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국감 피한 노소영 철면피 이중행보 막전막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3.24 13:58:59
  • 호수 15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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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부를 땐 줄행랑
행사엔 곱게 나타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국회 국정감사에 불출석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서울 예술상 시상자로 나섰다. 앞서 노 관장은 법제사법위원회로부터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다.

노소영 관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로부터 고발당하면서 ‘노태우 비자금’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검찰은 노태우 비자금 고발에 대해 조사 중이며 정치권서도 주시하고 있는 만큼 비자금 불법 은닉 여부 등이 차차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뻔뻔한
등장 신

노 관장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서 개최한 ‘제3회 서울 예술상’ 시상자로 나섰다. 국감 불출석 후 잠적한 노 관장은 지난해 10월 해외 행사 참석차 캐나다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져 비판을 받아왔다.

시상식서 노 관장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만나 악수를 하는 등 밝은 모습을 보였다. 이날 노 관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소송 과정서 등장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메모가 여러 사회적 해석을 낳고 있다는 기자의 물음에 “답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곧 시간이 올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확인이 어려운 규모의 돈이 유입된 정황에 관해 묻자 “그러게요”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다만 노 관장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곧 의견을 내겠다”고 전했다.


노 관장은 지난해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동생인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과 함께 채택됐다. 그러나 불출석 사유서 없이 국감장에 출석하지 않아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21일 서울남부지검에 고발됐다.

‘노태우 비자금’은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서 제기됐다. 당시 재판 과정서 노 관장은 어머니인 김옥숙 여사가 ‘맡긴 돈’이라며 남긴 메모와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이 찍힌 사진 등을 증거로 제시하며 “부친(노태우) 자금 300억원이 선경(현 SK)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지난해 5월 노 관장의 주장이 인정된다면서 재산 분할액 1조3808억원과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SK가 자금 유입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면서 이혼소송이 비자금 환수 국면으로 전환되는 양상이다.

노 관장은 아버지의 비자금 카드를 꺼내 소송서 대승한 듯 보였으나, 비자금 불법 은닉 혐의 등으로 3건의 고발이 접수돼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노 관장을 고발한 군사정권범죄수익 국고환수추진위원회(환수위)는 이혼소송 항소심을 맡은 김시철 서울고법 가사2부 부장판사를 탄핵하라고 주장했다. 특히, 노 관장과 김 부장판사의 특수 관계가 드러나면서 ‘재판부 쇼핑’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혼 소송 중 불거진 노태우 검은돈 의혹
국회 호출에 잠적 후 유유히 시상식 참석

재산분할 판결을 이끈 김 부장판사의 부친 고 김동환 변호사는 과거 ‘5·18 특별법’ 반대 등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을 미화한 인물로 알려졌다.


노 관장에게 승기를 건넨 김 부장판사의 부친 김 변호사는 노태우의 경북고 1년 후배다. 김 변호사는 소비자 권익을 위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변호사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동시에 노태우를 옹호한 인물이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과 전두환씨가 결성한 정치 군벌인 ‘하나회’가 광주 사태를 일으킨 후 탄생한 5공화국 때부터 국가정책 자문위원, 선관위원, 공정거래위원, 소비자보호위원 등을 지냈다. 본격적으로 노 전 대통령이 집권한 6공화국 들어서는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KBS 이사도 맡게 된다.

당시 김 변호사는 5·18 책임 문제로 곤경에 처한 노태우를 방어하는 최전방에 나섰다. 5·18 특별법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1995년 12월호 <한국논단>에 김 변호사는 ‘5·18 특별법 안 된다. 위험한 발상 5·18 특별법’이란 제목의 기고를 하게 된다. <한국논단>은 1989년에 창간돼 2014년까지 발행된 극우 성향 월간 시사지다. 5·18 특별법은 광주 사태를 일으킨 하나회 일당을 처벌하자며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법이었는데, 김 변호사는 이 법의 제정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또 노 관장의 변호를 맡으면서 최 회장에 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이상원 변호사는 김옥숙 여사의 고종사촌인 박철언 전 정무장관 사위다. 박철언은 노 전 대통령의 빈소를 지켰으며, 같은 경북고등학교 동문이다.

이 변호사의 부인 박지영은 미래회 현 회장이자 박 전 장관의 큰딸로, 노 관장과는 6촌 관계다. 노 관장의 미래회는 노태우의 하나회처럼 겉으로는 봉사를 내세우고 있다. 최근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에 언급된 임주현 한미약품 그룹 부회장과 김방은 예화랑 대표가 소속됐던 단체다.

당당하게
황당 행보

취재를 종합하면, 노 관장 이혼소송에 연관된 법조계 인맥은 노 전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재판부는 비자금 실체에 관한 심리도 하지 않은 채 노 관장 측의 주장만 받아들이면서 재산분할 판결을 냈다. 서울중앙지검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해 접수된 고발 사건을 범죄수익환수부에 배당한 상태다.

환수위는 김 여사를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환수위는 지난 14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사건 항소심 판결서 김 여사의 메모가 등장했는데, 이는 김 여사가 노 전 대통령의 이른바 ‘노태우 비자금’을 은닉하고 관리해 왔다는 명백한 증거”라면서 “김 여사는 남편인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이른바 ‘노태우 비자금’으로 알려진 범죄수익을 은닉하고 관리해온 범죄자”라고 강조했다.

환수위에 따르면 김 여사가 노태우 비자금을 관리하는 은닉 공범이라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노태우정부 시절에도 김 여사와 관련해 “김옥숙 여사가 별도로 비자금을 여러 비밀 계좌에 넣어두고 관리한다”는 소문이 줄을 이었다는 게 환수위 측 설명이다.

환수위 측은 “범죄수익 은닉 공모는 분명한 불법행위고 그 범죄수익이 전직 대통령의 천문학적인 비자금이라면 이는 매우 심각한 중범죄”라며 “김 여사의 딸인 노 관장은 항소심 재판서 ‘김옥숙의 메모’ 2개를 공개했는데, 김 여사가 1998년 4월과 1999년 2월에 작성한 이 메모에는 비자금 용처가 나타나 있다. 이는 김 여사가 비자금의 실질적인 주인 노릇을 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언뜻 장부처럼 작성된 해당 메모에는 노 전 대통령이 조성한 비자금이 누구에게 얼마가 전달됐는지 뿐만 아니라 여러 곳으로 뿌려진 돈 중 일부의 회수 예정 날짜까지 자세히 적혀 있다. 김 여사가 이런 메모를 적었다는 것은 그가 비자금의 실질적인 주인 노릇을 한 ‘비자금 관리자’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환수위의 설명이다.

환수위는 고발장에 “김영환 의원은 지난해 10월25일 ‘비자금 없다던 노태우 공익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를 통해 6공 비자금 꼼수 상속’이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김옥숙의 수상한 자금에 대해 사정 당국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면서 “김영환 의원은 당시 국세청 공시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의 편법 상속 수단으로 지목되는 ‘동아시아문화센터’의 비정상적 운영 실태를 지적했다”고 명기했다.

고개 빳빳
‘입꾹닫’

김 의원은 지난해 10월 노태우 일가의 비자금 은닉과 관련해 “국내에서는 현금성 보험 가입(차명계좌 활용), 노재헌의 공익법인 악용 등의 수법이 활용, 해외에서는 조세피난처에 10개의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통한 비자금 은닉이 의심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지난해 10월8일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법무부)서 정청래 위원장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김옥숙은 차명으로 관리되던 자금 등을 동원해 두 차례에 걸쳐 농협공제(현 농협생명)의 ‘새천년새저축공제’라는 유배당저축성보험(공제)에 210억원을 가입했다”며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서진 등 8인의 차명계좌가 활용됐었고, 김 여사는 2007년 검찰 및 국세청 조사를 받았으며 해당 진술서가 공개됐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국세청, 검찰 등 사정기관을 겨냥해 “이는 명백한 조세포탈 및 금융실명제 위반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김 여사를 비롯한 노태우 일가가 처벌을 받았다는 기록은 드러난 것이 없다”며 봐주기 의혹을 제기했다.


김 여사는 추징금을 낼 여력이 없고 생활을 유지하기도 어렵다고 호소했으나, 실제로는 노재헌이 이사장으로 있는 공익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에 2016년부터 2021년까지 6년에 걸쳐 총 147억원을 출연했다.

환수위는 “노태우 일가가 보유한 거액의 불법 비자금이 다양한 수단으로 상속·증여되고 있다는 단서들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공익 목적 사업 등 의무 이행을 제대로 하지 않은 공익법인은 상속세나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탈세 혐의로 수사해 처벌할 수 있다”고 철저한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재판부 쇼핑’으로 1조원 판결
세금 먹은 미술관 영리단체로?

최근 노 관장은 그동안 비영리기관으로 운영해온 아트센터 나비를 영리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동안 대규모의 혈세를 받으면서 연간 평균 46일만 전시회를 진행하는 등 방만 운영을 하다가, 영리화에 나서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 나온 것이다.

지난 10일 업계에 따르면 아트센터 나비는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정부로부터 약 34억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2019년 9억4104만원 ▲2020년 7억8197만원 ▲2021년 7억8978만원 ▲2022년 5억5469만원 ▲2023년 3억3785만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전시활동은 연평균 46일에 불과했다. 특히 지난 2020년에는 15일, 2022년에는 14일에 그쳤다. 지난 5년간 투입된 정부 보조금과 실제 전시활동이 이뤄진 기간을 보면 하루 전시에 약 1500만원이 들어간 셈이다.

국가 지원금을 받아온 아트센터 나비는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5년간 아트센터의 누적 적자는 48억원으로, 2019년 200억원 수준이었던 자산은 2023년 말에는 145억원으로 55억원(27.5%) 감소했다.

재계에서는 방만한 재정 운용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아트센터 나비가 미술관 본연의 활동보다는 금융투자에 집중했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지난 2022년에는 금융평가손실 및 외환차손익으로 약 8억원, 2023년에는 6억원의 손해를 봤다. 보유 중이던 현금자산은 2022년 80억7800만원 규모서 2023년 6억5000만원으로 감소했고, 단기금융상품(고위험 투자 가능성이 있는 자산)은 같은 기간 10억원에서 69억9200만원으로 불어났다는 점도 비판 대상이다.

한편, 노 관장은 지난 2월 문화포럼 강연자로 나서 아트센터 나비의 영리화에 대해 언급했다. 노 관장은 “그동안 예술과 기술을 갖고 할 것은 다 했다”며 “아트센터 나비도 비영리기관에서 영리기관이라는 새 영역으로 넘어가려 한다. 돈을 벌며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각종 의혹
수사는?

견실한 운영을 하지 못했던 아트센터 나비가 영리화로 전환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국민 세금과 공공재가 개인의 이익으로 전환된다는 점에 대해서 우려를 표한다. 나비의 방만 운영에 대한 의혹은 비서의 횡령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노 관장은 2019년 입사한 비서가 5년간 20억원 이상의 자금을 횡령했다고 고소했다. 당시 재판 과정서 해당 비서는 노 관장을 사칭해 재무 담당자에게 상여금을 지급하라고 요청했는데 별다른 절차 없이 송금됐다. 이로 인해 아트센터 나비의 관리부실, 감시 부재의 상황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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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