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계 두 신성 서로 다른 행보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3.10 16:25:01
  • 호수 15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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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달라도 묘하게 오버랩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대표적인 국민의힘 친한계 초선인 김상욱·주진우 의원이 상반된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묘하게 한동훈 전 대표의 정치적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단순한 친한계의 이탈인지, 친한계 버전 흑금성 공작을 진행하고 있는지, 의미심장한 지점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지난달 말 저서 <국민이 먼저입니다>를 출간하면서 다시 정치 행보를 재개했다. 대부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 가능성을 크게 인정하는 가운데 진행되는 정치 행보이기 때문에, 사실상 조기 대선 행보로 인식되고 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많은 부침을 겪었다. 체포 대상으로 지정됐던 적이 있고, 비상계엄 해제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정반대로

하지만 한덕수 책임총리 체제를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려다가 위헌 시비에 휘말렸다. 이어 전열을 다시 정비한 친윤(친 윤석열)의 반격과 일부 친한(친 한동훈)계 최고위원의 지도부 사퇴 참여로 인해 힘없이 대표직서 물러났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곧 다가올 시점서 다시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친한계 의원들은 여전히 한 전 대표와 함께하고 있다. ‘시작2’란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함께 대화하고 있고, ‘언더73’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와중에 튀는 행보를 유지하고 있는 친한계 의원들도 있다. 김상욱 의원과 주진우 의원이다.


김 의원은 지난해 12월7일 당론을 어기고 윤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에 참여한 이후 석 달 넘게 당론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탄핵소추 2차 표결을 앞두고는 국회서 1인 시위를 했고, 가결 직후엔 오열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국민의힘 중진인 윤상현 의원의 비난을 들었지만, 한 전 대표로부터는 격려를 받았다. 헌법재판관 임명안과 내란 특검법 표결(지난 1월8일)서도, 명태균 특검법 표결(지난달 27일)에선 당내 유일의 찬성표를 던졌다.

지난달 24일엔 광주를 방문해 망월동 묘지를 참배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지난달 15일 광주 금남로서 진행된 탄핵 반대 집회에 대한 사과 차원 방문이란 명분을 제시했다. 이후 단체 대화방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의 광주 방문을 놓고, 다른 친한계 의원들은 크게 반발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 의원은 다른 친한계 의원들에게도 광주 방문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의원이 개인 방문 의사를 밝히자, 친한계 의원들은 단체 대화방서 나가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반된 마이웨이 선택
한, 정치적 갈증 풀어

현재 지역구서 조직적인 당내 반발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진 김 의원이 언론 인터뷰서 어려움을 토로하던 것과 달리, 이 상황에선 별 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김 의원은 단체 대화방서 나온 이후에도 한 전 대표에 대한 우호적인 목소리를 이어나가고 있다. 아울러 ‘탄핵 반대 집회 사과’와 ‘광주 망월동 묘지 참배’가 단체 대화방서 나가야 할 이유가 되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친한계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에 대부분 참여했고, 윤 대통령에 대해서도 하야와 탄핵 등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월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이후 광주를 방문해 망월동 묘지를 참배했고,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수록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어 “5월의 광주 정신은 어려운 상황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정신”이란 찬사도 남겼다.

한 전 대표는 지난해 3월에도 광주 망월동 묘지를 참배하면서 같은 의견을 남겼다. 광주 금남로서 진행된 탄핵 반대 집회는 한 전 대표 및 친한계의 평소 의견과 상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광주 방문’을 이유로 김 의원을 굳이 단체 대화방서 쫓아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반대로 주진우 의원은 당의 법률자문위원장으로서 윤 대통령 관련 각종 법률적 대응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공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 1월엔 국회 탄핵소추위원회가 소추사유서 내란죄 부분을 철회하자, “내란죄를 빼고 나머지만으로 최대한 빨리 탄핵함으로써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피해 보려는 명백한 꼼수”라고 주장했다. 이어 “6개월 내 윤 대통령의 형사재판 제1심 판결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윤 대통령 석방은 불가피해졌다고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5일엔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관련 권한쟁의심판 선고가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심판 선고보다 먼저 진행되는 것에 대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절차적 정당성 훼손이 정점에 치닫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헌재 구성을 헌재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도 문제인데, 너무 졸속”이라고 강조했다.

광주 방문 주장했다고 단톡방 퇴출?
헌재·선관위 저격으로 주류 대변

지난 2일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명의의 별도 휴대전화를 개통해 정치인들과 소통한 것으로 알려진 김세환 전 사무총장에 대해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을 재개해서 선관위 시스템에 대한 증거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선관위 사무의 독립성·공정성을 심각히 침해한 중대 사안”이라는 것을 들었다. 아울러 이 대표에 대한 공세를 비상계엄 사태 이전부터 꾸준히 진행했다. 지난달 6일엔 이 대표의 측근 김용 전 민주연구원장이 자신의 형사재판 항소심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것과 관련해 “이젠 이재명이 수사받을 차례”라고 주장했다.

주 의원의 주장은 하나같이 친윤 등 당내 주류들과 강성 지지자들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 친한계의 평소 주장과 결을 달리하고 있지만, 그가 친한서 이탈했다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주 의원은 윤석열 사단의 검사 출신으로서,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을 지낸 전력도 있다.

평소 “친윤과 친한 사이”라는 평을 듣지만, 한 전 대표와 뚜렷하게 각을 세운 흔적은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최고위원직서 사퇴해 “한동훈 체제 붕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었던 진종오 의원의 사례도 존재한다. 진 의원은 한동안 한 전 대표와 소원한 것처럼 보였지만, 지난 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전 대표와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지난 5일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전 대표를 지키지 못한 저의 아쉬운 모습과 당원과 국민께도 기대를 벗어난 그날을 되새겨본다”는 글을 올렸다.


김 의원과 주 의원은 조기 대선 진행 확정 시 한 전 대표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수도 있는 행보를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전 대표가 자신의 기반으로 삼을 필요 있는 유권자는 중도 및 온건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다. 이들에겐 김 의원이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반대로 가장 취약해 세심한 설득과 공략이 필요한 대상은 당내 주류인 강성 보수 민심이다. 이들에겐 주 의원이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단순 이탈?

1990년대 안기부서 근무했던 박채서씨는 북한 침투 공작을 위해 고의로 채무 문제를 일으키는 등 엘리트 군인의 삶을 스스로 파괴한 후 군을 나왔다. 이어 안기부 해외공작실 소속 블랙 요원으로서 ‘흑금성’이란 암호명을 받았고, 광고사업을 미끼로 평양에 들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왔다. 박씨의 공작 과정은 언론의 조명을 거쳐 <공작>이란 영화로 제작돼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우호적이지 않은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기 위해선 비상한 정치적 대응이 필요하다. 단순한 이탈인지, 뭔가 이유가 있는 선택인지 불분명한 두 의원의 행보서 한 전 대표가 느낄 정치적 갈증이 묘하게 겹친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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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5000만원 관봉권’ 출처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은 대통령실 특활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씨는 그저 ‘기도비’라고 진술 중이다. 검찰이 김건희씨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점을 보면 전씨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가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김씨의 소환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일가를 향한 수사는 그간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로비 사건은 중앙지검이 아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포문을 열었다. 전씨는 통일교와 캄보디아 사업 및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았다. 윤석열 일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수상한 증거들 남부지검은 전씨를 수사하기 이전에 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근 정식 부서로 신설된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해 7월 ‘퀸비코인(QBZ)’ 관계자 이모씨 외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사업 진행 능력이 없음에도 허위 자료를 제출해 스캠 코인을 상장했다. 1만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300억원에 육박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과정서 퀸비코인 관계자 이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모씨를 전씨와 연결한 정황 및, 이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정씨는 전씨 법당을 찾아 1억원을 건넸다. 이 사실을 파악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법당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달여 전에는 경기 성남의 카카오 판교 서버를 압수수색해 전씨의 카카오톡 기록까지 확보했다. 전씨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그의 처남으로 알려진 ‘찰리’ 김모씨도 전씨와 같이 활동했다. 전씨는 김건희씨가 운영하던 전시기획회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씨의 딸도 잠깐이지만 코바나컨텐츠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과 김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실제 전씨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부지검은 지난달 30일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모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찍혔는데…통상 정부 예산 활용 금융권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없다” 일축 검찰이 지난 3일 전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남부지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김씨를 대선 직전에 소환조사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목걸이와 명품백을 잃어버렸다. (김 여사가 잘 받았다는 문자는) 거짓 문자”라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씨 측도 “전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윤씨가 전씨에게 윤석열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추진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윤 전 대통령과 독대했고 국가 단위 ODA 연대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3월 윤씨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김씨를 인수위서 만난 뒤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일교는 같은 해 메콩강 핵심 부지에 ‘아시아태평양유니언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윤씨는 훈센(Hun Sen)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도 이 사업을 논의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씨는 2022년 5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3월 22일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독대를 하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는 비영리기구(NGO)가 펀딩 가능하고 국가가 지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가 제4차 한-캄보디아 ODA 통합 정책협의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한 점을 주목했다. 한도액이 늘면 중기후보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ODA 사업 수주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던 6000만원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와 관련해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는 전씨에게 “김 여사에게 빌리지 말고 하고 다니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씨 명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했다. 이 중 1대는 김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서 나오면서 보안 비화폰(안보폰)을 반납한 뒤 개통한 휴대전화다. 나머지 2대는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사실상 공기계로 알려졌다. 자택 압색 그 이후… 검찰은 100여개에 달하는 압수 대상에 윤씨 선물 명목으로 전씨에게 제공했다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도 적시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씨의 청탁이 성사됐거나 윤씨와의 직무 관련성 등이 입증된다면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톡 기록과 전달됐거나 전달되려 했던 물품들은 이미 수사팀이 확보했으니 김씨가 대면 조사를 피하긴 힘들다”며 “남부지검서도 성역 없이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직무 관련성 입증이 관건”이라며 “입증만 된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5만원권 3300매(1억6500만원)를 확보했는데, 이 중 5000만원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전씨에게 이 관봉권의 출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관봉권은 ‘제조권’과 ‘사용권’ 두 종류로 나뉜다. 제조권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은이 받아온 신권으로 돈다발에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 압축한 형태다. 사용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서 회수한 돈을 검수해 낡은 돈은 폐기하고 사용하기 적합한 돈만 골라낸 것이다. 발견된 돈다발 김씨와 전씨 사건서 등장하는 관봉권은 모두 사용권이다. 전씨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 돈다발은 한은이 적힌 비닐로 포장돼있었고, 비닐엔 기기 번호와 담당·책임자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씨 측이 옷값을 치를 때 썼던 관봉권은 비닐 없이 띠지만 둘러져 있는 돈다발 형태였다. 관봉권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에 필요한 특수활동비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 특활비가 로비 자금으로 악용됐다. 한은은 전국에 16개 지역 본부를 두고 금융기관에 관봉권을 보낸다. 서울엔 남대문 본점 및 강남본부 등 두 곳이 있다. 이 중 강남본부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 등에 예산 조달을 담당해 왔다. 다만 민간인의 집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대개 일반 정부 예산은 관봉권 형태가 아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전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천만원 상당의 관봉권이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건 영수증 내역도 남지 않는 특활비”라며 “통상 정보와 사정기관이 ‘돈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도 전씨의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 강남본부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이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돼있다. 윤 전 대통령 취임일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주로 돈은 ‘기도비’ 명목으로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받은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은 방문 이후 전씨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에 적힌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발권국 항목 등의 의미를 확인했다. 기기번호의 뜻은 정사기(검수기) 기기번호와 기기호수를 뜻하고, 발권국 정보에는 정사 업무를 담당하는 발권국 화폐관리1팀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MB 때 국정원 ‘입막음·로비’ 용도로 사용 검·정보 “이번엔 아니다”…남은 건 용산 포장지에 적힌 ‘2022년 5월13일 오후 2시5분59초’는 한은이 검수를 마친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한은은 개별 사용권이 어느 시점에 어느 금융기관으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기관서 화폐를 요청하는 경우 ▲지급한 금융기관명 ▲지급일자 ▲권종 ▲금액 등만 기록할 뿐, 어떤 사용권 묶음을 제공했는지는 별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지난 대선 기간 전씨가 운영했던 윤 전 대통령 선거캠프 운영비일 수 있다고 보고 금융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초 당시 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있던 오을섭씨를 소환조사하면서 양재동 캠프의 운영비 출처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관봉권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특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한은 뭉칫돈은 대부분 특활비”라며 “특활비라면 한은 검수 이후 수천만원 상당의 돈이 필요한 곳은 보통 사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예산은 뭉칫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사정기관 담당자들을 불러 확인해봐야 하는데 정보기관에서는 특활비 활용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확인도 어려울 것이다. 출처 규명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와 접촉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정원 특활비’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정원은 관봉 형태의 특활비 5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 ‘입막음비’로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청와대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장 전 주무관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출처 어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특활비와 흡사해 보이지만 2022년 이후의 특활비 활용이나 대통령실을 통해 쓰인 ‘국정원 특활비’ 등에 대해서 들여다봤을 때 불법적이거나 위법하게 쓰인 사실이 없다. 한 개인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못 박았다. 검찰 관계자도 “남부지검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검찰 특활비는 아니다. 남부지검 수사팀도 검찰과는 상관없는 관봉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