은 그 수를 셀 수 없었고 직원들만 해도 40여 명은 훌쩍 넘어 보였다.


룸을 둘러보기 위해 직원과 함께 복도를 걷는 동안 가슴이 깊게 파인 복장을 한 아가씨 2명이 지나갔다. 룸으로 향하는 듯했다. 또 한쪽 룸에서는 그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계약을 진행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직원은 룸 세 군데를 보여주며 "지하 2층에도 룸이 있고, 아가씨 대기실이 있다"고 귀띔했다.

비용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비싼 술은 한없이 비싸지만 가격 적당한 17년산으로 해서 거품 줄여 잘 모시겠다"고 대답했다. 이어 "룸비와 호텔비, 그리고 2차비까지 다 포함해서 1인당 55만원"이라며 "현재 강남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곳으로 룸 수 70개에 출근하는 아가씨만 220명에서 23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것이 과장인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기자가 2차 장소에 대해서 묻자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무궁화 3개 호텔인 B호텔로 바로 올라간다"며 "단속 위험 없이 안전하게 2차까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성매매가 호텔 내에서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는 수소문 해 한 곳을 더 찾아갔다.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R관광호텔 지하는 조금 더 특별한 풀살롱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의 V풀살롱은 밖에서 안을 볼 수 있지만 안에서 밖은 보지 못하는 특수한 유리문 일명 '매직미러 초이스'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는 그 방식이었다.

V풀살롱은 호텔 지하에 위치해 있지만 입구는 따로 있었다. 그리고 입구는 다른 곳보다 경비가 삼엄했다. 풀살롱 직원 2명이 입구를 지키며 손님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었다. 기자는 "미리 둘러보고 싶다"는 핑계를 대며 풀살롱 직원과 미리 통화를 한 터라 직원을 밖으로 불러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지하 1층에 있는 V풀살롱도 규모가 상당했다. 기자가 "룸이 몇 개 정도 되느냐"고 묻자 직원은 50개 정도 된다고 말했다.


겉은 '특급호텔' 안은 '성매매 소굴'
엘리베이터 타면 2차까지 논스톱 서비스
진열장 상품처럼…매직미러 초이스 인기

룸을 몇 군데 둘러본 후 직원은 "룸에서 한 시간, 호텔에서 한 시간 코스는 1인당 38만원, 룸에서 한 시간 반, 호텔에서 한 시간 코스는 1인당 43만원"이라고 설명했다.

성매매 장소를 묻자 그는 "바로 위에 있는 호텔로 모신다"며 "호텔이기 때문에 성매매를 할 수 있지 안 그러면 요즘 단속이 심해서 못 한다"고 말했다. 이곳 역시 호텔과 연계한 풀살롱이 운영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직원은 "아가씨들 출근 시간이라 많은 아가씨들이 와 있을 것"이라며 기자를 '초이스방'으로 안내했다. 유리 넘어 한껏 치장한 아가씨들이 가슴에 번호를 달고 빨간 의자위에 50여 명 정도 맞춰 앉아 있었다. 그중 몇몇은 앳된 얼굴이었다. 이들은 미소를 머금은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소위 '매직미러 초이스'로 불리는 이런 영업방식은 이미 지난 4월 서울청 상설단속반에 의해 적발된 바 있다. 하지만 이제 강남 유흥가의 '대세'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실정이다.

변종 룸살롱인 풀살롱은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 이후 성매매 단속이 심해지면서 오히려 우후죽순 생겨났다. 또 경기불황에 맞춰 풀살롱들이 비교적 싼 가격을 내세워 안전하게 2차까지 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우면서 성 매수자들이 풀살롱으로 몰리고 있다. 이제는 호텔이나 모텔 등 숙박업소 내 유흥주점들이 자리잡고 있으면 당연히 성매매까지 가능한 업소로 여겨질 정도다.

이처럼 강남구의 특급호텔과 관광호텔 내 운영되는 풀살롱이 서로 연계하여 퇴폐문화를 조장한다는 제보가 잇따르면서 강남경찰서도 관내 호텔 등 숙박업소 51개소(호텔 26개소), 풀살롱 79개소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강남경찰서는 L호텔 단속을 포함해 올해 호텔 연계 성매매 8건을 적발해 102명을 검거했다. 앞으로도 호텔 등 숙박업소에 풀살롱이 있는 업소 51개, 숙박업소 79개 풀살롱에 대해서 특별 관리하여 지속적인 단속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아무리 단속해도 성매매가 줄지 않는 건 대형 풀살롱을 운영하기만 하면 이 같은 고수익이 보장되는 반면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기 때문일 것이다.

성매매 알선에 대한 처벌은 7년 이하의 징역과 7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게 되어 있다. 하지만 법원은 인신매매나 폭행, 감금 등의 혐의가 없을 경우 실형을 선고하지 않고 있고 벌금도 대부분 수백만원 이하다.

성매매 방치하는
솜방망이 처벌

이렇다 보니 2004년 성매매처벌법 제정 이후 단속 사범은 늘었지만 경찰이 기각될 것을 우려해 영장 신청을 소극적으로 하면서 구속률과 기소율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강남지역 성매매업소가 호텔과 연계해 대형화되는 것도 이와 맞물려 있다.

이대로 가다간 관광객들이 찾는 모든 관광호텔이 성매매의 온상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 시정 당국의 강력한 처벌 의지와 철저한 단속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민석 기자 <ideaed@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