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국감 피한 노소영 철면피 이중행보 막전막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3.24 13:58:59
  • 호수 15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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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부를 땐 줄행랑
행사엔 곱게 나타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국회 국정감사에 불출석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서울 예술상 시상자로 나섰다. 앞서 노 관장은 법제사법위원회로부터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다.

노소영 관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로부터 고발당하면서 ‘노태우 비자금’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검찰은 노태우 비자금 고발에 대해 조사 중이며 정치권서도 주시하고 있는 만큼 비자금 불법 은닉 여부 등이 차차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뻔뻔한
등장 신

노 관장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서 개최한 ‘제3회 서울 예술상’ 시상자로 나섰다. 국감 불출석 후 잠적한 노 관장은 지난해 10월 해외 행사 참석차 캐나다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져 비판을 받아왔다.

시상식서 노 관장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만나 악수를 하는 등 밝은 모습을 보였다. 이날 노 관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소송 과정서 등장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메모가 여러 사회적 해석을 낳고 있다는 기자의 물음에 “답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곧 시간이 올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확인이 어려운 규모의 돈이 유입된 정황에 관해 묻자 “그러게요”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다만 노 관장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곧 의견을 내겠다”고 전했다.


노 관장은 지난해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동생인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과 함께 채택됐다. 그러나 불출석 사유서 없이 국감장에 출석하지 않아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21일 서울남부지검에 고발됐다.

‘노태우 비자금’은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서 제기됐다. 당시 재판 과정서 노 관장은 어머니인 김옥숙 여사가 ‘맡긴 돈’이라며 남긴 메모와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이 찍힌 사진 등을 증거로 제시하며 “부친(노태우) 자금 300억원이 선경(현 SK)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지난해 5월 노 관장의 주장이 인정된다면서 재산 분할액 1조3808억원과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SK가 자금 유입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면서 이혼소송이 비자금 환수 국면으로 전환되는 양상이다.

노 관장은 아버지의 비자금 카드를 꺼내 소송서 대승한 듯 보였으나, 비자금 불법 은닉 혐의 등으로 3건의 고발이 접수돼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노 관장을 고발한 군사정권범죄수익 국고환수추진위원회(환수위)는 이혼소송 항소심을 맡은 김시철 서울고법 가사2부 부장판사를 탄핵하라고 주장했다. 특히, 노 관장과 김 부장판사의 특수 관계가 드러나면서 ‘재판부 쇼핑’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혼 소송 중 불거진 노태우 검은돈 의혹
국회 호출에 잠적 후 유유히 시상식 참석

재산분할 판결을 이끈 김 부장판사의 부친 고 김동환 변호사는 과거 ‘5·18 특별법’ 반대 등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을 미화한 인물로 알려졌다.


노 관장에게 승기를 건넨 김 부장판사의 부친 김 변호사는 노태우의 경북고 1년 후배다. 김 변호사는 소비자 권익을 위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변호사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동시에 노태우를 옹호한 인물이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과 전두환씨가 결성한 정치 군벌인 ‘하나회’가 광주 사태를 일으킨 후 탄생한 5공화국 때부터 국가정책 자문위원, 선관위원, 공정거래위원, 소비자보호위원 등을 지냈다. 본격적으로 노 전 대통령이 집권한 6공화국 들어서는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KBS 이사도 맡게 된다.

당시 김 변호사는 5·18 책임 문제로 곤경에 처한 노태우를 방어하는 최전방에 나섰다. 5·18 특별법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1995년 12월호 <한국논단>에 김 변호사는 ‘5·18 특별법 안 된다. 위험한 발상 5·18 특별법’이란 제목의 기고를 하게 된다. <한국논단>은 1989년에 창간돼 2014년까지 발행된 극우 성향 월간 시사지다. 5·18 특별법은 광주 사태를 일으킨 하나회 일당을 처벌하자며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법이었는데, 김 변호사는 이 법의 제정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또 노 관장의 변호를 맡으면서 최 회장에 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이상원 변호사는 김옥숙 여사의 고종사촌인 박철언 전 정무장관 사위다. 박철언은 노 전 대통령의 빈소를 지켰으며, 같은 경북고등학교 동문이다.

이 변호사의 부인 박지영은 미래회 현 회장이자 박 전 장관의 큰딸로, 노 관장과는 6촌 관계다. 노 관장의 미래회는 노태우의 하나회처럼 겉으로는 봉사를 내세우고 있다. 최근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에 언급된 임주현 한미약품 그룹 부회장과 김방은 예화랑 대표가 소속됐던 단체다.

당당하게
황당 행보

취재를 종합하면, 노 관장 이혼소송에 연관된 법조계 인맥은 노 전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재판부는 비자금 실체에 관한 심리도 하지 않은 채 노 관장 측의 주장만 받아들이면서 재산분할 판결을 냈다. 서울중앙지검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해 접수된 고발 사건을 범죄수익환수부에 배당한 상태다.

환수위는 김 여사를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환수위는 지난 14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사건 항소심 판결서 김 여사의 메모가 등장했는데, 이는 김 여사가 노 전 대통령의 이른바 ‘노태우 비자금’을 은닉하고 관리해 왔다는 명백한 증거”라면서 “김 여사는 남편인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이른바 ‘노태우 비자금’으로 알려진 범죄수익을 은닉하고 관리해온 범죄자”라고 강조했다.

환수위에 따르면 김 여사가 노태우 비자금을 관리하는 은닉 공범이라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노태우정부 시절에도 김 여사와 관련해 “김옥숙 여사가 별도로 비자금을 여러 비밀 계좌에 넣어두고 관리한다”는 소문이 줄을 이었다는 게 환수위 측 설명이다.

환수위 측은 “범죄수익 은닉 공모는 분명한 불법행위고 그 범죄수익이 전직 대통령의 천문학적인 비자금이라면 이는 매우 심각한 중범죄”라며 “김 여사의 딸인 노 관장은 항소심 재판서 ‘김옥숙의 메모’ 2개를 공개했는데, 김 여사가 1998년 4월과 1999년 2월에 작성한 이 메모에는 비자금 용처가 나타나 있다. 이는 김 여사가 비자금의 실질적인 주인 노릇을 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언뜻 장부처럼 작성된 해당 메모에는 노 전 대통령이 조성한 비자금이 누구에게 얼마가 전달됐는지 뿐만 아니라 여러 곳으로 뿌려진 돈 중 일부의 회수 예정 날짜까지 자세히 적혀 있다. 김 여사가 이런 메모를 적었다는 것은 그가 비자금의 실질적인 주인 노릇을 한 ‘비자금 관리자’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환수위의 설명이다.

환수위는 고발장에 “김영환 의원은 지난해 10월25일 ‘비자금 없다던 노태우 공익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를 통해 6공 비자금 꼼수 상속’이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김옥숙의 수상한 자금에 대해 사정 당국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면서 “김영환 의원은 당시 국세청 공시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의 편법 상속 수단으로 지목되는 ‘동아시아문화센터’의 비정상적 운영 실태를 지적했다”고 명기했다.

고개 빳빳
‘입꾹닫’

김 의원은 지난해 10월 노태우 일가의 비자금 은닉과 관련해 “국내에서는 현금성 보험 가입(차명계좌 활용), 노재헌의 공익법인 악용 등의 수법이 활용, 해외에서는 조세피난처에 10개의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통한 비자금 은닉이 의심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지난해 10월8일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법무부)서 정청래 위원장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김옥숙은 차명으로 관리되던 자금 등을 동원해 두 차례에 걸쳐 농협공제(현 농협생명)의 ‘새천년새저축공제’라는 유배당저축성보험(공제)에 210억원을 가입했다”며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서진 등 8인의 차명계좌가 활용됐었고, 김 여사는 2007년 검찰 및 국세청 조사를 받았으며 해당 진술서가 공개됐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국세청, 검찰 등 사정기관을 겨냥해 “이는 명백한 조세포탈 및 금융실명제 위반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김 여사를 비롯한 노태우 일가가 처벌을 받았다는 기록은 드러난 것이 없다”며 봐주기 의혹을 제기했다.


김 여사는 추징금을 낼 여력이 없고 생활을 유지하기도 어렵다고 호소했으나, 실제로는 노재헌이 이사장으로 있는 공익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에 2016년부터 2021년까지 6년에 걸쳐 총 147억원을 출연했다.

환수위는 “노태우 일가가 보유한 거액의 불법 비자금이 다양한 수단으로 상속·증여되고 있다는 단서들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공익 목적 사업 등 의무 이행을 제대로 하지 않은 공익법인은 상속세나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탈세 혐의로 수사해 처벌할 수 있다”고 철저한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재판부 쇼핑’으로 1조원 판결
세금 먹은 미술관 영리단체로?

최근 노 관장은 그동안 비영리기관으로 운영해온 아트센터 나비를 영리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동안 대규모의 혈세를 받으면서 연간 평균 46일만 전시회를 진행하는 등 방만 운영을 하다가, 영리화에 나서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 나온 것이다.

지난 10일 업계에 따르면 아트센터 나비는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정부로부터 약 34억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2019년 9억4104만원 ▲2020년 7억8197만원 ▲2021년 7억8978만원 ▲2022년 5억5469만원 ▲2023년 3억3785만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전시활동은 연평균 46일에 불과했다. 특히 지난 2020년에는 15일, 2022년에는 14일에 그쳤다. 지난 5년간 투입된 정부 보조금과 실제 전시활동이 이뤄진 기간을 보면 하루 전시에 약 1500만원이 들어간 셈이다.

국가 지원금을 받아온 아트센터 나비는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5년간 아트센터의 누적 적자는 48억원으로, 2019년 200억원 수준이었던 자산은 2023년 말에는 145억원으로 55억원(27.5%) 감소했다.

재계에서는 방만한 재정 운용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아트센터 나비가 미술관 본연의 활동보다는 금융투자에 집중했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지난 2022년에는 금융평가손실 및 외환차손익으로 약 8억원, 2023년에는 6억원의 손해를 봤다. 보유 중이던 현금자산은 2022년 80억7800만원 규모서 2023년 6억5000만원으로 감소했고, 단기금융상품(고위험 투자 가능성이 있는 자산)은 같은 기간 10억원에서 69억9200만원으로 불어났다는 점도 비판 대상이다.

한편, 노 관장은 지난 2월 문화포럼 강연자로 나서 아트센터 나비의 영리화에 대해 언급했다. 노 관장은 “그동안 예술과 기술을 갖고 할 것은 다 했다”며 “아트센터 나비도 비영리기관에서 영리기관이라는 새 영역으로 넘어가려 한다. 돈을 벌며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각종 의혹
수사는?

견실한 운영을 하지 못했던 아트센터 나비가 영리화로 전환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국민 세금과 공공재가 개인의 이익으로 전환된다는 점에 대해서 우려를 표한다. 나비의 방만 운영에 대한 의혹은 비서의 횡령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노 관장은 2019년 입사한 비서가 5년간 20억원 이상의 자금을 횡령했다고 고소했다. 당시 재판 과정서 해당 비서는 노 관장을 사칭해 재무 담당자에게 상여금을 지급하라고 요청했는데 별다른 절차 없이 송금됐다. 이로 인해 아트센터 나비의 관리부실, 감시 부재의 상황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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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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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