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지난 28일, 노란봉투법 및 상법 2차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통과시키자 재계가 즉각 발발하고 나섰다. “기업의 어려움과 절박한 호소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며 이튿날 법안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선 것.
29일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8단체는 이날 ‘내우외환 한국 경제, 국회의 현명한 판단 바란다’는 제목의 공동 입장문을 통해 “엄중한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법 및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급물살을 타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넘어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전날 국회 환노위에선 노란봉투법을 의결했고,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선 상법 2차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은 사용자 개념을 하청·비정규직까지 확대하고, 쟁의 행위에 대한 기업의 과도한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상법 2차 개정안에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대해 집중 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 소액 주주의 권한을 강화하고 대주주를 견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법안이 불러올 파장에 대해 경제 8단체는 “상법 추가 개정은 사업 재편 반대, 주요 자산 매각 등 해외 투기 자본의 무리한 요구로 이어져 새로운 성장동력 확충을 어렵게 할 수 있다”며 “노조법 개정안 역시 기업 고유의 경영 활동까지도 쟁의 대상에 포함돼 파업 만능주의를 조장하고 노사 관계 안정성도 훼손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며칠 앞으로 다가온 한미 관세 협상이 난항을 겪는다면 국내에서 상품을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길이 사실상 막히게 된다”며 “(국회가) 관세 협상의 결과가 불투명한 현 시점에서 자승자박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우리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5% 내외인 상황에서, 국회가 기업 활동을 옥죄는 규제 입법을 연이어 쏟아내는 것은 기업에 극도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부디 불필요한 규제를 거두고, 개정안들을 철저히 국익 관점에서 신중하게 재검토해 주길 간곡히 호소한다”고 요구했다.
두 법안은 내달 4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되며, 통과 시 6개월의 유예 기간을 거쳐 시행된다.
정가 일각에선 현재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미국과의 관세 협상 등 불확실성이 큰 시점에서 노란봉투법과 상법 2차 개정안 추진은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발표한 ‘2025년 상반기 경제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수요 회복 지연, 미국 관세 영향 관련 수출 약화를 이유로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0.8%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또 해당 법안으로 인해 기업의 경영 여건이 악화될 경우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오히려 노동권 보호라는 입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날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두 개정안의 상임위 통과에 대해 “불법 파업에 면죄부를 주는 법안”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송 원내대표는 “법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노사 갈등이 더욱 격화해 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위축될 것”이라며 “사회적 파장이 엄청난 쟁점 법안들을 아무런 숙의나 합의 없이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건 한마디로 입법 독재, 다수당 일당 독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민주당은 법인세 인상, 상법 추가 개정, 무제한 파업 조장법 강행 등 반 시장 입법을 멈추지 않고 있다”며 “이런 폭주는 기업을 옥죄고 시장 질서를 파괴해 대한민국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갈 우려가 크고, 그 결과는 이재명정권과 민주당이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노란봉투법은 장기간 방치된 노동 현장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선 더 이상 미루면 안 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해당 법안이 시행되면, 그간 노동법의 보호 밖에 있었던 하청·비정규직 등 간접 고용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권리가 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노란봉투법은 지난 2023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이 “사용자 개념 확대는 헌법상 사용자 정의를 넘어서는 위헌적 내용이며, 기업 경영에 치명적”이라는 이유로 두 차례에 걸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됐던 바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지난 28일, 노란봉투법의 환노위 통과에 대해 “하청·용역·파견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교섭권과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역사적인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노총은 “그간 노동자들을 무권리 상태로 내몰았던 노동조합법이 이제 조금이나마 제자리를 찾게 됐다”며 “특히 노동자를 향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 이른바 ‘손배 폭탄’에 제동이 걸렸고, 해고나 사측의 약속 위반에 맞선 투쟁도 정당한 권리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다만 “배달 노동자, 학습지 교사, 대리 운전기사 등 전국 수십만 명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며 “근로기준법과 노조법 전면 개정을 통해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도 인정받도록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노란봉투법’이라는 명칭은 지난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 과정에서 비롯됐다. 당시 회사 측은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을 상대로 약 47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일부 청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이에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성금을 담아 노조원들에게 전달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상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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