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 ‘의정 갈등을 말하다’

“완전히 붕괴해야 대안 나온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개혁’이라는 이름의 큰 그림은 이미 사라졌다. 한쪽이 제안하면 다른 한쪽이 반발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화폭은 누더기가 됐다. 수십년 전, 첫 붓질부터 잘못 칠했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오랜 시간 이 문제에 천착한 한 노(老) 교수는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일요시사>가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지난해 2월 정부는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 이른바 의정 갈등의 시발점이다. 같은 달 전공의는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학교를 쉬겠다고 선언했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단체는 강경한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전공의-개업의-의대생-의대 교수 등 의료계는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정부에 맞섰다.

무너진
단일대오

정부는 ‘의료 개혁’을 내세우며 의료 현장을 바꾸겠다고 나섰고 의료계는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의정 갈등은 12‧3 비상계엄 사태서 나온 포고령에도 언급될 만큼 지난해를 달궜던 이슈다. 당시 포고령에는 ‘48시간 이내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는 처단한다’는 내용의 문구가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린 지도 1년이 넘었다. 정부는 당근을 주고 채찍을 휘두르며 의료계의 변화를 촉구했지만 의사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7일 정부가 2026년도 의대 정원을 3058명으로 되돌리겠다며 그 조건으로 ‘3월 말까지 의대생 복귀’를 내세우자 상황이 달라졌다.

의대 정원 백지화로 배수진을 친 정부에 학교가 호응했다. 더 이상의 집단 휴학은 받아줄 수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등록 기간까지 학교로 돌아오지 않은 의대생은 학칙에 따라 제적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실제 일부 의대는 미등록 학생을 제적 처리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정부와 학교의 강경한 조치에 의대생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연세대와 고려대는 80%가량이 등록했고 서울대는 전원 복귀를 결정했다. 일부 의대생 사이에서는 등록 후 휴학한다는 움직임도 있지만 대체로 수업에 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의대생의 단일대오가 깨진 셈이다.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현 상황서 의대생과 전공의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부는 의대 정원을 백지화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두 손, 두 발 다 든 상태”라며 “이 상황서 의대생이 복학하지 않으면 누구 손해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의대생 개인과 그 부모, 사회까지 모두가 손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국민이 큰 손해를 보게 된다고 강조했다. 의대생이 수업을 거부하면 배출되는 의사 수가 줄어드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피력했다. 이 교수는 “의대생은 빨리 의사가 되는 게 사회에 이바지하는 방법인데 1년을 허비했다”고 한탄했다.

전공의에 대해서는 “그들은 일단 의사면허가 있지 않나. 전공의는 전문의가 되지 않아도 일반의로 개업해서 살아갈 수 있으니 의대생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2000년 건보 통합 이후
지방 의료‧필수 의료 붕괴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 건강복지정책연구원 사무실서 이 교수를 만났다. 그는 건강복지정책연구원서 발간하는 <ISSUE PAPER>, 지난해 7월 쓴 저서 <의료개혁 무엇을 어떻게?> 등을 통해 현 상황에 대한 의견을 냈다. 특히 이번 의정 갈등이 일어나기 십수년 전부터 한국 의료의 붕괴를 예측하는 등 의료 정책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이 교수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의료 제도가 밑그림도 없이 만들어진 ‘사상누각’ 상태라고 진단했다. 의료보험제도가 처음 도입될 당시 정책 입안자의 부족한 인식이 현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는 사회적 갈등을 더했을 뿐 한국 의료는 이미 붕괴 상태로 가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먼저 이 교수는 윤정부가 내세운 ‘2000명 증원’에 대해 비판했다. 의대 입학 정원을 한꺼번에 65%나 늘리는 방식은 의료계에 충격을 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의사 부족은 오래전부터 제기된 문제다. 의약분업 직후 351명이 감축돼 3058명으로 정해진 후 20년 동안 유지됐으니 (의사 부족은) 예상된 부분”이라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저서 등을 통해 의대 입학 정원을 700명가량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351명이 감축된 수준으로 20년이 지났으니 그 2배 정도로 증원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700명 증원도 좀 많을 수 있다”며 AI(인공 지능)의 발달, PA(진료 지원) 간호사 증가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도 “주먹구구식”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700명이든 2000명이든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의료보장제도를 시행하면서 기본을 지키지 않은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의료 계획을 통해 정책을 설계하고 국가 상황에 맞게 시행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 없이 되는 대로 정책을 진행하면서 본래의 의도나 취지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의료 사회화’라는 키워드를 인터뷰 내내 중요하게 언급했다. 의료 사회화는 모든 국민을 건강보험에 강제로 가입하게 하고 보험료는 경제력에 비례해 징수하면서 의료서비스는 낸 보험료와 무관하게 누구나 똑같은 조건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의료를 인간의 ‘기본권’ 개념으로 본다.

계획 없이
정책 급급

이 교수는 “2012년에 폐암 치료를 받으면서 시간이 생겨 펠스타인이라는 의료경제학자의 저서를 읽게 됐다. 펠스타인은 사회적 권리로 의료를 보장할 때 의료서비스 배분은 시장에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의료서비스가 시장 수요에 따라 나뉘면 환자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문제(재정 고갈 등)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가 의문을 품은 부분은 한국 환자의 본인 부담률과 의료 이용률 간의 상관관계였다. 일반적으로 본인이 내는 의료비용이 커지면 병원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기 마련인데, 한국은 본인 부담률이 전 세계서 제일 높은 수준인데도 의료 이용률 역시 일본과 함께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에는 이를 제지할 장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의료서비스가 시장 논리가 아니라 공공재라는 개념서 배분돼야 하는데 이를 강제할 제도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교수가 내세운 방책은 ‘필요도’에 따른 의료서비스 배급제다. 의료기관을 계층화해 환자를 분류해서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때 배급의 주체는 정부나 보험자(건강보험공단)가 된다.

이 교수는 “1977년 7월 사회보험 방식의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할 때 사회보험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로 시작된 점이 현 상황의 원인”이라고 짚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민 1인당 소득 1000달러 달성 이후 극빈층, 저소득층에게 최소한의 복지혜택을 베풀어야 한다는 취지로 의료보험제도를 시작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런 상황에서도 ‘의료기관이 영리화돼서는 안 된다’ ‘의료보험제도는 보험료로 조달되는 재정 범위 안에서 운영해야 한다’는 대원칙은 지켜졌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 교수는 2000년 7월 의료보험조합을 국민건강보험으로 통합한 것을 의료 붕괴의 시발점이라고 봤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의료 관련 문제의 원인으로 꼽은 것이다.

이 교수는 진료권과 비급여 문제를 언급했다. 1989년 7월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시작되면서 정부는 전국을 140개 중진료권, 8개 대진료권으로 분류했다. 중진료권은 시‧군‧구, 대진료권은 도 단위로 나눴다. 예를 들어 강원도 원주에 사는 주민은 지역 의료기관을 우선 이용해야 한다. 서울 소재의 병원서 진료받기 위해서는 지역의 3차 의료기관에서 소견서를 받아야 했다.

수요 아니라
필요에 따라

당연히 수도권으로 올라오는 환자 수가 제한됐다. 하지만 지역주민의 반발이 제기되면서 1995년 8월 대진료권, 1998년 10월 중진료권이 폐지됐다.

이 교수는 “의료 지역화를 완전히 포기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KTX 개통으로 전국이 1일 생활권이 되면서 환자의 수도권 병원 쏠림 현상은 극대화되기 시작했다. 환자가 서울로 몰리니 의사나 병원도 서울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늘날 지역의료의 붕괴는 진료권을 철폐한 의료정책이 초래한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건강보험 급여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 이른바 비급여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다. 이 교수는 “비급여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 가격을 누가 설정하냐면 의료기관이 한다. 이 과정서 초과 이윤이 발생한다. 의료서비스가 공공재로 기능할 때 초과 이윤을 내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이 깨져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급여 문제는 필수 의료의 붕괴로 이어졌다. 비급여 항목의 가격을 의료기관이 정할 수 있다 보니 수익을 추구하게 되고 이런 과정서 의사 배치의 불균형이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소아과는 거의 모든 진료가 건강보험에 포함된 급여 항목이다. 하지만 미용, 성형은 어떤가? 부르는 게 값이다. 의사들도 수지 타산을 생각하지 않겠나?”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윤정부는 이런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단순하게 의사가 부족해서 지역의료가 붕괴하고 필수의료가 망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의사를 2000명 ‘듬풍듬풍’ 늘리면 여기저기에 난 구멍이 메워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부 의사들도 이에 동조해 의사 집단을 몰아갔다”고 꼬집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환자의 의료 공백 체감도는 높지 않다. 이 교수는 비급여 비용을 커버하는 ‘실손보험’을 언급했다. 실제 기자는 최근 한 대형병원서 경동맥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돼 검사비로 22만원을 냈는데 실손보험을 통해 20만원을 보장받았다. 본인 부담은 2만원인 셈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 교수는 실손보험을 ‘비급여용 보험’이라고 칭하면서 이로 인해 의료민영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급여 항목은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은 실손보험이라는 민간보험이 보장하면서 의료기관이 이미 영리화됐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결국 그 끝은 건보재정 고갈로 인한 의료 붕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시간이 갈수록 환자의 불편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빅뱅이 곧 일어날 것이다. 제도가 완전히 붕괴하기 전까지는 대안이 나올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리고 그 시기를 2030년대 중반으로 예상했다. 건보 재정이 마르는 시기로, 이 교수는 “도저히 제도를 지탱할 수 없게 되는 때”라고 말했다.

결국 이 교수는 의료 문제가 정부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설명했다.

사회 상황 따라 정책 바꿔야
공보의 제도 “수명 다했다”

그는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의료의 사회화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의료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는 당연하다”며 “건강보험제도를 통한 기본권으로서의 의료는 공공재가 돼 의료의 배분을 시장이 아닌,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의대 정원 결정과 같은 사항 역시 정부의 역할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대 정원을 놓고 의료계가 반발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 초래한 자업자득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공공의료’ ‘필수 의료’ 등 현재 사용되고 있는 표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건강보험 의료는 공공재다. 그런데 건강보험 의료를 ‘공공성이 강한 사적재화’, 이런 식으로 정의해 버렸다. 또 공공의료 관련 법률을 제정하면서 공공병원서 하는 의료만 공공의료라는 이상한 인식이 생겼다. 나머지는 전부 민영 의료로 치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적 재정, 그러니까 건강보험 재정으로 운영되는 모든 의료가 공공의료다. 다시 말해 한국에는 공공의료밖에 없다. 이걸 법으로 나누면서 공공의료는 선, 민간 의료는 악으로 보는 시선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필수 의료에 대해서도 “건강보험서 보장하는 모든 의료가 필수 의료”라고 강조했다. 공공의료니 필수 의료니 나눠놓은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제도를 만들어 놓으면 시대가 바뀌어도 그대로 밀고 나간다. 가족계획 사업이 1962년부터 시작됐다. (합계)출산율이 국가가 유지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지면 그 사업을 멈춰야 할 것 아닌가. 가족계획 사업이 언제 중단됐는지 아나? 노무현정부 때다. 뭐든지 하나를 잡으면 사회가 바뀌든지 말든지 주구장창 간다. 그만할 용기가 없는 것이다. 관료들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또 다른 예로 공보의(공중보건의사) 문제를 꼽았다. 일부 지역의 열악한 의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의사들이 보건 업무로 군 복무를 갈음하게 한 제도다. 산간벽지나 섬 등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농어촌에 공보의를 배치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시행됐다.

이 교수는 “아무리 의사가 없다 해도 지금은 면 단위에 가정의학과 하나씩은 다 있다. 옛날처럼 공보의가 아니면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공보의들이 뭘 하는 줄 아나? 처방전 써주는 일이나 하고 있다. 공보의 제도는 1980~1990년대 이후 이미 수명이 다했다”고 말했다.

2030년대 중반
“빅뱅 온다”

이 교수는 정부 정책에 따른 의료계의 대응 방안에 대해 “잘 모르겠다”면서도 “계속 이런 상태로 가면 의사는 국민에게 더는 이해받을 수 없는 집단으로 여겨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제는 의사들도 중지를 모아야 한다. 지금 의사단체는 개업의, 전공의, 교수, 이런 식으로 나뉘어 있지 않나. 대의 기능이 없는 상황이다. 의견을 모아서 정부와 이야기해야 한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방식으로 가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런데 그 방향으로 가고 있지”라고 한탄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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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