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은 국민의힘이 여전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단 사실을 보여줬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연이어 거물급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등장해 지지층을 휘어잡고 있다. 국민의힘은 과연 마지막 보수 포퓰리스트 윤석열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약 4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여전히 국민의힘을 지배하고 있다.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 구도는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한 시각 차이로 발전했다. 반탄(탄핵 반대) 진영에선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과 장동혁 의원이 출마했다. 찬탄(탄핵 찬성) 진영에선 조경태·안철수 의원이 출마했다.
“윤 어게인”
김 전 장관은 선거 기간 내내 “이재명 대통령을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규합하겠다”면서 부정선거론과 ‘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를 두둔했다. 안 의원이 지난 9일, 전씨를 일컬어 “미꾸라지 한마리가 사방팔방을 진흙탕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자, 김 전 장관은 “내부 인사를 주적으로 삼아 총구를 겨눠야겠느냐”고 반박했다.
전씨가 국민의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바탕이 된 원동력은 윤 전 대통령 두둔이다. 김 전 장관은 전씨를 두둔함으로써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줬다.
장 의원도 지난달 23일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내부 총질과 탄핵 찬성으로 윤석열정부와 당을 위기로 몰아넣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만든 ‘극우’라는 못된 프레임을 들고 와서 극우 몰이를 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과 장 의원은 윤 전 대통령 추종자들이 주도하는 국민의힘을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국민의힘을 궁지로 몰고 있는 존재도 윤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이 일으킨 12·3 비상계엄 사태는 여전히 국민의힘에 엄청난 위협이 되고 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상대로 연이어 정당해산심판 청구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김건희 특검은 “통일교 교인들이 국민의힘에 집단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에 당원 명부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윤상현·권성동 등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은 이미 압수수색을 당했다.
이 상황을 만든 근본 원인은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의 흔적을 지울 수 있는 뚜렷한 차기 주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단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더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자면, 국민의힘이 홍준표 전 대구시장 이후 자체적으로 대선후보를 배출하지 못했단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윤 파면 언젠데…
여전히 ‘윤석열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파면돼 몰락했을 당시엔 홍 전 시장이 주목받아 박 전 대통령의 흔적을 빨리 지울 수 있었다. 다만 홍 전 시장은 전국적 지명도를 갖췄단 장점과 함께 평소 ‘독고다이’로 통할 정도로 당내 세력이 약하단 단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홍 전 시장은 당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참패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올해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서도 패배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 국민의힘이 내세운 대선주자는 김 전 장관이었다. 친윤(친 윤석열)계에선 김 전 장관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 중 한 사람을 택해 단일후보를 선출하려다가 강제 후보 교체까지 시도하는 등 홍역을 치렀다.
두 사람은 70대 중반 고령이었고, 정치적인 영향력이 제한된 인사들이었다. 홍 전 시장만큼 대중의 관심을 얻을 수 있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갈등하다가 탄핵까지 찬성했던 이력이 있어 당내에서 세력을 확대하기 어려웠다. 이 여파는 조 의원과 안 의원 같은 찬탄 성향 주자들에게도 영향을 줘서 당내 지지를 얻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

이 모든 것은 국민의힘이 내세운 대권주자가 윤 전 대통령이었던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윤 전 대통령은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 대통령으로 당선됐던 지난 2022년 3월은 정치 입문 후 약 8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짧은 정치 경험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대통령으로 당선됐던 비결은 검사 시절부터 구사한 포퓰리즘 전술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으로 재직했던 지난 2013년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임명된 이후부터 정치적 주목을 받았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국정감사에 출석해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외압을 주장했다.
그는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이후 윤 전 대통령은 ‘정의로운 검사’ 이미지를 얻었다.
포퓰리즘 전술에
같이 빠져든 형국
한동안 지방 좌천을 거듭했던 윤 전 대통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자 박영수 특검팀 수사팀장으로 임명됐다. 윤 전 대통령의 포퓰리즘 전술은 당시 수사 진행 상황으로 확인된다. 윤 전 대통령은 수시로 주요 관계자들을 소환해 포토라인에 세웠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을 구속 기소하는 등 마치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단 인상을 줬다.
이 인식은 언론 보도를 유기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윤 전 대통령의 연출 감각으로부터 비롯됐다. 하지만 정작 재판에선 다른 인상을 줬다. 재판에서 주요 참고인들은 특검 진술을 부인했고, 보수 성향 언론으로부터 “결정적 단서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들었다.
당시 특검이 공소 유지에 나섰던 재판들은 문재인정부의 정당성과 깊이 연결돼있었다. 이 때문에 문정부에 친화적이었던 일부 주요 언론은 재판에서 일부 확인된 부실 수사 정황을 감췄다. 당시 특검의 수사는 주요 관계자들의 행적 정리마저 제대로 하지 못해, 이 회장 제1심 재판부가 “수사 결과로 확인된 주요 관계자의 행적으로는 공소 사실이 성립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판단을 판결문에 명시할 정도였다.
윤 전 대통령은 문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을 맡았지만 임기를 마치진 못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하자, 윤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 일가의 수사를 주도해 문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이로 인해 한동안 ‘보수 궤멸의 주역’이었던 윤 전 대통령은 정계 입문 동력을 얻어 국민의힘에 입당해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시절 구사했던 ‘어퍼컷’ 동작도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환호하게 했다.
대통령 재임 중엔 부정선거 음모론에 심취했다. 재임 중 대부분 시간을 민주당과의 갈등으로 채웠고, 여소야대 정국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면서 강경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했다.
윤 전 대통령은 결정적인 분기마다 포퓰리즘 전술을 구사해 자신의 지지층을 형성했다.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이 구사했던 포퓰리즘 전술의 늪에 같이 빠져들었고,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에선 연이어 거물급 포퓰리스트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은 숙련된 포퓰리즘 전술로 열성 지지층을 형성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취임 직후 보수 야당 예방을 생략해 지지층을 환호하게 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거물급 강성 포퓰리스트로서 명성을 누리고 있다.
허우적
당 밖엔 김어준씨란 포퓰리즘 성향 음모론자가 자리 잡아 당내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선 오래도록 윤 전 대통령처럼 능수능란하게 포퓰리즘 전술을 구사할 대중 정치인이 등장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길게 드리워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는 한동안 국민의힘을 지배할지도 모른다.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은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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