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레커 시동’ 떨고 있는 유튜버들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3.04 11:24:05
  • 호수 15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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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욕했다간 잡혀간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거짓 영상 제작 및 유포로 논란을 빚은 유튜버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자, 정치권 개입이 시도됐다. 지난달 23일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이른바 ‘사이버 레커 정보공개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유튜버들은 정보의 공익성마저 침해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했다.

최근 사이버 레커로 지목된 유튜버 뻑가의 신상이 미국법원의 소송 결과에 따라 일부 제공됐다. 앞서 구글 측은 현행법을 준수하고 법적 요청에 협조한다고 밝혀왔다. 다만, 피해자가 가해자의 신원을 확보하려면 미국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이를 두고 전용기 의원은 “과도한 절차적 장벽이 존재해 실질적인 피해 구제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해석했다.

절차적 장벽
과도함 존재

일각에선 사이버 레커로 규정하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정치인의 부정행위를 폭로한 유튜버마저 반대 진영서 사이버 레커로 규정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특정인에게 일어난 이슈를 악의적으로 편집한 영상을 온라인에 게시해 시청자의 후원을 유도하는 유튜버를 사이버 레커라고 한다.

교통사고 현장에 난폭하게 출동해 사익을 추구하는 사설 구난차인 ‘레커(Wrecker)’에 비유한 것이다.

익명 뒤에 숨어 활동하던 유튜버 ‘뻑가’는 사이버 레커로 지목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뻑가의 신상은 BJ 과즙세연(인세연)과의 법적 공방 과정서 드러났다. 그는 과즙세연이 금전적 대가를 받고 성관계를 했고, 미국 라스베이거스서 도박을 했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영상을 제작해 유포했다.


이에 대해 과즙세연은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혐의로 뻑가를 고소했다.

소송을 대리한 정경석 법무법인 리우 변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지방법원으로부터 뻑가의 개인정보 일부를 제공받았다”며 “이에 따라 그의 신원이 밝혀졌다. 현재 뻑가는 한국에 거주하는 30대 후반 남성 박모씨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구독자 114만명을 보유한 뻑가는 주로 타인을 비난하는 영상을 올리기로 유명하다. 특히 그는 특정 인물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며 비판하는 영상을 다수 제작하면서도 본인의 신상은 감춰 모순적 행위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누가 죄인?’ 정치권 개입 시도
신상 탈탈···정치적 악용 우려

그의 콘텐츠 중에는 ‘반 페미니즘’ 성향의 영상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2022년에는 인터넷 방송인 BJ 잼미(조장미)를 남성 혐오 페미니스트로 규정하며 저격 영상을 제작했다. 이로 인해 잼미와 그의 어머니가 심적 고통을 겪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

논란이 커지자 뻑가는 사과 영상을 올린 뒤 활동을 중단했으나 약 6개월 후 영상을 업로드하며 복귀했다.

신상이 공개된 뻑가는 억울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저를 음해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해 최대한 강력한 대응을 할 예정”이라며 “어차피 수익도 막혔고, 잃을 것이 없는 상황서 총력을 다해 맞서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1000개가 넘는 유튜브 채널 영상 중 96개의 동영상만 남기고 삭제했다. 지속적인 악의적 콘텐츠 제작에도 불구하고 뻑가의 신원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피해자들은 법적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최근에서야 미국 소송을 통해 그가 30대 박모씨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미국 현지 변호사 선임 비용은 8000만~9000만원 정도로 비싼 편에 속해 피해자들의 경제적 부담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전 의원은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로부터 사이버 레커의 이름과 나이 등 기본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전 의원은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해외 플랫폼을 악용한 사이버 레커들의 무책임한 행태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며 “명예훼손 및 허위 사실 유포로 수사 대상이 된 익명 유튜버의 기본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익명과 폭력
협박과 갈취

전 의원은 입법 토론회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련 소송을 진행한 변호사들과 협력해 법률 개정을 위한 국회 입법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며 토론회를 통해 해외 플랫폼과 협력해 가해자의 신원 확보 절차를 개선하고, 피해자가 더욱 신속하게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 의원이 ‘사이버 레커 정보공개법’ 추진에 나서자, 일부 유튜버는 ‘족쇄 채우기’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유튜버는 취재진과 인터뷰서 “취지는 알겠으나, 사이버 레커의 기준이 모호하다. 누군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사이버 레커 취급받고, 신상이 공개된다는 것은 공익성마저 저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만약에 여당 정치인을 비판하면 권력을 쥔 여당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것”이라며 “해당 정치인의 비리가 사실임이 입증됐다 하더라도, 명예훼손 혐의는 성립될 수 있기에 유튜버의 신상 공개 청구로 이어질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공익과 자율성 침해 우려에 관해 전 의원은 “가짜 뉴스를 유포하고 피해 입힌 익명 유튜버의 신상 정보를 온 국민이 아닌, 최소한 수사기관에서만큼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재차 설명했다.

사이버 레커의 영향력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으로 번졌다. 앞서 1000만명 이상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쯔양(박정원)을 협박해 돈을 갈취한 구제역 등이 최근 유죄 판결받은 가운데, 허위 사실과 음모론은 추가적으로 양산되고 있다.

쯔양은 매체와 인터뷰서 “중국 간첩설부터 정계 연루설 등 2차 가해가 이뤄지고 있다”며 “저는 중국에 가본 적도 없고, 진짜 전혀 아무것도 없다. 정치로 저와 연관을 지으시면, 저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듣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정치 유튜버
무사 못할 것”

구제역의 법률대리인인 김소연 변호사(법무법인 황앤씨)와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는 쯔양이 ‘중국 간첩과 관련이 있다’는 음모론을 퍼트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쯔양은 가로세로연구소 등을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했다.


쯔양은 “(사생활에 대해)너무 공개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쪽에서 그런 루머들을 만들어내니까 공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검찰과 정치권에도 배경이 있는 거물이라는 가짜 뉴스에 대해서도 “제가 피해자 코스프레하고 있다면서 검찰 측에서 너무 빨리 움직이는 게 이상하다고 그쪽과 관계가 있다더라”라며 “어떻게든 저를 죽이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괴로워했다.

법원은 지난달 20일 쯔양을 협박해 수천만원을 뜯어낸 혐의로 기소된 구제역에게 징역 3년, 최모 변호사에게는 징역 2년을 선고하고 이들을 법정 구속했다. 공갈 혐의 공범으로 기소된 유튜버 주작 감별사(전국진)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및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했다.

또 구제역 등의 공갈 범행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된 카라큘라(이세욱)와 크로커다일(최일환)에게는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및 사회봉사 240시간과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구속된 구제역은 변호사를 통해 쯔양의 인터뷰에 대해 반박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달 24일 입장문을 통해 “JTBC 보도에는 마치 제가 ‘쯔양이라는 이름이 왜 생겼는지 모르겠다’ ‘쯔양이 중국 인민망과 관련 있고 비밀 경찰’이라는 식의 발언을 한 것처럼 전달됐다. 그러나 이는 다음과 같은 발언의 일부만 짜깁기 한 것으로 실제 맥락과 전혀 다르다”며 해당 보도를 정정했다.

김 변호사가 전달한 당시 발언 전문에는 ‘쯔양의 소속사 관계자들, 그리고 이번에 5000만원 구제역하고 협의 본 사람, 이런 사람들이 청년 페이 등 중국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업들이 있다’ 등의 발언을 했다.


쯔양-구제역 사건에 ‘중국 간첩설’
조만간 공익·자율성 사라질 수도?

아울러 김 변호사는 “위 발언 취지는 쯔양이 직접 중국 인민망이나 비밀 경찰 의혹에 연루됐다는 것이 아니라, 쯔양이 출시한 정원분식 위·수탁 운영과 소속사 이사와 협업 중인 박현철 액터코퍼레이션 대표 겸 S&S컨설팅 운영자가 왕해군, 동방명주 등 중국 비밀 경찰서 의혹 당사자들과 연관돼있다는 사실을 설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박현철이 운영하는 S&S컨설팅에는 쯔양 소속사 이사인 최소원이 이사로 등재돼있으며 박현철은 ‘청년페이 코인’으로 논란이 일었던 한국청년위원회 이사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 더 나아가 동방명주와 왕해군이 중국 인민망과 연관됐다는 보도가 쏟아지던 당시, 박현철은 왕해군과 접촉해 논란이 된 김두관 민주당 전 의원의 행사를 지원하는 게시물과 사진을 직접 올리기도 했다”며 쯔양이 중국 인민망 비밀 경찰서 의혹 당사자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구제역 등은 지난 2023년 2월 쯔양 사생활, 탈세 관련 의혹을 제보받고 쯔양을 협박해 5500만원을 갈취한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또 두 사람은 사생활을 빌미로 지인의 식당을 홍보하라며 촬영을 강제하기도 했다.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두 사람은 “네(쯔양)가 고소를 남발해 소상공인을 괴롭힌다는 영상을 올리겠다”며 쯔양을 협박하기도 했다. 이에 보석 석방으로 풀려났던 구제역은 다시 구속됐다. 1심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구제역과 최 변호사는 항소했다.

지난달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구제역 측은 전날 법원에 ‘사실 오인’과 ‘법리 오해’ 등을 이유로 항소했다. 최 변호사 측도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이 과정서 주작감별사와 크로커다일, 카라큘라도 구제역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함께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서 각자 확보한 쯔양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가 하면, 서로 통화도 주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비밀 경찰
의혹 연루

최 변호사는 쯔양에게 “유흥업소 경험 등 과거사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언론 대응 등 자문 명목으로 약 2300만원을 갈취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쯔양 탈세 의혹 등을 유튜버 가로세로연구소 측에 제공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최 변호사는 구제역에게 쯔양 정보를 제공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후, 쯔양 전 남자 친구이자 소속사 대표였던 A씨(사망) 지시로 해당 정보를 제공한 것처럼 A씨 유서를 조작해 유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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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