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정치권은 윤석열정부 3년 내내 극한 대립을 이어갔다. 유성진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은 윤정부를 일컬어 “정치를 통한 갈등 해소에 큰 한계를 보였다”고 진단했다. 이어 새 대통령에겐 “기득권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유권자가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정치 환경을 만들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4월 ‘내란 종식·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새 정부의 필수과제’를 발표했다. 유성진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시민의회 설치·지역정당 도입 등 과제 내용 일부를 소개했다. 이어 새 정부에 ‘정치 복원’을 요구했다. 다음은 유 소장과의 일문일답.
-윤석열정부 3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다양한 사회 현안을 건드리는 데 성공했지만, 정치를 통한 갈등 해소엔 큰 한계를 보였다. 독단과 전횡이 이어진 3년이었다. 국민이 기대했던 바는 전혀 성취되지 못했고, 사회 혼란만 가져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자멸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제도 차원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유권자 대다수는 비상계엄을 경험하지 못했다. 가능하리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해선 안 되는 일이 뭔지 자각하지 못했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은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낮았다. 비상계엄을 막을 수 있는 마법 같은 제도는 없다. 모든 제도는 그 안에서 행동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동의에 근거한다. 그게 깨지면, 어떤 제도로든 막을 방법은 없다.
-정치권은 한동안 정치인의 정신 건강 문제가 공적 영역에 있는지 논쟁했다.
▲개인 성향 문제로 보는 것은 일부 타당하지만 핵심은 아니다. 국민을 대신해 정치하려는 사람은 그에 걸맞은 경험과 경륜을 쌓아야 한다. 그게 부족하면, 참모들의 얘기를 잘 들어야 한다. 윤 전 대통령 개인의 문제도 있지만 바로잡아줄 수 있는 참모진도 부족했고, 부족한 참모들의 이야기도 잘 듣지 않았다. 3박자가 모두 갖춰져 안 좋은 상황이었다.
-개헌 시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제도가 있다면?
▲우리 헌법은 문제가 많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다. 새 제도는 사회 변화를 반영할 때만 헌법에 포함된다. 그 자체가 사회 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긴 어렵다. 제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순 없다. 그래서 행위자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 사회와 직면하는 문제들의 성격은 많이 바뀌었다. 정치 양극화도 극심하다. 대화·타협을 통해 중간 지점을 찾아낼 방법이 헌법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권력 독점 방지 제도와 국민의 기본권 관련 조항이 훨씬 강화돼야 한다.
“기득권 포기하고
유권자 존중해야”
-대통령 권한대행(이하 권한대행)의 각종 권한 행사 여부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어떻게 정리해야 하겠는가?
▲권한대행은 유권자가 직접 선출하지 않은 만큼 민주적 정통성이 없다. 또 권한대행 체제는 국가적 위기 상황 시 성립되기 때문에,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 안 된다. 국정 공백을 막기 위한 절차라서 최소한의 권한만 행사해야 한다. 최소한의 권한 행사도 자신의 판단에 따라 거부하면 안 된다.
정부조직법은 권한대행의 순서를 규정하고 있다. 권한대행이 자질과 경륜을 갖춘 적합한 인재라면, 권한대행 스스로 의사결정 범위를 잘 알 것이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권한대행을 맡을 때 발생한다. 인사 임명 가능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아서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미국에선 대통령·부통령이 러닝메이트로 묶인다. 부통령 선출은 권한대행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미리 받아놓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무총리·장관을 직접 선출하진 않는다. 대통령제에선 러닝메이트 제도를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참여연대가 발표한 ‘내란 종식·민주주의 회복 필수과제’ 중엔 시민의회 도입이 있었다. 시민의회는 어떤 제도인가?
▲시민의회는 일반 시민의 사회 주요 현안 의사결정 참여를 보장한다. 영·미권 국가의 배심원 제도를 의회의 의사결정에 도입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북유럽에선 많이 시행하고 있다. 전체 국민의 대표성을 가진 일부 국민을 무작위로 추출해 일정 기간 숙의하게 한 후 결론을 내리는 수단이다.
정당·정치인이 선거 종료 후엔 유권자의 의사를 무시하는 현상을 바로잡는 직접 민주주의의 일환이다. 우리 정당·정치인은 스스로 유권자들을 대표한다거나, 유권자들의 선호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다는 의식이 부족하다. 참여연대는 우리 민주주의와 정당 정치가 가진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으로 시민의회를 생각한다.
“미국식 러닝메이트 제도 생각해보자”
“위성정당 그만…국민 목소리 투영돼야”
-참여연대는 지역정당 도입을 주장한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지역정당 금지가 명시된 정당법을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우리 정당법은 전국 중앙정당만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현안은 아주 복잡하다. 지역마다 중요한 현안들과 특수성이 있다. 우리는 미국·일본 정치를 주로 바라보지만, 미국·일본엔 지역정당이 별로 없다. 반면 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엔 지역정당이 아주 많다.
이들은 유권자들과의 밀접한 연계를 토대로 한다. 유권자들이 원하는 목소리를 직접 찾아 정책을 만들어 정치로 표출할 수 있는 수단이다. 우리는 지역의 특수성에 맞춘 정당의 등장을 제도적으로 막아놨다. 그래서 지역의 현안이 주목받을 수 없다.

-우리 유권자들은 지역별로 특정 정당에 표를 몰아주는 특성이 있다. 지역정당으로 이를 견제할 수 있겠는가?
▲그 구도는 정당이 2개밖에 없어서 발생했다. 우리처럼 전국 단위 중앙정당만 설립할 수 있도록 규정한 나라는 없다. 최근 영남지역에선 많이 흔들리고 있다. 유권자들에게 지역의 사안에 많은 관심을 모아 정책을 만드는 선택지를 제공한다면, 그 정당을 지지할 것이다. 정당의 수가 늘어나 경쟁을 한다면, 다양한 사회 현안들이 논의될 수 있다.
지방자치제가 잘 안 되는 이유도 지방자치단체가 일할 수 있는 여지를 별로 주지 않은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공천 때문에라도 중앙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지역 차원의 정치가 활성화되면, 유권자들도 그에 걸맞은 인재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지방자치를 이끌면 달라질 것이다.
-그 외 정치 분야와 관련해 새 정부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현재 대선후보들은 일부를 제외하곤 정치에 관해 얘기하지 않는다. 이번 조기 대선의 배경엔 정치의 실종·법치의 지나친 강조 등이 있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안을 관리하고, 갈등을 억제해야 한다. 국민도 이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의 복원이 절실하다. 정치를 복원하려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반영하는 정치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선 다양한 정당과 그들의 경쟁 구도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새 정부는 2개의 기득 정당 중 하나가 이끌어 갈 것이다. 기득권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다당제서 유권자가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정치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그 노력을 적어도 반복적으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위성정당 같은 것은 만들지 말고, 국민의 목소리가 그대로 정당·정치·민주주의에 투영될 수 있도록 의사결정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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