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조유담 기자 = 데이터센터가 급증하는 가운데 주민 고지 의무와 환경 검증 기준이 부재한 ‘입법 공백’ 속에서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공사 이후에야 건립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과 시행사 간 충돌은 계속되고, 법원 판단마저 엇갈리는 상황이다. 결국 ‘알리지 않아도 되는’ 제도 구조 속에서 갈등은 사전에 조정되지 못한 채 사후 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저장과 관리를 비롯한 데이터 운영의 핵심 시설로,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평가된다. 데이터 처리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데이터센터 건립 역시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제도는 여전히 미비하다. 이른바 ‘입법 공백’ 속에서 주민과 지자체, 시공사 간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80% 수도권
지난해 10월부터 데이터센터가 세워지고 있는 서울시 금천구 독산동의 한 주민은 “새벽 공사 소음으로 민원을 제기한 뒤에야 올해 1월 해당 건물이 데이터센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호소했다. 데이터센터 건립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데이터센터로 인한 환경적 영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시행사 측은 전력, 소음 및 온도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한 매체에 따르면 시행사 관계자는 “전력 공급 시 자계 노출량은 예측값보다 낮을 것”이며 열돔 현상도 1~2도 상승으로 주변 아파트에 대한 영향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어 “소음 역시 시뮬레이션 결과 야간 기준 45데시벨 미만으로 확인됐으며 법정 기준 이하로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어떤 기준으로 측정된 결과인지 명확히 알 수 없어 주민들의 신뢰보다 불안감만 증폭되고 있다.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은 첨예한 갈등으로 건립이 미뤄진 상태다. 부지 인근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타 데이터센터 부지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을 통해 알게 됐지만 그땐 이미 건축 심의가 통과된 이후였다”며 “나중에 알고 뒤늦게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고양시의회에서 열린 행정 사무조사에서는 안전 문제가 제기됐다. 비상 발전용 유류 저장 규모가 일반 주유소 대비 두 배 이상이며, 지하 40m 이상의 무리한 굴착 공사가 지반 침하와 토사 유출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용인시에서는 두 건의 데이터센터 설립에 대한 법적 판단조차 엇갈렸다. 수지구 죽전동의 경우도 주민들은 2022년 3월에 공사가 시작된 이후에야 해당 건축물이 축구장 14배 크기의 국내 최대 규모 데이터센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주민들은 “공청회 한번 없이 건립 허가를 내줬다”면서 “공사가 진행된 후에야 공청회를 진행했다”고 강조했다. 강한 반발이 일어나자 용인시는 시행사에 대한 착공 신고서를 반려 처분했다.
그러자 2023년 시행사는 용인시장을 상대로 ‘건축물 착공 신고 반려처분 취소 청구’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건축법에 따라 허가권자는 형식적 하자 여부만 심사하고 문제가 없으면 수리해 착공 신고필증을 내줘야 한다”며 “행정청이 그 밖의 공익적 필요성 등 실체상의 사유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착공 신고서를 반려한 것은 위법한 처분”이라고 시행사의 손을 들어줬다.
주민 불안·기업 손해
입법 공백에 갈등 반복
2025년 기흥구 언남동 데이터센터의 시행사가 제기한 ‘건축허가 거부 처분 취소 청구’ 행정소송의 결과는 달랐다. 재판부는 해당 부지가 제1종 일반주거지역이며 데이터센터의 높이가 주변 건물보다 과도하게 높아 일조권이나 경관을 해칠 수 있다는 점, 냉각 시스템의 상시 소음이 주민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 용인시의 손을 들어줬다.
같은 시설을 두고 법원의 판단 기준이 달라진 것은 애초에 명확한 기준이 법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법원은 이미 허가된 사업에 대해서는 행정 절차의 안정성을 우선시했고, 허가 이전 단계에서는 주거환경 보호라는 실질적 가치를 인정했다.
데이터센터가 어떤 입지에서 허용되는지, 어느 수준에서 주거환경 침해로 볼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갈등은 사후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 같은 충돌이 애초에 주민에게 충분히 고지되고 검증되는 구조였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데이터센터를 주민 의견 수렴이 의무화된 시설로 보지 않는다.
현행 건축법 시행령은 데이터센터를 방송국과 같은 ‘방송통신시설’로 분류한다. 이로 인해 위험물 시설이나 폐기물 처리시설처럼 주민 의견 수렴을 강제하는 ‘특수 용도’에 포함되지 않아 주민에게 사전 고지할 의무가 없다. 사전 고지 및 정보 제공이 전적으로 사업자의 자발적 선택에 맡겨진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독산동과 식사동의 시행사들은 반대하는 주민들을 향해 ‘업무방해죄’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시행사 입장에서도 이 같은 구조는 사업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인허가 절차를 적법하게 통과했음에도 시공 단계에서 뒤늦게 불거진 주민 반대로 공사가 지연되거나 중단될 경우, 결국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환경영향평가에서도 상황은 유사하다. 환경영향평가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개발사업에 대해 평가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데이터센터는 명확한 대상 시설로 규정돼있지 않다.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는 조례를 통해 연 면적 10만㎡ 이상 건축물에 대해 환경영향평가를 적용하고 있지만, 도심에 지어지는 데이터센터는 이 기준보다 작게 설계되는 경우가 많아 평가 의무가 없다.
허가만 있고 주민은 없다
‘진흥’에만 집중한 특별법
전자파와 열섬 현상, 소음 등 생활과 직결된 주민들의 우려를 단순한 ‘님비(NIMBY)’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국내 전체 데이터센터 입지의 약 60%, 전력 수요의 약 70%가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 집중돼있으며 산업통상자원부의 ‘데이터센터 수도권 집중 완화 방안’ 및 국정감사 제출 자료에 따르면, 신규 신청 시설의 80% 이상이 수도권에 입지할 것으로 예정돼있다.
인구밀집도가 높은 수도권에 집중된 만큼 주민의 목소리가 배제된 허가와 착공으로 인한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주민 반발이 이어지는 지역을 중심으로 ‘데이터센터 건립 저지’를 전면에 내세운 공약이 등장하고 있다.
일부 예비 후보들은 “주거지 인근 데이터센터 건립을 원천 차단하겠다”거나 “주민 동의 없는 인허가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표심 공략에 나섰다. 그러나 이런 공약이 실제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정치권이 이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보다 단기적인 표심 확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미국과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데이터센터를 에너지·환경 인프라로 보고 환경 규제 강화와 함께 주민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한다. 미국 버지니아주는 지난 2025년부터 모든 신규 데이터센터가 주민 공청회를 거치도록 의무화해 주민들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도록 했다.
또 메인주 의회에서는 지난 14일 일정 기간 신규 데이터 건설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금지 기간 동안 데이터센터가 환경과 전력망에 미치는 위험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지난 15일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메인주뿐만 아니라 10개 주에서 유사한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사전 검증을 통해 인근 지역 주민과의 갈등을 줄이는 방식이다.
구조적 문제
반면 현재 국회 심사 단계에 있는 데이터센터 특별법은 ‘갈등 해소’가 아닌 ‘산업 진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법안에는 인허가 절차 간소화, 전력 공급 지원, 민간 전력거래(PPA) 허용, 세제 혜택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주민에게 알릴 의무나 동의 절차, 입지 단계에서의 정보 공개와 같은 핵심 쟁점은 빠져 있다. 결국 갈등의 원인이 된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사업만 더 빠르게 추진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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