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없는’ 홈플러스 사태 어디로…

점점 수면 아래로…이대로 침몰시키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겉으로는 업계의 몰락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수만명의 밥줄이 끊기는 일이다. 해를 넘겼는데도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할 일만 남았다는 암울한 전망도 있다. 지난해 3월 시장을 강타한 ‘홈플러스 사태’. 어디까지 전개된 걸까?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처음엔 큰 덩어리만 보이는 법이다. 세부적인 부분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에야 윤곽이 드러난다. 문제는 그때쯤이면 사건에 대해서도, 그 본질에 관해서도 관심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 경우 가장 뒷전이 되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먹이사슬의 끄트머리에 있는 이들이다.

기습 행보
업계 충격

‘홈플러스 사태’가 일어난 지 1년이 다 돼가고 있다. 대형마트 업계 2위의 몰락은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겼다. 코로나19 이후 소비 패턴이 비대면, 온라인 방식으로 뒤바뀌면서 안 그래도 입지가 좁아지던 상황에 직격탄을 맞았다. 수년간 수천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면서 전국의 점포가 공중분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지난해 3월4일 홈플러스는 기업회생 절차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기업회생 절차는 부채가 많은 기업이 재기할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를 말한다. 과거엔 법정관리로 불렸다.

당시 홈플러스는 “최근 신용평가에 매출 증가와 부채비율 개선 등이 반영되지 않아 신용등급이 하락했다”며 “신용등급이 낮아져 향후 단기자금 측면에서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단기자금 상황 부담을 줄이기 위해 회생절차를 신청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주요 신용평가사들은 홈플러스의 단기 신용등급을 일제히 낮췄다. 한국기업평가는 ▲영업 실적 부진 장기화 ▲과중한 재무 부담 지속 ▲영업 실적 및 재무 구조 개선 여력 낮음 등을 신용등급 하향의 원인으로 꼽았다. 한국신용평가도 ▲이익 창출력의 약화 ▲현금 창출력 대비 과중한 재무 부담 ▲중장기 사업 경쟁력에 대한 불확실성 확대 등을 언급했다.

홈플러스는 ‘선제적 조치’라면서 영업은 정상적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의 시각은 달랐다. 홈플러스의 조치가 이례적이라는 반응부터 큰 위기가 닥친 게 아니냐는 의견까지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기업회생 절차가 구조조정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말도 나왔다. 시장이 혼란에 빠진 것이다.

100개가 넘는 점포, 2만여명의 직원은 물론 홈플러스에 물건을 납품하는 협력업체까지 불안을 호소했다. 그리고 그 화살은 홈플러스의 대주주인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이하 MBK)로 향했다. 특히 MBK의 기습 행보는 두고두고 나오는 뒷말로 이어졌다. 이익에만 매몰돼 ‘사람’을 보지 않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빗발쳤다.

지난해 3월 기업회생 절차 신청
탈출에만 혈안, 자구 노력 없어

MBK는 2015년 9월 영국 테스코와 홈플러스그룹 주식양수도계약을 체결했다. 거래 금액은 40억400만파운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7조2000억원이다. 당시 홈플러스는 1997년 삼성물산에서 대구1호점으로 시작해 1999년 이후 영국 테스코가 경영권을 확보해 운영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10여년 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를 밟게 되면서 MBK 책임론이 불거졌다. 이미 10년 전 막대한 차입금을 들여 홈플러스를 인수한 것으로도 뒷말이 나왔는데 이후 아무런 자구 노력 없이 불시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동시에 ‘먹튀’ 논란도 불거졌다.

이 과정에서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당시 사용한 방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인수 금액 7조2000억원 중에 1조2000억원은 기존 차입금을 승계한 것으로 MBK는 실제 6조원에 홈플러스의 주인이 됐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전체 인수 비용의 절반에 달하는 3조1000억원은 홈플러스 주식을 담보로 은행권에서 대출받아 조달했고 2조4000억원은 블라인드 펀드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7000억원은 상환전환우선주로 충당했다.

상환전환우선주는 채권처럼 투자금 상환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환권과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권을 모두 가진 주식이다.

당시에도 시장에서는 MBK의 인수 자금 융통 방식을 두고 위험하다는 시각이 많았다. 실제 MBK의 인수 차입금은 홈플러스 경영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온라인으로 유통 환경이 변화하자 수익성이 악화했고 이자 부담이 커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0년대 들어서는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가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MBK는 지난 10년간 점포 매각 등으로 빚을 갚고 배당받는 등의 방식으로 투자 원금 회수에 주력했다. 특히 매년 매출 상위권을 기록했던 점포를 차례로 팔아치우면서 홈플러스 매출은 급감했다. MBK가 인수할 당시 7조9334억원(2016년 3월~2017년 2월)에 달하던 매출액은 6조9135억원(2023년 3월~2024년 2월)으로 12.6% 감소했다.

통매각 실패
다음 수순은?

2016회계연도 기준 흑자였던 영업이익도 급격하게 빠지기 시작해 2021년 적자로 전환했고 이후 3년 연속 내리 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홈플러스가 선택한 방법이 기업회생 절차인 셈이다. 경영난을 극복할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홈플러스가 지나치게 쉬운 길을 택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MBK가 투자 원금을 회수하고 이른바 ‘엑시트(탈출)’만 노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사태는 지난해 국감에서도 화두로 떠올랐다. 김병주 MBK 회장은 지난해 10월1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 홈플러스 사태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책임론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사재 출연에 대해서도 여력이 부족하다는 뜻을 비쳤다.

이날 김 회장은 ‘홈플러스 등과 관련이 전혀 없다고 하는데 맞느냐’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상혁 의원의 질문에 “저희(MBK)는 대기업이 아니고 저는 총수가 아니다”라며 “사모펀드 운영사고, 파트너 13명이 각 분야를 담당하는데 저는 자금 조달과 투자처 관리를 담당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여야 의원들의 사재 출연 압박에도 김 회장은 이미 5000억원의 사재를 냈다고 주장했다.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의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지난해) 5월에 1000억원을 냈고 다 사용했다. 7월에도 1500억원을 보증해 다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또 9월에 2000억원 더 현금을 증여하기로 약속했다”며 “다 합쳐서 5000억원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홈플러스 사태에 뒷걸음질 치는 사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통매각은 무산됐고 분리매각도 쉽지 않아 보인다. 업계 2위의 대형마트가 공중에 붕 떠버릴 상황에 놓인 것이다. 온라인 시장이 활성화된 상황에서 오프라인 위주의 대형마트가 매력적인 매물이 아니라는 뜻으로 풀이됐다.

구조조정
불가피?

정치권에서는 농협이나 쿠팡이 인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쿠팡이 고객 개인정보 유출로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하기 전 이야기다. 하지만 당시 농협은 ‘인수 의사가 없다’는 뜻을 수차례 밝혔고 쿠팡도 이미 전국 단위 물류 인프라를 형성하고 있는 상태에서 홈플러스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비판 여론이 일어날 수 있다.

현재 홈플러스는 회생과 청산이라는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지난달 29일 홈플러스는 자체 회생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했다. 서울회생법원에 제출한 회생안은 구조 혁신형으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분리매각과 회생 계획 인가 후 M&A 추진을 골자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매각 무산 이후 상대적으로 매각 가능성이 큰 슈퍼마켓을 정리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몸집을 줄여 새로운 주인을 찾겠다는 계산이다.

관건은 당장 닥친 유동성 위기를 어떻게 타개하느냐다. 현재 홈플러스는 각종 세금과 공과금을 체납했고 직원 월급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상품 대금도 미납이 누적돼 아모레퍼시픽 등 일부 협력사는 납품을 중단했다.

정상적인 매장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홈플러스는 회생안 인가에 앞서 3000억원의 ‘DIP 대출’ 승인을 요청했다. DIP 대출은 법정관리 기업에 운영 자금 등을 빌려주는 제도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치권 포함, 전방위 압박 중
검찰, 구속영장 청구 새 국면

홈플러스 측에서는 대출이 승인돼야 회생안 실행이 가능하다는 태도다. 또 다른 문제는 홈플러스에 밥줄이 달린 사람들이다. 회생안에는 향후 5년간 전체 점포의 3분의 1에 달하는 부실 점포를 정리한다는 내용도 포함돼있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구체적인 수치로 보면 41곳에 이른다.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지부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대주주인 MBK가 자금 투입 등 책임 있는 모습 없이 모든 고통을 현장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무분별한 폐점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MBK는 메리츠(증권)로부터 3000억원의 DIP 금융을 수혈받아 당장의 급한 불을 끄겠다고 하지만 이는 또 다른 빚”이라며 “경쟁력 제고를 위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마구잡이 폐점과 자산 매각 계획은 홈플러스를 더욱 파괴하는 행위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민주당 민병덕 을지로위원장은 홈플러스 회생안에 대해 “알짜는 팔고 부담은 버리는 구조조정이며 먹튀 시나리오”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안도걸 의원도 “MBK가 제출한 회생계획안은 회생이 아닌 시한부 연명 시간 끌기”라며 “홈플러스 회생을 위한 제대로 된 자구 노력을 하지 않는 MBK의 경영은 무책임을 넘어선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홈플러스 사태는 검찰이 김 회장 등 MBK 경영진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정치권, 금융당국에 이어 사정기관까지 홈플러스 사태에 뛰어든 것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는 지난 7일 김 회장과 김광일 부회장(홈플러스 공동대표), 김정환 부사장, 이성진 전무 등 4명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부회장과 김 부사장, 이 전무는 감사 보고서를 조작한 혐의도 받는다.

이들은 홈플러스의 신용등급 하락을 예상하고도 대규모 전자단기사채를 발행하고 이후 기습적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해 투자자에게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는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2월28일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을 기존 A3에서 A3-로 강등했다.

이후 홈플러스는 나흘 만인 3월4일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홈플러스 사태 초기부터 나왔던 의혹으로 수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시장 넘어
법정 가나

MBK는 모든 혐의를 부인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다. 그러면서 “(구속영장에 담긴 모든 혐의는) 드러난 사실과 배치되며 오해에 근거한 혐의로 영장을 청구한 검찰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는 것을 법원에서 성실하게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김 회장 등은 그동안 수사에 성실히 협조했다. 그럼에도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과도하고 부당한 조처”라며 “회생을 통해 회사를 살리려는 노력마저 왜곡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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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