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청래-조국 미묘한 삼각관계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9.01 10:44:30
  • 호수 15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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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밑 신경전…벌써 대권 행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는 광복절 특사로 석방되자마자 각종 논란을 일으켰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금관 쓴 사진’을 공개하면서 정치적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일·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민주당의 전통적 외교 노선과 다른 길을 갈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했다. 이들의 삼각관계는 민주 진영의 적자 쟁탈전으로 비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2188명에 대한 광복절 특별사면·복권을 단행했다. 여기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됐다. 혁신당은 지난달 21일, 조 전 대표의 복당을 최종 의결한 후 조 전 대표를 혁신정책연구원장으로 지명했다.

석방되고
논란부터

조 원장은 석방되자마자 논란을 일으켰다. 석방 직후부터 특유의 활발한 SNS 활동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이 중 가장 논란이 된 건 석방됐던 지난달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가족 식사’란 게시글이었다. 이 게시글엔 된장찌개가 끓는 영상이 포함돼있었다.

조 원장의 가족이 함께 식사한 곳은 고급 한우전문점이었고, 된장찌개는 후식이었다. 조 원장에 대해선 지금까지 불거졌던 ‘서민 코스프레’ 논란이 곧바로 불거졌다.

국민의힘 김근식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지난달 19일 BBS 라디오 <금태섭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비싼 집에서 먹었으면, 있는 그대로 밝히면 된다”며 “그런 이미지를 다 가려놓고, 소박한 된장찌개만 게시해서 정말 가증스럽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엔 “저런 위선이 조국다운 것”이라면서 “입만 열면 진보를 언급하면서, 누구보다 기득권과 특권의 삶을 살아온 조국”이란 게시글을 올렸다.

개혁신당 주이삭 최고위원도 같은 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우 고기를 다 먹고, 후식 된장말이밥을 SNS에 올리기 위해 가족을 조용히 시킨 후 된장찌개를 촬영해 올린 이가 그 유명한 ‘조국의 적은 조국’의 주인공”이라고 비판했다.

조 원장은 지난달 2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서도 “2030 남성이 70대와 비슷하게 극우 성향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조 원장을 가장 많이 비판하는 세대·성별이 2030 남성이기 때문에, 이 발언도 곧바로 논란이 됐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달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2030 남성의 더불어민주당 지지 이탈은 편향된 젠더 정책 때문이었지만, 근본적으론 조국 사태로 드러난 진보 진영의 위선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본인의 표창장·인턴 경력 위조로 대한민국 청년을 배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조 원장은 반성과 사과는커녕 오히려 2030 남성을 극우로 몰아세워 자신의 실패를 덮고 있다”며 “재판 과정에서 300여차례 묵비권을 행사해 국민을 기만하던 조 원장이 이제 와서 젊은 세대에게 훈계를 늘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광폭 행보 “정통성 내게 있다”
금관 쓴 사진으로 속내 드러낸 정?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서도 지적이 이어졌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같은 날 자신의 SNS에 “2030 청년과 70대 어르신 모두 우리 국민이니, 나눠서 공격하지 않으면 좋겠다”며 “사과의 지점을 명확히 하는 게 사과의 시작”이란 게시글을 올려 조 원장을 비판했다.


조 원장 사면·복권을 공개 주장했던 같은 당 강득구 의원도 지난달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 원장의 모습이 국민에게 개선장군처럼 보이는 게 아닐지 걱정스럽다”며 “조금 더 자숙·성찰하고, 겸허히 때를 기다려 달라”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조 원장은 이 같은 비판을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다. 된장찌개 논란에 대해선 지난달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돼지 눈에 돼지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는 글로 반박했다. 이어 라디오 방송에서도 “‘속이 좀 꼬인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신다’고 생각하면서 대응하지 않고 있다”며 “제가 대응할 가치도 없는 것 같고 그런 것에 일희일비하지는 않겠다”고 반박했다.

지난달 24일엔 부산 방문 도중 기자들을 만나 “2030 남성 전체가 극우화되진 않았다”며 “2030의 일부, 특히 남성 일부는 극우화돼있다고 본다. 그들이 왜 그렇게 됐나 고민하겠다”고 주장했다.

조 원장의 행보는 SNS에서만 국한되지 않았다. 지난달 25일엔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방문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났다.

조국혁신당 윤재관 수석대변인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조 원장에게 “‘3년은 너무 길다’라는 구호로 창당에 나선 그 결기를 계속 이어나가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더 넓고 깊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두 사람은 극장을 방문해 영화 <다시 만날, 조국>을 함께 관람했다.

조 원장은 같은 날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 전 대통령 묘소를 방문했고, 권양숙 여사를 예방했다. 묘소 방명록엔 “돌아왔습니다. 그립습니다. 초심 잃지 않겠습니다”란 소감을 남겼다.

이 행보들은 묘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자신을 비판하는 세대를 비난하면서, 민주당의 ‘정통성’을 나눠 갖는 행보는 결국 “민주 진영의 정통성은 내게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현 시국은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아직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현직 대통령의 힘이 막강한 상황에서 정통성을 챙기는 행보는 곧 “이 대통령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 지난달 2일 민주당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공공연하게 반감을 드러내면서 이 대통령과 갈등하던 관계였다. 정 대표는 지난 2018년 MBN <판도라>에 출연해 이 대통령을 일컬어 “그냥 싫다. 생각하는 자체가 싫다”며 “분란을 만들어서 도와주기 싫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묘한 기류

지난 2023년엔 당시 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이 ‘윤석열정부 심판’을 명분으로 내걸고 단식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볼링을 치는 모습이 촬영된 사진과 “검찰 독재정권을 향해 스트라이크”라는 글을 올렸다.

정 대표의 당선 후 행보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 대표는 당선 직후 국민의힘·개혁신당 예방을 생략했다. 이어 지난달 5일엔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내란을 직접 하려고 한 국민의힘은 10번, 100번 해산감”이라고 발언하는 등 국민의힘 정당해산 가능성을 강도 높게 언급하고 있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미묘한 관계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전후로 더욱 두드러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미국 방문 도중 전용기 내 기자간담회에서 “공식 야당 대표가 법적 절차를 거쳐 선출되면 당연히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이미 “싸움은 제가 할 테니 대통령은 일만 하시라”며 “지금은 내란과의 전쟁 중으로 국민의힘과의 관계는 여야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결정적으로 정 대표는 지난달 20일 ‘야심’을 드러내 보인 것으로 해석되는 행동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북 국립경주박물관을 방문해 천마총 금관을 감상하는 사진을 올렸다. 정 대표 맞은편에서 촬영됐기 때문에, 그가 마치 금관을 머리에 쓰고 있는 듯한 사진이 촬영됐다.

정 대표는 다음 날 해당 사진을 삭제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게시글을 봤다. 이후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이 있는데도 ‘왕’이라고 생각하는 거냐”거나 “이 대통령을 무시하느냐”는 비판을 받았다.

이 대통령은 정 대표 당선 이후 당내 비중과 관련된 각종 구설의 주인공이 됐다. 당시 이 대통령은 민주당 박찬대 전 원내대표를 지지했고,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송인 김어준씨는 정 대표를 지지했다. 당선 직후의 대통령이 지지한 후보가 낙선하고, 외부 방송인이 지지한 정 대표가 당선된 상황은 정치적 파장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대통령은 민주당에서 비주류였다. 중앙대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한 적도 없다. 변호사로 활동했던 지난 2005년 민주당의 전신 열린우리당에 입당했고,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특이한 건 민주당 소속 시장임에도 민주노동당 내부 그룹 경기동부연합 인사들과 연정에 가깝게 시정을 운영했단 것이었다.


“안미경중
못 한다”

당시 이 대통령은 민주노동당 김미희 시장 후보와 단일화한 후 시장에 당선됐고, 김 후보를 인수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인수위원회엔 김 후보가 소속됐던 경기동부연합 출신 인사들이 참여했다. 성남시 청소 용역 업무도 경기동부연합 출신 인사들이 주요 간부로 활동했던 업체에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연정에 대해선 “이 대통령의 정치권 인맥이 빈약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정 대표 당선 이후 김씨에 대해선 “민주당의 상왕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이 대통령은 자신과 접점이 없는 조 원장·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 사면·복권을 결정했다. 조 원장은 곧바로 정치 행보를 시작하면서 물의를 일으켰고, 그 뒷감당은 이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는 것으로 치르고 있다.

이 대통령이 최근 연이어 진행한 한일·한미 정상회담도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주류가 갈등할 가능성을 예고한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일본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유지해오고 있다. 당 주류는 1980년대 학생 운동권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침묵한 미국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학생운동을 했다.

일부 의원들은 지난 2023년 6월 티베트를 방문해 중국 정부의 대규모 선전 행사에 참석한 후 “티베트 인권탄압은 70년 전 일”이라는 발언을 하자 보수 진영에선 “민주당이 친중 성향을 드러낸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따라서 세간에선 이 대통령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각을 세울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일본 도쿄에서 이시바 총리와 훈훈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이 발표문은 지난 1998년 발표된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 의지가 담겼고, 역사 인식에 대한 일본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아울러 ▲한일·한미일 협력 인식 공유 ▲상생 협력 추구를 위한 체계 기틀 마련 ▲한반도 비핵화·항구적 평화 구축 의지 재확인 ▲대북 정책 관련 협력 지속 등 내용이 포함됐다.

지난달 26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는 등 한반도 평화에 주도적 역할을 해 달라”면서 “대통령께서 피스메이커를 하시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요청했다.

이, 성공적 정상회담 계기
민주당과 다른 길 가능성

그러면서 “북한에 트럼프월드를 지어서 저도 거기서 골프를 칠 수 있게 해 주시고, 세계적인 평화의 메이커 역할을 꼭 해 주시길 기대한다”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특성에 맞는 덕담을 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워싱턴 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연설에서 “한국이 과거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이른바 ‘안미경중’ 노선을 취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미국 정책이 중국 견제 방향으로 명확해지면서, 한국이 미국의 기본 정책과 어긋나게 행동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엔 “반미 좀 하면 어떠냐”고 말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해당 발언 후 곧바로 “대통령이 반미주의자라면 우리 국익에 큰 손해를 끼칠 것”이라고 말했지만, 한번 붙기 시작한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엔 ▲이라크전 파병 ▲한·미 FTA 체결 등 친미 노선을 걸었고, 열린우리당과 진보 진영에선 노 전 대통령을 상대로 강도 높게 내부 투쟁을 벌였다. 노 전 대통령은 여기서 패해 열린우리당이 분열되고, 이명박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는 수난을 당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비슷한 외교 노선을 이어갈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이는 정 대표 당선과 조 원장의 행보 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천명한 외교 노선이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권력이 가장 센 시기는 취임 직후가 아니라 취임 이전 당선인 시절이다. 이 대통령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진행된 대선에서 당선됐기 때문에, 곧바로 취임해 당선인 시절을 거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김어준씨는 지난 6월 더 파워풀 콘서트를 개최해 ▲문 전 대통령 ▲우원식 국회의장 ▲김민석 국무총리 등 민주당의 거물급 인사들이 총출동한 가운데 1만 이상의 인파를 집결시켰다.

일련의 흐름을 놓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에게 위력 시위를 한 것 아니냐”고 분석했다. 김씨·정 대표·조 원장의 행보는 이 대통령에게 비주류를 상기시키면서 ‘군기 잡기’를 하는 것일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한편, 민주당은 조 원장에게 민주당·조국혁신당의 합당 압력을 행사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달 11일 유튜브 방송 ‘김은지의 뉴스IN’에 출연해 “생각·이념·목표가 같다면, 민주당·혁신당이 합당해서 정권 재창출까지 해야 한다”며 “찬반이 있지만, 합당될 것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민주 진영
적자 쟁탈

하지만 조 원장의 행보에 대한 일각의 비판이 이어지자 합당론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있다. 합당론은 ‘민주 진영 적자’ 자격을 놓고, 민주당과 혁신당이 줄다리기를 할 가능성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이 전 대통령·정 대표·조 원장의 삼각관계는 현 정부의 적통은 누구고, 진짜 실력자는 누구인지 확인하는 미묘한 관계로 해석되고 있다. 아울러 정 대표와 조 원장의 언행을 놓고 벌써 차기가 거론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세 사람 모두 “내가 적자”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진짜 적자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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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