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의 가족 경사(慶事)는 분명 축복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 경사의 과정에서 공적인 책임과 사적인 영역이 뒤섞일 때, 우리는 ‘축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불편한 권력의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이번에 불거진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더불어민주당)의 딸 결혼식 축의금 논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딸 결혼식 때 일부 기업·언론사 관계자 등이 일정 금액의 축의금을 최 과방위원장에게 전달했는데, 본회의 도중 보좌진에게 이름과 금액이 적힌 명단을 텔레그램 메시지로 보내는 장면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최 과방위원장 측은 “상임위원회 관련 기관·기업으로부터 들어온 축의금과 평소 친분임에도 관례 이상의 액수가 들어온 부분을 즉시 반환하기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보좌진을 시켜 사적 일을 시켰다” “축의금은 돌려줘도 뇌물일 수 있다”는 등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이번 축의금 사안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한번의 결혼식에서 발생한 축의금’이라는 수준을 넘어, 공직자 가족 경사의 주변에서 벌어질 수 있는 권력의 일탈, 책임의 흐트러짐 및 관련 제도의 빈틈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축의금이라는 경조사 비용이 왜 문제되는가?
우리 사회에서는 결혼식·장례식 등 경조사에 대한 금전적 예의가 오랜 관례로 자리 잡아 있다. 하지만 공직자나 권력자 주변에서의 경조사는 종종 ‘미안함’이나 ‘좋은 일’인 동시에 ‘부담’이 되기 마련이다. 경조사 비용이 단순한 사적 축하의 표현을 넘어, 나아가 이해관계자에 대한 인식·접근·표시가 되면서 권력의 영향을 수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누가 얼마를 냈느냐는 단순한 축의의 수준을 넘어 ‘나는 당신의 권력을 인정한다’거나 ‘당신과 나는 관계가 있다’는 시그널로도 읽힐 수 있다.
이 같은 점에서 최 과방위원장의 “관례 이상의 액수” 언급은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다. 친분이나 단순 축하를 넘어선 액수의 입력은 곧 관계의 이상(異常)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축의금 반환을 위해 명단을 받아 보좌진에게 전달한 행위는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드러냈다.
왜 굳이 명단을 만들고 그 안의 액수까지 정리해야 했는가? 이는 단순한 친지 결혼식이 아니라 ‘공적인 관계자’가 참여한 자리였고, 그 결과로 공적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암시로 해석된다.
또 보좌진에게 명단 정리를 지시하는 모습은 권력의 사적 사용 혹은 권한의 일탈이라는 의심을 낳게 한다. 공직자의 보좌진은 원래 공적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인데, 이들이 사적인 경조사 정리 업무마저 떠넘겨졌다면 이는 갑질과 권한남용의 구조가 내재돼있다고도 해석이 가능하다.
야당이 “보좌진을 사적 심부름에 동원했다”고 비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결혼식이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 내에서 치러졌다는 사실도 문제다. 축하받아야 할 결혼식이었을지라도 장소 선택과 시점이 지나치게 공적이었다면 사적 경사에 공적 권한이 개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사안은 ‘누가 얼마를 줬나?’보다는 “공직자의 가족 경사에 권력·이해관계가 개입될 수 있는가?” “그 개입이 적절히 통제됐는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경계는 지켜졌는가?” 등의 더욱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공직자가 ‘자녀의 결혼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문제될 것은 없으나 공직자일수록 자신의 위치가 갖는 상징성과 영향력을 자각해야 한다. ‘나는 권력의 자리에 있다’는 메시지가 뒤섞일 때, 그 경조사는 순수한 축하가 아니라 권력의 연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 반환이라는 형태로 사태를 수습하려 한 점도 우려스럽다. 축의금이 과다하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반환을 실행했다면, 왜 처음부터 그러한 액수가 들어왔는지, 왜 경조사 문맥에서 ‘거절’하거나 ‘사양’하지 못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돈이 들어온 후 ‘돌려준다’는 방식은 응급처치일 뿐이다.
오히려 처음 단계에서부터 색깔을 보이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보다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닐까?
현행 청탁금지법(김영란법)에서는 경조사비의 한도가 5만원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현실에서는 이 한도를 훨씬 초과하는 축의금이 오가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현실은, 법률과 관행 사이에 거대한 괴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공직자나 권력자의 가족 경사라도 공적 책임과 사적 경계가 엄격해야 한다. 사소해 보이는 결혼식 축의금이라도 그 주변의 관계나 맥락, 그리고 전달 방식이 권력과 결합될 수 있다. 또 경조사에서 과도한 액수나 이해관계자가 개입한 흔적이 있다면, 단순히 ‘돌려준다’는 방식으로 넘어가기보다는 투명하게 공개하고 설명해야 한다.
돌려준다고 해서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돌려주기 전의 접촉·수수·처리 과정이 더 중요하다.
제도적 측면에서 청탁금지법의 경조사비 한도는 있지만, 그 한도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현실이 이번 사안을 통해 여지없이 드러났다. 따라서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감시 체계와 공직자의 스스로 지켜야 할 윤리 기준이 강화돼야 할 것이다.
우리는 권력자에게 가족 경사의 축하마저 부담되는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 진심어린 축하가 권력과 이해관계의 편린으로 치환되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축하의 순간이 권력의 연장으로 변질되기 전에 우리는 권력과 책임,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경계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이 단지 공직자의 경조사 논란으로 끝나지 않고, 공직 문화 전반에 던지는 경종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