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국감 피한 노소영 철면피 이중행보 막전막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3.24 13:58:59
  • 호수 15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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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부를 땐 줄행랑
행사엔 곱게 나타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국회 국정감사에 불출석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서울 예술상 시상자로 나섰다. 앞서 노 관장은 법제사법위원회로부터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다.

노소영 관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로부터 고발당하면서 ‘노태우 비자금’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검찰은 노태우 비자금 고발에 대해 조사 중이며 정치권서도 주시하고 있는 만큼 비자금 불법 은닉 여부 등이 차차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뻔뻔한
등장 신

노 관장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서 개최한 ‘제3회 서울 예술상’ 시상자로 나섰다. 국감 불출석 후 잠적한 노 관장은 지난해 10월 해외 행사 참석차 캐나다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져 비판을 받아왔다.

시상식서 노 관장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만나 악수를 하는 등 밝은 모습을 보였다. 이날 노 관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소송 과정서 등장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메모가 여러 사회적 해석을 낳고 있다는 기자의 물음에 “답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곧 시간이 올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확인이 어려운 규모의 돈이 유입된 정황에 관해 묻자 “그러게요”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다만 노 관장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곧 의견을 내겠다”고 전했다.


노 관장은 지난해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동생인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과 함께 채택됐다. 그러나 불출석 사유서 없이 국감장에 출석하지 않아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21일 서울남부지검에 고발됐다.

‘노태우 비자금’은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서 제기됐다. 당시 재판 과정서 노 관장은 어머니인 김옥숙 여사가 ‘맡긴 돈’이라며 남긴 메모와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이 찍힌 사진 등을 증거로 제시하며 “부친(노태우) 자금 300억원이 선경(현 SK)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지난해 5월 노 관장의 주장이 인정된다면서 재산 분할액 1조3808억원과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SK가 자금 유입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면서 이혼소송이 비자금 환수 국면으로 전환되는 양상이다.

노 관장은 아버지의 비자금 카드를 꺼내 소송서 대승한 듯 보였으나, 비자금 불법 은닉 혐의 등으로 3건의 고발이 접수돼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노 관장을 고발한 군사정권범죄수익 국고환수추진위원회(환수위)는 이혼소송 항소심을 맡은 김시철 서울고법 가사2부 부장판사를 탄핵하라고 주장했다. 특히, 노 관장과 김 부장판사의 특수 관계가 드러나면서 ‘재판부 쇼핑’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혼 소송 중 불거진 노태우 검은돈 의혹
국회 호출에 잠적 후 유유히 시상식 참석

재산분할 판결을 이끈 김 부장판사의 부친 고 김동환 변호사는 과거 ‘5·18 특별법’ 반대 등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을 미화한 인물로 알려졌다.


노 관장에게 승기를 건넨 김 부장판사의 부친 김 변호사는 노태우의 경북고 1년 후배다. 김 변호사는 소비자 권익을 위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변호사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동시에 노태우를 옹호한 인물이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과 전두환씨가 결성한 정치 군벌인 ‘하나회’가 광주 사태를 일으킨 후 탄생한 5공화국 때부터 국가정책 자문위원, 선관위원, 공정거래위원, 소비자보호위원 등을 지냈다. 본격적으로 노 전 대통령이 집권한 6공화국 들어서는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KBS 이사도 맡게 된다.

당시 김 변호사는 5·18 책임 문제로 곤경에 처한 노태우를 방어하는 최전방에 나섰다. 5·18 특별법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1995년 12월호 <한국논단>에 김 변호사는 ‘5·18 특별법 안 된다. 위험한 발상 5·18 특별법’이란 제목의 기고를 하게 된다. <한국논단>은 1989년에 창간돼 2014년까지 발행된 극우 성향 월간 시사지다. 5·18 특별법은 광주 사태를 일으킨 하나회 일당을 처벌하자며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법이었는데, 김 변호사는 이 법의 제정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또 노 관장의 변호를 맡으면서 최 회장에 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이상원 변호사는 김옥숙 여사의 고종사촌인 박철언 전 정무장관 사위다. 박철언은 노 전 대통령의 빈소를 지켰으며, 같은 경북고등학교 동문이다.

이 변호사의 부인 박지영은 미래회 현 회장이자 박 전 장관의 큰딸로, 노 관장과는 6촌 관계다. 노 관장의 미래회는 노태우의 하나회처럼 겉으로는 봉사를 내세우고 있다. 최근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에 언급된 임주현 한미약품 그룹 부회장과 김방은 예화랑 대표가 소속됐던 단체다.

당당하게
황당 행보

취재를 종합하면, 노 관장 이혼소송에 연관된 법조계 인맥은 노 전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재판부는 비자금 실체에 관한 심리도 하지 않은 채 노 관장 측의 주장만 받아들이면서 재산분할 판결을 냈다. 서울중앙지검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해 접수된 고발 사건을 범죄수익환수부에 배당한 상태다.

환수위는 김 여사를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환수위는 지난 14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사건 항소심 판결서 김 여사의 메모가 등장했는데, 이는 김 여사가 노 전 대통령의 이른바 ‘노태우 비자금’을 은닉하고 관리해 왔다는 명백한 증거”라면서 “김 여사는 남편인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이른바 ‘노태우 비자금’으로 알려진 범죄수익을 은닉하고 관리해온 범죄자”라고 강조했다.

환수위에 따르면 김 여사가 노태우 비자금을 관리하는 은닉 공범이라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노태우정부 시절에도 김 여사와 관련해 “김옥숙 여사가 별도로 비자금을 여러 비밀 계좌에 넣어두고 관리한다”는 소문이 줄을 이었다는 게 환수위 측 설명이다.

환수위 측은 “범죄수익 은닉 공모는 분명한 불법행위고 그 범죄수익이 전직 대통령의 천문학적인 비자금이라면 이는 매우 심각한 중범죄”라며 “김 여사의 딸인 노 관장은 항소심 재판서 ‘김옥숙의 메모’ 2개를 공개했는데, 김 여사가 1998년 4월과 1999년 2월에 작성한 이 메모에는 비자금 용처가 나타나 있다. 이는 김 여사가 비자금의 실질적인 주인 노릇을 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언뜻 장부처럼 작성된 해당 메모에는 노 전 대통령이 조성한 비자금이 누구에게 얼마가 전달됐는지 뿐만 아니라 여러 곳으로 뿌려진 돈 중 일부의 회수 예정 날짜까지 자세히 적혀 있다. 김 여사가 이런 메모를 적었다는 것은 그가 비자금의 실질적인 주인 노릇을 한 ‘비자금 관리자’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환수위의 설명이다.

환수위는 고발장에 “김영환 의원은 지난해 10월25일 ‘비자금 없다던 노태우 공익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를 통해 6공 비자금 꼼수 상속’이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김옥숙의 수상한 자금에 대해 사정 당국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면서 “김영환 의원은 당시 국세청 공시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의 편법 상속 수단으로 지목되는 ‘동아시아문화센터’의 비정상적 운영 실태를 지적했다”고 명기했다.

고개 빳빳
‘입꾹닫’

김 의원은 지난해 10월 노태우 일가의 비자금 은닉과 관련해 “국내에서는 현금성 보험 가입(차명계좌 활용), 노재헌의 공익법인 악용 등의 수법이 활용, 해외에서는 조세피난처에 10개의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통한 비자금 은닉이 의심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지난해 10월8일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법무부)서 정청래 위원장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김옥숙은 차명으로 관리되던 자금 등을 동원해 두 차례에 걸쳐 농협공제(현 농협생명)의 ‘새천년새저축공제’라는 유배당저축성보험(공제)에 210억원을 가입했다”며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서진 등 8인의 차명계좌가 활용됐었고, 김 여사는 2007년 검찰 및 국세청 조사를 받았으며 해당 진술서가 공개됐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국세청, 검찰 등 사정기관을 겨냥해 “이는 명백한 조세포탈 및 금융실명제 위반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김 여사를 비롯한 노태우 일가가 처벌을 받았다는 기록은 드러난 것이 없다”며 봐주기 의혹을 제기했다.


김 여사는 추징금을 낼 여력이 없고 생활을 유지하기도 어렵다고 호소했으나, 실제로는 노재헌이 이사장으로 있는 공익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에 2016년부터 2021년까지 6년에 걸쳐 총 147억원을 출연했다.

환수위는 “노태우 일가가 보유한 거액의 불법 비자금이 다양한 수단으로 상속·증여되고 있다는 단서들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공익 목적 사업 등 의무 이행을 제대로 하지 않은 공익법인은 상속세나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탈세 혐의로 수사해 처벌할 수 있다”고 철저한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재판부 쇼핑’으로 1조원 판결
세금 먹은 미술관 영리단체로?

최근 노 관장은 그동안 비영리기관으로 운영해온 아트센터 나비를 영리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동안 대규모의 혈세를 받으면서 연간 평균 46일만 전시회를 진행하는 등 방만 운영을 하다가, 영리화에 나서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 나온 것이다.

지난 10일 업계에 따르면 아트센터 나비는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정부로부터 약 34억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2019년 9억4104만원 ▲2020년 7억8197만원 ▲2021년 7억8978만원 ▲2022년 5억5469만원 ▲2023년 3억3785만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전시활동은 연평균 46일에 불과했다. 특히 지난 2020년에는 15일, 2022년에는 14일에 그쳤다. 지난 5년간 투입된 정부 보조금과 실제 전시활동이 이뤄진 기간을 보면 하루 전시에 약 1500만원이 들어간 셈이다.

국가 지원금을 받아온 아트센터 나비는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5년간 아트센터의 누적 적자는 48억원으로, 2019년 200억원 수준이었던 자산은 2023년 말에는 145억원으로 55억원(27.5%) 감소했다.

재계에서는 방만한 재정 운용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아트센터 나비가 미술관 본연의 활동보다는 금융투자에 집중했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지난 2022년에는 금융평가손실 및 외환차손익으로 약 8억원, 2023년에는 6억원의 손해를 봤다. 보유 중이던 현금자산은 2022년 80억7800만원 규모서 2023년 6억5000만원으로 감소했고, 단기금융상품(고위험 투자 가능성이 있는 자산)은 같은 기간 10억원에서 69억9200만원으로 불어났다는 점도 비판 대상이다.

한편, 노 관장은 지난 2월 문화포럼 강연자로 나서 아트센터 나비의 영리화에 대해 언급했다. 노 관장은 “그동안 예술과 기술을 갖고 할 것은 다 했다”며 “아트센터 나비도 비영리기관에서 영리기관이라는 새 영역으로 넘어가려 한다. 돈을 벌며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각종 의혹
수사는?

견실한 운영을 하지 못했던 아트센터 나비가 영리화로 전환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국민 세금과 공공재가 개인의 이익으로 전환된다는 점에 대해서 우려를 표한다. 나비의 방만 운영에 대한 의혹은 비서의 횡령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노 관장은 2019년 입사한 비서가 5년간 20억원 이상의 자금을 횡령했다고 고소했다. 당시 재판 과정서 해당 비서는 노 관장을 사칭해 재무 담당자에게 상여금을 지급하라고 요청했는데 별다른 절차 없이 송금됐다. 이로 인해 아트센터 나비의 관리부실, 감시 부재의 상황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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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